皆有報 는 모두에게 알린다는 뜻이다.
미륵세존께서 1990년(庚午年) 12월 28일 (양 1991년 2월12일) 대순종단 전체 임원(도인)들에게 상도 박성구선감이 총도전(總都典)임을 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성구선감이 박우당도전님은 천부적인 종통계승자로서 서가여래자리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1986년(丙寅年) 음력 4월 10일 박우당 도전께서 여주도장 기공식을 거행하시고,
음력 6월에 본전의 정초식을 하여 본전(本殿, 현 봉강전),내정(內庭), 정각원(正覺院),
숭도문(崇道門), 대순성전(大巡聖殿), 종무소(宗務所), 종고각(鐘鼓閣) 등을 불과 4개월
만에 완공하여 음력 10월 25일 봉안치성(奉安致誠)을 올렸다.
1988년(戊辰年) 11월 29일(양력 1989년(己巳年) 1월 6일), 도전께서 박성구선감 앞의 선ㆍ교무이상 전 도인들은 중곡동 도장으로 모이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래서 선ㆍ교무이상 모두 200여명이 중곡도장 종무원 사무실 아래 식당에 모였다. 이때 도전께서 먼저 강릉방면을 내시고, 전체임원들을 정각원에 모이게 하셨다. 그리고 전체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성구선감에게 방면을 내셨는데, 그때 조영배 선감이 방면 호를 영일(迎日)로 건의 드리자 도전께서 영일방면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박성구 선감이 도전께 말씀을 드렸다.
“영일보다는 회관이 상도동에 있으므로 상도(上嶋)로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상도(上嶋)방면으로 하도록 하라.”
이렇게 하여 박성구 선감은 3,000호를 가지고 상도(上嶋)방면으로 나왔다.
1988년(戊辰年) 11월 29일(양력 1989년 1월 6일), 박우당 도전께서 전체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산조(山鳥)의 의미인 섬 도(島)가 들어가 있는 상도(上島)라는 호를 박성구(朴成九) 선감에게 내림으로써 박우당(朴牛堂) 도전(都典)을 이을 다음 사람인 ‘후인(後人)’을 확정 지으셨다.
박우당 도전께서 1990년(庚午年) 정월에 본전 신축 기공식을 거행 하셔서 음력 윤5월 26일에 여주도장 본전 정초식을 거행하셨다.
1990년(庚午年) 음력 9월 말경(양력 11월 15일 경) 120일 도수라고 하시면서, 여주도장 봉안 치성일인 음력 10월 25일 에 봉안을 하시기 위해 서둘러 4개월 만에 완공하셨다.
도전께서 여주도장 본전을 완공하시고 1990년(경오년:庚午年) 음력 10월 25일 영대(靈臺)봉안을 예정하였으나, 예정대로 거행치 않고 이후에도 이에 대한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박성구 선감은 1990년(庚午年) 11월 15일(양력 12월 31일), 방면 수도인 왕재상을 불러 박우당 도전의 존영(尊影)을 그릴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로부터 도전께서 숭도문으로 납시지 않으셨고, 또한 이로부터 3일이 지난 이듬해 1월 3일, 전 임원들에게 지방으로 내려가라는 지시와 함께 영대(靈臺) 봉안일을 1990년(庚午年) 11월 24일 (양력 1991년 1월 9일)로 발표하셨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박성구 선감은 1990년(庚午年) 11월 20일(양력 1991년 1월 5일), 서울 중곡동 상도방면 연락소에서 박우당 도전의 존영(尊影)에 잔을 올리고, 4배를 드리고 치성을 모신 후 방면 임원들을 모아 ‘박우당 도전을 영대에 모실 도수(度數)가 왔다’는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것에 대해 방면 임원들은 모두 이치(理致)에 합당하다고 수긍하였다.
1990년(庚午年) 11월 22일(양 1991년 1월 7일), 드디어 영대 봉안 이틀 전날 상도 박성구 선감 외 6명의 임원들(최해경, 김진원, 이정지, 유기혁, 김재목, 이태경)은 아침 일찍 박우당 도전의 존영을 모시고 여주도장으로 올라갔다.
