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모든 이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복음).
과거에 교리서는 세 가지 원수(怨讐)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세 가지 요소를 원수라 하고,
이를 ‘삼구’(三仇)라고 하였습니다.
삼구는 곧 마귀와 세속과 육신입니다.
마귀는 인간을 죄로 유인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하고,
세속은 허망한 것이며,
육신은 사욕 편정(邪慾 偏情)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에 원수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고 하십니다.
물론 이때의 원수는 삼구만을 가리키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꼭 원수가 삼구만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삼구 안에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속과 육신, 곧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맺는 관계가 그것입니다.
타인들과 맺는 관계, 세상과 이루는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마저 흔들리는 경우를 더러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미워하는 사람, 저주하는 사람,
학대하는 사람 등을 원수로 꼽으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집착하지 말고, 오히려 냉정을 찾아 잘해 주고,
축복해 주고, 기도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큰 곳으로 옮겨 가고,
마침내 원수를 용서해 주는 데까지 이릅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 안에 더 이상 삼구란 없어지게 됩니다.
삼구는 본디 그 실체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떤가에 따라서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6,35)
세상 안에서
세상이 사랑하는 것들이 아니라
세상이 미워하는 것들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네.
세상의 불의는 미워할 지라도
세상의 정의는 사랑해야 하기에
원수의 죄는
미울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때문에
그를 사랑해야 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