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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막대기 환상
겔 37:15-28
1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18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19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20 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눈 앞에서 손에 잡고
21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22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23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4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25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26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8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37:15-28 /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일] 여호와께서 내게 또 말씀하셨다. 16) `너 사람아,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나라에 소속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라고 쓰거라. 그런 다음에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는 `요셉과 나머지 이스라엘 족속들에게!'라고 쓰거라. 17) 그리고 너는 그 두 막대기를 서로 연결시켜서 그 둘이 하나의 막대기인 것처럼 보이도록 네 손으로 붙들고 있어라. 18) 그러다가 네 동포들이 네게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19) 너는 이렇게 대답하여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내가 이제 에브라임 지파가 차지하고 있는 요셉의 통치권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유다가 쥐고 있는 통치권의 지팡이와 연결시켜서, 그 두 지팡이가 하나의 막대기가 되도록 손수 두 손으로 붙들고 있겠다. 내가 에브라임의 지파들을 유다 지파와 다시 연결시켜 놓겠다.' 20) 너는 그 글씨가 적혀 있는 두 막대기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붙들고 있다가 21) 네 동포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나 주 여호와가 하는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이 끌려가 사는 세계 만민 속에서 데리고 나오겠다. 세계 어디에서든지 내가 그들을 모아다가 고향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2) 그곳 이스라엘의 산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묶고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리도록 하겠다. 그들이 더 이상 두 민족으로 갈라져 살지도 않고 서로 다른 두 왕이 다스리지도 못하게 하겠다. 23) 그때에는 그들이 우상을 섬기거나 흉악한 죄악을 저질러 몸을 더럽히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손수 그들을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다시 깨끗하게 씻어 주고 방황하는 곳에서 다시 고국으로 데려오면 그때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24) 그때에는 내 옛날의 충실한 종 다윗과 같은 목자가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모든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내 모든 계명을 지키고 수행할 것이다. 25) 그때에는 내가 옛날에 내 종 야곱에게 주었고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에서 그들이 다시 살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과 그들 자녀들과 또 그 자녀들의 자녀들이 영구히 살 것이다. 그때에 그들을 다스릴 왕은 언제나 옛날의 내 종 다윗과 같이 좋은 목자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계약을 맺고 평화와 행복을 보장해 주겠다. 내 성전도 영구히 그들의 한가운데에서 있을 것이다. 27) 그들이 바로 내 성전이 되어 내가 그들에게서 살면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28) 세계 만민이 그것을 보고서 내 성전이 영구히 그들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내 거룩한 백성으로 삼은 여호와인 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른 뼈 환상에 이어 두 막대기 환상이 이어집니다. 가증한 이스라엘의 죄와 그 죄에 대한 심판은 종교적 영역에만 그치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통일왕국의 분열과 외적의 침략에 따른 멸망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문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적힌 두 막대기가 하나로 연결되는 행위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통일되어 새로운 나라로 태어날 것이라는 상징이자 소망의 제시입니다.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15-23) 두 막대기가 합쳐져 한 막대기가 됩니다. 이는 북 왕국 요셉과 남 왕국 유다가 하나의 왕국이 되고, 한 왕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죄의 결과 둘로 나뉘었다가 차례로 망한 두 왕국을 하나로 만드실 것입니다. ‘한 임금’(22)의 통치를 받는 ‘한 나라’(22)는 다시 나뉘지 않으며,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죄의 결과로 분열하고 망했던 이스라엘이 한 몸이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은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장래 계획을 회복(21), 통일(22), 정결함(23)등 3가지로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의 언약(창 12장), 다윗의 언약(삼하 7장), 새 언약(렘 34장)이 성취됩니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24-28) ‘한 나라’를 통치하는 ‘한 임금’은 ‘한 목자’(24)입니다. ‘한 목자’는 하나님의 종 다윗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22-24절에는 ‘한’이라는 단어가 3번 나오고, 24-28절에는 ‘영원’이란 단어가 5번 나옵니다. ‘한’ 임금이자 ‘한’ 목자인 다윗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한’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다윗의 영원한 통치 실현이 바로 회복입니다. 회복의 핵심은 하나님 주도로 맺어지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회복입니다. 이스라엘과 왕과 백성의 관계(화평의 언약)를 맺으신 하나님은(24-26), 땅을 회복하여 성소를 그들의 땅 가운데에 두시고(26-27), 그들 가운데 영원히 머무실 것(27)입니다. 더 나아가 신약시대에는 다윗의 언약대로 오신 우리의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엡 1:10) 복음 안에서 죄 때문에 나뉘어있던 하나님과 인간,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롬 2:29; 엡 2:11-22; 갈 5:6). 궁극적으로 이 연합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됩니다.
