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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새벽 산행의 매력에 풍덩 빠지다/충령산
mysoolee 추천 0 조회 74 09.06.04 10: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월 30일

 

낭만파를 대표하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라고 하였다.

평소에도 워낙 술을 좋아하는 위인(爲人)이지만, 통나무산방에 가면 맘껏 마시고 취한다. 산방에는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동동주가 있는데, 그 술맛이 아주 각별하다.

달 밝은 밤, 달빛을 초대하여 동동주 한잔 마시노라면, 내가 마치 신선처럼 여겨져서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간밤에는 비싼 줄돔 회에 소주를 여러 병 마셨다.


눈을 뜨는 시간은 늘 새벽 4시경이다.

20년도 넘는 오랜 습관이니 전날 아무리 취해 잠이 들어도 4시경면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직장생활로 인해 글을 쓸 시간이 새벽밖에 없으니, 꿀보다도 달다는 새벽잠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1시간쯤 원고를 쓰다가 등산화를 신고 산방을 나왔다.

초여름 5시경이면 먼동이 터서 날은 밝다.

카랑카랑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경삿길을 뚜벅뚜벅 걸어 오른다.

서리산은 두 번이나 올랐으니 이날은 축령산을 소요(逍遙)할 생각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이날 역시 매표소를 공짜로 통과하여 축령산 쪽으로 오르다보니,

새벽이슬을 잔뜩 머금은 하얀 꽃이 눈길을 잡아끈다.

처음 보는 꽃이다.

 

“너 이름이 뭐니?”

 

축령산(祝靈山)은 태조 이성계가 산신께 고사를 지낸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산 이름부터 신령스럽다. 산신께 정중하게 고하고 산을 오른다.

멀리서 산의 관상을 보고 짐작했던 것처럼 골산(骨山)이다.

축령산 초입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잣나무들이 울울창창하다. 푸르고 싱그러운 잣나무의 향기가 온 몸의 세포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처음부터 길이 가파르고 돌이 제법 많다.

호흡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흐를 때쯤에 다른 산에서는 보기 힘든 약수를 만난다. 바위에서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암반약수이다. 작은 표주박에 고인 물을 벌컥 삼키고 다시 산을 오른다.

 

 


바위가 길을 막아 로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도 만난다.

 


수리바위-몇 해 전까지 독수리가 살았다고 한다.

바위틈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자란 소나무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울창한 숲


잣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등과 여러 풀들이 어우러져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勝花時)’를 이루고 있다.

다람쥐 몇 녀석을 만났는데, 모델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모두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홀딱벗고새는 오늘도 '홀딱벗고, 홀딱벗고'하면서 구성지게 울고 있다.

 

남이바위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


27세에 병조판서에 오른 남이장군이 무예를 닦았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이다.

바위에 오르니 자연스럽게 남이장군의 시조 북정가(北征歌)가 떠오른다.


白頭山石磨刀盡   /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豆滿江水飮馬無   /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   / 남아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못한다면

後世受稱大丈夫   / 후세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 칭할까.


20대에 이렇게 기개가 넘치는 시조를 지었던 남이장군은 분명 대단히 강한 영웅의 풍모와 기상을 지녔을 것 같다.

남이바위에 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아직도 서툴기 그지없는  단가 <사철가>를 목청껏 완창했다.

혼자만의 새벽 산행에 빠져들면서, 우리 소리 한 가락이라도 배우고 싶어 <사철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비록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만…, 부르면 부를수록 우리 소리의 깊은 맛에 빠져든다.

 


길이 제법 험하다. 위로 오를수록 곳곳에 낭떠러지 절벽도 있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가 요망되지만, 크게 겁을 먹을 정도는 아니다.

 

 해발 879미터의 축령산 정상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

 

<사철가>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어느덧 산정이다.

산정에 돌탑을 쌓아놓은 산이 많다. 돌 하나하나마다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을 것이리라.

나도 돌을 하나 올리고 소망을 빌어본다. 집필 중인 작품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산정에 오르면 시계를 막고 있는 공간이 한꺼번에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첩첩, 첩첩… 겹겹으로 된 산의 줄기가 멀리까지 내려다보인다.

첩첩 준령을 예닐곱 개까지 눈으로 헤아리다가 아아…,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와 어디까지 헤아렸는지 잃어 버렸다.

산정에 앉아 <사철가>를 두 번이나 완창했다.

고음과 저음 처리가 잘된 것 같고, 리듬을 제법 타는 것 같아 스스로 만족감에 빠져들었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흥얼거리다가 혼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기에 모든 것을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것이 바로 새벽 산행의 매력이다.

 


내려오는 길에 부채붓꽃을 만났다. 붓을 닮은 꽃봉오리를 하나 꺾어 붓글씨를 써도 잘 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산행 때는 꼭 시도해볼 생각이다.

 

 

금붓꽃도 만났다.

 

 


축령산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으로 향하는 길가에 해당화가 곱게 피어있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산딸나무의 꽃이 마치 나비가 앉아있는 것처럼 피어있다.

 

 

어느 팬션 정원에 핀 불두화! 흔히 불도화라고 하는데, 불두화가 정식 명칭이다.

꽃 모양이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닮아 그런 이름을 얻은 것 같다.


다음 새벽 산행 때는 산삼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신령스러운 산이니 어딘가에 산삼이 꼭꼭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여러 벗님네들!(사철가의 가락이 입에 붙어버렸다. ㅋ~)

시간이 된다면 6월 13일 축령산으로 오시라. 만약 산삼을 캐게 된다면 잔뿌리 하나 정도는 선물할 용의가 있다. 산삼은커녕 더덕 한 뿌리도 못 캘는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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