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나라에 태어난 세대들에게는 이 청원기도의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그들은 '양식이 없으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 라고 사고하는 세대이며,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줄 알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 교회 내에서는 이 구절이 실제 양식이 아니고 영적 양식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들은 굶주린다는 게 뭔지 모르니까 이 같은 발상을 하는 것이다. 양식의 필요성은 기본적으로 존재의 유지와 활동을 위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청원의 의미를 넘어서, 지나치게 물질을 모으는 데만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은 창고를 짓고 재물을 모으는 일이 그들의 존재 이유로 바뀌기 시작한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자. 호흡에 필요하 깨끗한 공기, 우리를 밝게 비추어 주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게 하는 태양, 그리고 마시기 좋은 물, 그리고 양식과 의복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우리 존재, 곧 행복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이것들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면 인간은 무엇을 추구할까? 그 다음 단계는 이것들을 더 쉽게 더 많이 얻는 방법을 추구하게 되며 더 좋은 방법으로 가공하여 안락한 생활을 누리려고 생각한다. 이것이 번영인 까닭이다. 즉, 번영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번영의 과정에서 불평등이 발생하고 사회 계층이 형성되며,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 또 일시적으로 번영을 누리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죽음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필요를 요약하면 존재를 위한 필수품, 그것의 획득 방법 발전과 가공 그리고 죽음을 없애는 방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여기에 곁들여 항상 병행해야 하는 것들이 부족과 계층 간의 평화, 정의, 평등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비록 다른 사물이나 생명체보다 뛰어나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연의 극히 일부로서 미약한 존재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이성은 우리를 존재케 한 근원이 있을 것이라는 추리를 하게 되고 그 근원을 '신'으로 판단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므로 무리가 전혀 없다. 문제는 이 추리를 넘어서는 부분에 있다. 인간은 신이 우리 인간과 같은 존재일 것이라고 추리하는 것이 이성의 한계를 넘는 부분이다. 신이 인간이나 사물과 같다면, 신이 뛰어나봐야 거기서 거기인 셈이다. 신은 결국 사물의 한 부분이 되고 여전히 그 신을 존재케 한 근원은 무엇일까 라는 모순을 일으키는 의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을 잘못 추리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신은 '있음' 그 자체 이다. 여기서 우리의 추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생긴다. '있음'이란 것이 없음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는 잘못된 추리이다. 사실은 있음에서 없음이 개념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이다. 우리의 생명이 존재하다가 끊어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리고 없었는데 우리의 생명이 발생했기 때문에 없음에서 있음이 나온 것으로 추리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선천적 방법이 시공간적 방식 때문이다. 이러한 사물 인식방식 때문에 사물이 사라져도 우리의 머리 속에는 그 사물이 차지했던 공간과 경과된 시간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반론이 예상되지만 사물이 시공간적으로 존재하여 우리가 그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시공간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물(物)은 존재하는 것 자체이지 없음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모습을 다르게 인식되도록 하여 우리에게 현상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물 그 자체가 우리 존재의 근원이며 신(神)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이 없는 생명의 상태를 원한다는 것은 현재의 모습이 계속 유지되기를 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죽으면 비록 신으로서의 물이 신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더 이상 우리의 의식에는 생명이 아니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결국 우리 생명의 근원과 연결된 문제이다. 죽음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일시적인 존재와 번영은 의미를 상실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우리의 존재와 활동을 위해서 기본적인 필수품이 필요하지만, 번영과 부는 우리의 죽음과 연계되어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를 축척하는 것이 일시적인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번영, 영원한 생명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려는 목적일 때, 부의 축척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