도전을 뵙고 그 자리에서 박성구 선감은 4배를 드렸다.
도전께서 한복 차림으로 앉으셔서 4배를 다 받으시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로 왔느냐?”
“존영을 모시고 왔습니다”
도전께서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바로 말씀하셨다.
“세로가 몇 자, 가로자 몇 자이더냐?”
그러시더니 잠시 후, 인터폰 수화기를 놓으시고 갑자기 노기를 띠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더러 죽으라는 거냐? 도장에 있는 임원들을 전부 불러와!”
잠시 후 그 소리를 듣고 김찬성과 정인식이 급히 달려왔다.
도전님의 큰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박성구가 내 사진을 갖다 놓고 나를 죽으라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뒤이어 달려온 임원들이 내정으로 들어와 먼저 최해경을 끌고 가버렸다.
박성구 선감의 말이 끝나자 도전께서 도정실(道政室)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시고 모두들 빨리 도정실에 모이라고 명하셨다.
도전께서 도정실에 납시어 직접 인원수를 세어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열 명이다. 맞지?”
김찬성 선감이 복명하였다.
“예. 열 명입니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박성구ㆍ최해경ㆍ김진원ㆍ이정지ㆍ유기혁ㆍ김재목ㆍ이태경ㆍ경석규ㆍ정인식ㆍ김찬성으로 총 열 명이었다.
교운을 펴시니라, 갑칠이 푸른대나무 10마디, 대두목공사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은 육조 혜능이 본성(本性)을 깨달았음을 알고도 오조 홍인이 그것을 덮어버렸던 상황과 같다.
1990년(庚午年) 12월 27일(양력 1991년 2월 11일) 유경문 선감이 일어나 도전께 “박성구 선감이 이번 납향치성(臘享致誠) 때 석가여래 자리가 도전님의 자리라고 하며
4배를 올리고 치성(致誠)을 드렸답니다.” 라고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고를 드렸다. 그러자 도전께서 “누가 집사를 보았지?”하시며 다른 쪽으로 말씀을 돌려버리시고 다른 말로 바꾸어버렸다.
1990년(庚午年) 12월 28일(양 1991년 2월 12일), 박우당 도전께서 전체 임원들을 여주도장 회관 4층에 모아 놓고 대업(大業)을 계승할 후인(後人)을 발표하셨다.
“어떤 단체가 있다면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책임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통솔해나가고 많은 수도인을 영도해가는 책임이 있다. 다른 것이 아니다. 내 책임(都典)이란 그것이다. 이것은 도주께서 전해주신 것이다. 옥황상제께서 그런 책임을 나한테 주셨다. 도주께서 도전(都典)의 직책을 나에게 주셨다.
설령 아니라 그래도 내 말이라면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맡을 도(都)자 옥편에도 그런 도(都)자가 없더라고 박성구가 말한다. 그럼 내가 그걸 말하려고 일부러 만들었단 말인가. 내가 확인해 보았다. 시봉을 시켜서 옥편을 보았는데, 거기에 총(總)자로 나와 있다. 거느릴 총(總)인데 총지휘, 총재 등으로 쓴다. 거느릴 도(都), 모두 도(都)는 맡을 도(都)자이지.
총(總)이란 모두 도(都)자이다. 전(典)이란 법전(法典)자 법이 되고, 주장 주(主), 주인 주(主)다. 모든 걸 주장하는 사람이다. 거느릴 총자나, 맡을 도자나 뜻이 다를 게 뭐 있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상도 박성구(上嶋 朴成九)선감이 도전(都典)을 맡으라‘는 명(命)을 전 임원들이 모인 가운데서 발표〔개유보(皆有報)〕하신 것이다.