적용 :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하나 됨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는 분열이 있습니까? 하나 됨이 있습니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세상이 우리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되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처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 설 교 >
막대기 예언의 영적 의미
에스겔 37:15-23 / 피영민 목사
서 론
에스겔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에스겔 37장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 37장 전반부가 골짜기의 마른 뼈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생기를 받아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오는 막대기 예언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에스겔 37장 후반의 막대기 예언은 에스겔서의 38장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즉 막대기 예언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38장 이하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먼저 막대기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말씀은 에스겔 개인이 연구한 말씀도 아니고, 묵상해서 생각해 낸 말씀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증거하라고 에스겔에게 맡기신 신탁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막대기 두 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막대기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하나의 막대기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막대기를 하나로 붙여 하나의 막대기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기독교 진영을 나눌 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Ⅰ. 표면적인 의미
다윗 왕이 즉위한 때는 B. C 1010년입니다. 다윗이 40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때가 B. C 970년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된 때가 B. C 930년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왕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아 나라를 두 개로 만들었습니다. 남 왕국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베냐민 자파와 레위 지파가 약간 가담하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형성되었습니다. 다윗의 후손들이 왕이 된 것입니다.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즉 이 말씀은 유다와 유다 지파에 동조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 왕국 유다입니다.
북 왕국은 요셉의 아들 가운데 에브라임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야곱과 그 아들들이 생존하는데 큰 공헌을 했기에 하나님이 열두 지파 가운데 두 지파의 몫을 주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빠지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하나의 지파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 중 에브라임이 더 뛰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를 취하여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여 북 왕국을 형성했습니다. 여로보암을 첫 번째 왕으로 하여 사악한 왕들이 북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북 왕국을 에브라임의 막대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라”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은 이스라엘 열 지파를 취해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 왕국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하여 유다를 건설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남, 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남 왕국과 북 왕국 두 나라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반했습니다. 북 왕국은 B. 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 당시 앗수르는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말은 뭐든지 집어넣어 녹여버리는 냄비라는 뜻입니다. 북 왕국 사람들은 앗수르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 앗수르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래 살다 보니까 앗수르 사람과 결혼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에 살게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그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닌 것입니다. 남 왕국 유다도 드문드문 좋은 왕이 있었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는 B. C. 587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을 표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포로가 된 두 나라를 열국에서 취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서 한 나라를 이루어 다시는 두 나라로 나뉘지 않게 하겠고, 한 임금 다윗이 영영한 왕이 되어서 다스릴 것이며, 한 나라를 이룬 통일 이스라엘은 다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Ⅱ. 표면적인 이해의 문제점
만약 이 예언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다고 한다면 피상적인 이해를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세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로 옮겨가서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했고, 북 왕국이 포로귀환 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북 왕국은 포로에서 귀환한 적이 없습니다. B. C. 721년에 앗수르에 끌려가 민족의 정체성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둘째, 남 왕국 유다도 B. C. 539년에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귀환하기는 했으나, 통일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 2장 64절에 보면 고레스 칙령으로 돌아온 유대인의 수가 사만 이천 삼백육십 명이라고 했는데, 유다 지파의 자손(스 2:1)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에게도 한 임금 다윗이 영영히 왕 노릇 했던 것도 아니고, 우상숭배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도 아닙니다. 유다 백성은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도 속국으로 지냈습니다. 페르시아의 속국이었고, 페르시아가 망하자 알렉산더 대왕의 속국이었습니다. 또 셀류시드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왕이 있어도 속국의 왕이었지 독립된 국가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하스모니안 왕조 때 혹은 헤롯 왕조 때에 왕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다윗의 후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두매(에서) 후손이었습니다. 야곱의 후손도 아닌 에서의 후손이 왕 노릇 하고 있었던 것이지 다윗 임금이 왕이 되어 영영히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후반부의 막대기 예언은 결코 표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Ⅲ. 문제점의 해결방식
성경의 영감성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막대기 예언을 거짓된 예언이며, 두드러진 예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이라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에스겔의 예언을 표면적으로 이해하고, 피상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이 예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두 줄기의 이해가 있습니다. 먼저, 20세기를 지배했던 근본주의(fundamentalism)자들은 세대주의 종말론(dispensational)을 취하며, 막대기 예언을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라고 해석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통일 이스라엘을 과거에 이룬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미래에 통일 왕국이 되어 다윗의 후손이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질 것이고,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 구약 시대처럼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미래적으로, 특별히 에스겔 37장을 미래적, 여자적으로 해석하려는 방식입니다.
