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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동물의 세계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라고, 아주 친절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멘트를 하시는 성우 아저씨의 설명에 따라 평생을 바쳐 학자들이 연구하고 관찰한 결과물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양한 생김새와 성격 그리고 행동, 동족끼리의 상하 및 서열관계, 그리고 동물에 따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재미라기보다는 신기했다.
엄청난 점프력과 스피드를 가진 임팔라와 톰슨가젤이 있는가 하면, 그에 맞도록 순간시속 200KM/H를 내는 치타가 있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나무를 잘 타고 몸을 잘 숨겨 기습으로 사냥하는 표범이 있다. 그리고 모든 동물의 천적인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가 있다.
하지만, 이 사자도, 코끼리에 밟히거나 기린과 같은 대형동물이나 먹이로 생각한 동물에게 채여 죽기도 한다. 때론, 악어에 잡아먹히는 겨우도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말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딱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회사도 물류업계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언제든 방심 할 수 없다. 그게 내부이든 외부이든 말이다. 단지 성과와 결과만 있을 뿐이다.
입사 당시 4년 만에 새로운 회사에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단지 조금 두려웠다. 나는 20대도 아니고, 길고 긴 백수생활 덕분에 습득력이나, 이전에 힘들게 익혔던 스킬과 능력치가 바닥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두 거품이며, 시덥지 않은 세월을 보낸 나이만 많은 한심한 사람으로 그들에게 인식이 될까봐 말이다.
그런데, 합격 통지한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회사도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서울에 지낼만한 공간도 없었고, 안 그래도 빚에 허덕이는데, 지금 갑자기 나간다고 하면, 킹오브 구두쇠인 이 건물의 건물주는 분명히 사람이 구해질 때까지 나보고 월세와 부동산 소개비에 집안 수리비까지 내라고 할 것이다.
GLS의 계열사인 WS LOGITEC은 꽤 탄탄한 기업이기 때문에 대출도 가능했으나, 문제는 내 신용도가 6등급이나 그 이하일 것으로 예상이 되어 도저히 서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이 됐다.
‘아...진짜 쓰레기 같이 살았구나 내가...이럴땐 역시 마지막 보루인 친구찬스를...’
하면서 20년지기 친구에게 처음으로 돈을 빌렸다. 단돈 100만원이었지만, 온갖 사탕발림과 소개팅을 약속했다. 아는 여자도 사람도 많았지만, 인간관계를 끊은지 오래라 월급나오면 바로 갚아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물론, 친구는 쌍욕을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을 안갚을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언젠가 그에게도 100만원 빌려주기로 다짐했다.
어쨌든 나는 회사에 가까운 고시텔을 알아봤는데 아무리 깍고 난리를 쳐도 45이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날 밤에 계약을 하고, 일단 한 달 묵기로 했다. 한평 남짓한 다람쥐 소굴에서의 고달픈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항상 만세를 하고 잠을 자는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침대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일어날 때마다 발이나 무릎을 부디치거나 머리를 쳐박는 등 하드웨어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자다 일어나다 반복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만6년 만에 강남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출근시간이 9시까지 였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진짜 9시까지오라고 일찍오지말라고 당부를 했지만, 나는 7시30분에 가서 1층에서 대기했다.
솔직히 졸렸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는데, 그날따라 더 그랬다.
1층 경비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손님용 카페에서 앉아 있었는데, 중앙 에어콘이 성능이 좋은지 시원한 게 잠자기 딱 좋은 온도였다. 커피 볶은 냄새도 솔솔올라오고, 할 일도 없고 해서 앉아있으면서 졸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시간 동안 정말 아무도 안 왔다.
그전에 대기업 사원으로 일할때는, 기본 출근시간이 7시10분까지였고 40분 회의 20분 업무보고 후 8시가 되면 보통 업무가 시작되어 퇴근시간에 기약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아니 여기뿐만 아니라 물류업 전반적으로 다 그런 듯하다.
