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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성과 생명질과 생명체 고찰, 버러지, 쓰레기 처럼 살지 않기
생명이란?
인간의 생명사상은 주로 자신이 인식하는 범주에 머무른다.
인간의 기준에서 생명체라고 하는 물질체가 운행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체(과학으로
탐지가 불가능한), 물질형상체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체들의
운행을 생명체의 전부라고 하는 괴이한 논리들은 거의 모든 인간
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로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죽어야
한다는 당위의 논법을 수용하는 것이 죄악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비물질체(인간 기준 비생명체)로 가득한 우주에서 물질들의 생명
운동은 사실 억조경해자양구간정재극 달하는 행성, 혹성, 유성에
있는 물질적 생명(물질체)들에서 수집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생명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생명이란 물질과 비물질적이 상호교환작용으로 이루어진 물질체로
인식을 하더라도, 그 비중은 영겁의 무한을 채운 전부와 먼지 크기에
불과한 물질생명체들의 집합에서, 먼지 크기에 해당하는 실험적
형상체를 가리킨다.
인간들이 일컫는 森羅萬象에서 기형체가 목숨을 물질체에 가두고
고문(시험)하는 이유는 창조가 아니고, 기형체(무형)들도 자신을
정화시켜야 하는 순간이 있는 까닭이다. 선한 경험들의 축적을 통하여
사후까지 도달하는 극소수의 무한궤도에 진입하는 의식기체들은
사후여정에서 영겁의 시간들의 무한의 영역을 갖게 된다. 사후, 내세
에서의 영역은 소유가 아니며, 단순한 활용이다. 왜냐하면 여러 형태의
물질체처럼, 고통스러운 형상에 지배되지도 않고, 갇히지도 않는
까닭이다. 인간들의 물욕이나 성욕,명예욕, 소유욕 따위들은 용서받지
못할 구렁텅이로 저절로 빠지게 되는 까닭에 신을 조작해서 만들어 놓고
이를 구원자로 설정하여, 스스로 믿도록 세뇌시키고, 물귀신처럼 다른
선량한 사람들까지 끌여 들여서 괴뢰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다.
영원히 지속되는 내세도 아닌 혼돈에 홀로 던져지는 것이 두렵기에
본능적으로 그런 짓을 하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과 인연을 맺는
처자식과 동료, 친구들도 한데 뭉쳐져서 영원토록 서로를 경멸하면서
실체도 없는 고통속에 갇히므로, 그건 온전히 운행되는 생명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에 함정이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난 체질들을 하고, 결국 썩어 문들러질
물질생명을 가지고 자신도 건수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들을
속여서 인기놀음까지 한다.
인간들의 99.9는 그들이 상상 생성한 지옥보다도 수십 억배
더 고통스러운 공간(소멸,파멸,고통지옥)에 던져 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0.01%가 사후세계로 온전하게 남겨져서,
영생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숫자로 표기할 수 없기에
그렇게 표현할 뿐, 실제로는 같은 시간대(100만년 단위)에 존재하는
물질생명체들 중에서 제대로 사후계를 진입하는 것은 숫자로 쉽게
헤아릴 수 있을만큼 극소수에 달한다.
인간들이 상상하고, 과학으로 입증하는 방식으로는 생명체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꽤나 많이 아는 듯이
주접을 떠는 곳을 우리는 어디서나 쉽게 관찰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들, 소유하는 것들은 처음부터 본질이아니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과학으로는 영원히 접근이
불가능한 공간에 존재한다.
대부분 물질적 생명체(이후 생명체)들은 기형체로 나아가는
것이 애초에 어렵다. 적어도 5세 이전에 선택이 되어야 하며,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세속에 물들면 엉뚱한 것들을 소유
하기 위하여, 인생을 탕진하게 되는 까닭이다.
생명성이란?
내가 사용하는 언어나 문자로, 내세(인간들의 상상)를
형용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형상들과 함께 생명을 운행하면서 이것이 아니면
소통이 불가하여, 가져다 쓰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달관의 초입(1백만 년에 몇 개의 생명체가 도달할 수
있는 지 모른다. 그런 경지로의 진입 가능성이 자체가 희박하다.)
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식 영역에 공점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니, 미루어 유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들의 문자나 언어로 생명질, 생명성, 생명체에
관하여 대화를 하자고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가
되지 않는 영역인 까닭이다.
생명성은 무형체로, 기의 바다(무한영역)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체에 주입되는 과정을 거쳐서 물질생명으로 구현된다.
그러니까, 내세로 들어갈 때, 생명성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특히 각성한 원기와 정기를 유지할 수 있다면 내세로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생명성은 지식이 아니다. 각성도 아니며,
타고나는 재질로, 원기 3가닥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성은
어린 자식단계에서 다치게 되고, 소실되기 마련이다. 어리석은 부모의
욕심과 사랑도 아닌 가축으로 길러지거나 사회욕의 길들여 지는
까닭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 가면서 아무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고, 가족을
이루고 살다가 그냥 죽어서 흩어지고, 내세에 인식조차 없는 불행을
그나마 영리하다는 오만한 인간들이 한결같이 자처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겸손(겸허)을 떨면서 생을 진술하면서 살아
오고 있으나, 보통이하(세상에서 잘나간다고 자부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보통이하이다.)의 것들에 비교되는 것은 아니며,원기의
바다(무한영역, 내세, 영원계, 비시간, 비공간, 비물질, 반물질)에
내존하는 선택된 영역을 우러러 표현하는 것이다.