세대주의 자들은 1948년에 시오니즘 운동의 결과로 가나안 땅에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한 것을 보고 흥분했습니다. 그들은 이 예언이 성취되는 시발점이라 믿고 좋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아직도 우상숭배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다윗 임금이 왕이 되지 못했는지 물어보면, 이 예언의 실현은 현재 진행 중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세기에 수많은 부흥사가 이런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책이 이런 내용을 기록하여 판매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대주의의 영향력이 너무나 컸습니다. 1948년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예수님이 한 세대만 지나면 온다고 했습니다. 1988년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다가 안 오시자 날짜를 바꿔서 1992년도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얀 옷 입고 산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불교인들은 광신자 집단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신학을 갖지 않으면 광신도가 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이런 근본주의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해석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 현대 이스라엘이 세워졌다고 할지라도 통일 이스라엘로 볼 수는 없습니다. 두 막대기가 붙어서 통일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더욱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다고 해도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참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인 것입니다. 참된 성전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삼 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은 자신의 육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가서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성전을 짓는다고 해도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에스겔의 내용은 통일된 이스라엘은 통일되면서 즉시 우상숭배가 제하여지고, 다윗이 목자가 되어서 영원히 왕 노릇 한다는 것이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에 무지한, 무식한 보수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성도들도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겔 37장의 막대기 예언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까?
첫째, 막대기 예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겔 37장 24~28절의 내용을 고려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의 종 다윗이 영원히 왕 노릇 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B. C. 에 죽었는데 영영히 왕 노릇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다윗은 문자 그대로의 다윗의 아니며, 환생해서 온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영영히 왕 노릇 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은 다시는 가증한 물건과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통일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화평의 언약을 맺어 하나님과 화목하고, 견고하여 번성할 것입니다. 마지막 특징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는 구원받은 백성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된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목자로 삼고, 구원받은 백성, 즉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둘째, 막대기 예언은 신약성서를 고려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통일된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온 이스라엘”(롬 11:26)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대주의 자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이스라엘이 모두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통일된 이스라엘이고, 이방인 중에 하나님의 택한 자, 유대인 중의 택한 자가 충만 수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표면적인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라. 하나님의 교회가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복음 전도와 선교를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짓는 것”(행 15:16)이라고 했습니다. 퇴락한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은 복음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성장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리아 산에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인을 맞은 14만 4천 명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 맞은 14만 4천 명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더 낳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히 10:16)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한 평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묻힌 묘지 밖에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절망하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바란 것은 하늘에 있는 가나안 땅 ‘천국’을 바랐다고 히브리서 기자가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막대기 예언은 하나님이 전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목자로 삼고, 하나님이 거하시고, 영영한 천국을 소유할 백성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한 하나님이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때가 되면 망할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 역사와 예언을 볼 때에도 신약교회에 대한 예표로서의 의미로만 이해해야지 독립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위한 계획과 교회를 위한 계획을 각각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를 유대인에게 주려고 했는데 유대인이 싫다고 하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어 교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교회는 유대인이 불순종해서 나온 차선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교회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겠다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는 영생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성되어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부활하여 영생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교회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교회를 위하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이 교회를 위하면 하나님이 가족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적대시하고, 우습게 여기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적대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같은 관심을 두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됨을 원하신다
에스겔 37:15-23 / 황광민 목사
역사에 관하여는 역사가 찰스 베어드의 말보다 더 훌륭한 것이 없습니다. 그는 역사를 연구하여 얻은 결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잘 아시는 말씀이지만 이 시간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망하게 하시면 그것이 국가이건 개인이건 권세욕에 날뛰게 됩니다. 그러므로 권세욕에 날뛰는 개인이나 국가를 보면 벌써 망할 때가 가까운 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는데 너무 천천히 돌아가 하나님이 맷돌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면서 부드럽게 갈아 결국 의는 의로, 불의는 불의로 골라내고야 맙니다.
