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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하루살이
“주임님 오늘부터 업부 바로 시작하시면 되죠?”
그녀는 회의실에서 오늘만을 기다리며, 그간 해왔던 공부들과 실제 업무체험 겨험들을 떠올리면서 있었는데, 갑자기 내려와 그녀는 빤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가 뭘 할 수 있겠냐 빨리 나가라 라는 말로 들리긴 했지만, 대답만큼은 자신있게 했다.
“네! 뭐든 시켜주시면 바로 해보겠습니다.”
“하~ 주임님 해 보는 게 아니라 잘 해야 되죠. 회사가 직업없는 사람 도와주는 복지기관은 아니잖아요. 저희 회사가 거래하는 거래처가 한 두 군데 인지 아세요? 그리고, 얼마나 오래된 거래처인데, 주임님 실수 하나 하면 타격이 얼마나 가시는 줄 상상이나 되세요? 지금이라도 자신 없으면, 말씀하세요. 팀장님께 잘 말씀드려 놓을게요. 어차피 오신 거, 고생하셨는데, 한 달 월급은 받을 수 있게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리고 정 취업이 어려우시면, 하청업체에라도 손 써 볼 테니까 여기서 시간낭비 안하셨으면 좋겠네요.”
‘참나 지 주제를 알아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어떻게 여기 들어왔는데 니 까짓 게 어딜 발을 들여놓으려고’
“저 죄송하지만, 일 꼭 해보고 싶습니다.”
한심한 듯이 나를 쳐다보며, 어이없는 듯 혀를 찼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고, 포기할 기회를 줬는데도, 이렇게 고집을 부리다니 미친 거 아니야 라는 표정이었다.
“난 이제 모르니까, 따라오세요. 제가 이번 주 업무 인수인계 드릴테니 다 못하시면, 끝내는 걸로 합시다. 팀장님께는 벌써 그렇게 보고했으니까요. 대신 아까 말씀드린 건 없던 걸로 하는 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암만 대단한 기업의 대리라고는 하지만,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야! 그리고, 하청업체? 지가 먼데 거기에 소개를 해! 하 진짜 빡치게 하네.’
순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만큼은 센 척을 했지만, 조금은 그녀의 말에 흔들린 것이 사실이다. 너무 실무는 아무 경험도 없어 무엇을 맡길지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더더욱 두려운 것은 회사에 혹시나 나의 업무의 미숙함으로 피해를 입혀 고정 고객에 컴플레인과 더불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경고 아닌 경고를 무시한 채 무작정 그녀를 따라갔다.
일주일만에 사무실에 다시 출근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나는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부외자인 것은 다르지 않았다.
이태희 대리님, 외부인 1명 09시30분 입장 이라는 반가운 기계음을 들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항공 수출팀에 걸어가서 나는 이등병과 같이 또박또박하고 절도 있게 인사를 했지만, 자신의 일을 하느라 아무도 관심이 없어 조금 무안했다.
유일하게 나를 쳐다본 사람은 똘기가 가득한 대리님이었는데, 무표정으로 입만 U자로 하며, 윙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옆에 앉아 이대리가 쌓아놓은 서류들을 살펴봤다.
BILL OF LANDING , COMMERCIAL/NON COMMERCIAL INVOINCE, PACKING LIST, ADJUST SHIPPING DOCUMENT , PROFOMA INVOICE, DGD, MSDS ... 도대체 무슨 서류가 이렇게 많은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뜻인지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이론으로 배웠는데, BL 빼고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낫 놓고 ㄱ자를 몰랐던 것이다.
내가 마치 알파벳을 배워서 수준높은 영어원문을 해석하려는 불가능한 도전을 하려는 기분이 들었다. 눈이 깜깜하고, 보면 볼수록 잠이 왔다. 끊임없이 자리에 있는 컴퓨터로 불이나게 검색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뭐하세요?”
“아 서류 주신 것 같아서 뭔지 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일주일동안 뭐 하셨어요? 아니~ 됐구요. 이거 부킹 진행해주시구요. EDI 신고해주세요. 그리고 관세사 쪽에도 수출서류 문제없는지 확인해주시구요.
“EES 는 일단 얼마 전에 퇴사하신 분이 이번 주까지 사용가능하니까요. 제가 적어놓은 아이디비번으로 접속하면 되요. 그리고 사용방법은 GLS WNS팀에 문의하셔서 원격으로 배우시거나 거기 메뉴얼 보고 하시면 됩니다. 가격은 받아놨으니까 대한항공으로 부킹진행해주세요.
