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도서관
강 문 석
글의 제목은 실제 도서관 이름과는 다르다. 도서관 유리외벽에 붙은 명칭은 ‘책 읽는 바다카페’다. 하지만 글 제목으로 쓰기엔 마음이 내키질 않아 익숙한 우리말로 고쳐본 것이다. 올 여름 들어 가장 많은 80만 피서인파가 몰렸던 7월 마지막 날에 해운대 백사장을 찾았다. 안전요원들은 전동차를 타고 해변을 오가며 연신 호루라길 불어대고 있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근 해수욕객을 핸드마이크로 불러내는 중이었다. 해수욕 시간은 오후 6시까지인데 30분이나 지났다며 부산을 떨었다. 동행을 거부하는 아내를 꼬득여 남포동을 가자면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중간에서 코스를 바꾸어 해운대로 향했다. 해변도서관에 책을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 전 해운대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곧 그치겠지, 하고 급하게 비를 피해 찾아든 곳이 책 읽는 바다카페였다. 밖에서 보기에도 사방을 색유리로 고급스럽게 꾸민 도서관이지만 마음뿐이었고 입장은 늘 망설여지던 곳이었다. 보나마나 그 안엔 젊은이들이 태반일 터라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랬던 노인네를 도서관에 밀어 넣은 건 순전히 하늘의 조화였다. 비는 한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몰랐다. 정낙추 소설집 <복자는 울지 않았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태안 출신인 작가는 이문구 소설가 뺨치게 소설 속에다 구성진 충청도 사투리를 버무려 넣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게 미안해서 팩으로 된 아메리카노를 컵에다 따라주는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마흔쯤으로 보이는 관리인 여성은 친절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책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빗줄기는 여전히 세차게 쏟아졌고 해수욕장 입구에 나와서야 우의를 사서 몸에 걸쳤다. 그렇게 집에까지 오게 된 소설책은 아내까지 읽게 되어 더욱 고마웠다. 그래서 책을 기증하면서 도서관에 보답키로 했다. ‘수필부산’과 ‘신서정문학’ 두 문학단체가 펴낸 정기간행물 두 권씩과 나의 졸저 수필집 ‘산으로 남고 싶은 산’을 들고 도서관에 들어섰다. 카페가 늘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인 것은 갑자기 독서열기가 치솟은 것이 아니라 실내에 설치된 에어컨 때문이지 싶었다.
펄펄 끓는 40도 폭염 속에서도 에스키모들 세상처럼 냉방을 빵빵하게 틀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신선놀음하듯 책을 잡고 가끔씩은 시선을 푸른 바다로 던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낭만적인 피서방법이 있을까 싶다. 어떻든 책을 읽지 않기로 전 세계에 소문난 나라 대한민국이 드넓은 백사장 한가운데에다 도서관을 만든 착상이 놀랍기만 하다. 풍채가 우람한 중년여성 관리인은 책을 들고 나타난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몇 번이나 목례를 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니 기증자 이름을 쓰라면서 필기도구를 손에다 쥐어주었다. 책을 기증한 것을 친절하게 사진으로도 찍어주었다.
집에서 잠자고 있는 책들을 골라 추가로 기증키로 마음을 정한 후 바다카페를 나섰다. 6월 초 개장한 해수욕장은 이날 최대 인파를 보였지만 거의 파장 무렵에 도착한 탓에 백사장에선 비치파라솔을 걷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백사장을 한 바퀴 돌면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해수욕장에서 비키니를 걸친 여성을 촬영할 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신문이 전했다. 40대 초반의 남성은 비키니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찍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등산용 조끼에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캠코더를 숨겨서 동영상을 촬영하다가 적발되어 성폭력범죄처벌특례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던 것이다.
매년 칠팔 월이면 휴가철을 맞아 해수욕장에서 몰래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사례가 빈번하여 충격을 안겨주었다. 법원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 인지 여부,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 동기는 물론 촬영 각도와 촬영거리까지 종합적으로 따져 양형을 결정한단다.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곳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여성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촬영하다 덜미를 잡혀 처벌받는 외국인 ‘몰카범’도 기승을 부린다니 요지경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도시철도 해운대역에서 모래사장까지 이어진 길에도 지구촌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해운대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길가에 위치한 식당 창가에 앉아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다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은 외국인 젊은이들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날 우리 부부가 건넌 횡단보도와 붙은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17명 사상자를 낸 사고는 50대 남성인 간질병 환자가 일으켰다. 국내 뇌전증환자는 40만으로 추정하지만 매년 13만 명밖에 진료를 받지 않는다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겠다. 사회적 편견이 심한 시선들을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이런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첫댓글 고문님 여름 잘 보내고 계시지요!~
해운대 바다카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책도 기증하시고 보람있는 활동하셨습니다. 저는 고문님을 통해서 대리만족합니다만 입추를 앞두고 저도 보람있는 여름 마무리 할려고 생각을 해봅니다~^^
사진찍을 때 조심해야겠네요^^ 불특정 인물 사진 허락없이 찍어도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