셋째, 벌이 꽃에 가서 꿀을 도적질해 오지만 그렇게 도적질해옴으로 꽃에 열매를 맺게 하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벌과 같은 강도가 악을 행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을 통하여 기적이 나타납니다.
넷째,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 별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암흑과 혼란이 깊어지면 벌써 소망의 별이 나타나는 것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베어드의 말은 역사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역사 속에 나타내기도 하시고 인류를 역사적인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역사는 유대인들이 생각한대로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하나님께서 연출하시는 구원의 드라마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개입
오늘 봉독한 본문은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분열된 이스라엘 왕국을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망해버린 유다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두 나라를 하나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불러들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분도 하나님시오, 회복하여 돌아오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갈라지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하나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토기장이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했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18:7-10).
또한 아모스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와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사람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암2:9-11).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정결한 민족을 이루시기 원하십니다. 23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을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결한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또한 2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회복시키시고 둘을 하나로 만들되 다윗과 같은 이로 왕을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규례를 잘 지키는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을 세워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정결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정결한 민족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시는 목적입니다. 정결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성결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결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에스겔 36장 24-25절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방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를 정결케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전국적으로 큰비가 내렸습니다. 많은 수재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우 고마운 비였습니다. 수재를 당한 사람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도움이 많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근간 저수지와 댐의 저수량이 40%이하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물이 부족해서 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많이 채워졌습니다. 특별히 고마운 일은 많은 쓰레기를 한 곳에 모은 것입니다. 충주호의 경우 쓰레기가 얼마나 모였는지 연말까지 치워야 합니다. 관청에서는 쓰레기 치우는 비용 때문에 울상이지만 자연은 깨끗하게 정화되었습니다. 하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 지면을 더럽히니까 하나님께서 큰비를 내리셔서 정화시켜 주셨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더럽혀진 백성들을 쓸어버리기도 하십니다. 우상숭배에 빠지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빠진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정결한 민족을 위하여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심판과 분열
하나님의 역사 개입에는 분열이라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범죄를 심판하기 위하여 남북을 분열시켜 다투게 하였습니다. 서로 싸우다가 힘을 잃고 이방나라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아들로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군사력도 막강하여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았습니다. 경제력도 대단하였습니다. 금으로 방패를 만들 정도였고 백향목은 뽕나무 보듯 하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방여인들로 인하여 우상숭배에도 빠졌습니다. 훌륭하고 지혜롭던 왕이 죄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으나 끝내 침묵을 깨뜨리셨습니다. 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겠다는 심판의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생각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심판을 미루셨습니다. 다윗을 생각하시고는 솔로몬을 치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죽은 다음에 심판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에 10지파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2지파를 가지고 유다 왕국이 되었을 뿐이고 여로보암이 10지파를 갖고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분열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바벨탑사건도 이를 보여줍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던 사람들을 흩어 놓으셨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게 하셨습니다. 서로 분쟁하고 다투다가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분열된 것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분명한 이유를 갖고 분열케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분열이 있습니까? 가정에 분열이 있습니까? 사업의 현장에 분열이 있습니까? 만일 분열이 있다면, 분쟁이 삶을 괴롭힌다면 조용히 눈을 감고 원인을 찾아보십시오. 그곳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설사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이유를 갖고 계실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분열과 분쟁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뜻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하나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한과 북한이 하나되어 통일되는 것도 원하실 줄 믿습니다. 16-17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아멘.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를 하나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통일을 기뻐하십니다. 