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 ⓫ 대(代)를 이은 기업가의 예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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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대중화를 향한 '이건 음악회'의 선율...전 좌석 무료
고(故)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예술을 통해 사회에 온기와 영감을 불어넣은 진정한 '문화 CEO'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따스한 봄바람처럼 일상의 틈새마다 스며들기를 꿈꾸었다.
그의 철학은 ‘이건 음악회’라는 특별한 무대에서 꽃을 피웠고 세상의 메마른 곳곳에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했다.
사람들은 그 멜로디 속에서 위로를 찾고 삶은 한층 풍요롭고 깊어졌다.
1941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우연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선율을 접했다.
삶이 고단할수록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언젠가 이 감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은 훗날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초청해 클래식을 무료로 선물하는 ‘이건 음악회’로 결실을 맺었다.
1990년 체코 아카데미아 목관 5중주단을 초청한 첫 무대를 시작으로, 이건 음악회는 30여 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물론이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온라인 공연을 지속하며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 좌석 무료’라는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세계적 음악가들과 국내 연주자들이 어우러진 이 무대는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도 클래식의 향기를 전하며
문화적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예술로 소통하는 장(場)이었던 셈이다.
특히 이건산업 임직원들이 음악회의 기획과 운영에 직접 참여토록 한 점은 독창적인 사회공헌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회장은 “기업이 얻은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예술과 경영을 조화롭게 접목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선 그의 문화적 기여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쉼표가 되었다.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수많은 예술가와 관객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남겼다.
지금까지 3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음악회를 찾았고, 그 울림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투병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박회장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향후 5년치 이건 음악회를 미리 준비하는 진정성을 보였다.
예술을 사랑한 한 기업인의 철학은 음악의 선율이 되어 흐르고, 그의 유산은 따뜻한 나눔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말년에는 개화파 윤치호 선생의 부친, 반계 윤웅렬 선생이 머물던 부암동 한옥을 매입해 복원하며 문화유산 보호에도 힘썼다.
한옥 모퉁이 작은 연못에 찾아온 청둥오리가 오래 머물다 가족을 이루고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의 이치를 곱씹곤 하던 고인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타계한 지 벌써 2년이 흘렀지만 그의 흔적은 곳곳에 배어 있다.
때로는 무대 위에서, 때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클래식 선율 속에서 따뜻한 온기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메세나'의 선구자, 예술과 기업의 아름다운 동행
'메세나(Mecenat)'는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활동을 뜻한다.
박 회장은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며 기업과 예술의 상생을 이끌었다.
또 예술의 전당 이사장 등을 맡으며 예술의 가치를 기업 경영에 접목해 ‘2014 한국메세나인상’을 수상했다.
그의 나눔 정신은 국경을 초월했다.
1989년 솔로몬군도에 이건재단을 설립해 국립미술관 건립과 의료·교육 활동을 지원했으며,
칠레에서 어린이 사생대회와 경보단 활동을 펼쳐 2001년 칠레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독일 몽블랑 문화재단이 수여하는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하며,
그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이건그룹은 단순한 목재 기업을 넘어 문화와 환경을 아우르는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박 회장은 생전에 "일본 마쓰시타전기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사회공헌에 감명을 받았고,
경영을 하며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기업가정신으로 개척한 글로벌 조림사업...솔로몬제도에 여의도 90배 조림지 확보
박 회장은 1965년 광명목재에서 시작해 1972년 이건산업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섰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제2차 석유파동으로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원목 수출을 금지하며 합판업계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1위 업체였던 동명목재가 파산하는 등 산업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는 원자재 확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글로벌 조림지 확보에 나섰다.
1987년 호주 북동쪽 솔로몬제도의 초이셀섬 단독 개발권을 획득하고,
1995년 뉴조지아섬 정부림을 매입하며 대규모 조림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뉴조지아섬에서는 여의도 90배에 달하는 지역에 700만 그루의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으며,
지속 가능한 자원 확보에 성공했다.
조림 사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1그루를 베면 10그루를 심는다”는 원칙하에 환경 보호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람과 자연을 품은 인본주의 경영
박 회장은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천하며 '칠레·솔로몬군도 조림 사업'을 20년 넘게 이어왔다.
1989년 솔로몬군도에 '이건재단'을 설립해 의료, 교육, 농업·임업 기술 전수를 통해 현지 주민의 삶을 개선했으며,
1991년 초이셀섬에 병원을 세워 수만 명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했다.
또한 초등학교 설립과 장학금 지원, 산림 전문가 양성을 통해 지역 인재를 육성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
IMF 외환위기 때도 단 한 명의 해고 없이 책임 경영을 실천한 그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
노사 관계에서도 협력을 강조해 노사분규 없는 기업 문화를 유지하며,
1997년 노동부 선정 ‘노사협력 우량기업', 200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보람의 일터'로 선정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도전 정신과 지속가능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기업의 성공을 넘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박영주·박승준 父子, 한국 예술 후원의 새로운 길을 열다
예술과 기업이 만나 빚어낸 조화로운 선율, 그리고 나눔으로 피어난 문화의 향기.
고인은 기부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그의 철학이 깃든 음악회는 오늘도 이어지며, 세월을 넘어 변함없는 감동을 전하고 있다.
고인의 뜻은 아들 박승준 부회장을 통해 더욱 깊고 넓게 펼쳐지고 있다.
박 부회장은 아버지가 시작한 ‘이건 음악회’를 이어받아 예술과 환경을 향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 부회장은 “그간 음악을 통해 한국 문화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활동에 주력해왔다”면서
“앞으로는 사랑의 집고치기, 시각장애인 마라톤대회 후원, 사랑의 연탄 배달, 노인복지회관 무료 급식 등
다양한 문화나눔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열악한 기업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여운을 남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 곳곳에는 예술 후원을 통해 문화적 유산을 남긴 명문가들이 존재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설립한 록펠러 가문,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운 구겐하임 가문,
유럽 미술계를 뒷받침해 온 로스차일드 가문, 현대미술재단을 설립한 이탈리아의 아그넬리 가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부의 축적을 넘어 인류의 문화적 자산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신념을 실천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박영주·박승준 부자의 예술에 대한 애정 역시 이들과 맥을 같이한다.
초심을 잃지 않고 예술에 대한 헌신과 나눔을 이어간다면 세계적 문화 명가(名家)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도
결코 머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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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