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성’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 케이블과 종합편성 채널을 중심으로 성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과감해지고 다양해졌다. ‘성(sex)’과 ‘애드리브(즉흥적인 대사)’가 합쳐진 ‘색드립’은 직설적이든 우회적이든 예능과 개그로 완전히 정착됐고, 신동엽은 ‘동엽신’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은밀하고도 화끈한 밤을 약속하며 <마녀사냥>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2013년 8월 2일 첫 방송). 감사하게도 첫 방송 당시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처음엔 주위 방송 관계자들만 본 듯했고, 그래서 “별일 없으면 다음 주에도”라는 클로징 멘트는 절절했다. 하지만 현재, 프로그램은 다행히 ‘별일 없이’ 방송되고 있다. 우리 시청률보다 높은 방청 경쟁률과 ‘이원생중계’ 현장의 뜨거운 반응 등을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개인적으로는 예능을 낯설어했던 배우들이 ‘재미있게 보고 있다’며 먼저 연락을 주거나 흔쾌히 출연을 허락할 때 프로그램의 나아진 인지도(?)를 조금은 체감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정착된 지금도 제작진은 매주 “이걸 방송해도 좋을까” 하는 원론적인 고민에 빠진다. 방송에서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연애와 성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방송 초기에는 유사 포맷이 없었던 데다 기존 방송의 수위와 전혀 달라 기준 자체가 더더욱 모호했다. 결국 PD와 ‘우리대로 기준을 만드는 수밖에 없겠다’고 상의했던 것 같다. 언젠가 했던 ‘동엽신’의 말처럼, 클로징 멘트 “별일 없으면”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달라졌다
제작진의 고민은 매주 이어지고 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시청자들이 가끔 앞서나가는 재미있는 경우도 발생한다. 제작진이 편집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상상해서 해석을 더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한 남자 배우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입 큰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걸 신동엽 씨가 “지금 본인 자랑하시는 거예요?”라는 애드리브로 받아친 부분이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위험수위라는 생각 없이 그냥 내보냈는데, 그 영상은 현재까지도 ‘<마녀사냥> 색드립 레전드’ 베스트에 들어가 있다. 시청자들의 기대와 상상력에 뒤지지 않도록 좀 더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이원생중계’는 처음 시작할 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아직은 오픈된 곳에서 연애와 성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그럼 어느 정도까지 솔직히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이어져 고민 끝에 시도하게 됐다. 물론 자신 있는 부분은 있었다. 이 코너의 중요한 포인트는 길을 가다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워도 기분 상하지 않을, 솔직히 말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진행자들이어야 한다는 점. 우리 MC들은 그 조건을 충족한다!(‘이원생중계’에서는 실제로 시청자들과 MC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고무적이었다. 앞서 말한 MC들의 덕도 있겠지만 20~30대 젊은 행인들은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솔직했다. 심지어 코너가 점차 알려지고부터는 우리 노련한 MC들이 당황할 정도로 솔직한 분들도 만나게 됐다. 그럴 때는 감사한 마음 저변에 ‘혹시나 이 영상이 이분의 흑역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고이 편집해드리곤 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질문을 받았는데 이 정도 솔직할 수 있다니, 만드는 입장에서도 많이 놀랐고 그만큼 믿고 털어놓아준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웠다.
연예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흔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 게스트들은 혹시라도 개인사, 특히 연애사가 노출될까 노심초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아이돌이어서, 배우는 배우여서, 각자의 당연한 이유로 민감한 부분은 차후 편집해주는 것이 어느 정도 서로 용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앞서 얘기했듯 우리 프로그램의 경우엔 먼저 연락해오거나, 흔쾌히 섭외에 응하는 연예인들이 많아 솔직히 놀라웠다. 연애와 성에 대한 자신의 소신, 때로는 경험담까지 털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토크쇼, ‘낮이밤져(낮에는 이기고 밤에는 진다)’ 등 사지선다형 공식질문을 들고 눈을 반짝이는 네 남자가 도사리고 있는 이 프로그램에 자진해서 와주다니. 예능에 익숙지 않은 톱 배우들이 “다 내려놓고 왔다”며 녹화장에 들어설 때면….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심지어 녹화 후에도 편집은커녕 “재밌게 잘 내보내주세요”라는 요청이 가장 많다. 이건 진짜 괜찮을까 싶은 부분에서도 “사실인데 뭘요” 하고 오히려 쿨한 경우도 있는데, 그분은 평생 팬질하기로 다짐했다.
