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체험 수기 대상수상작. 김하정 ㅡ 율리아나

[약손]

🌷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대상수상작)

- - - 김하정 율리아나 　

성당 앞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어린 날, 논둑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문득 노을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미워하고, 속 끓이고, 걱정하느라 또다시 세상 먼지 다 묻혀 누더기가 되어버린 부끄러운 마음 하나만 들고 아버지 앞에 왔습니다. 맘 편히 하소연 할 곳이 당신밖에 없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주님께서 미소 지며 말씀하십니다.

'괜찮다….' 

주님의 달력은 이제 시작인데, 세상의 달력은 끝을 향해 갑니다.  그 끝의 다음에는 어김없이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싹트고 있겠지요. 　

주님이 오시는 날이 가까워지는 날, 소리 없는 함박눈이 세상을 고요 속에 품어 안습니다.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 빠지듯이 세 아이가 저마다의 학교로 등교하고 난 아침, 언제나 그렇듯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일하러 나간 남편과 공부하러 나간 아이들이 무사히 들어올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부디 세상이 조금만 더 평화롭기를, 오늘은 내가 조금만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몇 년 전에는 1년 남짓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후로는 건강이 좋질 않아서 직장을 구하려고 애를 써 봐도 쉽지 않고, 고된 노동은 엄두조차 못 냅니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먹고 사느라, 그리고 남편의 오랜 실직으로 불어난 빚더미에 허덕이다 작년에는 월세 55만 원의 열다섯 평 다세대 주택으로 옮겨 다섯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1억 원이 넘는 빚은 23년 살아내느라 진 무거운 형벌과도 같습니다.  대학생, 고등학생인 세 아이의 학비 대출금은 오늘도 늘어만 갑니다. 그나마 남편이 몇 년 전부터 지인의 도움으로 작은 회사에서 일하게 되어 십여 년 만에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왔습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비록 대졸 초임보다 못한 월급이라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남편과는 24년 전, 같은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조건으로 따지자면 나는 명문대를 졸업한 재원이었고, 그는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을 나온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이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나는  CEO 비서실에 근무하는 미래가 촉망되는 사원이었고, 그는 말단 영업사원이었습니다. 
우리의 결혼을 우리 집에서도,  시댁에서도,  친구들도 다 뜯어말렸지만, 우린 젊음 하나 믿고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당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는데, 그이나 나나 서로의 종교에 대해 강요하거나 간섭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후 어느 날 문득,  그가 천주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하더군요.  저를 보니 아무래도 개신교로 개종할 것 같지는 않고, 같은 하느님을 믿는 것인데,  다를 것이 무엇이겠냐고 하면서 자기가 가톨릭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교리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고 혼인성사를 받았습니다.

혼인성사 받던 날, 남편이 감격해서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신 분이 하느님이셨음을….

얼마나 은혜로운 기적을 우리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주셨는지를 그때는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 것처럼 교만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나를 위해 종교를 바꾼 그이에게도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난 능력 있는 여자고, 그도 성실하고 지혜로우니까 주변 사람들의 염려쯤은 말끔히 씻어낼 만큼 잘 살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결혼이었습니다.

학벌이나 능력, 재산 따위의 세상 조건 다 마다하고 오직 사랑 하나로 내가 남편을 선택했다는 오만함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우리의 꿈은 산산이 깨져버렸습니다. 제가 첫 딸을 출산하면서 부득이하게 퇴직을 하게 된 후 얼마 안 되어서 하루아침에 남편이 실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우리는 지옥의 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17~18년 동안 남편은 아무리 노력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월급조차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성실했으나,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을 나왔을 뿐,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외국어 실력도 없고 쟁쟁한 인맥도 없고, 제대로 된 경력도 없고, 돈도 없는 그이를 받아줄 곳은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들어가는 작은 회사마다 죽도록 일만 하고,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아버린 경우도 몇 번을 당했습니다. 　

어머니를 고생시킨 무능력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남편은, 아버지처럼 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무척 심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남편은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무려 열일곱 가지의 일을 전전했더군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이 지나쳐 다단계의 유혹에도 넘어간 적이 있었지요.  그런 그이를 되돌려놓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다시 마음을 잡은 남편은 포장마차에서 천 원짜리 조각피자도 팔았고,  길거리에서 밤장사도 하고, 꽃장사도 하고,  빚내서 차린 작은 치킨가게는 얼마 못가 망해버렸습니다. 다시 빚을 내 산 중고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두 배, 세 배의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도 아이들 키우며 닥치는 대로 번역도 하고,  과외교습도 하고, 학습지 교사일 하느라 밤늦게까지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생만 하고,  보람은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친정 엄마와 동생이 돈을 모아 자금을 대어주어 작은 영어교습소를 차릴 수 있었지만, 2년 만에 그마저도 엄청난 빚만 남긴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외면하는 것 같았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앞에서는 어떤 노력도 소용없었습니다.

