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단톡방 ‘조용히 나가기 법’까지 발의된 나라
“읽지 않은 SNS 메시지 101개, 휴대전화 메시지 254개, 이메일은 4만6252개…. 이 중에서도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그룹 채팅방이다.” 영국의 방송 진행자이자 언론인인 시린 케일은 칼럼에서 와츠앱 같은 SNS의 단체 채팅방을 ‘독재’라고 비판한다. 원치 않는 채팅에 사람을 끌어들인 뒤 감정노동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관계의 부담을 지고 나가버릴 용기도 없다”는 고백도 한다. 한국인들이 받는 ‘단톡방 스트레스’가 해외에서도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카카오톡 단톡방을 조용히 나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고 탈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도록 규정해놨다. ‘이런 것까지 법으로 규제하려 하느냐’는 일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발의 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부장님이 계시는 회사 단톡방’부터 시댁 단톡방까지 각자가 억지로 속해 있는 각종 단톡방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구가 그만큼 쌓여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톡방에서 ‘조용히 떠날 권리’는 결국 SNS에서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귀결된다. 원치 않은 정보나 논의 참여를 부담 없이 거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당당하게 채팅방을 나가면 된다지만 ‘○○○님이 나갔습니다’라는 알림이 남은 멤버들에게 불러일으킬 관심과 억측, 실망감, 불만은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기 십상이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와츠앱에 ‘조용히 나가기’ 기능을 도입하면서 ‘비대면 프라이버시를 대면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보호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조용한 탈퇴’는 현재 국내에서는 유료 서비스에만 제공되고 있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도 보장돼야 할 ‘자유롭게 들고 날 권리’를 돈으로 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반 프로그램에도 적용해 달라”는 사용자들의 요구에도 침묵하던 카카오톡은 법안까지 발의되고 나서야 뒤늦게 서비스 확대를 검토 중이다. 어물쩍대다 결국 법안에 등 떠밀리는 모양새가 됐다.
▷SNS를 이용하는 성인 5명 중 4명은 단톡방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 알림에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단톡방에서 쏟아지는 정치적 주장이나 과도한 공격, 음담패설 등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이도 적지 않다. ‘카톡 감옥’, ‘카톡 지옥’으로 불리는 사이버 학교폭력도 문제다. 이런 단톡방의 횡포에서 자유롭게 탈출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버리고 떠나는 자’라는 꼬리표부터 떼 줘야 한다. 이런 일에 국회까지 나서야 되겠는가.
이정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