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126
얼마전 KBS의 모 PD께서는 “친일파 할아버지라도 6·25 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 아닙니까, 결론이 중요함”이라며 “안중근 외 몇 명 빼고는 우리 모두 친일파였잖아요. 친일파 그만 좀 따집시다. 고리타분하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하는 맥락 그대로 이어가자면, 난징대학살을 자행한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격이 되는것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비난할 자격이 없는것이 됩니다.
그리고, 친일파 선정기준에는 크게 2가지 원칙을 따지면서 선정을 기준합니다.
첫번째는 지속성,적극성,반복성인데요. 여기서 '생계형'으로 분류되어 제외되는 인사들은 대표적으로 소설가 이효석, 시인 정지용, 동아일보 사장 백관수 선생 등입니다. 이분들이 비록 일부 소극적인 협력으로 문제가 된 부분이 있긴하지만, 무슨 협력의 댓가로 반대급부를 얻었다거나 지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그러니깐, '생계형'의 기준 경계선으로는 소설가 이효석을 놓고 본다면 되겠습니다.
두번째는 先항일-後친일은 '친일파'로 정하는건데요. 이 분류는 대표적으로 이광수,주요한,김성수,장지연 등이 있습니다.
반대로 先친일-後항일은 '독립운동'으로 인정합니다. 일단, 무슨 '과오'가 있다하더라도 반성한다거나 후회하는 의미에서 생명의 담보를 걸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잖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독립운동'으로 봅니다. 이런 경우에 속한 경우가 많지않다고 보는이들이 있을텐데, 의외로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일진회 평의회장 출신으로 대동단을 결성해 의친왕 망명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전협, 공산당 간부로 대화숙에서 있다가 건국동맹 활동한 이승엽(각주- 나중에 북한에서 숙청당하지만요..) , 임시정부 출신으로 만주협화회에 있다가 건국동맹 활동한 최근우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좀 더 확장해서 본다면, 심지어 죽산 조봉암이나 몽양 여운형 경우도 '先친일, 後항일'로 보고 있습니다.(죽산 조봉암 선생 경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일제말기에 '변절'문제가 있긴했었습니다. 그러나, 죽산은 1945년 1월에 지하운동하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8.15 당일이 되서야 광복을 맞았기 때문에 '변절자'라고 보지 않는겁니다. 몽양 여운형 선생 경우는 일제말에 유일한 독립운동인 건국동맹 활동때문이라는건 익히 잘 아는 사실이구요.)
이렇듯 친일파 선정 기준에는 무슨 '마구잡이式'으로 수록하는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런데도 이런 기준들을 싸그리 무시하면서 '정치적으로 음모가 있다'는 이른바 '음모론'을 쳐갈기고 있으니... 일단, 2가지 원칙을 따져서 '친일파 논쟁'에 끼어든다면 모르겠는데, 현실은 그런거 따지지도 않고, 그런거 모르면서 주장하는것이 이들의 현실입니다. 이들 수구세력들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인증하는 격이죠.(안타까운건 이런 생각 가진 사람들이 전체에 25~30%나 정 그렇게 불만있으면 적어도 친일파 문제 연구가들한테 직접 찾아가서 '이게 이래서 잘못되었다'라고 따져보는 정도된다면 뭐라 안합니다. 현실은 그런 실천도 없고, 그저 입으로만 떠들고 언론플레이질만 하는게 전부인거죠. 그저 한심한 작자들입니다.
그리고, 국내 있던 사람들 전부다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亡言은 정말 정신나간 소리입니다.
실제, 일제강점기때 해외에서 독립운동한 사례는 굉장히 많습니다만,국내에서 독립운동한 사례는 굉장히 적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기 자체가 굉장히 살벌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는 무슨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Korea Independence!'이런거 외쳐도 누가 잡아가는 사람 있습니까?
국내에서는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곧바로 '치안유지법'으로 잡혀들어갔던 정도였습니다. 예를들어 무슨 방구석에서 책을 들여보면서 연구하는 모임을 가진것조차도 일제 경찰은 '사상범죄자'로 몰아 '치안유지법'으로 잡아갈정도였습니다.(이런 사건들을 흔히'독서회'라고 부릅니다.) 이런 국내에서 독립운동 활동했다는것은 굉장히 높이 평가해야합니다.
그리고, 친일파 문제는 '무조건 때려잡자!'이런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과오가 있더라도 이걸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일을 되풀이해서 안된다는것을 역사적 교훈을 삼아 반성하는것을 보여주는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당사자들이 이러한 것에 대해 거의 인정안하고 오히려 감추거나 미화하고 있다는거 때문에 비난을 크게 받는겁니다. 이러한 본질을 짚어보지도 못하면서 수구세력들은 논쟁에 끼어들고 있으니..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무지한지 스스로 인증하는격 아닌가요?