간단한 거니까 한 시간 안에 KB ELECTRIC 5건 부킹하시고, 제가 하나 메일 보내 놨으니 부킹 완료되면, 부킹컨펌 캡처 화면과 빈칸에 채우셔서 수신자 추가 후 보내주시면 됩니다. 컨펌이 빨리 안 되면, 바로 대한항공 항공 수출팀 000차장님께 전화하셔서 푸시하시구요.“
“네? 아 그러니까 부킹하라고 하신 거죠? 5건요?”
“네! 부킹하고 메일 달라구요. 이거 오전까지 안되면 안 되는 건이니까 지금해주세요.”
“네...”
솔직히 부킹해달라는 말은 알겠는데, 프로그램 사용법도 회사메일 사용법도 배우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릴 텐데 부킹까지 하라니 완전 맥이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남긴 업체관련 인수인계서는 단 한 장이었다.
퇴사직원의 아이디 비번, 회사 메일, ERP 사이트 주소, 화주(고객), 항공사 EMAIL과 연락처, 수출지역 AIRPORT와 화물 DETAIL이었다. 경력자에게는 엄청나게 단순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정말로 엄청난 일이었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어떤 화물을 실기 전에 부킹이 먼저가 아니라, 가격 협의가 먼저라고 옆자리 또라이 대리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인데, 다섯 개의 부킹을 하고, 시스템의 매뉴얼에 따라 부킹진행 입력도 해야 한다. 그리고 가격도 협의해야 되는데, 내가 도대체 뭘 알고 가격을 협의하며, 내가 머라고 그들이 협의를 해줄 것인가 싶었다.
내가 의지할 곳은 대리님밖에 없었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인상이 굳어있고 바쁜 분위기이다. 나한테 윙크한 뒤 눈에서 불이 켜나오듯 컴퓨터에서 손을 움직이며,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일단, 부킹부터 하자. TARIFF 책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여기에서 타리프란 한국에서 각 나라마다의 AIRPORT 까지 운행하는 구간별 운임을 나타낸 것인데, MIN / 45KG / 100KG / 300KG /500KG / 1TON 이상 대강 이런 순으로 나누어 놓았고, 중량이 올라감에 따라 운임이 감소된다.
이유는 중량과 부피가 작은 화물일수록 비행기 화물칸 공간에 실어봤자 별 돈도 안되니까 오히려 더 많이 받는거고, 부피와 중량이 크면 클수록 DEAD SPACE가 없이 갈 수 있고, 사용 공간도 잘 활용할 수 있으니 공간 낭비와 비용 절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KG당 운임이 점점 싸게 되는 것이다. 뭐 대강 그런 식으로 운임이 책정이 되는데, 고맙게도(?) 케이스별로 있었다. 또한 각 AIR PORT는 FULL NAME이 아닌 3CODE로 되어 있어 무슨 암호 같았다. 예를들어 인천 INCHEON->ICN, NARITA->NRT, BAROCELONA->BCA... 이런 코드들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나에게는 구글링과 급하게 공부한 짧은 기억력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단 항공사로 전화를 걸었다. 시스템이고 뭐고 일단 항공스케줄 부킹부터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주말에 항공사직원의 한숨과 짜증을 들으며 배운 부킹 매뉴얼을 실행했다.
홈페이지 들어가 그녀가 적어놓은 아이로 항공사에 로그인하여 3CODE에 따라 대략적인 중량과 목적지 및 화물 DETAIL을 적어서 예약을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이짓을 수십번 반복 연습해봤다는 것인데, 서류를 보면서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암담했다. N/T, G/W, C/W, 순중량, 실중량, 용적중량 이게 도대체 어떻게 측정되는지 그리고, 서류에 나와 있는 중량만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주말에 항공사 직원이 말했다. 정확한 중량을 모르면 45KG 넘으면 넉넉히 100KG 부킹해놓고 나중에 바꾸라고 말이다. NET WEIGHT 는 화물 포장 전 순 중량을 이야기하는건데, 당시 나는 그것조차 몰랐었다. 그래서 일단 55KG이라고 적혀 있길래 100KG으로, 그리고 200KG 넘는 것은 300KG으로 ... 5개의 구간 뉴욕, 애틀란타, 오스트리아, 도쿄, 프랑크푸르트 이렇게 다섯 개 도시로 나아가는 부킹을 한 시간에 걸쳐 완성을 했다. 잘 됐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말 뿌듯했다.
그리고 잘 부킹이 되었는지 수 십 번 넘게 전화해서 물어본 번호로 다시 전화했다.
띠리리리~띠리리리~띠리리
“안녕하세요. 대한항공 화물수출팀 김미경입니다.”
주말에 통화했던 그 여직원인듯하다. 매우 친숙한 목소리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WS 로지스 WD 김형일입니다.”
“아...그러세요.”
