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로켈
양 애 경
잠들어요
쉬~ 잇
잠들어요
코끼리도 재울 수 있는
쎄로켈 25밀리그램1)
오늘 임무는
36킬로그램 할머니 재우기예요
껌이죠 뭐
잠들게 해요
고장 난 뇌를 멎게 해요
윙윙거리는
불안과 공포를 멈춰요
왜 팔을 못 드는지
왜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 아픈지
왜 손목을 못 쓰는지 묻지 못하게 해요
왜냐하면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들은 말 잊고 또 잊고 또 잊고
뭐~어? 내가 팔이 부러졌다고? 손목이 부러졌다고? 수술을 했다고?
깜~짝 놀랐다가
왜 내가 이 팔을 못 움직여? 왜 나를 묶었어? 라고 화를 냈다가
또 팔이, 손목이, 수술이…
엉 엉 엉 나 어떡해 나 무서워
멀쩡한 사람은 못 견디니까요
저녁 5시에서 다음 날 낮 12시까지
이러한 모든 일들을 멈춰요
단, 할머니는
어디로 나가 어디서 헤매는지 신경 쓰지 말자구요.
자! 우리 쎄로켈 씨가 임무를 다하는 동안
PC를 켜 주식 시세를 보고
부동산 현황도 보고
외환시장도 둘러보고
고기 구워 밥 먹은 다음
TV도 보고
모기장 펼치고 잠을 자요
침대 위의 할머니가 광기의 동산에서 헤매는 동안
주름진 시트와 겹쳐진 옷자락이
할머니 엉덩이 피부를 잘근잘근 씹는 동안
고마워요 쎄로켈 25밀리그램 씨
양애경 약력: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에 『읽었구나!』, 『맛을 보다』,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등이 있음. 애지문학상, 김종철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