뉴라이트를 비롯해서 수구세력들은 친일파 논쟁날때마다 '색깔론'을 들이대는데, 실제로 친일파로 수록된 사람들 명단을 보면 좌익계열, 북한 인사계열(주로 문화,예술 출신), 진보계열 인사들 등등 다 있습니다. 일단, 친일파 연구자의 선구자격인 임종국 선생의 부친 임문호를 친일파 명단에 수록되어있습니다. 그것도 친일연구원들이 찾아서 수록한게 아닌 임종국 자신이 살아생전 '우리 아버지가 친일파다. 아버지가 빠진 명단은 그거 내다 버려라!'고 시인했을 정도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게 수구세력들이 제기하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보입니까? 심지어 수구세력들이 그렇게 열나게 비난하는 진보성향의 대표인사격인 백낙청 선생의 부친(백붕제氏)도 여기에 수록되있습니다. 이래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쳐갈깁니까?
오늘날, 뉴라이트를 비롯해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은 국내 독립운동 거의 인정안하고 있고, 오히려 식민지수혜론을 주장하는 얼빠진 소리를 하고 있죠. 그러면서 이들은 국내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소련으로 여기고 독립운동했다!'는 망언을 내뱉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들 스스로가 역사에 얼마나 무지한지 그저 '정치놀이꾼'에 불과하다는것을 보여주는 증거죠.
첫댓글 친일파의 테크트리
친일파=친미파=반공주의=독재주의=보수주의
독립의사 테크트리
독립운동=사회주의 계열=북한=좆망
=남한=좆망
=민족주의 계열=항일무장=김구. 등등
=외교독립=이승만=반공주의
결론적으로 친일파는 잘먹고 잘살았다는 해피엔딩.
결론은 그들만은 해피해피~
포스트 모던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 상대주의가 일반화 되다보니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지기가 꽤 힘들어지긴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가다보면 결국에는 이렇게 선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네요.
지금이라도 친일파 재산 압류하고, 친일파 자손들을 직접 처벌하진 못하더라도 명예적 손상과 사회적 위신의 실추를 제도적으로 집행해야 할 의무는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2대까지는 공직진출 금지도 했으면 좋겠는데...
연좌제입니다. 민주주의의 근본에 어긋나요.
아뇨. 이정도의 처벌은 필요합니다. 공직진출 금지는 아니어도, 재산압류랑 사회적 불명예부여는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는 가문에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압류가 곧 사회적 불명예 부여나 마찬가지긴 하지만요. 어쨋든 재산은 부당하게 취했으니 친일해서 번 돈은 뱉어야죠.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누릴 의무를 다한 국민에게 적용되어야죠. 그 의무를 져버린 자에게는 그에 응당한 처벌이 따른 후,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당사자가 처벌되었으니, 당사자의 재산을 물려받아 그것을 누리는 후손들에게 적용되어야겠죠.
연좌제는 위헌이라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재산은 상당히 압류를 해야지요.
친일파가 그 의무를 저버린 것이지, 그 자손이 그런 것은 아니죠.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지, '가문'에 있는 것은 아니죠.
음 뭔가 님들께서 상당히 제 말을 오해하고 계신 것이, 저는 가문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게 아니라, 친일해서 얻은 재산을 물려 받아 그 재산을 운용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연좌제라고 칭하더라도 그 재산을 선대가 부당하게 취했음을 명시해 그 재산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불명예를 씌우는 것은 친일을 한 해당자에 해당하는 것이구요. 우리나라 국사교과서 중 일부 인물은 친일을 했음에도 긍정적으로 그려진 분이 몇명 있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죠. 근데 제가 이런 말을 가문이라 칭한 것은 선대의 불명예가 후대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쓴 것이죠.
단어 선택에 있어서 충분히 오해할 소지가 있었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어쨋든 우리나라 최대 문제가 바로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죠. 지금이라도 청산작업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첫걸음이 친일 인명사전인데 말입니다.
친일파로 분류되는 경우 가운데, 일단 가장 동정의 여지가 없는 부류는 '조선 귀족'입니다. 이 '조선 귀족'은 대한제국때 나라를 이끌어야할 관료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국가를 팔아먹고 그 팔아먹은 댓가로 총독부로부터 주는 작위를 받고 떵떵거린 자들이기 때문이죠. 이들은 분명히 처벌해야합니다. 강력히 처벌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재산 국가소유' 정도급은 해야합니다.
안타깝게도 연좌제라서 실행하면 안되는 일이지용..