전 재산이라고는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1200원이 전부였던 어느 날, 그 돈을 쥐고 애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었지요. 　 　

남편과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습니다. 
어느 날, 저와 돈 문제로 다투고, 남편이 토해내듯 던진 말이 지금도 잊히질 않습니다. 심장이라도 다 떼어주고, 사라지고 싶다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 발버둥쳤으나,  결국은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은 자괴감에 그이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현실 앞에서, 우리의 사랑과 믿음도 빛이 바랬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성실함이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고 위로하던 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해갔습니다.

무능력한 남자 잘못 만나 이 고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살았으면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도 승승장구했을 텐데,  보잘것없는 동네에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아낙네로 하루하루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지는 않았을텐데, 
제 교만은 꺾일 줄을 몰랐습니다. 　 　

남편은 나를 원망했으며,  나는 남편을 미워했습니다. 결혼을 후회했습니다. 나의 원망과 절망에만 빠져, 그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헤어지는 것이 내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는 나 때문에 불행하고, 나는 그이 때문에 불행했으니까요. 　 그때쯤일 겁니다. 내 불행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의 간절함을 미처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큰딸의 방황이 시작된 것을 몰랐습니다. 

딸아이는 당시에 중학생이었는데,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잘못된 길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큰딸 때문에 정신없이 지내는 중에 작은 딸은 혼자 먹고 혼자 학교 가고, 뭐든지 혼자 해내는 방법을 스스로 익힐 수밖에 없었고, 어린 아들은 말수도 줄고,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가장 크게 받게 되었을 때가 그때입니다. 사랑도 주지 못했고, 보살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늘 외롭고 혼자였을 겁니다. 지금도 가끔씩 그 아픈 상처가 속살을 드러내는 걸 볼 때면 너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큰딸 아이를 찾아 헤매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 마디 기도, '주님… 부디… 그 아이를 지켜주세요….' 
한 마디 말이 툭 쏟아지자 눈물도 따라 쏟아졌습니다. 　 　

불과 6년 전까지의 얘기입니다.

성당에서는 가끔씩 구역장이나 반장이 찾아와서, 다시 성당으로 가자고 독려했지만 우리는 하느님으로 향하는 모든 발걸음을 끊어버렸습니다.

난 그 시간 내내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원망하느라 감사할 줄 몰랐으며,  아무런 기도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남편 탓, 세상 탓이었으며, 기도도, 신앙도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냉담자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돈이 있어야 빚을 갚을 수가 있고, 내가 다시 행복할 수 있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다는 것도 의미가 없었고, 사랑하는 가족도 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놓아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과 나 사이의 애정의 끈마저 툭, 끊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아, 죽어야겠구나.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베란다에 서면 뛰어내리고 싶었고,  길가에 서면 차도로 불쑥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지인 한 분이 지나다가 나를 보고, "아유, 세상 근심을 혼자 다 진 사람처럼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라고 하시더군요. 　

죽을 생각만 하고 있던 어느 이른 봄날 오후, 기력 없이 소파에 하루 종일 누워 있었는데, 창을 통해 오후의 햇살 한 가닥이 들어왔습니다. 그 햇살이 살며시 내게로 와서 따뜻한 미소처럼 나를 비춰주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니… 그만 일어나자….' 　 　

그 순간, 정말 갑자기  '3학년이 되는 아들 녀석 첫영성체교리를 받게 해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이후,  성당 문턱도 가보지 못한 아들이었습니다.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하듯이, 그길로 그냥 성당에 가서 아들은 첫영성체 교리반에, 두 딸은 주일학교에 등록했습니다. 거의 10년 만에 가 본 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주 토요일 오후 아들이 교리수업 듣고 미사드릴 때까지 나는 성당 마당에서 기다렸습니다.  퀼트 바느질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기다리다가 아들이 나오면 데리고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수녀님이라도 내게 가까이 오시면 뒷걸음질 쳐 돌아왔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 첫영성체 날, 나도 정말 오랜 만에 미사를 드렸습니다. 아니 드린 게 아니라 맨 뒷줄에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그 어느 날 오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켜 세운 그 햇살을 기억합니다. 

