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ㅡ 교육의 목적과 수단
이수오ㅡ 창원대학교 교수
창원대학교 前총장
자식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것은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여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근자에 들어서 부모는 그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의 철학을 가질 것인가에 못지않게 자녀의 교육문제에 너무 깊이 몰입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가 올바른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면 공교육의 강화를 부르짖고
또 한편으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사교육에 매달리기도 한다.
급기야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마련하느라고 부모의 허리가 휘어지는가 하면
또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느라 야단법석들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도 정권이 바뀔때마다 이러한 교육문제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시도를 계속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적 한건주의로 대입제도를 뜯어 고치는가 하면,
마침내 3불 정책을 최상인 것으로 고집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 번에 걸쳐 변경된 대입제도만은 누더기로 전락한 실패작들이며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적 작위에 불과한 듯이 보인다.
이제 또다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교육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 크게 돋보이는 것이 영어교육을 위한 제도개선이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영어를 배우고도 벙어리 신세로 가슴을 앓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돌이켜 보면 이제야 말로 무언가 크게 달라지겠다는 후련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말의 서글픈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오죽하면 정부차원에서 까지 영어를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면서 세세하게 개입해야 할까마는
이것은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라는 것은 우리가 열린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은 마치 교통과 통신제도가 발달하면서 운전기술과 컴퓨터기술이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운전면허증과 컴퓨터 자격증 획득을 위해서 정부차원에서 나서지는 않는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노력하여 해결하고 있다.
물론 영어는 언어교육의 특수성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서 올바른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영어교육의 근본적인 해결은 스스로가 영어를 배우겠다는 강한 의욕을 갖고 영어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올바른 방향만 잡아주고 개인아나 학교, 사회의 자율적 요구가 있을 때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육 문제에 접근하면서 수단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교육 목적을 방기하기가 십상이다.
교육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이고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하는 방향으로 설정돼야 한다.
온 나라가 무슨 특검들로 범벅이 되어가고 서울 한가운데 있는 국보1호 숭례문이 일순간에 불타 사라졌다.
서해 기름유출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며 국토는 신음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며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 의한 재앙들이 되풀이 되는데도 인간교육의 근본을 소홀히 한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뿌리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 법이다.
교육의 뿌리인 인간성을 튼튼하게 하는데 새로운 정책들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