분열되었던 것이 화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시편 133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형제가 연합하여 하나되는 것이 매우 아름답고 복되다는 것을 그림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되는 능력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하나되게 하는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1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짝 이스라엘 자손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죽었던 것도 살리는 능력입니다. 에스겔 37장 1-10절에는 하나님의 살리는 능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 큰 군대가 되게 하시는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 가운데서 이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통일되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방법에는 하나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대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깡패 두목들이 모여 하나되는 예식을 치릅니다. 깡패 두목들은 즉석에서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컵 하나에 모으고 돌아가면서 한 모금씩 마십니다. 피를 나누는 예식입니다. 하나되는 예식 치고 이만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끼리 절대 싸우지 말고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합니다. 피로 맺어진 하나의 형제임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시시한 일로 싸워서 다 죽고 두 사람만 남게 됩니다. 하나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남북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햇볕정책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셔야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도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능력을 위하여 기도하십시다. 또 기도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백성들을 원하십니다. 거룩한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만이 하나되게 하는 것을 믿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온전히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됨을 위하여
겔37장 15-23 / 조성노 목사
우리 민족의 역사와 유대 민족의 역사는 유사한 게 많습니다. 분단사도 닮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것처럼 유대 민족도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분단되었고, 유대 민족도 BC 932년 8월 15일에 분단되었습니다. 우리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유대 민족은 북위 32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습니다.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계시하신 분단된 유대 민족의 통일에 대한 비전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비전을 보여주셨습니까?
어느 날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셔서 두 개의 막대기를 구해 한쪽에는 북왕국의 국호인 이스라엘이라 쓰고, 다른 한 막대기에는 남왕국의 국호인 유다라 써서 그 둘을 붙여 하나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 막대기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이라 쓰고, 한 막대기에는 대한민국이라 써서 붙여서 하나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감정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유대 민족을 향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약속한 하나님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민족 화해의 원리는 어떤 것입니까?
에스겔을 통해 보이신 통일 퍼포먼스는 북이스라엘의 막대기와 남유다의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라는 계시입니다. 19절입니다.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무슨 뜻입니까? 민족의 통일, 남북의 통일은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일은 역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한 민족의 화해나 통일은 반드시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의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통일은 역사의 주체요 주인이신 주님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평화와 통일의 제1원리입니다. 우리는 외교나 정치, 군사력을 증강해서 통일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통일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다음은 내 손이 아니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17절입니다.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너의 손 안에서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통일의 도구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민족의 통일, 화해는 하나님 뜻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반드시 우리를 통해 도모하십니다. 오늘날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인사말은 “샬롬”입니다. 평화란 뜻입니다. 이 말은 기원이면서 동시에 고백입니다. 샬롬은 평화를 기원하는 말이면서, 평화에 대한 자신의 결의를 고백하는 말입니다. ‘내가 평화의 도구가 되겠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 평화의 사도가 되겠다’는 다짐이요 결단입니다. 샬롬이 하나님 앞에서는 평화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북녘에는 2300만의 형제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화해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에 우리 믿는 사람이 적극 나서야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우리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평화의 사도들인 믿는 자를 통해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통일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화의 사도로서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충성을 해야 우리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가 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 전에 에스겔에게 환상 하나를 보여주십니다. 37장 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어느 골짜기로 이끄십니다. 거기에는 해골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되자 그 뼈들이 되살아나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10절입니다.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남과 북이 만나 하나가 되고, 거기에 피가 돌고 살이 돋아나면 우리 민족은 큰 군대가 됩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70년간 허리가 잘린 불구였습니다. 힘은 다 허리에서 나오는데 말입니다. 가시철망으로 허리가 칭칭 동여져서 한 번도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평화의 사도로서의 사역을 통해 통일이 되어 하나가 되면 얼마나 막강한 군대가 되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열강은 우리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은근히 경계합니다.
