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 금각사, jh
미시마 유키오, 그의 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를 둘러싼 이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뉜다. 소설 따위는 거의 읽은 적 없는, 문학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배우, 가수 혹은 정치가와 같은 유명인으로 그를 기억한다.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근육, 가슴털을 휘날리는 플레이보이, 마치 궁전 같은 집에 살면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고, 직접 영화를 만들어 할복해 보이기도 하고, 유행가를 부르기도 하고, 잡지에 나체모델로 등장하기도 하고 동성애자로 보이기도 하고, 자위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기도 하고, 사생활 침해 문제로 재판에 연루되기도 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국제적으로 활약하기도 하고, 파시즘을 옹호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하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인기남, 가는 곳마다 바람을 일으키는 문제아, 즉 스캔들 메이커로서의 이미지를 그는 가지고 있다. 언젠가 전철 안에 '미시마 유키오, 과연 노밸문학상을 수상할 것인가' 라고 적혀 있는 주간지 광고 앞에서, 학생들이 "미시마는 노벨상을 받고 난 다음엔 또 무슨 일을 벌일까?" 라며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적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그다음엔 어떤 작품을 쓸까, 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반면, 그의 소설이나 희곡, 그리고 평론을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미시마에 대해 현대 일본문학의 1인자, 세계적인 순수문학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미시마 유키오의 단정하고도 깊이 있는 문학, 문체나 구성에 일정일획의 허술함도 없는 엄격함을 높이사, 성실하면서도 까다로운 예술지상주의적인 그에게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문학이 지니는 권위의 상징을, 그리고 정통성을 미시마 유키코의 문학에서 느끼는 것이다. 순문학가로서의 미시마 유키오는 웃음이라곤 전혀 없는 문학계의 지독한 냉혈한인지도 모른다.
그의 이미지는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을까? 미사오 유키오 자신이 예술과 실생활을 엄격하게 구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실생활의 연장선상에 자기 일상을 그려 넣는 私小說적 발상을 엄격히 거부한다. 그리고 이른바 문단 소설가로서의 생활이나 교제을 혐오한다. 그는 매일 정확하게 시간을 정해두고, 정력을 다해 2,3매씩 써간다. 그의 모든 생활은 문학을 위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나머지 시간에는 문학가와 정반대의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다. 문학가와 거리가 멀다면 아마도 샐러리맨이겠지만, 그는 사실 원고를 쓸 때도 샐러리맨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그는 되도록 다양한 인생과 생활을 체험하고 싶어 했고, 대담하고 자유분방하게 즐기고자 노력했다. 검도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행동이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도 미시마는 성실했다. 작가로서 탐욕스러운 흥미가 작용했던 게 틀림없다. 요컨대 그는 문학에도 일상생활에도 놀이에도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 그 성실함이 오히려 그를 오해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막상 그와 어울리다 보면 그의 성실함은 벽창호 같은 꽉막힌 성실함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잘 먹고 잘 웃는(그것도 큰소리로) 그야말로 즐거운 청년!이다. 하는 이야기마다 기지가 넘치고 재치가 있으며, 유머 또한 풍부하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농담으로 끝내지 않고, 인생이나 사회, 문학의 본질을 날카롭게 혹은 역설적으로 내뱉는다.
나는 항상 미시마의 그런 즐거운 놀이가 그의 문학 속에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작품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대단히 웅대하고 진지한 장편에만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곳엔 놀이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부도덕 교육 강좌"에서는 미시마의 소설에 나타나지 않는 기지와 역설, 웃음이 충분히 발현되었다. 연재 무대가 "주간 明星"이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적인 주간지였던 만큼, 미시마 유키오는 격식을 버리고 마음껏 장난을 친다.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 , '선생은 무시하라, 속으로만' , '거짓말을 많이 하라' 로 시작되는 67편의 이야기에는 모두 세상의 도덕, 윤리, 양식을 뒤집어엎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어 있다. 봉건시대의 '여성 교육' 과 같은 억압적인 도덕 강좌를 일일이 풍자하고, 그 허망함을 폭로하고 있다. 본문 첫머리에 언급되었듯이, 중국의 "이십사효"를 비꼰 사이카쿠의 "혼조나주후코" 처럼 현대식으로 패러디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냉철한 분석과 인간의 심리를 뒤집어 버리고, 악을 향해, 혁명을 향해, 파멸을 향해, 허무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내보인다.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수사법으로 반역의 이빨을 교묘하게 뽑아내고, 결국은 건전한 도덕을 용인하면서 그 지혜나 진실을 찬미하는 쪽으로 결론을 이끌어간다. 그가 부린 요술은 참으로 훌륭하다. 아무리 방탕아인 척해도 결국은 건전한 양식인이라는 사실을 여기서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부도덕은 진정한 '도덕'교육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꾸로 된 발상이나 유머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게 틀임없다. 그의 관점은 "부도덕 교육 강좌" 보다 훨씬 먼 미래에 있으며, 더욱 깊은 뭔가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이 책은 이토세이, 다자이 오사무, 야마구치 히토미 등의 유머러스한 에세이와 함께 현대 일본문학의 역사에 남을 세련된, 그리고 근원적인 잠언집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그의 참된 모습을 엿볼 수 잇을 것이다.
"부도덕 교육 강좌"는 1958년 (주간 명성)에 연재되어, 이듬해 1959년 4월 중앙공론사를 통해 단행본으로 간행되었으며, 이때 저자는 아직 34세로 젊은 나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하면서도 도리에 절대 벗어나지 않고, 현대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함께 예술에 대한 동경이 녹아들어 있다. 미시마 유키오의 숨은 일면을 십분 발휘한, 참으로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토 세이의 "여성에 관한 12장", 을 비롯하여, 야스오카 쇼타로, 요시유키 쥰노스케, 엔도 슈사쿠, 가이코 다케시, 기타 모리오의 탁월하고도 조금 가볍지만 해방감 넘치는 에세이에 견줄 만하다.
여기까지는 1967년, 카도카와 문고본 해설로서 쓴 글이다. 그로부터 3년 후, 미사마 유키오는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미시마는 성실한, 너무나도 진실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상은 참으로 세련되었다. 이만큼 재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문학가는 없을 것이다. 50년 전의 글인데도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나아가 먼 미래까지 바라보고 있었을 미시마의 시선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섬뜩해진다.
미시마 유키오는 1962년 "아름다운 별"이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에 등장하는 백조자리 61번 별, 미지의 흑성에서 온 우주인은, 지구 인류가 사물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관심, 신에 대한 관심이라는 세 가지 숙명적 결합, 질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더. 그에 대해, 오스기 쥬이치로 등 태양계의 우주인은 지구 인류가 다음의 다섯 가지 아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거짓말만 한다.
그들은 길흥이 있을 때 꽃을 장식한다.
그들은 종종 작은 새를 기른다.
그들은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다
그리고 그들은 잘 웃는다.
이 다섯 가지 좋은 점은 세상에 유익한 것이 아닌 무익한 것이기에 귀중하며, 지구 인류는 그래서 예술가라는 것이다. "부도덕 교육 강좌"엔 이런 깊은 역설적 진리가 존재하고 있다.
글 : 문학 평론가 오쿠노 다케오
아름다운 세레나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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