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수필)
<유년시절의 보물창고>
- 정영인 -
유년 시절, 추억의 보물 창고엔 여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여름 이야기 중에 으레 등장하는 것이 참외 서리와 원두막이다. ‘서리’라는 말은 지금은 민속촌에나 가보야 들을 정도로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서리란 여럿이 주인 몰래 훔쳐 먹는 장난이다. 참외서리, 수박서리, 닭서리, 콩서리 등. 꼭 먹거리를 주인 몰래 훔쳐 먹는 것을 서리라 하였다. 지금은 서리를 하다가 발각되면 도둑으로 몰리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한때 애교로 받아주었다. 참외서리나 수박서리는 어슬렁 달밤이 아주 제격이었다. 거기다가 구름이 달을 가렸다 벗겼다 구름이 달 가듯 하는 달밤이 가장 적당하였다. 참외서리와 수박서리는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시작한다. 그것도 반드시 원두막이 있는 참외․수박밭을 골라서. 주인 이 없으면 도둑이 되기 때문이다. 또 서리의 참맛인 두근두근함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망을 보는 보초가 되고 나머지는 서리 작전의 돌격대로 참가하게 된다. 물론 망을 보는 보초는 원두막을 뚫어지게 감시해야 한다. 우리가 참외서리를 할 때는 우리들만의 암호가 있었다. 그 암호는 “기롱기롱, 따롱따롱, 오롱오롱”이었다. 참외서리를 할 때는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발각되지 않게 낮은 포복으로 참외고랑을 기어가야 했다. 따라서 보초가 “기롱기롱!”하면 빨리 참외고랑으로 기어가라는 신호이다. 서리꾼들이 밭고랑에 기어들어 가면 “따롱따롱!”하고 참외를 따라는 은밀한 음성신호를 보낸다. 마치 무협지의 전음밀지법(傳音密旨法) 같이. 그 때 주인이 나타나면 보초는 급하게 주인이 온다는 “오롱오롱!”하며 마지막 신호를 타전해야 한다. 보초부터 36계 줄행랑을 쳐야 친다. 이 때는 젖 먹은 힘을 다해 똥끝 빠지게 달아나야 한다. 까딱 잘못하여 주인에게 뒷덜미라도 잡히는 날이면 된통 혼이 나게 마련이다. 원두막 주인은 대개 베잠방이 입고 곰방대를 괴춤에 낀 할아버지이셨다. 참외서리를 할 때는 밤이기 때문에 익은 참외와 날 참외를 구분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대개는 코로 냄새를 맡아보거나 익음직한 참외를 한 입 베어 물어 보아서 서리를 했다. 따라서 참외 서리꾼들이 지나간 이랑의 참외들은 이빨자국 상처를 입게 게 마련이다. 사실 그 때는 내남없이 다 어려웠던 시절이다. 주전부리감이나 군것질감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주전부리감을 주로 자연에서 구해야만 했다. 산딸기, 오디, 삘기, 찔레순, 송기(松肌), 메싹, 진달래 꽃잎, 칡뿌리, 올망댕이, 메뚜기, 개구리 뒷다리 등. 지금으로 치면 완전 무공해 자연식이다. 이런 유년시절의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인 서리를 지금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보릿고개와 개떡 등을 모르듯이. 어찌 보면 지금 아이들은 자연에 대한 추억거리가 별로 없는 불행한 세대인지 모른다. 구름에 달 가듯, 어슬렁 달밤에 가슴을 두 근 반 서 근 반 졸이며 “기롱기롱, 따롱따롱, 오롱오롱”하던 때가 그립다. 서리한 참외를 옷에 쓱쓱 문질러 우적우적 베어 물어 먹던 참외 맛, 별들은 쏟아져 내리고 별똥별도 참외가 먹고 싶어 우리에게로 꼬리에 불을 밝히며 달려오던 밤이었다. 이즈음 우리의 옛날을 추억하여 만든 게임인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휘젓고 있으니 말이다. 달고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
참으로 유년시절은 추억의 보물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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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땐 그랬지" 다시 돌아갈수없어 더욱 그리운 그때 그시절,
그-이야기 ,,,,
지금은 '오징어 게임, 달고나 등
한국의 옛 추억이 재생되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그때 그 이야기가ᆢᆢ
기롱기롱.
따롱따롱
오롱오롱
....
멋진 말들을 이미 쓰셨던 거군요.
그렇군요.
깊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