출퇴근 시간에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정책이라기 보다는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인 항공사, 선사, 철도회사, 운송업체 등이 다 퇴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무를 못하는데 굳이 야근 수당까지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졸고 있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다가왔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표정은 굳어 있는데 입은 웃는 표정이고, 그 소리도 이상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눈을 부릅뜨며 그를 쳐다봤다.
“흐흐흐흐, 죄송! 방해했나요?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아 아니요.”
“오~그래요? 나도 가끔 피곤할 때 지하에 창고가서 자요. 좋은~곳이 있거든요.”
‘뭐지 이 멍청이는? 이상한 사람 같은데 머라고 하기도 그렇네 에휴’
“우대리 거기서 뭐하고 있나 안 드가고”
갑자기 덩치가 산만한 사람이 자동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던지며 말했다.
“어이쿠 우리 김과장님! 오셨네 오셨어”
“아침부터 빨리 사무실이나 드가지 머하고 있나”
“그라믄 같이 드갈까요? 과장님”
“이게 미칫나 그건 전라도다 조울증 쉐리야!”
“또 욕! 쉿!”
그는 덩치의 입을 막더니 비상계단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김과장이라는 사람은 혀를 차며, 짜증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아~ 저 쉐키 그냥 언제 한번 하~나 진짜 저 상또라이 저거 일만 몬하면 내가 어휴~!”
점점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사무실에 올라가야할 시점이 온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었다.
“저 그 WS 로지스 업무팀에 어떻게 가면 되죠?”
“네? 어디서 오셨는데요?”
“아...오늘부로 WS 로지스 입사하게 돼서요.”
“아~신입? 근데 나이가..신입같진 않은데, 경력직인가요?”
“아 네~”
사실 신입이 맞지만, 그리고 신입월급을 받지만, 회사에는 신입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업무팀 팀장님이 말한바가 있어 입사 첫날부터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굳이 경력으로 따지자면 여기 경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경력이 있으니 나중에 할 말은 생길 것 같다.
“그럼 저 따라오세요. 같은 사무실이니까요. 좋겠네요. 저 또라이랑 같은 부서라서"
"아~네“
WS는 4층 전체를 쓰고 있었고,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길래 보안이 장난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출입구 지문인식, 그리고 4층 출입구에서 신분증검사 후 사무실 문에 홍채인식을 통과해서 최종 사무실에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띠~틱! 경영지원팀 김유성 과장님, 외부인 진형일님이 08시 40분에 출근하였습니다.
이런 음성이 나오면서 문이 열렸다.
나는 등록이 안 된 사람이기 때문에 일일이 시스템 확인 후 외부출입자 프리패스카드를 들고, 그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갔다.
구석에는 탕비실과 인쇄 및 복사실이 있었고, 양쪽에는 5개팀 약60여명이 사물에 파트만 나누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큰 조형물이 있었는데, 배가 바다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가고, 갖가지 비행기 모형에 화물을 싣는 모습, 그리고, 다양한 기차가 실크로드를 지나가는 형상의 매우 정교한 모습이었고, 실물을 옮겨놓은 듯 했다. 그냥 사무실의 가구, 인테리어와 조형물들만 보면 정말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회사라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침부터 전화소리와 타자소리 욕설이 난무하고 있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부산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를 따라 가운데 조형물을 지나 WD TF OPERATION TEAM이라고 붙어 있는 공간을 갔고, 면접 때 봤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이부장을 보자마자 아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90도로 인사를 하며, 깍듯하게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WS LOGIS 업무팀 사원이 왔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어 김팀장 고마워, 안 오길래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지”
“그럼 저는 이만. 오늘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부장님”
그는 그 말을 하자마자 바로 옆 경리팀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음~ 너무 갑자기 불러서 당황했겠네요.”
“아 아닙니다.”