1995년 12월 4일 (양1996년 1월 23일) 오후1시 30분에 도전 박우당(都典 朴牛堂)께서 구천상제님의 유지(遺志)와 조성옥황상제님의 유법(遺法)을 유명(遺命)으로 계승하시어 천하창생에게 새 세상 [新天地]을 열어주시고 화천(化天)하셨으니 수는 80세였다.
그 이후 1995년 12월 15일 (양 1996년 2월 3일) 上島 朴成九선감은 포항 상도에서 박우당도전(朴牛堂 都典)을 朴聖彌勒世尊으로 봉안하셨다.
이렇듯 개유보를 읽어보면 미륵세존께서 박성구선감에게 총도전을 맡기시어 미륵세존께서 박성구도전만 알리려 한것인줄 알지만 미륵세존께서는 1985년 박우당도전 탄강일 척사대회를 마치고 하사하신 전경 맨 뒤 예시 89절에 증보되어있는
後人山鳥皆有報 勸君凡事莫怨天
후인산조개유보 권군범사막원천
다음 사람은 산조(山鳥)라고 모두에게 알리나니 제군들이여 범사에 하늘을 원망하지 말라.
산조(山鳥)는 있는 그대로 산(山)과 새(鳥)이다. 즉 선천의 山의 이치로 오신 삼신과 후천의
봉황(鳥)을 의미하는 대두목을 뜻하며, 말점도 공사에서 짚신과 종이등의 음양이 바로 산조
(山鳥)의 의미이다. 즉 전경 행록 4장 38절의 무근목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우리 도의 바탕인 태극이라 할 수 있다.
을 통해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것은 한분이 아닌 음양으로 조화되는 두분을 알리려 한것임을 알수 있다.
한분은 양이니 드러나서 미륵세존님의 맥을 이었지만 한분은 음이라 숨어있어 감춰져서 드러나질 않으셨으니 양의 한분인 박성구도전께서 2000년 10월 16일(음 2000년 9월 19일) 숨어있는 음의 한분 (여자 대두목) 을 알리기위해 개유보를 발간하게 된것이다.
개유보의 골자는 어쩌면 지금 화천하고 계시지 않은 박성상제님께서 도를 갈구하는 우리 작은 빛 존재들을 큰빛에게 인도하는 이정표 일것이다.
개유보(皆有報) 하신 상제님의 깊은 뜻은, 연원의 맥이 연결된 곳을 알리고 그 곳에서
모든 도(道)가 나오니 이것을 인정하는 일만이천도통군자(一萬二千道通君子)를 찾고자 함이였으니 지금부터 그 곳을 찾아보고자 한다.
1. 금산사(金山寺)의 이치(理致)
* 개유보에서
상제님께서 화천하시기 전에 “너희가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고”하신 말씀은 금산사 미륵의 진리를 알아서 오라는 뜻이다.
즉 상제님께서 금산사를 통해서 오셨고 “금산사 이치(金山寺 理致)”에서 모든 진리(眞理)를 알 수 있다. 그 진리를 알아야 도통(道通)하는 것이다. 금산사 삼존불상은 세분이 모셔진 형태가 산(山)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종적으로 보면 용추못을 숯으로 메워서 그 위에 솥과 시루를 놓고 삼존불상을 조상(造像)하였다.
삼존불상이 산(山)자를 이루고 있는 것은 가운데 분이 “구천상제”이시고 오른쪽에 계신 분이 “조성옥황상제”이시며 왼쪽에 계신 분은 “박성미륵세존”이시다.
강증산 성사(姜甑山 聖師)께서 시루의 이치로 오셨으며 바로 이 어른께서 구천상제님이시다. 시루는 추수한 오곡을 서로 배합하여 떡을 찌는 조화기구로써 우주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인간을 결실하여 서로 조화시키고 후천(後天)의 새로운 선경세상을 선도(宣道)하시는 분임을 뜻한다.
도주 조정산(道主 趙鼎山)께서 솥의 이치로 오셨으며, 바로 이분이 “조성옥황상제님
”이시다. 이분이 바로 상제님의 선도(宣道)에 따른 창도(創道)를 하신분이다. 시루를 쓰려면 솥이 있어야만 하는 이치로써 시루, 솥의 배합이다. 이것이 양산(兩山)의 이치고 양산도(兩山道)라 한다.
