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제주시 오라2동 3030-1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교육기관
오라공립국민학교는 1946년 2월 1일 설립인가를 받아 오라동 3030번지에 5학급으로 개교했다. 다음(daum) 지도에는 오라2동 3038-2번지에 ‘오라국민학교옛터’라고 표시되어 있다. 『제주4·3유적Ⅰ』에는 ‘현재 이 옛터 주변에는 오라2동 연미마을회관이 위치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마을회관은 3030-1번지이다.
4·3 기간 오라교는 2,000평 부지에 목조 함석의 본관(4개 교실) 1동, 화장실 1동, 목조 기와 향사 1동(40평) 1동 등 총 3개의 건물을 갖추고 있었다. 5학년 5학급 규모였고, 학급당 인원수는 오라·연동 지역 학생 25명 정도였다.
오라국민학교 향토지에 따르면 1948년 12월 중순 교사(校舍)가 전소되고 교원도 3명이나 살해되었으며 그 결과 학교는 폐교되고 부지는 지주에게 자동 반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방화 주체가 누구인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증언(제주4·3교육계피해실태조사보고서 2018)에 의하면 연미마을은 2차례에 걸쳐 방화되었다. 학교는 2차 방화 때인 1949년 1월 21일 토벌대에 의해서 전소되었다고 한다.
“4·3 당시 근무했던 교직원으로는 교장 박○○(부인은 경찰), 교사 김세인, 강사 고○○, 김일중 등이 있었는데 김세인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강사 2명은 토벌대에 의해 사망했다. 마을과 더불어 학교가 전소된 후 학생들은 제주북교, 제주남교, 화북교, 아라교 등지로 분산 통학하게 되어 통학거리가 멀어지고 우천시에는 교통이 두절되는 등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에 당시 지역 유지들이 힘을 합쳐 1950년 6월 13일 오라동 3080번지에 제주남초등학교 오라분교장으로 인가를 받아 부지1,450평에 건물 2개 교실(40평)을 지어 1학년 2학급, 2학년 1학급으로 1950년 7월 3일 재개교했다.”(1933년생 박기찬)(제주4·3유적Ⅰ)
표석에는 ‘오라동에 학교가 없어 배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배우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마을 유지들이 학교 부지를 마련하여 1946년 2월 1일 이곳에 오라공립국민학교를 개교하였다. 그러나 4·3사건의 발발로 학교가 불타고 교직원이 순직하는 비운을 당하자 1948년 12월 6일 자진 폐교하게 되었으며 그 후 오라2동 1380번지(현 오라초등학교 부지)로 옮겨 제주남국민학교 오라분교 인가 과정을 거친 후 1951년 9월 14일 오라국민학교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표석에 나온 학교 전소 날짜는 1948년 12월 6일이고 오라초등학교 홈페이지의 학교 연혁에도 1948년 12월 6일이다. 그런데 『제주4·3교육계피해실태조사보고서』에 나온 학교 전소 날짜는 1949년 1월 21일이다.
《작성 2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