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6]<사상계>라는 잡지를 아시겠지요?
통일운동가 <장준하> 이름 석 자와 <사상계>라는 잡지를, 최소한 60대 이상이라면 들어보셨으리라. 만약에, 만약에 들어보지 못했다면, 최소한 반성(反省)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소견(所見)임을 용서하시라. 어떤 위인이나 어떤 사건 또는 현상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당대(當代)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상계>는 1970년 5월호(통권 205호)를 끝으로 무도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폐간되었다. 김지하 시인의 담시(譚詩) <오적>(五敵)을 실었다는 이유로 불문곡직. 그로부터 5년 후 장준하 선생은 포천 약사봉에서 타살되었다('의문사'라고 1면톱 제목을 단 편집기자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씨ᄋᆞᆯ의 소리>를 펴내던 함석헌 선생은 민족의 허리가 끊어진 것마냥 통곡했다. 어디 함선생뿐이랴. 문익환 목사와 백기완 선생이 들고 일어났지만, 기천, 기만의 민중들은 속울음을 울었다. 장준하가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징병으로 만주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상해까지 대장정을 한 열혈청년이었다. <돌벼개>라는 피끓는 고전을 읽어보셨는가? 읽지 않으셨다면 정말로 강추하는 바이다. 알 것은 알고 죽어야 한다는 것도 나의 소견이다. 당시 <사상계>는 영향력이 동아일보보다 더 큰 언론이었다. 80년대 <신동아>가 30만여부를 호가한 빼놓고는, 지금껏 몇 십만 부 나간 잡지는 없다. 1955년 창간된 <사상계>가 지식인, 지성인, 깨시민들의 ‘숨비소리’(해녀들이 물질하다 숨 쉬러 올라오면서 내는 휘파람소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해 <사상계>가 폐간 55년만에 '명예발행인 장준하' 이름으로 꿈을 꾸는 듯 복간됐다. 발행인 장호권은 장선생의 장남. 아들의 힘만으로 복간은 택도 없는 일.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해도 ‘이것’만은 내야겠기에 이 땅의 지성인들이 총체적으로 일떠선 덕분이라고 할까. 타이틀이 ‘문명전환종합지’이자 ‘지식인반려잡지’이다. 지난해 계간으로 네 권이 나왔는데, 마치 기적을 보는 듯했다. 올해부터는 격월간. 벌써 7권째이고, 통권 212호를 기록하고 있다(1권 18000원, 1년 9만원. 제발 적선하고 정기구독해주시면 안될까? 이것은 나의 충정衷情). 70년대 후반 대학시절, 지금은 쇠락했지만, 틈만 나면 청계천 책거리를 헤매며 <사상계>를 사서 모으기도 했다. 205호까지 전질을 채우고 싶었으나, 잡지가 귀했던 까닭은, 이미 그 잡지를 통째로 사가는 일본인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사상계 영인본’이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보기 힘들었는데, 이번 호(2026년 5-6월호)에서 그 ‘사정’을 알 수 있었다(179-182쪽 “아버지 유품을 기증합니다”).
아무튼, 이번 호(2026년 5-6월)의 ‘신박한’ 기획특집기사(담시 ‘신오적’을 비롯한 ‘대담한 대담’ 등 10-160쪽)를 본다. “한국 ‘마피아’ 해부! 사법·원전·기독교·재벌·언론”이다. 화들짝 반가워 잡지를 펼쳤다. 1970년 김지하가 낱낱이 폭로한 당시 5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었다. 이들의 직함에는 모두 작위적으로 ‘猩’자같이 ‘개 견(犬)’부수를 붙였다. 한마디로 ‘개같은 놈들’이라고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2026년의 <신5적>은 대체 누구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으신가? 만8천원. <사상계>가 정밀한 여론조사로 뽑은 ‘신5적’은 사법계, 재벌, 언론계, 기독교계, 원자력계이다. 하지만 어찌 이 '신5적'만 ‘도둑들’일까? 정계, 의료계, 노조, 관료, 금융계, 교육계, 보건복지 분야 등 ‘12적’도 모자랄 듯하지 않은가. 이들을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좀 유화해서 부르지만, 명백히 거대한 ‘마피아’(MAPIA) 세력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들은 더욱 강력한 기세로 그들의 서식(棲息)범위를 갈수록 넓혀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유전학적으로 ‘우점종’(優占種)이고, 우리같이 힘없는 민초들(民草.glassroots)은 ‘고사종’(枯死種)이란 말인가. 안될 말이다. 그래서 <신오적> 기획특집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다섯 ‘마피아’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더럽히고(더러울 오汚), 어떻게 우리 역사를 그릇된(그릇될 오誤)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에 대한 현황과 통찰을 실은 것이다. 문제는, 결론은 ‘더러울 오’자와 ‘그릇된 오’자이다. 신오적에 대해 알아보자. 너무 깊이 들어갈 것도, 아주 두꺼운 책을 읽을 것도 없다. 이 잡지에서 이야기하는 현황과 통찰만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잡지가 지향하는 일곱가지 주제(정치, 경제, 사회, 문예, 교육, 생태, 건강)는 일목요연하다. ▲기존 정치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혁명적 대안 제시 ▲성장 중심 경제에서 탈피할 대안적 경제체제 구축 ▲‘계몽의 계몽’에 바탕한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 건설 ▲문학과 예술의 르네상스를 통한 시민 삶의 질 제고 ▲문명전환을 위한 생태전환 교육과 대안교육 활성화 ▲기후재난 극복을 위한 인간·비인간의 협업체계 구축 ▲의료 및 복지 사각지대 보완을 통한 건강시대 구현이 그것이다. 그것들을 위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노력하겠다는데 박수를 쳐줄망정 고춧가루를 뿌려서야 되겠는가.
덧붙임1: ‘살림이스트’ 현경(뉴욕 유니언신학대학원 종신교수)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문명전환적 영적 명상 에세이인 S.O.S(Soul of Seoul) <봉황각>을 읽어보시라. '3·1독립운동의 자궁과 개벽으로의 탈주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또다른 풍성(豊盛)한 열매이다.
덧붙임2: 조한혜정-우즈노 지즈코, 박은정-장혜영의 왕복편지도 눈여겨 봐야 한다. ‘마니또’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비밀편지’라 하는데, 이들이 그들의 왕복편지를 사상계 독자들에게 공개한 까닭은 퇴계와 고봉의 편지가 공개된 것과 같은 맥락일 듯하다.
덧붙임2: 1960-90년대 을지로에서 <세종문화원>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던 신두철이라는 분이 <사상게 영인본>을 발간했다고 한다. 이 분의 두 아드님이 그 영인본을 <사상계> 잡지사에 기증한 사연이 재밌나다. 참, 세상은 이렇게 의로운 일을 한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그나마 굴러가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