진짜 이런 것까지 나와요?
가끔 게스트가 “이런 것도 방송에 나가요?” 하고 묻는 모습이 방송되는데, 오히려 진짜 편집해야 할 수위의 토크가 나올 때면 이렇게 물을 여유도 없이 순간 발그레해지고 만다. 그럴 땐 신동엽 씨가 나서서 “괜찮아, 첨엔 다들 그래” 하고 다독이고 본격적인 대화가 재개된다. 물론 그 분량은 편집실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지만.
이렇듯 오픈해서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방송이 된 것은 시청자들 덕분이기도 하다. 실시간 반응을 봐도 수위를 의식하지 않고 편견 없이 호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MC들의 얘기에 즉각 피드백을 주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걸 알기에 녹화 분위기 자체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처럼 솔직하게 믿고 터놓는 진솔함이 배경이 된다.
또 다른 힘은 바로, MC들이다. 처음 PD와 섭외를 의논할 때, MC들의 구색만큼이나 중요했던 게 그들 각자의 매력과 호감도였다. 여자들이 자신의 연애 얘기를 나누고 싶을 만큼 절대매력을 지녔으면서도 색드립을 할 때 너무 기름지거나 비호감이지 않아야 할 것. 고맙게도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네 MC의 조합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뿌듯하다. 이 한정판 컬렉션 같은 이들이 우리 MC들이라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특히 솔직함이 강점인 MC들이다 보니 연애 토크여도 수위가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유쾌함과 불쾌감 사이의 줄타기는 전적으로 MC들에게 믿고 맡긴다. 센스와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 어떤 색드립도 방송용으로 포장 가능한 ‘국민 색드리퍼 동엽신’, 여성 팬을 거느린 ‘발라더(발라드 가수)’이면서도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이제는 자학형(?) 색드립까지 펼치는 반전매력남 ‘성’시경, 색드립마저 돌직구로 던져주는 거침없는 입담의 치명적인 퇴폐미남, 허지웅.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솔직함을 무기로 똘똘 뭉쳐 <마녀사냥>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늘 최선을 다해 최대치를 뽑아내주는 출연진. 그렇다면 나머지는 우리 제작진의 몫이다. 이날 펼쳐진 토크를 과연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 심의에 대한 위험부담이 있는 프로이니만큼,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편집을 위한 회의를 굉장히 꼼꼼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대사 한 줄, 커트 하나까지 공들여 고민한 후 조율하는데 사실 ‘딱 여기까지, 이 선은 넘지 말자’고 정해놓은 마지노선은 없다. 같은 소재의 토크라도 그때그때의 어휘와 뉘앙스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 다만 색드립의 경우, 들었을 때의 불편함을 기준으로 한다. 막내 스태프의 의견까지 모두 물어 조금의 불편함도 없다고 판단되면 방송을 결정하는 식.
방송이 거듭되면서 우리 프로그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늘어간다. 막상 기획하면서는 그렇게까지 멋진 의도나 거창한 명분 같은 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녀사냥> 봤어?”라며 은근슬쩍 성담론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시청자의 말은 꽤 기분 좋았다.좋은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예능, 그냥 재밌게 봐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방송을 보는 한 시간이 그저 유쾌하고 즐거웠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김지윤 작가는
14년 차 예능 방송작가로 한국 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다. SBS 인기가요 <가요대전>으로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SBS <토요일이 온다>, <솔로몬의 선택>, <라인업>, <스타킹>, <강심장>, MBC <시간을 달리는 TV>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JTBC <마녀사냥> 작가로 일하고 있다.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