통일은 가능합니다. 민족의 화해는 꼭 이뤄집니다. 정치 군사 경제가 아니라 우리가 평화를 이루는 일에 복무할 때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럴 때 우리 민족은 정말 위대한 여호와의 군대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요 약속입니다. 22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리라
겔37장 15-28 / 손재호 목사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에스겔서 37:1-14절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른 뼈들을 살려내어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어 내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배반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그들에게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대는 예루살렘성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 안에는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저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그들은 마른 뼈와 같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새로운 소망을 예언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을 대언하라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른 뼈들과 생기에 대언하니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큰 군대로 살아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살려낸 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의 남과 북을 연합시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12지파로 된 한 국가였지만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때부터 북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남은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분단이 되어 서로 싸우기도 하고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잠시 연합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원수지간이 된 것은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가 정복하면서 혼혈정책을 쓴 것입니다. 그때부터 남 유다 사람들은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방인처럼 취급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지나가지도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5-22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목전에서 손에 잡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에스겔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그러자 에스겔 선지자는 또다시 상징적인 행위를 합니다. 그것은 나무 막대기 둘을 가지고 각각 이름을 쓰게 합니다.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에는 요셉의 자손 에브라임과 그 짝 이스라엘이라고 쓰게 합니다. 이것은 두 나라가 원래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나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두 막대기를 한 손에 연결하여 잡고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무리에게 전합니다. 21-22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흩어진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고토로 돌아가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들을 그 땅에서 한 나라를 이루어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23-25절을 보면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 열조가 거하던 땅에 그들이 거하되 그들과 그 자자손손이 영원히 거기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하시는데 이미 36장에서도 보았습니다만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시고 새 영을 부어주셔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모든 죄악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범죄 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언약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나라를 회복하여 그 곳에 자자손손 영원히 거주하게 할 것이며,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고 합니다.
26-28절을 보면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여 하나님의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처소가 그들 가운데 있음으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인데 이렇게 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 지금 팔레스타인 땅에 다윗이 영원한 왕이 되어 다스린다고 보게 됩니다. 그러면 에스겔 선지자의 이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영원히 거하며 다윗이 왕으로 영원히 다스린다는 것을 말씀하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죽은 다윗이 어떻게 영원한 왕이 될까요? 물론 다윗 같은 왕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전도 재건합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와 남 유다는 하나로 연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 말씀들이 성취가 됩니까? 우리가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볼 때에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면 안 됩니다. 신약에서 이러한 성취들을 예수님과 사도들이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을 남과 북으로 연합되게 하며 영원히 한 목자가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에스겔 선지자의 이러한 예언들을 신약에서 어떻게 증거 하는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5: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의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을 사수한 것은 에스겔서에서 예언한 다윗과 같은 왕이 오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라고 불렀습니다. 마태복음 21:9절을 보면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무리가 예수님을 열열히 환영하며 외친 말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 왕과 같이 임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윗 왕과 같이 영원히 자기들을 다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건물로 된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9-22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합니다. 마태복음 26:59-61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6-28절을 다시 보면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신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화평의 언약을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습니까? 에베소서 2:16-22절을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원수 된 것을 그의 육체로 허물어뜨리고 한 새 사람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구약의 모든 언약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심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성소를 세우신다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성령이 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막과 성전에 여호와께서 계실 수가 없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던 스데반 집사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으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46-58절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성소를 짓게 하시고 한 목자가 영원히 다스리게 하시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시는 동안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부활승천 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제는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3:16, 6: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소를 세우시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라면 다윗과 같은 왕과 한 목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누가복음 1:31-33절을 보면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왕위를 가지고 영원히 야곱의 집 즉 이스라엘을 왕으로 다스리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나라가 무궁합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이제는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롭게 창조된 자들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하나로 연합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인들을 개처럼 취급하며 그들과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 마을로 들어가십니다. 사마리아의 한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는 자리입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분열을 예수님은 한 새 사람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이 어디서 예배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답변하셨습니다. 남 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이라고 하고 북 이스라엘은 사마리아가 예배의 장소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4:20-24절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지금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그 현장이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이 됩니다.
요한복음 10:14-16절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참된 성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한 목자가 되십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셔서 성전을 만들어 내십니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더 이상 인종적인 차별이 없는 곳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20-22절을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란 건물이 아닙니다. 성소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를 말합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면 이 성소가 완성되고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영광의 주로 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 날이 곧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참된 소망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된 것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출처] 겔37장 15-28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리라-손재호 |작성자 상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