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한국 방송통신 대학교 기말시험이 있어서 ,3 과목을 시험을 보고 오후에는
무등산을 등산을 했다.
아마도 작년에 이사온 이래 제일 많은 시간을 등산을 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2시부터 7시까지니 약 5시간을 산에서 산 셈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등산을 하면서 맑은 공기 마시고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한 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일단 혈액순환이 좋아지니 건강이 좋고 기분도 상쾌해 진다.
더부러서 오늘 학교에서 시험을 3 과목을 보았는데 , 올 3월부터 공부 하느라고 고생 좀 했는데
어느 정도 학점이 나올것 같다. 앞으로 2과목이 남었지만 마음이 홀가분 하다.
내가 뒤늦게 국문학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나는 저의 12대조 시서 김선(金璇)의 유고집의 한시를 이해하고 공부를 상당히 해 보았는데
도저히 잘 알수가 없어서 이다.
2014년도에 3학년 과목에 '고전시가 강독 '그리고 '고전시가론' '고전소설'등이 공부하게
되었는데 ,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폭 넓게 문학이라는 공부를 해 보자는데 그 뜻이 있었다.
인생이 살아 가는거나 , 아니면 뒤늦게 공부를 하는거나 , 아니면 힘들게 올라가는 등산이나
다 노력이 없으면 결과가 좋지 않는 일들이다.
참 그렇다 .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학교 공부,누구한테 대 놓고 공부한다고 할수도 없는
그냥 소리없이 하는 공부가 '한국방송통신 대학교'공부이다.
올 한해만 고생을 하면 120점이 되고 내년만 고생을 잘 하면 ,졸업 소요학점이 되고
국어국문학이라는 학문이 나름대로 상량을 하여 하나의 조그마한 집을 지을것도 같다.
나는 이미 공직에 있을때 '행정학과'를 다니면서 행정공무원으로써 이론정립을 한바 있으며
법 집행에 필요한 '법학과'를 한바 있으며, 학교교단에 있을때는 교육학을 그리고
지금은 '국어국문학과'을 섭렵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사회활동을 은퇴를 하고 나니 나 자신이 '사회적 역활'이 없어 진다고 하니
내 인생이 슬퍼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다. 어떻게 존재의 가치가 없어 진다는 이야기다.
남자는 자고로 밖에 나가서 활동하고 수입도 있어서 여러 이웃하고 어울리기도 하는것이
가장의 할일이라고 보여지는데......
그래서 일명 노인성 우울증, 경제적 소득의 감소, 자아상실증 ,사회적 역활의 상실에서 오는
허탈감 ,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건강의 않 좋아지는 현상 ,사회적인 인간관계의 소원함....
등등으로 나이가 들어가면 사회생활의 영역이 좁아지는 현상을 어떻게 할것인가?
나는 특히 아네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쓸쓸히 혼자 노후를 보내는 입장에서
그냥 먹고만 놀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거기에 대안 방안으로 젊었을때 전공으로 공부를 해 보지 못한 '국어국문학'
이란 학문을 추가로 노후의 소리거리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인것 같다.
그래서 '서울시 시우회'에 글을 쓰고 나주지역 신문에 글을 기고를 하고 지역문학회에 글을 기고
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활동이 아닌 비 경제적인 할동을 하는것 이지만
책을 보니 뭔지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넣는것 같고 , 전에 쌓은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병행해 가면서 좋은 글을 써야 하는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오늘 무등산을 등산 하면서 오랫 만에 '중머리재'라는데 까지 산을 올라갔다.
남쪽인 앞쪽의 몇 겹의 산능선으로 둘러 쌓여서 내가 살고 있는 화순이 아련히 보이고 위로는
서석대 그리고 정상이 아련히 보이면서 어머니의 너른 가슴으로 품듯이 따스하고 온화한
남도의 명산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
무등산자락에는 임진왜란시 무등산의 정기를 받아 의병활동의 선두에 선 ' 김덕령'의병장이
이곳 충효리에서 태어났으며,그의 형 김덕규는 금산사에서 전사하였으며, 그의 아우 김덕보는
그의 둘째형 김덕령의 병장이 모함에 죽게 되자 이곳 원효사 계곡에 '풍암정을 짓고
일제 세상에 나오지를 않고 은둔하여 한 세월을 보내고 말았으며, 김덕령사후 정조대왕께서
이 삼형제의 태어난 곳을 '충효리'라 하여 명명하여주었으며, 원효사 계곡에 시효를 '충장공'라
시효를 지어 주었으며, 사당이 건립 되어 원혼으로 죽게 된 김덕령 의병장을 위로하고 있다.
호남지방의 의병활동의 정신적인 지주를 한 김윤제 선생은 '환벽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 의정자 앞의 계곡에서 소년시절에 목욕을 하고 있는 '송강 정철을 알게 되어 공부를
시켜 나중에 가사문학(歌辭文學)을 꽃을 피울수 있도록 기초 초석을 놓는 일을 한다-- 계속
첫댓글 내몸이 허락하는 적당한 운동과
적당한 열정 ..
이만함에 감사하는 긍정의 힘으로
건강하게 오래 즐기시기 바랍니다. ~
방장님 감사합니다. 건강관리와 적당한 정열로 한번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남은인생 즐기면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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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남도이시군요.
한많고 사연도 많은 너와 나의 삶이 같이 공존하는 호남..................
부모님이 계시고 ,고향의 친구가 있고,훌륭한 선현들이 계시는곳 그곳은 우리들의 고향
중머리에서 바라본 광주시내 그리고 저멀리 금성산이 바라다보이는 나의 고향 나주.................
나도 묻히고 부모님도 묻히신곳
무등산- 등급이 없는산 : 이라더군요
급을 초월한 산이겠지요?
겨울눈꽃 산행 하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주상절리 입석대는 산행의 백미구요...
송강 정철도 되새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등산변의 저멀리에는 '면앙정'의 호남문학의 탯자리를 찾을수 있고
더 가까운 '송강정'에는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의 진수를 느낄수 있고, 영산강변에는 임재의 진보주의와
앞을 내다보는 삶의 혜안이 있었으니......................
감사합니다
녹음짙은 무등의 품에 안긴 님의 넉넉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인생 선배님 이시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않는 그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배움얻구 갑니다~
이제는 할일 없으니 호남의 훌륭한 정신세계를 가지신 선현들의 정신세계나 더듬으면서
남은 인생 보내고져 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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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이사람을
"낙향한 옛 선비의 풍모로 보아주시니 "...............
그 과찬에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호남의 향토문학을 그리고 향토사를 더듬고
한사람이라도 더 알리고 도 공부하여 호남을 다시 재발견하는 날까지 노력하고져 합니다
감사합니다
귀중한 남도의 사료 잘 보고 갑니다.
낭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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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는 호남문학이 전수해 내려오고 잇으며, 훌륭한 정신을 가지신분들이 즐비하게 계시는곳이
전라도며, 아름다운 전경들이 우리들의 눈에 언제나 있는곳이 이곳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좋아 보이네요
즐거운 산행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