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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춤 추 라
희망은 불끈한다
오기(傲氣)
주먹을 불끈 쥐게(結) 하는 기운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연적으로 긴장한다. 순간적으로 뇌에서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비상시스템을 가동한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분주하다. 문제가 산더미처럼 커 보이면 어느새 불안감이나 절망이 엄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은 결연하게 살아남을 길을 찾는다. 그때 희망은 자신을 호위할 마음의 용사들을 모집한다.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수호할 희망의 용사들! 어떤 면면들일까? 나는 여럿 가운데, 오기(傲氣), 호기(浩氣), 강기(剛氣), 이렇게 3가지를 꼽고 싶다. 나는 이 3가지를 묶어 결기(結氣)라 이름 붙이고 싶다. 이들이 결국 주먹을 불끈 쥐게(結) 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오기란 무엇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어떤 한계상황, 또는 자신의 자존심이 도전받은 처지에서 "오기가 났다", "오기로 버텼다" 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체념이나 포기, 또는 승복 대신에 새로운 의욕으로 재도전을 꾀하려고 하는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바로 홧김에 희망을 갖는 격이라 할까. 나는 이 오기도 건강한 희망이라고 본다. 본래 희망은 그 한자어가 가리키듯 드물고 희소한 것을 바라는 것이다. 즉, 성취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바란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을 이루어지게 하려면 시건방을 떠는 오기가 제격인 것.
오기의 힘 오기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기는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잠재 가능성을 끄집어낸다. 수없이 계속되는 좌절과 거절 앞에서도 오기만큼은 제자리를 지킨다. 때를 기다려 기회를 붙잡고 만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 대시인 존 밀턴은 10대 후반 이미 그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30~40대에 그는 영국의 여러 정치적 문제를 비판하는 산문들을 집중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투신하는 나날을 보냈다. 허나 결국 그가 바라던 공화제가 좌절되고 왕정이 복고됨에 따라 그 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신변은 위험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실명이라는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를 두고 사람들이 "밀턴의 인생도 이제는 막을 내렸다" 라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세기의 명고전 <실낙원>을 탄생시켰다. 그가 오기로 남긴 말. "실명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실명을 이겨낼 수 없는 나약함이 비참한 것이다." 오기가 물씬 풍기는 끈적끈적한 말이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추락한 그였지만 그의 꺾이지 않은 필력만큼은 시대를 넘어 비상하고 있었으니. 이렇듯이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한 예를 스포츠 스타들 가운데 많이 보게된다. 2군의 서러움이나 트레이드의 굴욕을 결국 '오기'로 극복하여 대스타가 된 예들 말이다.
오기의 다른 이름, 근성 시쳇말로, 오기는 근성으로 드러난다. 나는 이 근성을 멋지게 담아낸 경구를 만나고 탄복을 한 적이있다. 일본의 상인들에게 권고되고 있는 장인정신을 담고 있는 글이다.
하늘아래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장부에는 매상이 있어야 한다.
메뚜기 이마에 앉아서라도 전은 펴야 한다. 강물이라도 잡히고 달빛이라도 베어 팔아야 한다. 일이 없으면 별이라도 세고 구구단이라도 외워야 한다.
손톱 끝에 자라나는 황금의 톱날을 무료히 썰어내고 앉았다면 옷을 벗어야 한다. 옷을 벗고 힘이라도 팔아야 한다. 힘을 팔지 못하면 혼이라도 팔아야 한다.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 그렇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 라고 써 붙여야 한다.
비장함이 묻어나는 오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어쩌면 오늘의 일본은 이정신에 빚지고 잇는지도 모른다. 어느 분야가 되었건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도 쏟아내야 한다는 프로근성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굳이 영업직이 아니더라도 근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이 글이 전하는 메시지는 거부할 수 없는 일침인 것이다.
호기(浩氣)!
세르반테스의 허풍 신라의 화랑들은 전국 강산을 주유하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줄여 말하여 호기다. 희망은 청춘의 특권인 이 호기를 자극한다. 기왕이면 통 큰 마음으로 광대한 꿈을 품도록 바람을 넣는 것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가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청춘이라면 모름지기 호기 한번 부려볼 일이다.
맨 오브 라만차! 400여 년 전 스페인 감옥에서 무명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에 의해 탄생한 가공인물 돈키호테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제목이다. 직접 관람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포스터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는 언제나 희망을 채근하는, 내마음속에 살아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빌려 노래한 호기 어린 희망가를 좋아한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하늘의 별을 잡자.