그 순간은 몰랐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보면, 내 마음에 다가와 '이제 그만 일어나자' 하며 손을 내밀어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무런 쓸모없이 시들어가던 내게 따뜻하게 다시 한 번 일어날 용기를 주신 분, 그분이십니다. 　 　

그렇게 어린 아들 따라 성당을 오가던 어느 날, 어린이 미사에서 신부님이 다음 주 미사는 가족미사로 봉헌할 테니 가족들과 다 함께 오라고 하시더군요. 아들은 아빠에게 지나는 말처럼 그 말을 전해 주었지만,  나와는 말도 않고 사는 남편이 올 리는 만무했습니다.

다음 주, 나와 아들, 그리고 두 누나만 성당에 갔습니다. 가족미사가 막 시작되었을 때, 길거리에서 트럭에 과일을 싣고 파느라 시커멓게 타고 지친 남편이 작업복 입은 모습 그대로 성전에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혹시나 하고 연신 뒤돌아보던 우리 아이들은 아빠를 발견하고, "엄마, 아빠가 왔어~!!"  하며 좋아했습니다. 　

미사 후 큰딸이 신부님에게 
"신부님, 우리 아빠예요"  하고 소개해 드리자 신부님께서는 우리의 냉담 사실을 아시고, 당장 그 자리에서 고해성사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다시 돌리게 된 날, 다시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목소리를…. 　

그날 이후로 남편이 제일 먼저 변했습니다.

"다시 시작해 보자. 예전에 내가 왜 그렇게 밖에 못 살았을까? 살아갈수록, 매일 매일이 소중하고, 우리 가족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 그동안 잘못 산 거 너무 후회스럽다.
앞으로 당신과 애들에게 더 좋은 남편, 아빠가 될게." 

남편은 내 손을 다시 잡아 주었습니다. 그이는 눈보라 치는 새벽에도,  어김없이 새벽 미사를 드렸습니다.

신부님께서 대림시기,  사순시기 동안 매일 아침 신자들과 함께하는 성무일도 시간에도 빠짐없이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남편이 변하니 나도 변하고, 아이들도 달라지더군요. 남편은 다정한 남편으로, 아빠로 돌아왔습니다.나도 이제 다시 꿈을 꿉니다.  큰딸아이도 방황에서 벗어나 우리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웃음을 잃었던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다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정겨운 웃음소리가 창을 넘어 퍼져나갔습니다. 　

기적처럼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이런 날이 다시 오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줄기 햇살처럼 어느 날 문득 우리의 창 안으로 들어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그 순간에,  아무런 조건 없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입니다. 

　힘든 삶에 허덕여 주님을 원망하고 등지고 산 그 긴 세월 동안에도 우리의 등이 늘 따뜻했던 것은,  주님께서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시며 뒤따라 걸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로는 어떤 시련 속에서도 남편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힘들어 눈물을 보일 때에도 남편이 먼저 용기를 줍니다. 

그는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고 매일 밤 기도로 잠이 듭니다. 보잘것없는 제가 이렇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그이의 기도 덕분입니다. 

원망만 하며 살던 내가,  지금은 남편 덕분에 살아갑니다. 　 　

어느 날, 큰딸이 
"엄마, 우리 집은 진짜 행복한 거야. 친구들이 우리 집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르지? 엄마 아빠랑 같이 온가족 카톡방 만들어서 대화하는 거 보고 다들 부러워해. 우리 집처럼 이렇게 생일마다 가족들 모여서 축하해주고 선물 주고, 매일 서로 챙겨주고 사랑해주는 집이 없더라구"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되물었지요. "이렇게 좁아터진 집에서, 매일 빚 걱정하고 사는데? 좋은 옷도 못 입고, 용돈도 넉넉하게 못 받고 그러는데 뭐가 행복하니? 넌 참~." 　

그랬더니, 딸은 한 톤 높여 명랑하게 대답합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가난한 거야 뭐. 우리가 커서 열심히 벌면 되지~ 
난 암튼 우리 집이 너무 좋아.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서 정말 고맙고 행복해요~." 　

어느새 딸 아이 눈가에 물이 어립니다. 나도 따라서 울고 있습니다.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그럽니다. 태어나서 지금껏 좋은 옷, 좋은 것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고 산 아이들이 나보고 행복하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엄마 아빠의 극심한 불화와 가난 속에서 눈치도 많이 보고 살았을 아이들이, 상처도 많이 받았을 아이들이,  그런 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한답니다. 　

