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옛날 한 이십여호가 모여사는 동네에서 좀 있게 사는 집의 큰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때 당시 동네의 말짓은 다하고 다닌 문제아이기도 하였었다.
우리 엄니는 말짓을 했을 때마다 나에게 뭔가를 싸주시기도 하시면서
"얼른 가서 잘못했다고 하고 와" 하셨는데 그때마다 알룩까서 내가 안 가려고 버틍거리게 되면 우리 엄니는
"인사는 때를 맞추어 해야는 뱁이여" 하신 것이다.
우리 엄니는 소학교를 들 다니시긴 하셨지만 재주와 꾀가 비상하시고 어디를가셔 보고 들은 것들이 있으시면 그 사람의 말과 몸짓을 하나도빠트리지 않고 그 사람이 한 그대로 흉내를 내시곤 하셨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한때 영화배우가 되어 신성일이 저리가라하게 하겠다고, 키가 작아서 관두었지만, 배우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기도 한 데 아마 그 끼가 우리엄니의 DNA를 받아서가 아닌가 한다.
하여간 우리 엄니의 그 총명함은 동네가 알아주기도 하였는데 위의 "인사는 때를 맞추어 하는 뱁이여"도
바로 상기한 백승부 농연동지 내외가 준비하여 우리가 먹고 뒤로 나간지가
벌써 보름이 넘어 이제 인사를 하려하니 우리 엄니말씀이 다시 가슴을 치고 있다.
그러니까 그날 5월 11일 워싱턴 비행장의시카고 김하진 서정률 심재윤 센트루이스의 윤순기 다섯명은 정확하게 5월 10일 저녁을 먹은 후 먹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굶기훈련인 셈이었다.
옛날 못먹고 살던 시절 굶어본 경험이 있어 그렇지 그게 아니었으면 "워싱턴 모임이 사람죽이네!" 하고 소리를 지를 법도 한 살인적인 배고픔이었다.
바로 그때를 놓지치 않고 만난게 백승부 내외가 준비한 윗 사진의 "쓰시" 접시였다..
차타고 가지고 오다 어디 출렁거리면 흘리기도 하는 국도 아닌, 거기다 먹기도 쉬운 쓰시, 그리고 쓰시하면 비씨기로 유명도하여 웬만한 돈이 없으면 꿈도 못꾸는 쓰시가 아니냔 말이다,
그걸 먹어놓고 보름이 지나 이제 집에 와서
" 잘 먹었네" 한다는게 마치 새해인사를 오뉴월에 하는 것같이 쑥스로워 사람이 하는 인사가 아니란생각이다?
우리 엄니 말씀대로 때를 놓진 실례, 어떻게 생각하면 죄를 짓고 온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모두 백승부 내외에게 경례!"나 아니면
"동쪽 워싱턴을 향하여 경례!" 하는 군대식 인사라도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배가 고프면 아무거나 줏어 먹어도 맛있다고는 하지만 백승부 내외의 그 쓰시맛은 죽어도 생각이 나고 잊혀지지 않을 마치 신이 가르쳐줘서 하게 한 진미중의 진미였다.
우린 다 "農"이 맺게 해준 "緣"들의 만남이고 느낌을 가진 "촌(村)ㄴ"인 것이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비하할 때 흔이들 "촌ㄴ,촌것들 "하며 없이여기곤 하는데 그들은 진짜 촌ㄴ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우리 "農緣" 촌ㄴ들이 보여주고 느끼는 진국맛을 못느껴 보고 또 모르고 하는 소리라 본다.
우리 모두, 촌놈들 만세!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