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5]선생님 못모신 ‘스승의 날’에
몇 년 전부터 몇몇 친구들이 스승의 날에 고교 3학년 담임선생님을 모시자고 했다. 1년에 한번 서울, 대전 등 각지에서 달려와 담임샘에게 점심 한끼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미풍양속일 터.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선생님은 1935년생, 이제 우리 나이로 아흔이 넘으셨다. 50년 전 그 ‘기개’(氣槪)가 여전하시다는 점에서 존경을 받고도 남을 분이기에 제자들이 아직도 찾은 것일터. 점심 약속을 정하려 3주전쯤 전화를 드렸더니 “제자님, 안그리도 되는디” 하시더니 “살아 있어서 죄송허네”라는 ‘망언’까지 하셔서 웃었다. 그런데, 어제 점심에 제자의 부인까지 12명이 모인 것은 좋았는데, 정작 주인공이신 선생님은 불행하게 오시지 못했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종합건강검진 예약을 해놓아 어찌할 수 없다며 “제자님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해 달라”는데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담임샘은 한마디 더 붙이셨다. “이왕 온 김에 서대문형무소 유관순 고생한 방도 가보고, 죽기 전에 용인이씨 대종중도 한번 가볼라네. 좌우지간 미안허네” 유관순 열사 방을 보시겠다니, 역시 샘답다.
늘 모임을 주선한 한 친구가 선생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만들었는데 아쉽다며 보여준 것이 ‘신박’했다<사진1>. 전각예술가가 돌에 새긴 “사랑”이라는 도장 같은 글자 밑에 붓으로 쓴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라는 문구에, 한 친구가 뭉클하다며 “그거 스승의 날 노래에 나오는 것 아니냐”고 했다. 맞다. <스승의 은혜> 노랫말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셔라/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지금 아이들도 스승의 날(5월 15일)에 강소천이 작사한 이 노래를 부를까 궁금하다. 5월 15일은 민족의 스승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념한 것이라 했다.
아메리카노를 ‘의무적’으로 마시며, 각자 담임샘과 관련된 추억보따리를 풀어낸 이후, 지난해 돌아가신 한문선생님(안성호)이 화제에 올랐다. 치매로 실종된 며칠 후 발견됐다고 한다. 한문샘은 요즘말로 스토리텔러였다. 불멸의 고전소설 <삼국지>를 어찌나 재밌게 얘기해주던지 우리 모두 귀를 쫑긋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친구는 논어 등 동양고전에 심취하고 한문의 세계를 좋아하게 된 게 선생님 덕분이라 했고, 곧 고희기념 서예전을 여는 친구는 붓글씨(서예)를 평생 취미와 특기로 한 게 그분의 영향같다고도 했다. 그날의 백미(白眉)는 국어선생님으로 퇴직한 친구가 기억하는 한문샘의 수업내용. “너그들 그 선생님이 ‘묵수’(墨守)에 대해 가르치던 것 기억나냐?” “묵수, 금시초문인데?” “선생님이 가르치던 대로 내가 복기(復棋)해 볼 팅개 들어봐라잉. 이 촌놈들아. 묵자(墨子)라는 철학자 알지? 묵수는 묵자의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야. 묵자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창한 동양철학자잖아. 묵자의 대표적인 사상이 뭐냐면, 첫째 겸애. 겸애는 ‘내 부모와 남의 부모를 차별하지 말고 똑같이 사랑하라'는 뜻이야. 차별 있는 사랑(別愛)이 세상의 모든 다툼과 전쟁의 원인이라고 보았던 거지. 둘째는 교리(交利), 서로에게 이익을 나눈다는 뜻이야. 겸애가 도덕적인 실천이라면, 교리는 경제적 실효성인 셈. 내가 남을 이롭게 하면 결국 나에게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상생(相生)의 논리야. 셋째는 비공(非攻)으로 '전쟁은 범죄'라는 평화론이야. 무단시 남의 나라 영토를 공격하지 않는 거지. 야, 트럼프 봐라. ‘도라무 깡통’같은 놈이 세계 대통령이 되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잖아. 다음이 절용(節用)이야. 지배층이 앞장서 사치스런 생활과 낭비를 줄이자는 주장이지. 어때, 그러니까 묵자는 요즘말로 하면 평화주의자이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던 것같아.”
“와우-, 이게 뭐야? 대학강의실에 있는 것같잖아. 그것을 어찌 다 기억하고 술술술 말허냐?” 한 친구가 말했다. “명문 전라고 나왔잖아. 그것도 6회” 흐흐. 진짜네. 나도 한때는 ‘한총기’했는데, 근데 묵수는 뭐냐?” “나도 그 한문샘한테 그때 들은 말이야. 선생님이 스토리텔러였다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왕이 공수반이라는 기술자가 만든, 성벽을 공격하는 구름사다리(雲梯)를 믿고 송나라를 치려 했나봐. 이에 묵자가 초나라로 가 왕 앞에서 공수반과 모의게임(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아홉 번이나 이겼다는 거야. 그러니까 공수반이 ‘당신을 죽일 비책이 있다’고 했는데, 묵자가 이미 제자 300명이 송나라 성벽 위에서 방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초나라 왕이 침략 계획을 포기했대. ‘묵자가 성을 굳게 지켜냈다'는 묵수(墨守)라는 말은 처음에는 '철통같은 방어'라는 긍정적인 뜻이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낡은 관습이나 생각에 사로잡혀 변통할 줄 모른다’는 고집불통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됐다는 거야.”
“야, 묵수가 그런 뜻이야. 그 샘이 말한 것을 고대로 말한 거야?” “그래, 선생님이 초를 친 것도 있는 것같아서 스토리텔러라고 한 거야” “그나저나, 오늘 졸나게 유익하다. 동양사상 강의도 듣고 말이야” 친구의 내공은 보통을 훌쩍 넘었다. 만날 때마다 번번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총기도 총기이지만, 내공이 높고 깊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학생이다. 흐흐. 그 친구의 결론이다. “묵자가 절용을 강조했듯이 아주 검소해 늘 해진 옷을 입고 다녔고, 전쟁을 막기 위해 어디든 달려갔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것같아.” 엉뚱한 말 잘하는 한 친구는 “야, 고만해라. 묵자도 좋지만, 우리 밥 묵자”고 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부기1: 전주시의회에서 무소속으로 5선을 하는 같은반 친구가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면서 잠깐 들렀다. “한번 더 표를 줘 밀어주면 반드시 의회의장이 되어 좋은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정치인답게 깎듯하게 예절을 차리는 게 눈에 거슬렀으나 학연(學緣) 때문에라도 낙승(樂勝)을 빌었다.
부기2: 혈관이 금방이라도 막히기 십상이라기에, 이번 기회에 술을 완젼히 끊기로 작정하고 쓴 졸문이 '현주'(玄酒)와 '관주'(觀酒)였다. 그런데, 그 모진, 있을 수 없는 결심을 하고난 지 1주일째, 왜 이리 나의 몸이 가벼운 것일까. 거창하게 8.15광복처럼은 아니지만,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어느 자리든 현주와 관주를 하고 있는데, 홀가분하고 즐거운 듯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금단현상은 오지 않을 것같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