그래서 주님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 귀한 아이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들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이제 그동안 누구에게도 꺼내기 힘들었던 제 어린 시절 얘기를 맘 편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불행과 슬픔을 먼저 배웠습니다. 　 엄마 아버지 두 분 다 학교 선생님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교육자 집안의 공부 잘하는 딸이었지만, 우리 집은 늘 어둡고 슬펐습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와서 밤새 엄마와 우리를 괴롭히고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 이어서 벌어지는 부부싸움, 그리고 엄마의 눈물.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우리 4남매. 함께 사시며 우릴 보살펴주신 외할머니의 사랑 아니었으면, 우린 그때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늘 외로운 아이였던 나는 어느 날 친구 따라 생전 처음으로 어느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그곳의 정확한 명칭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소였습니다.  마을 사랑방 같은 곳에 어르신이 여러 명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처음부터 그 곳이 마냥 좋았습니다.

십자가에 처참한 모습으로 매달리신 예수님이 내게는 마치, 나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서툴게 부르던 성가가 내 마음을 흔들고, 무릎 꿇고 앉아 있던 긴 시간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 예수님이란 분이 내게 건네주신 말씀  '괜찮다…'  그 목소리를 들으려,  내게만 보여주신 것 같은 그 미소를 보러 가끔 나 혼자 시골길을 걸어서 공소를 찾아갔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아버지 친구 분이 오셔도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던 내가 무슨 용기로 그곳을 혼자 찾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부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평소 공소에서 늘 반갑게 맞아주시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우리 집을 물어물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곤 제게 작별 선물로 작은 기도서와 성가책을 선물로 주시면서. "부산으로 이사 가거든 꼭 성당을 다녀야 한다.  부산은 큰 도시니까 좋은 성당이 있을 게다. 꼭 찾아가서 세례도 받고,  미사도 드리고. 알았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하나가 제 삶을 또 한 번 바꾸어놨습니다. 　 　

부산에 이사 온 뒤로 나는 도시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 교장 선생님 말씀도 까맣게 잊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도 잊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동생과 함께 친구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골목길을 돌아서자 아담하고 예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성당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막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곳이 성당이구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작은 마당을 지나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순서도 모르고 뭐가 뭔지도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동생 손을 잡고 맨 뒷줄에 앉았다가, 사람들이 성체를 영하러 나가는 줄에 무작정 따라 나갔죠.

그랬더니 수녀님 한 분이 급히 우릴 불러내시곤 이렇게 물으셨지요. 
　"영세는 받았니?" 
　"아뇨…"　
"그럼 이리로 와서 내 옆에 앉아 있어라." 　 수녀님께서는 우리를 학생 교리반에 등록하게 하시고 많은 걸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그 교리수업이 참 좋았습니다. 교리실 창밖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했는데, 수녀님이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  창밖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바람을 타고 대나무 숲이 멋들어지게 합창을 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 바람노래 듣는 게 참 좋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중학교 3학년 성모승천대축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우리 집은 변함없이 지옥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중병으로 앓아누우시고 난 후로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할머니의 병원비와 월급을 다 술값으로 날리는 아버지 때문에 늘어나는 빚,  폭력과 고통.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어린 동생들과 늘 불행한 엄마와, 가여운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그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아버지. 괴물 같았던 아버지. 　

내가 조금이라도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면, 돌아오는 건 무자비한 매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성당 나가는 것도 막아섰지요. 공부나 할 것이지 시간 낭비한다고 미사보와 성가책은 다 압수해 버렸고, 일요일마다 내가 못 나가도록 감시했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하루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 당시 끄적거렸던 내 습작 속의 주인공 소녀는 언제나 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은 작은 시골의 작은 성당. 소녀는 그곳에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래서 소녀는 행복을 찾습니다. 　

그렇게 내게는 탈출을 꿈꾸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빚을 내어 엄마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시자 불쌍한 우리 가족을 부산에 남겨둔 채 나만 혼자 탈출구를 찾아 도망치듯 서울로 왔습니다.

엄마가 용돈을 보내주시긴 했지만, 천 원짜리 티셔츠 하나 맘대로 사 입을 여유가 없을 만큼 빠듯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생활은 내게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곳, 바보 같은 엄마가 없는 곳, 아프신 할머니가 없는 곳, 챙겨야 할 불쌍한 동생들이 없는 곳. 하지만 그 대학생활도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지옥에 엄마와 할머니와 동생들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만 탈출해 나왔다는 죄책감이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청년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그 죄책감을 달랬습니다. 　 　

