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위 정자에서 수업하는 두 인물
이인문李寅文(1745~1821)
조선 18세기
산수 표현에 능숙한 기량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괴석과 다양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연못 위 정자에 두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방석 위에 앉은 인물 앞에 책을 펴놓고 앉아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 두 마리의 사슴, 빈 배 등의 소재와
맑은 담채가 잘 어우러져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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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이야기-이인문의 강산무진도 ‘강산무진도’는 비단에 수묵담채로 그려졌다. 그림 부분만 해도 세로 44.0cm × 가로 856.6cm나 되는 걸작이다. 이렇게 가로로 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를 위해 5폭의 비단을 잇대어 바탕을 만들었다.
이 그림은 이인문(李寅文·1745~1821)이 그린 것으로 추사 김정희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화면에 찍힌 ‘金正喜印’ 등 여섯 과의 도장으로 알 수 있다.
신위(申緯)의 ‘경수당전고(警修堂全庫)’에는 “영조(英祖)를 모시던 화사(?師) 중 뛰어난 사람은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觀道人= 이인문)과 단원(檀園 = 김홍도)이었는데, 덧없이 단원은 이미 갔고 이인문만 남았다”라고 한 대목이 있다. 이처럼 이인문과 김홍도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으로, 비슷하게 도화서(圖畵署) 화원이 돼 나란히 두각을 나타냈다.
표지에는 ‘李寅文筆江山無盡圖’(이인문필강산무진도)라고 쓰여 있다. 그림의 제목은 이인문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다. 후대에 장황을 바꾸면서 적어 붙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려진 내용을 보면 단순히 산수만이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살이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그림의 첫 번째 매력은 시작과 끝 부분에서 보이는 여백의 미다.
화면이 시작되고 나서 50cm 가까이 화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첫 번째 선과 선염이 보이는 순간, 이제 바로 기괴하고 긴장감 있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그림의 두 번째 매력은 매우 다양한 준법의 자유로운 구사에 있다. 준법이란, 산과 돌의 형태와 질감을 필묵으로 표현해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화가들은 개성적으로 다양한 준법을 개발해 효과적으로 산과 돌의 느낌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산이 부드러운 토산일 경우와 단단한 암산인 경우 당연히 다른 기법으로 그렸을 것이다. 이인문은 절대(折帶)준, 부벽(斧劈)준, 피마(披麻)준 등을 사용해 때로는 단단한 바위의 느낌을 살리고, 때로는 부드러운 토산의 느낌을 살리기도 했다. 실제로 하나의 그림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준법을 섞어 사용한 화가는 많지 않다.
세 번째 매력은 험준한 강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다. 이 그림은 언뜻 보면, 그 안에 묘사돼 있는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림을 자세히 보고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림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강산무진’이라는 제목 속에 감춰져 있는 이 그림의 실제 주제가 아닐까 싶다.
<민길홍 학예연구사> |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1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2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3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4
이인문의 대표작으로 8.6m나 되는 장권(長卷)으로 조선 후기 최대의 거작이라 하겠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과
그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인간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잘 어우러지게 묘사하고 있다.
구도의 전개나 기법의 다양함은 감상자들의 시선을 끝없이 즐겁게 한다
기암절벽의 묘사에서는 김홍도의 영향이,
그리고 산의 표현에서는 정선의 화풍이 다소 였보이기는 하나,
전반적으로 이인문 자신의 독창적인 구성과 필법을 드러내고 있다.
명암이 엇갈리고 몸이 뒤틀린 소나무의 표현에서 그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다.
이인문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중 세부적인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문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중 세부적인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