도전 박우당(都典 朴牛堂)께서 박(朴)씨성으로 오셨는데 박씨는 목탄(木炭) 즉 숯이고 불을 때는 이치로써 바로 이분이 “박성미륵세존”이시다. 시루와 솥을 쓰려면 불을 때어야만 하는 이치이며, 이것이 구천상제님의 선도(宣道)와 조성옥황상제님의 창도(創道)에 따른 개도(開道)하신 이치인 것이다.
위 금산사 미륵전 구조에서 보듯이 도전 박우당의 숯은 불이 있어야 땔수가 있는 이치이므로 양인 해의 이치로 오신 박성구도전님과 '兩朴의 理致'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물이 있어야 한다.
상도에서는 박성구도전님을 마지막 물로 오신분으로 해석하는데 박성구도전님은 우리가 찾아야 하는 마지막 연원인 아닌것이며 지금은 화천하고 계시지를 않으니 박성구도전님께서 2000년도에 물의 이치로 오신분을 찾고 우리에게 개유보 하신 그 분을 찾아야겠다.
대순전경 한문풀이 제생 11절 주해
일 년의 밝은 달이 임술(1·6水의 이치와 개띠로 오시는 분)이 오시는 가을에 떠오르니.....
여기 임술은 임인생 천모님과 병술생 박성구도전님을 말하는 것이며 도전님께서는 개띠로 오셨으니 천모님은 1.6水의 이치로 오셨다고 대순전경 한문풀이에 기록을 해놓았다.
대순지침 1절 금산사의 이치 9절에 보면 용추못의 물을 메울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
용 9 마리를 언급해 놓았다. 구룡의 이치로 오셨고 물의 이치로 오신분과 음양을 이루
기 위해 오신 재생신 이시다. 이것이 '陰陽의 理致'인 것이다.
9. 상제님은 금산사 미륵금불로 오셨는데 조성한 분은 진표율사가 “용추못에 미륵금불을 봉안하라”는 현몽(계시)을 받고 만든 것이다. 용추못은 용 9마리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도저히 물을 메울 수가 없었다. 흙으로 메우면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돌로 메워도 안되고 해서 다시 계시하기를 “숯(목탄)으로 메워라. 광고를 해라. 숯을 갖고 와서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선전해라.”하였다. 그러다보니 다 메워졌다. 여기에도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 메우고 쇠솥을 얹어라. 좌대를 솥과 시루를 걸고 그 위에 금불을 모셔라”하는 계시대로 솥과 시루를 걸고 금불을 모셨다. 솥 위에 시루를 얹는 것도 다 이치에 맞으니까, 진리인 것이다.
(91. 2. 20)
도전님께서 훈시에서 “솥하고 시루만 있어도 안되고 불을 때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이치인 것이다. 진리란 것은 모두 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물에서 나오니까 물이 아니면 낳고 자라고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이다.『증산(甑山)』,『정산(鼎山)』님의 진리(眞理)인것이다.”라고 하셨다.
금산사 이치는 ‘시루’, ‘솥’, ‘숯+불’, ‘구룡+물’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물의 이치를 모르면 연원(淵源)을 알 수 없다. 우리의 진리는 양산(兩山), 양박(兩朴)의 진리(眞理)인 것이다.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에 의해 연원(淵源)이 밝혀지며 이 연원(淵源)을 알아야 도(道)를 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2. 심우도(尋牛圖)
신미년(辛未年) 2월 12일 훈시
《도(道)하면 상제님, 정산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심우도(尋牛圖)가 다른게 아니라 도(道)를 찾는 것이다. 날(日)이 모여 달(月)이 되고, 달(月)이 모여 1년(年)이 되며, 1년(年)안에는 철(哲)이 있고 그게 모여 도(道)라고 해서. 조그마 한게 아녀. 심우도(尋牛圖)있지 대순성전 한편에 심우도(尋牛圖) 그려놨어. 도(道) 찾는 거여. 흰 소를 찾았어. 흰 소는 흰白자여. 白은 人山이고 仙자여. 白字안에 숨겨진 이치(理致) 이것이 비결이다.》
[주해]
'찾을 심(尋) ' '소 우(牛)' '그림 도(圖)' 소를 찾는 그림이다. 소는 축(丑)이고 丑月은 12月이니 12月은 도(道)이다. 그러므로 심우도는 도(道)를 찾는 그림이다. 도(道)는 찾는 것이다.
