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다
‘애꿎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아무런 잘못 없이 억울하다’, ‘그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로 풀이되어 있다. 그러나 전자의 뜻보다는 후자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왜냐하면 후자의 뜻으로
쓰일 때에는 주로 ‘애꿎은’의 형태로 사용될 때인데, 대부분의 용례가 ‘애꿎은 담배만 피워 문다’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애꿎다’는
언뜻 보면 ‘애’와 ‘꿎다’로 분석될 법하다. ‘애끊다, 애끓다, 애타다, 애닳다, 애먹다, 애타다’ 등에서 ‘쓸개’의 고유어로
쓰이는 ‘애’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꿎다’는 그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꿎다’는
‘애’와 ‘꿎다’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꿎다’는 그 표기만으로는 그 어원을 알기가 어렵다. 이 단어의 원래
형태를 알아야 그 단어의 역사를 찾기 쉽다. ‘애꿎다’가 처음 나타나는 형태는 우리가 예상하기 힘든, ‘궂다’였다. 문헌상으로는
17세기에 처음 보이지만 19세기까지도 이 형태로 사용되었다.
굿다(晦氣),
굿다(忌會)<역어유해(1690년)> 모다 니 경츈이 낫치 뎌니 긔 가져깃다 채 고디 듯디 아냐 경츈이
굿다 더라 <서궁일기(17세기)> 구 우리 모 남앗다가 긔 숑장 �M오기
슬흐니<명듀보월빙(19세기)> 구 한화 이 셜텬빙뎡의 누쳔니 역을 피치 아니코
<양현문직절기(19세기)> 너 어버의 근심믈 알오 념여치 아니코 구 안해만 말 못 람이라 위엄으로
헙졔코져 냐<양현문직절기(19세기)>
‘궂다’는 ‘’의 종성 ‘ㄱ’ 때문에 후행하는 ‘궂다’의 ‘ㄱ’이 된소리로 되었다. 그래서 ‘궂다’는 ‘다’로 변화한다.
모든 오입쟝이 게발길졉에 번 못 고 진 통직이 랑 추렴으로 오입 쳔을 텃드니<삼션긔(19세기)>
‘다’의 ‘’가 ‘애’로 표기된 것은 단순히 표기상의 일인데, 19세기 말에 들어서의 일이다.
화를 내여 애진 내게 풀야 하니 엇지 아니 우은가<림화졍연(19세기)> 매우 심심한 듯이 애진 담배만 피우다가<春星(1923년)> 애진 담배통만 돌에다 대구 두드린다<총각과맹꽁이(10세기)>
20세기에 들어서 ‘애다’의 ‘’이 ‘꿎’으로 표기되어 오늘날의 ‘애꿎다’로 되었다.
더는
싫다 생각하고 애꿎은 창문을 딱 닫힌 다음<두꺼비(20세기)> 또다시 애꿋은 술만 탓하지 않을 수
없다.<정조(20세기)> 교의에 덜컥 앉아서 애꿎은 담배만 필 때<환희(20세기)> 왜 걸핏하면 애꿎은
춘우를 쳐들어 가지고 야단요.<어머니(20세기)> 꿔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으로 앉아서 애꿎은 담배만 태우는 것을
보고<영원의미소(1933년)>
‘궂다’는 ‘’이 ‘액’으로도 표기됨직도 하지만, 실제로 ‘액궂다’란
표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이 ‘액’으로 표기되지 않은 것은 19세기 말의 표기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표기자들의
어원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도 해석된다. 왜냐하면 ‘厄’은 다음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세기 말까지 모두 ‘’이었고,
20세기에 와서야 ‘액’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증유합(1576년)>
<왜어유해(18세기 말)> <초목필지(1903년)> 액 액<유몽천자(1903년)> 재앙
<言文(1909년)> 운 <초학첩경(1912년)>
그렇다면 ‘궂다’는 무엇일까? ‘궂다’는 15세기 문헌부터 오늘날까지 형태나 의미가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로,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비나 눈이 내려 날씨가 나쁘다’ 또는 ‘언짢고 나쁘다’란 뜻이었다.
惡趣는 구즌 길히라<석보상절(1447년)> 됴 곧 구즌 고대 나미<월인석보(1459년)> 구즌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나린다.<운수조흔날(1924년)>
‘애꿎다’는
‘궂다’로부터 온 단어인데, ‘궂다’는 ‘액’(厄)이 ‘궂다’, 즉 ‘액이 나쁘다’란 의미가 된다. 그런데 ‘액’이 이미
‘모질고 사나운 운수’란 뜻인데, 그 ‘모질고 사나운 운수’가 더 ‘나쁘다’고 표현하였으니, 억세게 재수가 나쁜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운수가 나쁜 이유가 없으니 이것이 ‘아무런 잘못 없이 억울하다’로 의미를 변화시켰고, 이 의미는 다시
‘그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란 뜻으로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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