좀 핀트가 많이 어긋난 소리 하자면...뭐 현 청소년들은 여러의미로 친일파죠(..응?)
맞습니다. 일본하고 친한게 뭐 대수인가요, 명칭 바꿔야 합니다 친일파가 아니라 반민족자로
최소한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등에는 친일파의 후손은 지원할 수 없게 하거나, 하더라도 인물심사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친일파 이야기 나온 김에 군사독재에 아부했던, 즉 독재부역자도 묶어서 처리합시다. 요즘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는데, 한 20~40년 지나면 이달의 민주화운동가도 선정했으면 하네요.
독립운동가 다 떨어지면 할지도(....)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중근을 비롯해서 김옥균이나 여운형등 이런 케이스는 굉장히 특이한 경우입니다. 이분들은 대아시아주의자였는데요. 공통적인것이 쑨원,판보이쩌우,호치민등이 구상했던 대아시아주의와 일맥상통한다는겁니다. 물론, 이러한 대아시아주의가 일본에 악용된다는것을 느끼고 쑨원,호치민,판보이쩌우등 반일로 돌아섰죠. 이 '대아시아주의'라는것은 굉장히 특이합니다. 여기서 일본에 이용당한 케이스도 있죠. 대표적으로 왕징웨이, 찬드라 보세 같은 경우입니다.
친일이긴 한데, 정확한 의미에서 친일이 아니죠. 일본이 말한 대동아주의를 잘못 이해해서 본의아닌 친일을 하게 된 케이스랄까요?
보통은 대아시아주의라기보다는 '범아시아주의'라고 하죠. http://durl.me/bnyo2
그렇죠. '보수'라 자칭하는사람들이 그렇게 열나게 까는 민족문제연구소 경우, 그 기준대로 보고 제외한겁니다.(이건 제가 직접 청량리역에 위치한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까지 직접찾아가 물어보고 따져봤었습니다.) 그것도 안따지면서 수구세력들은 열나게 여운형이나 안재홍,이극로 같은 독립운동가분들을 '친일파'라고 매도하고 있죠. 그렇게 불만이면 말로만 떠들지말고 국가보훈처에 직접가서 '서훈 취소하라!'고 직접 움직이면 될것을 말입니다.
친일파들이 친일짓해서 번돈으로 지금까지 잘먹고 잘산거아닌가...? 나라팔아먹은도으로 잘먹고 잘사니 재산몰수가 적절 그후 모두 싸잡아 가둬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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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 중요하죠. 결론은 PD가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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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까지 야학을 통해 국사교육등을 받을 수 있었고, 29~34년에 이루어진 조선일보의 한글교육과 31~34년에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 때도 한글교육 뿐만 아니라 국사교육도 함께 했습니다
덧붙여 황국신민화 교육은 중일전쟁이후인 38년부터 시작되었구요,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은 교육령이란 이름으로 35년간 4차에 걸쳐 이루어지는 굉장히 단계적인 과정이었기에 38년 3차 교육령 이전까지만 해도 국어와 국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기회가 꽤 있었지요, 실제로 20년대~30년대 초반까지는 문화통치라는 명목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자보급운동이니 브나로드니 야학등이 시행될 수가 있었어요
20년대生 출생 어르신분들 만나 얘기나눠보면 일제강점기때도 민족의식 그런거 있었다고합니다. 저희 외할머니(27년生) 말에 따르면,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인이 아닌' 그런 대우받은 기분이 어떤지 겪어보지 못한 것을 이해못할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네, 맞는말입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당시에는 소학교 못나온 사람들도 상당했다고 하더군요. 전문학교는 말할것도 없이 아주 극소수 얘기였다하고... 그리고 '국사'나 '국어'라는것도 '일본사','일본어' 가르치는거였습니다. '조선어'는 선택과목이었다 하구요. 그런 상황에서 '내선일체'같은것에 혹한사람들이 많았을거란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언론인이셨던 송건호 선생만해도 혹했다고 하더군요.
적절한 반성과 사과가 이뤄지면 친일파로 분류되어도 얼마든지 명예롭게 추앙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형법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효당 엄상섭 선생의 경우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모범적인 반성사례라고 들고 있죠. 그 분에게 친일파라 욕하는 경우나 과가 있으니 공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의를 제가 과문해서인지 본 적이 없군요.
동감입니다. 친일행적이 있더라도 부끄럽더라도 떳떳이 밝히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후세에 교훈으로 알리는것도 역사에서 높이평가받는겁니다. 친일파 연구 권위자였던 임종국 선생 경우, 자신의 부친이 친일파라고 밝히고, 죽기 직전에 '내 아버지가 빠진 명단은 그거 내지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을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