이 얼마나 과장된 허풍인가. 뻥 중에도 "왕대포"감이다. 메시지는 강렬하고 간결하다. "미친 척하고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라!" 세르반테스가 미치광이 돈키호테를 통해 이 희망가를 부른 곳은 감옥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50줄을 넘겼을 때였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가난, 결투와 도피생활, 전쟁 중에 입은 상처로 불구가 된 한쪽 팔, 5년에 걸친 노예생활, 4번에 걸친 탈출실패! 말년에는 비리혐의로 인해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야말로 희망이 동난 막장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향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 찬 소설 <돈키호테>를 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잘것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훨씬 낫다.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이 희망은 수세기를 관통하며<돈키호테>가 불후의 명작이 되어 금의환향함으로써 마침내 성취된 셈이다. '맨 오브 라만차'가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오늘 이 시대가 희망을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호언장담을 권하는 까닭 꿈은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 높여서 잡는 것이 좋다. 스스로 파악한 자신의 능력이란 것이 사실은 과소평가 내지 안전평가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목표실적을 정할때 객관적으로 분석된 수치의 200~300%로 잡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너무 안전하게 적게 잡아버리면 아직 파악되지 않은 '잠재능력'이 발휘될 기회를 박탈해 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희망을 품고 꿈을 정할 때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는 호기를 부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공자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알면서도 한다"라고 한것은 바로 이런 기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기로운 꿈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취지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호언장담할 것을 권한다. "첨단농업으로 대한민국이 농업강국이 되는 데 일조할 겁니다. 꼭 해 낼 겁니다." "두고 봐, 나는 이다음에 UN사무총장이 되어 있을 테니까." "기필코 내 이름을 붙인 고난도 점프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할 겁니다!" "······." 허풍 스케일이 너무 커 보이는가? 아니다. 저말들은 벌써 1900년대 중반기에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우장춘 박사, 반기문 현 UN사무총장, 2012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가 일찌감치 토로했던 포부였다.
영웅호걸의 기운 해변으로 파도가 밀려왔다. 파도는 바위를 바라보면서 울부짖었다. "아아, 슬프도다. 나는 저 바위에 산산이 부서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니!" 그때 뒤에서 이렇게 충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 아들아, 마음을 편히 먹으라. 너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파도가 아니라 바다이기 때문이다." 호기란 이처럼 드넓은 기세다. 호기는 이렇듯이 천하를 품는다. 호기는 영웅호걸의 기운과도 통한다. '호기'의 넓을 호는 호걸 호와 동일한 계열의 기운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현대 세계사에서 호걸형 정치인을 꼽으라면 의당 젊은 패기의 존 F. 케네디도 몇손가락 안에 들어가야 하리라. 그젊은 나이에 말썽꾸러기 구소련과 악동 쿠바를 능숙하게 주물렀으니 말이다. 구소련이 독보적인 우주기술 강국으로 군림하고 잇던 1960년대초, 미국은 자존심이 상해있었다. 이때 호기로운 케네디 대통령은 전세계인 앞에서 달나라 우주선 계획을 공포해 버렸다. 1961년 5월 25일 의회의 연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 나라는 1960년대가 가기 전 달에 인간을 착륙시키고 무사히 귀환시키는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합니다!" 연설 직후 기자들이 물었다. "정말 미국은 그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가능성을 결집시키면 가능할것입니다." 당시의 주어진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이 호언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수십업 달러의 예산과 미국 최고의 두뇌들이 총 투입되어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하지만 이 선언은 신기원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1969년 7월 21일! 세계인은 이 날을 인간이 최초로 달나라에 착륙한 날로 기억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호기를 부려 모든 가능성을 결집시킬 줄 아는 리더였다. 미래지향적 리더에게 호기는 필수 덕목인 것이다. 필리핀 속담에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악한 환경에서도 기꺼이 희망을 부여잡고 호기로운 꿈을 품으면, 방법은 신통방통하게 생기기 마련이다.
강기(剛氣)!
<대지>의 작가 펄벅이 한국인에게서 보았던 것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펄벅이 그의 소설<살아있는 갈대> 첫머리에 한국을 표현한 말이다.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해방되던 해까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인의 역경에 굴하지 않는 '굳셈'을 주제로 하였다. 이 작품은 출판 당시<뉴욕타임스> 등 미국과 영국의 유수한 언론에서 <대지>이후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펄벅이 한국인 안에서 꿰뚫어 보앗던 것은 강인함 곧 강기였다. 한국인이 이토록 강기를 지녔던 것은 한국인에게 유독 하늘을 우러르는 성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하늘 을 향하여 견뎌낼 힘을 청하면서 기어이 극복해 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희망의 민족이다. 한국인의 기상을 대표하는 백두산과 동해는 하나같이 '희망'의 상징이 아닌가! 숱한 외침으로 국난을 맞았을 때 우리 민족은 항상 상상상을 초월하는 저항력으로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곤 했다. 6.25의 폐허 위에서 50년 만에 세계경제 10위권 안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본디 지니고 있었던 굳건한 정신력의 발로 아니고 무엇이랴. 고 작 5000만의 인구로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과 2008년 및 2012년 올림픽에서 연이어 상위권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음에 전세계가 경탄하고 있다. 이 굳셈을 강기라 부르는 것이다. 왜, 의지가 굳고 결연한 사람을 일컬어 "그 사람 참 강기가 있다!"라고 하지 않는가. 시쳇말로 깡다구 말이다. 요즘엔. 이를 대신하는 말로 독기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지만, 독은 아무래도 해로운 것이니 나는 구태여 '강기'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싶다. 어떻든, 한국인의 이 굳셈은 저항정신으로도 곧잘 표출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일본을 방문했던 기회에 <동방의 등불>이란 시로써 한국인의 기상을 응원하였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일본 체류 시 끈질기게 러브콜을 전해 온 대한제국 우국지사의 의연함에서 한국인의 굳셈을 보았던 타고르는 영감을 휘어잡고 일필휘지로 이 시를 썼다. 끝내 한국 방문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시에 대한 부정적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만일 타고르가 '시성'이 맞다면 속에 없는 것을 빈말로 둘러대는 잔꾀를 부리지는 않았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낱 희망이었던 이 시는 이제 엄연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 의 시는 하늘의 음성이 담긴 예언이었던 셈이다.