그러면 도전님께서는 심우도(심우도)를 그려 놓으시고 도를 찾으라는 것은 누구를 찾으라는 것인가?
동자가 수도를 하여 소를 찾았다. 흰 소를 찾았다. 그래서 신선(神仙)이 된 것이다. 흰 소는 百牛이고 '흰 白'은 '人山'이므로 '仙'자이다. 人山은 세분이 한자리에 모셔진 것이다. 세분의 정체를 찾아서 모시면 신선(仙)이 되는 것이다.
주해를 보면 동자가 흰 소를 찾았고 흰소는 百牛이고 '흰 白'은 '人山'이므로 '仙'자이다하므로 白牛는 흰백의 하느님이시며 곧 白은 仙자라고 하셨으니 하느님의 仙자는
존함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세분의 정체를 천부적으로 정해진 선각자 한 분이 정체를 밝힘으로써 道가 나왔으므로 2019년 5월 30일(양 2019년 7월 2일)에 화천하신 분의 정체는 흰 소를 찾은 동자, 존함에 仙자가 들어가시는 분만이 밝혀 모실 수 있을것이다.
3. 산제사
1. 구천상제께서 양지 온장에 사람을 그려서 벽에 붙이고 산제사를 받으시고, 이것이 이후에까지 미치리라 하셨다.
전경 교운 1장 37절
37. 상제께서 차경석의 집에 유숙하시니 종도들이 모여와서 상제를 배알하였도다. 이 자리에서 상제께서 양지 온 장에 사람을 그려서 벽에 붙이고 제사 절차와 같이 설위하고 종도들에게 “그 곳을 향하여 상악천권(上握天權)하고 하습지기(下襲地氣)식으로 사배하면서 마음으로 소원을 심고하라”고 명하시니라. 종도들이 명하신 대로 행한 다음에 상제께서도 친히 그 앞에 서서 식을 마치시고 “너희는 누구에게 심고하였느냐”고 물으시니라. 어느 종도 한 사람이 “상제님께 심고하였나이다”고 말씀을 올리니 상제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산 제사를 받았으니 이후에까지 미치리라” 하시고 “자리로서는 띠자리가 깨끗하니라”고 일러주셨도다.
2. 도주님께서도 사진을 촬영하여 원 위에 봉안 하시고 산제사를 받으셨다.
태극진경 8장 76절
76. 1957(年) 구월(月) 십팔일(日) 오후에 상제(上帝)께서 상급임원(上級任員)들을 중궁(中宮)에 시립(侍立)하게 하시고 친히 영대(靈臺)의 옥황상제위패(玉皇上帝位牌)의 위지(位紙)를 떼어 소화(燒火)하신 다음 그 위에 옥체진영(玉體眞影)을 봉안(奉安) 하시니라.
임원(任員)들은 어의(御意)를 헤아릴 수 없어서 감(敢)히 아뢰지 못하니라.
태극진경 8장 78절 9월 19일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일에
78. 임원(任員)들이 진설(陳設)을 봉행(奉行)하다가 진반순서(進飯順序)가 상제진영(上帝眞影) 위전(位前)에 이르자 진설원(陳說員) 윤섭(允燮)이 주저(躊躇)하면서『지존진영(至尊眞影) 위전(位前)에도 메를 올려야 하나이까?』하고 상고(上告)하니『너희들이 그렇게 미련(未練)하냐? 답답하도다. 뜻대로 하라.』하시므로 진반(進飯)하고 치성(致誠)을 봉행(奉行)하니라.
