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사사기 1:1~10】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핵심 메시지】
길을 잃은 순간 먼저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사람을 잃어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말씀하시고 앞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말씀 나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곁에서 사라질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 너머의 하나님을 정말 붙들고 있었는지입니다. 오래 섬기던 목자님이 떠나고, 늘 기대던 사람이 갑자기 곁에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잘될 때는 잘 모릅니다. 의지하던 사람이 사라질 때, 그때 우리 신앙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는 그냥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부터 함께 걸었고, 요단강을 건너게 했고, 가나안 성읍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그가 죽었으니, 낙심할 만합니다. 흔들릴 만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첫 반응이 놀랍습니다.
1절,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이스라엘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그냥 던진 물음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여호와께 여쭈었다”라는 표현은 정해진 절차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공식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무렇게나 물은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정말로 그분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이 약속은 새로운 약속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바로 그 약속입니다. 지도자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성숙은 언제 나타납니까?
잘될 때가 아닙니다. 길이 훤히 보일 때가 아닙니다.
의지하던 것이 사라졌을 때, 답이 보이지 않을 때, 그때 누구를 찾는가로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길이 막힐 때 누구에게 묻습니까? 답이 없을 때 누구를 찾습니까?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이스라엘은 그 첫 순간에 하나님께 먼저 물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응답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3절이 곧바로 보여줍니다.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시므온의 기업은 원래 유다의 기업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두 지파가 함께 싸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움 안에 아름다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목하신 지파는 유다였습니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이 말씀은 시므온이 아니라 유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유다는 얼마든지 혼자 다 하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지파 시므온에게 손을 내밉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은 혼자 다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나를 지목하셨으니 내가 다 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의 손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서로 반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형제의 손을 통해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 장면이 유독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형제에게 “함께 올라가자” 말하던 사람들이, 마지막 장에서는 형제 지파 베냐민을 향해 칼을 듭니다. 처음에는 함께 적을 향해 올라가던 이스라엘이, 마지막에는 서로를 향해 올라갑니다.
사사기의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묶여 있던 공동체가 조금씩 흩어지는 과정을 지나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3절의 이 짧은 장면은 생각보다 소중합니다. 아직은 형제가 형제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힘든 일을 앞두고 있을 때, 혼자 다 짊어지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같이 가자”고 손 내미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 손을 내밀었던 순간이 제일 오래 남습니다.
유다가 시므온의 손을 잡았던 순간도 그렇습니다.
사사기를 다 읽고 나서 돌아보면, 이 짧은 3절이 유난히 오래 남습니다.
그 손잡음 위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본문은 곧바로 보여줍니다. 4절,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여기서 저자는 얼마든지 “유다가 이겼다”라고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여호와께서 넘겨 주셨다’라고 기록합니다.
누가 이겼는가보다, 누가 이기게 하셨는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호수아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앞에서 끌고 가던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승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힘을 붙들고 있던 분은 처음부터 여호수아가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베섹에서 싸워 이깁니다. 거기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아도니 베섹, 그 지역을 다스리던 자입니다. 그가 도망하지만 붙잡힙니다. 유다는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옵니다.
7a절, 그러자 아도니베섹은 "내가 일흔 명이나 되는 왕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 내고, 나의 식탁 밑에서 부스러기를 주워서 먹게 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가 한 그대로 나에게 갚으시는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방 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언약 백성도 아니고 여호와를 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닥친 일을 단순한 불운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셨다.” 자기 행동과 지금의 결과 사이에서 정의의 질서를 읽어냅니다.
그 말이 완전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의 입을 빌려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을 들려줍니다.
사람이 행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우리가 행한 일에는 아무 결과도 없다는 식으로 인간의 선택을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언약에 대한 충성과 불충성은 실제 역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원리가 이방 왕의 입술에서 먼저 흘러나온 것은, 이 진리가 이스라엘만의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 전체에 심어 놓으신 질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 자손은 계속 나아갑니다.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했습니다.
그 후에는 산지와 남방과 평지로 내려가, 헤브론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무찔렀습니다.
여호수아 없이도, 하나님은 계속 함께하셨습니다. 산지에서도, 남방에서도, 헤브론에서도.
이 모든 승리는 유다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신실하심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유다는 혼자 다 지지 않고 형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앞서 싸우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잃어도 여전히 말씀하시고, 여전히 앞서 가시고, 여전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도 여호수아가 사라진 것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의지하던 사람이 떠나고, 익숙하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들입니다.
그때 우리도 유다처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묻고, 형제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목장에서 VIP 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도 혼자 짊어져야 하는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목자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목장 식구 모두에게 함께 손 내밀라고 하십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다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손을 통해서도 우리를 도우십니다.
여호수아 없이도 신실하셨던 하나님, 형제의 손을 통해 함께 일하게 하신 하나님, 이방 왕의 입술로도 자기 정의를 알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새벽 이 자리에도 살아 계십니다. 사람을 잃어도 길을 잃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나는 의지하던 사람이나 방법이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누구를 찾습니까?
② 유다처럼, 내가 받은 사명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는 않았습니까? 손 내밀어야 할 형제는 누구입니까?
③ 어제와 오늘, 내 삶의 작은 승리 중에 정말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넘겨주신 것이었다고 고백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④ 아도니 베섹처럼, 내가 행한 것과 지금 내게 일어난 일 사이의 연관을 정직하게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⑤ 목장VIP를 향한 전도와 섬김을, 나 혼자만의 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⑥ 사사기의 결말(형제를 향해 칼을 드는 이스라엘)을 기억할 때, 오늘 내가 지켜야 할 연합은 무엇입니까?
⑦ 이 새벽,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나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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