최악을 지탱하는 힘 모름지기 농사를 모르는 도시인들은 봄비가 많이 내리면 곡물 씨앗이 자라는 데 유익하다고 생각할 터다 하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다. 농부들은 경험상 봄날의 좋은 날씨가 오히려 식물들로 하여금 뿌리를 얕게 내리게 하여 생존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태풍이 왔을때, 곡식이 쉽게 뿌리 뽑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충분한 비를 맞지 않은 식물은 물과 양분을 얻기 위해 땅속 깊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그리하여 태풍이나 가뭄이 와도 끄떡없이 견뎌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봄날의 악천후가 식물들을 강인하게 만들어주는 셈이다. 인생도 같은 이치로 돌아간다. 악천후를 견디면 성장은 물론 강인함을 얻게 되는 법이다. 결국 강기는 이렇게 길러지는 것!
나는 이 이치를 오늘의 2040세대가 터득했으면좋겠다. 내가 그들이 당황스러워하며 겪는 이시대의 고난을 내공과 면역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으라고 자주 권면하는 이유는 바로 이 까닭에서다.
강기 앞에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악성 베토벤이 후천적 청각장애로 심각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느 정도로 괴로웠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두 동생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그의 극단적인 고뇌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오! 너희들은 나를 적의에 차고 사람들을 혐오하는 고집쟁이로 여기고 또 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그른 일인지 모르고 있다. 겉으로 그렇게 보이게 된 원인을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도 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는 목동의 노래 소리 또한 나는 전혀 들을 수 없다. 그럴때면 나는 절망의 심연으로 굴러 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서 나를 구해 준 것은 예술, 오직 예술뿐이다. 나에게 부과된 모든 것을 창조하기까지는 어찌 이세상을 떠날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이 비참한··· 정말로 비참한 삶을, 그리고 아주 사소한 변화조차 나를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키는 예민한 육체를 지탱해 왔다. 인내!! 라고 흔히 말하지만 이제 나도 그것을 지침으로 삼아야겠다. 그렇다. 그리하여 운명의 여신이 내 삶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는 저항하려는 결심을 간직하자. 내 상태가 호전되든 안되든 각오는 서 있다.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32세 되던 1802년, 베토벤은 요양 중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곡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는 25년을 더 살았고,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그의 대표작 대부분은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이후의 작품들이다. 그는 짧은 여생을 예감했지만, 질기디 질긴 '강기'는 그에게 생존과 절대 음악을 선사하였다. 그가 유서에서 남긴 한 문장은 오늘 우리를 위한 위엄 있는 격려다. "불행한 사람들은 당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한 인간이,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자기 역량을 다해 마침내 예술가 또는 빛나는 인간의 대열로 솟아오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라."
영국소 해리퍼드의 생존법 나는 승풍파랑의 정신을 좋아한다. 이는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쳐 나간다'라는 뜻으로, 진취적인 기상을 풍기는 말이다. 흔히 쓰는 말로 '정면 돌파'를 가리킨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움이 도도하게 밀려오고 있을 때, 우리에게는 이 승풍파랑의 기개가 필요하다. 희망을 붙잡고 역경을 대차게 맞서 나가는 기개! 그 강기를 우리는 동물계에서도 발견한다. 영국권의 여러 방목소 가운데 해리퍼드종은 극심한 추위를 견뎌내는 능력이 탁월하기로 소문이 나 잇다. 일반적으로 방목해서 키우는 소들은 혹한의 추위를 견디기 힘들 때 바람을 등지고 비계가 많은 엉덩이로 한기를 맞으면서 서서히 이동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체온이 내려가 칼날 같은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 동사를 피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그러나 해리퍼드종은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간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맞댄 채 북쪽의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해리퍼드종은 단한 마리도 추위로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이렇게 추위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동물에 비해 더 강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추위와 맞서 싸울 수 잇는 투지가 있어서다. 역결을 이겨내는 이치도 똑같다. 세찬 시련의 바람이 불어올 때, 옆구리로 맞거나 그로 인해 등이 밀리게 되면 패배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헤리퍼드종처럼 정면으로 맞설 때 우리 안에 투지와 열정이 솟아나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그야말로 정공법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그리고 희망을 외부에 걸지 마라. 우리 자신이 희망이다. 인간은 위대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 안에는 동,식물계,영장계가 집적해 놓은 모든 고난극복 DNA 곧 강단, 강기가 내장되어 있다. (희망은 불끈한다 100 ~117쪽) - '희망의 귀환' 차동엽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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