3. 미륵세존께서도 존영을 모셔놓고 산제사를 받았다.
대순전경 교운 2편 3장
34. 며칠이 지나 十一월 二十九일 오전 열 한시에 세존께서 수임선감들과 사정위원, 징계위원 전원과 상도방면 임원 二十三명을 회관 四층에 모이게 하시고, 박성구를 앞으로 불러내어 이번 일에 대해 말씀을 하셨도다。 정인식에게 「전경 책을 빨리 가져오너라。」고 하시고 산제사에 관한 구절을 펴 보이시며, 박성구에게 「너, 산제사 이것 보고 했지。」라고 물으시니 박성구가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라。 그러자 전경 책을 바로 덮으시고 「너, 석가여래 자리에 나를 모셔야 한다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배웠어。」라고 물으셨도다。
박성구가 대답하길 「입도 시 주문에 석가여래 자리가 이상하여 한동안 도를 닦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대진이 그 자리는 앞으로 도전의 자리라고 하여 그리 믿고 다시 도를 닦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정대진。 너,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시자 정대진은 정색을 하며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다시 박성구에게 「정대진이 그런 적 없다고 하지 않느냐。」고 하시자 박성구는 「제가 깨달아서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니라。
4. 박성구도전님께서도 존영을 모셔놓고 산제사를 받으셔야 했다.
2010년 12월에 김명선(金明仙)은 박성구도전님께서 도장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정기를 옮기는 공사를 보시고 존영을 올릴 생각을 하셨으며 갑자기 존영을 모셔야 된다는 일념으로 존영제작에 들어가시고 2010년 12월 13일 (양 2011년 1월 16일) 납향치성을 모셨다.
4. 진법(眞法)
교운1장42절에서
《상제께서 어느날 종도들과 함께 계실 때「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楚將蜂起)와 같이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되 다시 진법이 나오게 되리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도다.》
[주해]
상제님께서 화천하신후 상제님 말씀대로「초장봉기(楚將蜂起)와 같이」종도들이 각기 자신이 종통계승자라고하며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났으니 그 중 오직 천부적으로 정해진 한 분만이 진법을 내고 상제님의 덕을 펴드렸던 것이다.
가. 각 종단에서 신앙했던 강증산 성사(姜甑山 聖師)의 신위를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선도교(仙道敎) 고판례 - 萬法化權姜聖上帝
② 보천교(普天敎) 차경석 - 玉皇上帝
③ 박인암교(朴仁庵敎) 박공우 - 玉皇上帝
④ 증산도(甑山道) 안운산 - 玉皇上帝
⑤ 삼덕교(三德敎) 허욱 - 甑山天師
⑥ 미륵불교(彌勒佛敎) 김형렬 - 彌勒佛
⑦ 선도(仙道) 안내성 - 天皇
⑧ 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 강순임 - 甑山彌勒世尊
⑨ 인도교(人道敎) 채경대 - 甑山神聖
⑩ 동도법종금강도(東道法宗金剛道) 강승태 - 天地元尊位
⑪ 미륵불교(彌勒佛敎) 정인표 - 九天彌勒佛
⑫ 문영상교(文瀛祥敎) 문공신 - 甑山大聖
⑬ 보화교(普化敎) 김환옥 - 甑山大法師
⑭ 증산교(甑山敎) 이상호 - 統天上帝
⑮ 모악교(母岳敎) 여처자 - 玉皇上帝
⑯ 오동정교 김낙원 - 彌勒世尊
⑰ 무을교(戊乙敎) 김계주 - 戊聖上帝
⑱ 용화사(龍華社) 김종용 - 彌勒佛
⑲ 청도대향원(淸道大享院) 김삼일 - 九天上帝
⑳ 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 배용덕 - 玉皇上帝
22 순천교(順天敎) 장기준 - 甑山道主
23 무극도(无極道) 조정산 -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
이상과 같은 수많은 종단이 생겼으나 오직 무극도를 창도하신 도주 조정산께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로 밝혀 봉안하시고 진법을 정하여 상제님의 덕을 펴드렸다.