나는 몰랐으나 그때도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엄마도, 동생들도, 저절로 성당으로 발길을 향했고,  할머니께서도 병석에서 대세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닌 생전에 단 한번만 이라도 성당에 가보고 싶어하셨는데,  움직이지 못해서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마음껏 하느님을 뵙고 행복해 하시리라 믿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동생들도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늙으신 아버지는 지금도 우리 가족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멍에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헤어 나올 수 없이 가라앉는 늪과도 같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아버진 절대 모를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황폐했는지를. 
자신이 가족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를…. 　

하지만 이제는 그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엄마와 나, 내 동생들의 아픔을 다 어루만져주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의 영어인데 제가 제일 좋아하게 된 단어입니다. 
어느 날 문득 다가온 세렌디피티. 　 　
(뜻밖의 행운)

시골 작은 공소에서 만난 작은 십자가 위의 예수님.

'괜찮다…' 

건네어주신 그 담담한 한마디가 먼 길을 지나고 또 지나고 흘러 흘러서,  죽음밖에 길이 없을 것 같던 막막하던 그날 오후,  뜻밖의 한 줄기 햇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소파 위에 누워 하루종일 눈물짓던 내 마음에 온기를 담아 다시 건네주신 한마디 '괜찮다….' 　늘 불행했던 아이, 슬펐던 소녀, 원망과 분노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던 아이였던 저는 이제 행복합니다. 　

53년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한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환자이고, 열다섯 평 다세대주택 월세로 살고 있는 우리 다섯 식구. 빚은 늘어만 가고 갚을 길은 없어서 앞날을 생각하면 걱정으로 날밤을 새는 날도 많습니다. 빚더미에서 해방될 날이 과연 올까 싶을 땐 숨이 막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을까 싶은 절망감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의 끈을 놓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하는 회한에 가슴을 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처럼 나 자신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지는 않습니다. 

그 긴 세월 우리를 지켜주신 주님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단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펴주신 주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주님은 제 삶의 길마다 곁에 계셨습니다. 내가 외면할 때도, 원망할 때도, 길을 잃고 헤매고 다닐 때도 함께 계셔주셨습니다. 　 　

이제는 힘들면 주님께 하소연할 줄 알고, 외로울 때면 주님께 달려갈 줄 압니다. 어떤 시련도 이겨낼 힘을 주시는 유일한 희망이 주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에 빠져 허우적댔을 때도, 죄를 짓고 어둠 속에 숨었을 때도, 주님은 저를 버리지 않고 기어코 찾아내어 한줄기 빛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그 무한한 사랑 앞에서 저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언제나 웃는 얼굴로 퇴근해 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려옵니다. 다섯 식구가 다 둘러앉기도 힘든 좁은 방에서 웃으며 맞이하는 주말 밥상은, 늘 감사의 기도로 시작됩니다. 　

새롭게 주어진 이 하루를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그러셨듯이, 내일도 오늘처럼 주님께서 저와 함께 걸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혹시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잠시 옆에 서서 기다려주시고, '괜찮다' 하시며 이 세상 끝까지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밤새 내려 세상을 하얗게 덮어줍니다. 　더러운 먼지도, 추한 인간의 마음도 잠시 덮어줍니다. 

세상의 것들이 변함없이 나를 힘들게 하여도, 아침 햇살처럼 오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또 살아갑니다. 　 　

오늘을 시작하며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가올 다음 순간에도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주님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신 그 사랑을 세상에 심어 싹을 틔우며 살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왔을까, 참 기적 같은 일이지?" 　얼마 전, 미사 드리고 오는 길에 제가 이렇게 물었더니 남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낼 수 있겠지?"　
 
다시 생각해보면 어쩌면 기적이란, 지난 시절에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내일 다가올 일도 아닐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바로 기적이겠지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적은 매 순간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모든 근심과 걱정 내려놓고, 
주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서의 삶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까지🍀

[양비오]

아멘♡
임마누엘 하느님 자매님 가정을 영원히 지켜주시고 풍요로운 가정이 되도록 축복하소서♡♡♡

[안스테파노]

주님의 은총이 그가정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아줌마]

아멘~

[토마스모친]

사랑이신 주님, 율리아나 가정을 지켜주시고 영육간 건강을 허락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