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도 고대부터 육식을 했다. 개・돼지 ・소・말・양・닭 등 집짐승을 기르거나 멧돼지・여우・곰・오소리・표범・노루・사슴 등 산짐승을 사냥해서 고기와 가죽을 얻었다. 그중 돼지와 닭이 대표적인 식용동물이었다.
돼지고기는 주로 국과 찌개, 볶음 등에 이용됐다. 삼겹살과 돼지 내장으로 만든 순댓국은 지금도 서민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닭에서는 고기나 계란을 얻었다. 닭고기 요리는 삶은 백숙이나 찜 등이 있고 여름철에는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해먹었다.
소고기는 나라에 제사를 지내거나 특별한 잔치가 있을 때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농경과 물자수송에 중요한 노동수단으로 사적인 도축을 금하고 나라의 허가를 받아 잡도록 했다. 소고기는 육회나 불고기로 즐겨먹었고 국과 산적, 설렁탕・곰탕・도가니탕 등에도 쓰였다. 개고기는 주로 수육이나 탕으로 끓여먹었다. 보신용으로 애용됐는데 북쪽지방에서는 단고기, 남쪽지방에서는 개장국으로 불렸다.
박종석 화가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라는 입지조건 때문에 고대부터 생선 등 해산물을 쉽게 접했다. 생선은 회보다는 매운탕을 끓여먹었다. 조기는 단백질이 풍부해 죽을 쑤거나 구워 먹었다. 또 소금에 절인 뒤 말려서 먹기도 했는데 이를 굴비라 했다. 굴비는 전남 영광굴비를 으뜸으로 쳤다. 3월 중순 산란을 위해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가는 참조기를 잡아 1년 넘게 보관한 천일염으로 섶 간을 해서 독특한 방법으로 건조하기 때문이다.
굴비(屈非)에는 ‘비겁하게 굴하지 않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생선에 그 같은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은 고려시대 이자겸이란 인물과 관련이 있다.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은 ‘십팔 자 위왕(十八子 爲王)’이라는 도참설에 빠져 난을 일으키려다 실패한 뒤 지금의 전남 영광군 법성포에로 귀양을 왔다. 이자겸은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곳 명물인 소금에 절인 조기 맛에 반한 나머지 임금에게 진상을 하게 된다. 이때 이자겸은 자신의 행위가 구명을 위한 아부가 아니라 백성의 도리임을 강변하기 위해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박종석 화가
홍어는 바닷고기 중 유일하게 삭혀먹는 생선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홍어를 삭혀 먹지는 않았다. 지금도 흑산도에서는 날 것 홍어를 먹는다. 홍어를 삭혀먹게 된 유래는 멀리 고려시대까지 올라간다. 고려말기에 서남해안의 섬을 비우고 주민을 육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이 실시된다. 왜구의 노략질 때문이라는 설과 진도의 삼별초군을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당시 흑산도 옆 영산도 주민들은 배에 살림살이와 생선을 싣고 육지로 나왔다. 이주지인 나주 영산포에 도착했을 때 다른 생선들은 모두 상해 버렸는데 유독 홍어만은 썩어도 맛이 좋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영산포식 삭힌 홍어가 입소문을 타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 오늘날 홍어는 탁주(막걸리)와 궁합이 맞다고 해서 ‘홍탁’으로 불린다. 또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만나 ‘홍어삼합’으로 불리며 코를 쏘는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첫댓글 {홍어} 삭힘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홍어효능에는 지방함량이 적고 알칼리성
식품으로 면역력을 강화 시켜주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피부미용에도 아주좋데여친들 많이들 먹어야 겠다~
광주 두암동 에덴병원에 뒤쪽에 가면 상호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자연식당'으로 통하는, 홍어삼합을 기막히게 잘하는 집이 있다.
<꿀팁>대부분 홍어 애호가들조차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만을 흑산홍어라고 믿고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흑산홍어 개체 수가 너무 적다보니 일부 어민에게만 흑산홍어를 잡을 수 있는 허가증을 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잡은 홍어만 흑산홍어로 인정된다. 혹 흑산도에서 잡지 않았을지라도. 일반 어민들이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아도 그것은 흑산홍어가 아니다. 단지 흑산도 인근에서 잡은 국내산 홍어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