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제주시 오등동 608-5, 612, 616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마을성담)
오드싱은 오등생의 토박이 지명으로, 『제주읍지』(1783년)에 ‘오등생리’(吾登生里)라 적혀 있다. 4·3 당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주도 중산간 마을 소개령이 내려져 1948년 11월 중순경부터 소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등리에는 1948년 11월 7일 토벌대가 느닷없이 들이닥쳐 마을을 불태워버리자 주민들은 해안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더 깊은 산속으로 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렇게 오등리가 초토화되자 주민들 대부분은 해안 마을로 피난갔다. 소개지에서 오등리 주민들은 온갖 질시와 핍박을 받으며 2년 남짓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해안 마을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오등리 주민들은 1949년 봄에 아라동 인다마을 전략촌 임시 가옥에 살다가 1951년 한국전쟁이 점차 잦아드는 상황이 되자 마을을 재건하자는 의견을 모으고, 부창성·이희조·박평문·김병철 4인을 대표로 제주경찰서에 진정서를 냈다. 곧 40가호 이상이 되면 마을재건이 가능하다는 당국의 허가가 나왔다.
그래서 1951년 봄 무렵 오등리 주민들은 오드싱을 중심으로 3개월 동안 성을 쌓고 마을을 재건하면서 들어와 주민들 대다수가 집단생활을 하게 되었다. 성담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쌓았다. 그 후 ᄀᆞ다시 주민들은 일부 주민들이 돌아가 재건했고, 죽성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오드싱에 정착해 버렸다. 따라서 죽성마을은 복구되지 않아 잃어버린마을이 되어 버렸다.
오드싱 마을성담은 겹담 형식의 석성으로 현재 밭담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많이 훼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현재 612번지와 608-5번지의 경계, 608-5번지와 616번지의 경계, 616번지와 618-5번지의 경계에 폭 1.5m, 높이 1.7∼2.5m이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는 길이 30m가 남아 있다고 되어 있으나, 필자가 성담 옆집에 살고 있는 고운진씨(1954년생)의 안내를 받아 확인해 보니 ㄱ자로 꺾여 이어져 있으며 총길이 100m 정도가 남아 있다.
오드싱 마을성담은 제주 4·3 시기 전략촌의 형태와 변화 과정을 알 수 있으며, 석성을 이용한 주민들의 방어와 경비 활동, 다양한 형태의 주민들의 생활상 연구에 도움을 준다. 4·3으로 인한 마을 구조의 변천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보존 대책을 강구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김은희, 개정증보판 『제주4·3유적Ⅰ』)
《작성 2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