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백제 옛 우물터에서 천오백년간을
진공상태로 있다가 완벽한 상태로 발견된
"백제 금동 향로" 를 보러 부여박물관에 혼자 다녀 왔습니다
부여 박물관 앞에 있는 대형 향로 동상 입니다
불교국가였던 후기 백제에서
불교와 도교사상의 가치관을 섞은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향로!
중국에서 발견된 중국향로들입니다
백제의 대향로에서
12명의 선인과 42마리의 동물중 가장 눈에 띄는것은
"원숭이", "꼬끼리" 가 아니라 "악어"입니다
도교사상에는 없는 악어는,
동남아에서만 볼 수 있던 동물로써
백제의 동남아시아 지역 통치를 입증해 줍니다
백제시대 함께 존재했던 梁나라, 晉나라의 사서에는
백제가 북경지방과, 칭따오 지방등을 다스렸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향로의 원본은 촬영금지라 밖에서 찍었습니다
원본크기도 60cm가 넘습니다
백제패망시,
의자왕은 자신의 성에서, 배신자에 의해 어이없이 생포되어,
왕족 700 여명과 함께 당나라의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에 의자왕의 3째 왕자인 "부여풍"이 식민국인 일본과 함께
3년동안 나당연합군과 치열하게 싸우지만,
당나라는 의자왕의 첫째 왕자 "부여융"을 내세워
"부영융파" 를 만들어, 백제의 백성들은 두파로 쪼개지고, 형제끼리 싸우게 되죠.
3년간의 대전쟁은, 제 2의 백제 탈환을 위한, 두 왕자간의 싸움이였습니다
물론, 당나라의 지원을 받은 "부여융"이 이기고
백제는 당나라의 식민국으로 전락하게 되며,
이는 7년후 나당전쟁의 승리자 신라에 의해 바로 먹히게 되죠.
아래는
중국의 역대 충신들만 묻힌다는, 낙양에 묻힌
당나라의 개였던,,,,,.......의자왕의 첫째아들 "부여융"의 모조 비문입니다
(물론 낙양에는 부여융의 장수이며, 부여풍을 배반했던, 흑치상치의 비문도 있습니다)
박물관 밖에 있는 당나라 장수 비석입니다
백제의 금관을 복원한 모습입니다
화려했던 백제 금세공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대향로중 도깨비 문양이 눈에 띄네요 ^^
663년 부여풍의 정통파 백제 멸망후,
백제의 왕족과 귀족들은
일본 오사카, 나라로 망명해서
새로운 정부를 만듭니다.
야마토정권에서 "일본국" 으로 바뀐것도 그 때입니다
일왕도 백제피가 섞여 있다고 하니 백제는 일본의 조상이 되겠네요.. ^^
숨겨졌던 강국 해양 대국 백제 리포터였습니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눈입니다
자신의 역사를 모르는 자는 안타까움을 반복하게 됩니다
첫댓글 좋은 자료이고 님의 열정에 감명받았습니다. 다만 위에 당유인원기공비는 반도식민사관이 장악한 현실을 볼때 의심스럽습니다. 저 비석대로 라면 대륙백제는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신채호선생님은 의자왕때 당나라와고구려가 전투를 할시기, 백제는 당나라의 뒤를 쳐서, 산둥반도를 다시 뺏았다고 했죠. 또한 신라의 여러지역도 점령했다고 나옵니다. 나당연합군이 급박하게 쳐들어왔을때, 백제는 산둥반도 분국에서의 철수명령을 해서 본국을 도우라고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이 어째 닮은 듯 합니다.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