“당연히 아니어야지. 지금 형일씨는 너무 부족해, 내말이 무슨말인지 알죠?”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서는 WD TF팀이 맞긴한데, 항공 수출 / 수입, 해상 수출 / 수입 모두 경험해본 7년 이상 경력자만 뽑는데, 너무 부족해 인재가... 뭐 아직, 형일씨가 잘할지 아닐지는 지켜봐야 아는데, 일단 면접 때 말한 3개월 그 후에 다시봅시다. 형일씨는 일단 항공 수출 쪽에서 일할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모든 사항은 이태희 대리에게 말했으니까 지시하는 대로 따르면되고, 고용계약은 3개월 후인 10월에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물론, 월급은 우리 회사 주임으로 대우는 해줄거에요. 아 그리고, 보안서류 작성이랑 시스템 등록도 요청하세요. 저기 보이죠? 보안팀”
“네. 이 대리 쪽에 안내 다 받으면 퇴근하기 전에 저기 가서 등록해요. 여긴 친목도모 하는 곳이 아니니까 굳이 일일이 인사안해도 됩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이대리를 통해 말하면 됩니다.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참 신기한 곳이네. 팀원들에게 인사하지 말라니 이상한 회사네’
사실 그랬다.
이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는 각 부서의 한 두 명을 위주로 움직였고, 그 외에는 철저히 팀장을 쓰이는 도구와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의 강도가 엄청났다. 일의 건수가 많은 것보다 일의 건수는 적지만, 보통 물류회사에서 다루기 힘든 고가 장비나 생동물 및 위험물을 다루다보니 베테랑이 아니면 컨트롤 할 수 조차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 한 명을 남기기 위해 수십 수 백 명의 사원이 짤려 나간 것이 현실이다. 아니 해고당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나간 것이 훨씬 많다. 이곳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월급과 보너스, 그리고 승진고과를 반영하는데, 팀장이 되어 5년 이상 버티는 사람은 자동으로 임원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보통 그전에 WS LOGIS에서 방출되어 다른 계열사로 가거나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GLS 그룹의 자산은 1초가 넘었고, 직원들만 수 천명이 되는 물류 대기업이지만, 실제 핵심 사업은 WS LOGIS에서 맡고 있었고, WS LOGIS의 부장은 상무급으로, 이사는 주요 계열사 사장의 대우를 해줄 만큼 영향력이 있었고 위상이 높았다.
보통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힘이 주어지면, 그 힘에 정복당하기 마련이지만, 그럴 새가 없이 항상 실적을 압박당하고, 언제나 교체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적과 능력은 만인 앞에 평동했다. 주간 평가 월간평가 분기별 평가, 연간 평가, 고객 평가, 팀 실적평가 등 평가가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어떤 요행이나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이 시스템에서 7년이상 버텨서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팀장이자 이 회사를 이끄는 브레인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균 연봉도 엄청나고, 다양한 복지에 엄청난 물량과 실적으로 진보하고 있는 회사로 보이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살아남기 힘든 그런 살벌한 경쟁을 추구하는 기업이었다. 그야말로 우아한 자태의 그림자로 미친 듯 발버둥치는 백조와 같았다. 그곳에서 실적과 평가는 곧 권력이었고 힘이었다. 그것을 가진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을 항상 착취하고 끝내는 잡아먹어버린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노력했던 어떤 결과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 그게 그 조직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퇴사율은 10대 대기업 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회사 이미지상 기사를 매우 필살적으로 막고 있는 중인지, 언론에서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물론, 퇴사할 때도 입막음용으로 퇴직금도 많이 주고, 갖가지 약점을 걸어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는 것은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회사인지 전혀 모른 채 모든 것에 감탄만 쏟아내고 있었다. 뭐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다들 나의 모습을 슬쩍 쳐다보면서 3개월 못 버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당연한 예상인 듯하다. 만약 내가 유키라는 나를 지지하고 있는 힘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어쨌든 오늘부터 난 이 조직의 일원이 됐고, 그들의 품에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의 육식동물들이 우글거리는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드넓은 초원의 첫날을 맨몸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쉰 후 당당히 가슴을 펴고 이부장이 가리킨 그녀 책상에 다다갔고, 인사를 했다.
저벅 저벅 저벅 탁! 꾸벅~
“안녕하십니까! WD TF 팀 주임 김형일입니다!”
오늘도 참 춥네요. 맨날 추워서 어째요. 더구나 미세먼지도 장난이 아니네요^^ 다들 따땃한 집에 잘 계세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즐거운 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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