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판타지를 아느냐? 20편 - 가시로 뒤덮인 밤송이도 속은 여리다
난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하린은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다른 생각을 하고 하린에게 무관심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넌 취미가 뭐야? 윈디?"
"......"
어제 먹은 요리 이름이 뭐라고 그랬었지.....?
"좋아하는 요리는 뭐야?"
"......"
아 그래...... 그 매콤한 맛이 나는 소스가 곁들여진 그 음식은 비프 스테이크라는 거였지.
"넌 뭘잘해? 검술? 카데라? 검을 메고 있는 걸로 봐선 검산데.... 맞니?"
"....."
정말 끈질기군..... 그만좀 해라! 그만좀! 난 이제 길을 가며 길바닥에 보이는 돌을 세고 있었다.
"야! 뭐야...... 내말 무시하는 거야?"
드디어 화가 난 모양이군. 좋았어. 저걸로 17개 째군.
"아니...... 듣고 있었는걸......"
난 최대한 심드렁해 보이고 최대한 무미건조해 보이며 최대한 퉁명한 태도로 툭 내뱉었다. 아니, 솔직히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내 기분은 그랬으니까. 슈가 납치 되어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슈의 생사조차도 알수 없는 상황인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해?"
하린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 또한 짜증이 밀려왔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 거야...... 좀 조용히 좀 해줄래?"
난 언성을 조금 높여 불만의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흥! 그렇게 인상만 찌푸리고 있으면 크롯 고성에 더 빨리 가기라도 하니? 이왕 가는 거 즐겁게 가자고...!"
"......."
즐거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즐겁냐?
"칫, 아무 말도 하기 싫다면, 좋아! 그럼 이제 닥치고 가면 되잖아!"
하린은 고개를 홱 돌려버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삐쳤는지 더 이상 말이 없다.
내가 너무 심했던 걸까?
'아니다. 아니, 아닐꺼야. 사실 하린과 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인데 뭐......'
하지만 사실 내가 이렇게 하린을 매몰차게 대하는 건 슈에 대한 내 생각이 바탕으로 깔려있을 런지도 모른다. 하린과 친하게 지내면 왠지 잡혀가 버린 슈에 대한 배신인 것 같아서...... 아니, 슈는 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그저 내가 오버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아...... 내가 왜 이렇게 슈에게 신경을 쓰는 걸까? 슈도 따지고 보면 나와 별로 상관 없는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내가 슈에게 많은 신경을 쓰는 것도, 자꾸 슈가 떠오르는 것도, 그녀가 왠지 모르게 연희와 많이 닮아있어서 인 것 같다. 둘 다 아름답기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도 눈, 눈이 닮아 있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때론 원망하는 듯이 날 쏘아보는 그 눈......
아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고개를 흔들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린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우린 그렇게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윈디...... 넌 내 삶은 목표가 뭔지 아니?"
내 앞에 가던 하린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리 착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
난 짧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내 목표는 말이야, 강해지는 거야."
강해지는 거라고? 더없이 막연한 그런 목표였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자신은 미래에 좌의정이나 우의정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이없고 막연한......
"왜?"
난 많이 진지해진 하린을 살피며 물었다.
"어떤 사람이...... 내 부모님을 모두 다 죽였거든......"
하린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섰다...... 그리곤 돌아섰다. 하린의 얼굴은 이제 아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와 같은 귀여움보단 이젠 성숙함이 온몸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이미 그녀의 나이와 세월을 뛰어넘어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성숙한 표정이었다.
"난 강해져서...... 정말로 강해져서 꼭 복수를 할거야...... 나를 혼자 남게 한 그 사람에게......"
하린은 쓸쓸히 말하곤 다시 고개를 돌려버리며 걷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하린의 어깨가 떨리는 듯 보였다. 내 착각이었을까...... 하린의 활발한 모습 뒤에 숨겨진 그녀의 슬픔. 아마도 그녀가 너무나 활발했던 것은 자신의 깊은 상처를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하린이 측은한 생각이 들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기.... 하린....."
난 사과하기로 마음을 굳히곤 하린을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윈디, 저게 크롯 고성이야......"
앞서가던 하린이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앞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과연 하린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앞에 커다란 성이 보였다. 그 성은 매우 높았으며 입구는 철문으로 되어 있었다. 이 성에 꽤 오랫동안이나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 온통 담쟁이 넝쿨과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더구나 성의 이곳 저곳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너무나 외로울 것 같았다. 이 성은...... 너무나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기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음이 틀림 없기에.....
그리고 잠시 난 내가 크롯 고성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하려던 말을 아직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하린....."
난 다시 하린을 불렀다.
"왜불러?"
하린은 돌아보지 않았다. 왜였을까..... 하린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난 숨을 한번 들이키곤 입을 열었다.
"아까일은.... 미안해....."
그리고 잠시 하린은 대답이 없었다.
"괜찮아 마음쓰지마. 이미 지나간 일은 신경쓰지 않는거야. 과거따윈 중요하지 않아. 내가 현재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거지."
하지만 여전히 하린은 날 돌아보지 않았다. 난 하린의 어깨가 아주 가늘게..... 아주 가늘게 떨리는 걸로 봐서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다. 하린도 역시 여자니까...... 마음으로 우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난 아무말도 않고 가만히 하린의 양 어깨에 내 두손을 가만히 올렸다. 이윽고 어깨의 떨림이 더 심하게 느껴지더니 하린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잠시동안 하린의 흐느낌은 계속 되었다.
'그래..... 울어.... 그럼 곧 나아질테니......'
제 소설 처음에 나오는 '하운'이라는 이름과 여기 나오는 '하린'은 사실 제 친구 이름에서 따온겁니다.
제 친구 이름이 '하람' 이라죠....
그래서 별명이 하림 치킨입니다.
하림으로 넣으면 웃길 것 같고 해서 하린으로 넣었습니다.
(참고로 제 친구 남자에요.... 여자 아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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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워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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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람이란 이름도 괜찮은데요'-'a
말줄임표 정리해 주시구요. '난 짧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를 '난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는 어떨까요. 그럼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