서울 근교, 옛 고을의 유적과 사연들이 수놓은 집성촌 순례
2025년 2월, 마지막 고을학교는 <성남·군포·의왕고을>
2월의 고을학교(교장 최연. 고을답사전문가) 제116강은, 고을학교의 마지막 강의로,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 집성촌의 유적과 사연들이 전해오는 <성남·군포·의왕고을>을 찾아갑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이로써, 드디어 고을학교가 제116강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10월에 개교하여 2025년 2월까지 11년 4개월 동안 장장 116개 고을의 긴 여정을 열정적으로 이끌어 주신 최연 교장선생님,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또한 원활한 답사를 도와주신 김순태·이지범 교감선생님, 항상 안전 등하교 해주신 이신배 기사님, 뒷바라지에 바빴던 허경옥 스태프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울러 긴 세월 함께하신 고을학교 참가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넘치는 열성과 지성으로 참여하신 여러분 덕택에 학교는 반짝반짝 빛났고 또한 무탈하게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성남 분당중앙공원 안에는 한산이씨 문화유적인 묘역과 말 무덤, 조선시대 고가로 경기지역 살림집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한산이씨 수내동가옥 등이 있어 도심에서 보기 드문 향토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성남시
<알려드립니다>
회원님들 중에 이대론 아쉬움이 있어 그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고을들을 중심으로, 한 번 더 답사하자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숙고 끝에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하여, ‘특별히 반짝이는 열두 고을’을 선정하여, 지난 시기와는 조금 다른 접근으로, 2025년 3월부터 2026년 2월까지 <12번의 앙코르 답사>를 진행하기로 하셨습니다. 교장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회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부락인 ‘마을’들이 모여 ‘고을’을 이루며 살아왔습니다. 2013년 10월 개교한 고을학교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고을을 찾아 나섭니다. 고을마다 지닌 역사적 향기를 음미하며 그곳에서 대대로 뿌리박고 살아온 삶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찾는 고을마다 인문역사지리의 새로운 유람이 되길 기대합니다.
고을학교 제116강은 2025년 2월 23일(일요일) 열리며 오전 8시 서울을 출발합니다. 정시 출발하니 출발시각 꼭 지켜주세요(답사지가 비교적 가까워 출발 시각이 오전 8시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오전 7시 50분까지 서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고을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116강 여는 모임에 이어,
이날의 답사 코스는 서울-군포(김만기묘역/동래정씨동래군파종택/정난종묘역일원)-의왕(사근행궁터/지지대고개)-성남(이경석묘역/천림산봉수대)-분당중앙공원(한산이씨삼세유사비/수내동가옥/한산이씨묘역)-서울의 순입니다.
▲<성남·군포·의왕고을> 답사 안내도Ⓒ고을학교
*코로나19와 독감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해 참가회원님은 항상 차내·실내 마스크 착용, 손소독, 거리두기를 잘 챙겨주시기를 권합니다.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제116강 답사지 설명을 듣습니다.
성남의 역사는 백제 온조왕 때로부터 시작됩니다.
성남고을은 서기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지로 정한 하남위례성의 옛터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지역입니다.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에 남하하여 한산성을 함락하고 북한산 군을 설치하였고 551년 백제 성왕이 신라와 연합군을 결성, 한산성을 탈환하였습니다. 이어 553년 신라 진흥왕이 한산성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고, 557(진흥왕 18)에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568년 (진흥왕 29)에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를 설치하였습니다. 604년(진평왕 26)에 남천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가 662년(문무왕 2) 남천주가 설치되고, 664년 한산주로 개칭되고, 767(경덕왕 16)에 시행된 한화 정책에 따라 한주로 개명되었습니다.
고려 시대는 신라말까지 ‘한주’라고 불리어오던 성남지역이 속한 주군의 명칭을 940년(태조 23)에 ‘광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고,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광주 목이 되었습니다. 995년(성종 14)에 12목제 대신 12주 절도사제와 10도제를 함께 실시하여 관내 도에 예속되어 봉국군 절도사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양광도에 예속되고 절도사제를 폐지하여 안무사를 설치하였는데, 1310(충선왕 2)에 전국 주군의 읍호를 고칠 때 지주사로 강등되어 8목에서 제외되었다가, 1356(공민왕 5)에 다시 광주목으로 복귀되었습니다.
조선 시대는 1504(연산군 10) 연산군 비방 벽보사건으로 광주목을 폐지하였고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축출되면서 광주목이 다시 주로 복귀되어 판관을 두었으며 1559년(명종 14) 목사가 파견되었습니다.
1577년(선조 10) 광주부로 승격되어 부윤이 임명되었고 1623년(인조 원년) 유수로 승격되어 수어사를 겸하였으며 1626년(인조 4)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 수어청을 설치하면서 치소도 성내로 옮겨 수어사 절제를 설치, 목사 겸 방어사로 강등되었습니다. 1637년(인조 15) 광주부로 승격되어 부윤을 두었으며 1680년(숙종 6) 다시 복귀, 1795년(정조 19) 유수 겸 수어사로 확정, 설치되어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895년 한성부 광주군, 1896년 경기도 광주부가 되었다가 1906년 광주군으로 강등되어 광주 군수를 두었습니다.
1968년 서울특별시 광주대단지사업소를 설치하여 1969년 성남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 조성공사를 착수하였고, 1969년 서울특별시 철거민 집단입주를 개시하여 48세대 154명 입주가 완료되었습니다. 1971년 광주군 성남지구 도시건설사업소 및 서울특별시 광주대단지 사업소를 폐지하고 1973년 경기도 성남출장소를 성남시로 승격시켰습니다.
▲의왕 백운호수는 원래 안양과 평촌지역의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으나 지금은 호수가 되었다. 백운산과 청계산이 둘러싸고 이들 계곡의 물이 호수로 흘러들어 물이 맑고 풍경이 수려하며 특히 산보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한국관광공사
이경석 묘는 부인 전주유씨와 합장묘이며, 2단의 사성으로 후면을 정리하였고 봉분 앞에는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조성하였습니다. 봉분 좌우에는 망주석과 금관 조복형 문인석이 각 1쌍씩 서 있고 망주석은 8각으로 극히 화려하며 석수 조각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석과 계체석, 4각과 6각의 향로석 2기, 장명등이 있으며, 봉분 우측에 상석과 4각 향로석 등 다수의 석물이 있습니다. 신도비의 비문은 박세당이 짓고 이광사가 쓰고 전액을 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 건립되었으나,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마모되어 1975년 개수하였습니다. 묘갈은 1751년(영조 27)에 건립되었는데, 갈문은 현손 광회와 광사가 각각 짓고 썼습니다.
이경석(李景奭)은 인조에서 효종, 현종의 3대에 걸쳐 나라에 공헌한 재상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상보, 호는 쌍계, 백헌입니다. 1613년(광해군 5)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 별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인목대비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되었습니다. 1623년(인조 1)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고 이괄의 난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는 체찰사 장면의 종사관으로서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대사헌, 부제학으로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한 후, 이듬해 삼전도비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고 1642년(인조 20) 심양에서 돌아와 대사헌, 좌의정 등을 거쳐 1649년(효종 1)에 영의정에 올라 효종의 북벌정책에 참여하였습니다. 1668년(현종 9)에 궤장을 하사받았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성남의 판교로 옮겨 살다가, 뒤에 지금의 석운동에서 만년을 보냈습니다. 시호는 문충이고 방산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헌집> 등 유집 50여 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