‘아이씨 이 양반은 도대체 나랑 원수가 진거야 뭐야 주말부터 일도 없으면서 전화테러하네 진짜!’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어떤 것 때문에 전화하셨죠?”
“아~부킹했거든요.”
“부 부킹요?”
“네~부킹했어요. 5건요.”
“그래서 어디로 하셨는데요?”
“총 5군데 인데요. 뉴욕, 애틀란타, 오스트리아, 도쿄, 프랑크푸르트 요.”
“죄송한데, 저는 아시아만 담당해서요. 도쿄는 확인해드릴게요. 유럽이랑 미주 담당자 안내해드릴테니 그쪽에 말씀하시면 되요.”
“네~ 그런데 운임은 어떻게 하죠?”
‘아...뭐지 왜 한명이 안되나’
“네? 뭘 어떻게 해요? 운임 받으신 것 아닌가요?”
“네? 어디서요”
“하...저 운임 문의는 영업사원께 해주시구요. GLS WD면 가격 있을거에요. 한번 물어보세요.”
그렇게 나는 각 지역별로 그녀가 안내해주는 곳에 전화하여, 부킹확인 요청을 했고, 영업사원에게도 연락을 해 기존에 진행되는 운임을 받았다. 하지만, 그 운임이 싼지 비싼지는 모르지만, 확실한건 이전이랑 똑같다고 하니 됐다 생각했다. 확실히 큰 기업이라 무시는 안 하는구나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나게 무시당하면서 욕 쳐 먹는 수준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물론, 그 때 나는 전혀 욕을 먹는지 무시당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부킹하고 전화하는 데만 한 시간 반이 지나갔고, 이제 30분이 남았다. 부킹은 했는데, 문제는 이 서류들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메일을 보내라고 했는데, 미션이 정말 임파서블했다.
뭐가 문제인지 시스템 오류가 계속 났고, 로그인도 안 되서 몇 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10분을 썼고, 이제 20분이다.
나는 살며시 이태희 대리에게 나가가 말했다.
“저... 대리님 시스템 오류가 뜨는데요. 로그인도 안되구요.”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화들작 놀라며 욕을 할뻔했다.
“아! 씨...놀랬잖아요.”
‘어디 시커먼 얼굴을 들이밀고 지랄이야 얘는’
“죄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거듭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직 로그인도 안했어요? 부킹은요 부킹 아직 못했어요?”
“아뇨 부킹은 했습니다!”
“어떻게 했는데요? 할 줄 아세요?”
“항공사 직원에게 설명 받고, TARIFF 책보고요.”
“가격은요? KG당 얼마씩으로 받으셨어요?”
“여기 종이에 써놨습니다.”
5개 구간에 대한 구간별 스케줄과 ETD/ETA(출항예상 /입항예상), 운임을 적힌 종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음...가격은 어떻게 누구한테 받았어요?”
“대한항공 영업부 김영신 과장님께요. 가격설정이 되어 있다고 해서 그럼 똑같이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음 뭐...나쁘진 않네요. 근데 이렇게 일해서 언제 제대로 일 하시겠어요. 빨리 배우세요. 좀!”
‘완전 똥만찬 건 아닌가보네. 아메바정도 아닌 건 인정!’
그녀는 완전 더러운 벌레를 쳐다보듯 하는 눈빛에서 그래도 날짐승을 보는 눈빛으로 조금은 격상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가 나에게 인수인계다운 가르침을 주었다. 뭐 대단한건 아니지만, 시스템을 간단하게 아주 초간단하게 몇 분 정도 설명해 주면서, 자기가 해야할 귀찮은 일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솔직히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지만, 조금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았다. 그녀는 그 후 몇가지 일을 던져주었고, 그냥 단순 노가다였다고만 기억하자.
그런데...
이후에도 참고 참고 또~참지 울긴왜울어 웃으면서 달려가자 푸른 하늘~
내 이름은 내이름은 내이름은 캔디~가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도 오늘은 어떻게 잘 버틸 느낌이 든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노가다라도 그녀가 조금이라도 일을 맡겨주는 게 어딘가 싶어 나는 오랜만에 미친 듯이 눈을 부라리며 일에 빠져들었다.
그 날 '하루를 살아도 마지막처럼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라' 라고 이야기 한 어느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것은 마음을 먹는게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어떤 상황이나 위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왜 진작 이렇게 열심히 무언가에 매달라지 못하고 불만만 가득하고 관심만을 위로만을 바라는 인간이 되었을까 하는 잠깐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한다. 언젠가 이런 방황의 순간들도 추억으로 기억될만큼...
**감사합니다.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요!!^^ 오랜만이 성탄연휴에 제대로 게으름 피웠네요. 또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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