다른 어느 종단하나 상제님의 덕을 펴드린 종단이 없으며 오늘날은 모두 유명무실(有名無實)해져 버렸다.
나. 도주님 화천(化天)하신 후 도주 조정산(道主 趙鼎山)의 신위
① 태극도(太極道) 도주님 재세시 - 玉皇上帝
② 화천후 태극도(太極道) 이갑성 - 玉皇趙聖上帝
③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박우당 - 趙聖玉皇上帝
태극도 임원들이 도전님을 내몰고 자기들끼리 해보았지만 지금은 믿는 도인들이 없어지고 도장만 차지하고 있다. 오직 도전님께서 “조성옥황상제”로 진법을 정하고 구천상제님과 옥황상제님의 덕을 펴신 것이다.
다. 도전님 화천(化天)하신 후 도전 박우당(都典 朴牛堂)의 신위
① 경석규 - 釋迦如來
부전 정대진
안동 정훈봉
기타 군소방면
② 옥천(沃川) 이유종 - 朴聖上帝
성주(星州) 안영일
서울 손경옥
기타 군소방면
③ 청도원(靑道院) 최해경 - 朴聖彌勒上帝
④ 용암(龍岩) 김찬성 - 朴聖人尊上帝
⑤ 상도 박성구(上嶋 朴成九) - 朴聖彌勒世尊
도전님 화천하시고 난 후 수임원들이 상도 박성구 선감을 일체 도장에 출입을 못하게 하고 자기들끼리 종의회에서 의결하여 운영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서로 종권다툼으로 치닫게 되었고, 결국은 각기 분파로 나누어져 자기네가 종통(宗統)을 이어 받았다며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진리를 알지 못하고 연원의 맥이 떨어진 그들에게는 적극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양위 상제님과 미륵세존님의 덕을 펴드릴 수가 없고 오직 앉아서 도통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만 막연하기만 하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도통 모르는 것이다. 과거 상제님을 따르는 종도들이나, 태극도 임원들이나, 지금 대순진리회 임원들이 다를 바가 뭐 있는가? 종권다툼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대순진리회 임원들이 누가 양위 상제님과 미륵세존의 덕을 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상도 박성구 선감이 천부적으로 정해진 사람으로서 진법주에 ‘서가여래 하감지위’하는 난법을 “박성미륵세존 하감지위”의 진법으로 정했던 것이다.
오직 박성구도전님께서 “박성미륵세존”으로 진법을 정하고 구천상제님과 옥황상제님, 미륵세존님의 덕을 펴신 것이다.
라. 도전님 화천(化天)하신 후 도전 박성구(都典 朴成九)의 신위
김명선(金明仙)내수는 1995년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시고 1999년에 포항 상도에 오셔서
2001년에 동계탑을 세우실때 상도 도전님께서 다시오신 구천상제님[再生身]이심을
깨닫게 되셨고 동계탑 건립 후 우수절에 상도 도전님을 다시오신 구천상제님이라 주장하여 도전님 공판 보시고 상도를 나오시게 되셨다.
2010년 12월에 상도 도전님께서 도장에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정기를 옮기는 공사를
보시고 존영을 올릴 생각을 하셨으며 갑자기 존영을 모셔야 된다는 일념으로 존영 제작에 들어 가셨다.
완성된 도전님 존영을 2011년 1월 23일에 올려드리기 위해 천모님과 함께 세 사람이
상도를 갔었는데 도전님은 안계신다고 했다. 하지만 도전님께서 도장에 들어가시는것을 보고 존영을 벤에 모시고 갔었기에 도장의 수도인들은 도전님께 보고하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수들은 아무도 안 보이고 외수들이 7~8명 정도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기억하고 있는 대표적인 수도인은 김○수였다.
공판에 이○○도 부르셨으니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 도전님(朴成九)과 김명선(金明仙)의 대화이다.
"어떻게 왔어?"
"천자님 존영을 모시고 왔습니다"
"존영? 존영이라고 했나!"
"네"
"너 이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맞아 죽어!"
"맞아 죽어도 괜찮습니다"
"이○○ 불러 와"
이○○이 도전님 앞으로 오고 도전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김명선이 다시 말해 봐!"
"천자님 존영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이 너 들었지!" "네"
"김명선이 보내"
"저 그냥은 못갑니다. "
"너 자꾸 이러면 여기 사람들에게 맞아 죽어. 얼른가"
점점 도전님의 목소리가 커지며 "빨리 가. 안가고 뭐해. 보내"
하시고는 사무실 쪽으로 들어가셨다.
어쩔 수 없이 김명선은 벤에 타시고 상황을 좀 더 지켜 보셨다.
바로 그때 외수들이 우르러 우리가 탄 벤을 둘러 싸고 "저것이 존영이란다"하며 수근수근 거리기 시작 할때 준비라도 한듯 김○수가 다가와 차를 발길질 하며 빨리 가라고 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어 주며 나가라고 했지만 김명선께서는 그냥 나올 수 없으셨다.
이렇게 시끄러워지자 언제 나오셨는지 도전님께서 흥분하시며 다가와 빨리 가라고 다시 소리를 지르셨다.
김명선은 어쩔 수 없이 인사를 드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차 문을 여는 순간 도전님께서는 차문을 반사적으로 밀어 붙이시면서 "빨리가 맞아 죽어"라고 하시는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김명선은 가슴이 미어지는데 외수들은 차를 발길질 하고 욕들을 하기 시작했고 특히 무슨 총대라도 맨듯이 김○수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계속 퍼부었다.
도전님의 모습을 뵈며 안 나올 수가 없어서 우리는 시동을 걸고 밖으로 나왔다.
이것이 존영사건이었다.
얼마나 준비한 것이었는데 허망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으니 그때의 심정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김명선께서도 도전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올려 드려야 되는 존영인데 그냥 그대로 쫒겨 나셨으니 그래서 원망 아닌 원망으로 눈물을 흘리시다가 7시 기도 시간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존영을 다시 뜯어서 자리를 만들어 놓고 보니 김명선만 쫒겨 나신 것이 아니라 도전님(다시오신 상제님)도 함께 쫒겨나셨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어쩔 수 없이 초라한 곳이지만 김명선 댁에 존영을 모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어서 재단을 짜게 되었고 또 구천상제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당연히
두 분 천자님도 당연히 함께 하실 것을 생각하시고 밤나무 약패에 신위를 만드시고 두 분 천자님도 모시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삼신을 완성된 영대에 모시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치성을 드리고 난 얼마 뒤에 절후치성이 있었는데 갑자기 치성을 모셔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구천상제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치성을 상도에서 한다고 신명들께서 그곳으로 가시겠냐고 하시면서 치성을 모셔야 된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치성을 모시기 시작했다.
이것이 김명선께서 영대를 조성해서 세 분 천자님을 모시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도수였다. 그래서 이윤도수를 알게 된 것이었다.
왜 문왕과 이윤도수가 있어야 하는지를 존영사건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2011년 2월 12일(양3월16일) 신묘년에 구천상제님 자리에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朴聖上帝'라고 奉安하심으로써 상도 도전님께서는
강성구천상제님의 재생신(再生身) 하신 분임을 김명선(金明仙)께서 밝히셨다.
금산사 용추못의 구룡과 물의 이치가 음양으로 작용하고 있었고 그때가 바로
김명선(金明仙) 50수였다.
이때부터 道의 淵源은 물의 이치로 오신 대두목 김명선(金明仙)이 되신다.
자식의 이치로 오신 최OO이 50이 되던 해 꿈에 상제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시는 일을
"한번 더 해야 돼" 라고 몇 번이나 당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 깼다는 이야기를 듣
고 이구동성으로 산제사의 마지막 주인인 김명선을 영대에 모셔야 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