생명성이 지구상에 세가닥의 정기의 형태로 주어지는데, 이것이
특정한 생명질(생명체로 형상화 되기 직전의 형태)에 주입되어서
물질체(생명체)로 형태를 꾸밀 적에 기본이 된다. 그러니까,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구분 자체가 안된다.
自我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주어진 미숙한 원기의 원형을
담금질하는 도구로 본다. 단순 지식적 결정을 하는 뇌에 지시를
받는 물질체가 아니라, 원기, 정기로 운행되는 것이 물질적
생명체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도 사실 일반의
존재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언어적 수사일 뿐, 실체를 설명하기에
전부 미흡하다.
죽으면 되돌려야할 것들이 너무 큰데, 그것을 무지로써 다
망가뜨리고는 사후에 제한이 없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속에
떨어지는 소멸체나 미혼체(미완성의식기체의 일부)가 되는
것은 큰 죄악이다.혈연이나 인연은 그 자신이 온전하게
내세에서 살아 남지 못하면,모두 죄악이다. 의식, 원기적
혼, 정기적 혼을 온전하게 담금질하여, 완전하게 틀을
갖춰야 하는데, 몸을 수선하고, 정신을 수련하는 모든
수양의 과정들이 진전되는 온전 생명이다.
지식은 멀리하면 할수록 좋을 수 있다. 남의 사상, 사고에
짓눌려서 자신을 망치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그렇다고
지식주입을 그만두라는 권고가 아니다. 단지 올바른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면 된다.가짜들이 판치는 가짜 정신 짜집기에
사로 잡히지 말고, 가짜 신앙들에 매몰되지 말라는 것이다
사후로 가는 온전한 방식은 뒤에 서술하겠지만, 가능하면
이상한 독서를 하지 말 것이고, 이상한 논리들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80억 명이 믿는다고 동조하지 말 것이다. 80억
명이 모두 세뇌된집단일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엇이나 아는 것처럼 주절대는 것들이 갈수록
증가하더니, 이제는 포화상태다. 가짜일수록 인기를 끌고,
가짜일수록 사회에서 영전할 가능성이 많다. 진리, 섭리,
순리는 인간 사회에서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생명성(생명적 형태)의 운행과 역할
일반의 사람들과는 달리 비과학적 세계로의 길이 열리게
되면 처음 고통스러운 것이 사회적 함의, 윤리, 도덕, 질서
등과는 전혀 무관하며, 나의 물질적 형태(생명체)에 담아 주기
에는 무도하여, 불쾌감만 증폭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통은
남들과 나눌수록 커지다보니, 초기에는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갖지만, 세월이 흘러, 소위 10대 후반부터 정의되는 성인이라는
개체로 분류가 될 때쯤에는 자발적으로 구하지 않게 되어, 일반의
저급한 운명에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내가 가진 태생적인 운행
능력은 현생을 꾸리면서, 선택은 너희가 하고, 나는 동행을 한다로
로 귀결점, 여러 갈래의 갈등과 책임에서 공생, 공점으로의 합의점을
내놓게 된다.
연인원 수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들과 직접 만나서 동행하고,
나눔을 갖는 많은 행사들을 꾸려오면서, 다음에 만나야 한다는
기약을 또렷하게 내놓은 적이 없다. 형식적으로 다음에 만나자는
인사는 하겠고, 또한 다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공개적으로 저는 그 누구에게도 어떤 행사, 여정에
동참하라고 권고하지 않았다. 다만 동행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결정
해야함을 누누히 강조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고도 특별한 동류항
들을 만나서 물질생명체, 정신생명체로써 교감하고, 공점하고,
그리고 일체를 향해 함께 정신해 오고 있다. 누군가가 동행을
한다면 처음은 고행이되, 시간이 흘러 정점을 넘어 내세에 시작점에
들게 될 것이다.누군가들은 일말의 희망이라도 건지기 위해서,
평생을 구도하건만 얻어지지 않음에, 단순히 걸치는 것만으로
절로 구도(수행)을 하게 되니, 그만큼 싸게 넘을 수 없는 업겁의
벽타기가 어디 있을건가?
생명성을 온전하게 유지하면서 내가 했던 역할은 훗날, 길을
밝히는 횃불잡이였다. 이는 지금 어느 정도 동행해야할 사람들이
확정되는 시점에서 그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30명이 빛이 전혀
없고, 천길, 만길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좁다란 절벽길을 걸으면서
생명로를 운행한다면 내가 횃불잡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몇 명이
더 횃불잡이로써 역할에 동참해야 한다. 희망자가 봉사로서가 아니라,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역할들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성은 내세로 다시 가져 가야하므로, 영겁이 한걸음밖에 안되는
다른 공간, 시간 영역에서의 한걸음이 구만리길보다 길터이다.
이제는 감히 일상처럼 변화무쌍한, 횃불잡이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형상으로는 홀로 서기가 어렵고, 여러 명의 동류항을
안내할 때, 그 역할은 결코 적지 않으며, 아무나 하지 못한다.
횃불을 잡을 손을 가진 이가 사후에는 거의 없다. 태양을 수십 만개
보아도 밝힐 수 없는 모든 빛을 삼키는 사후경로에서, 누가 횃불을
잡아, 그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할 수 있을까?
그러니 횃불을 따라가야 하고, 그렇게 따라 가려면, 살아 있을 적에
동행하고, 고행(수련, 수선, 수행을 의미)을 분점하여 나눈 사람이
아니라면, 동참할 자격도 없고, 동참할 능력도 없어서 손을
잡아서 인도할 수도 없을 것이다. 횃불잡이를 그저 '안내자'라고 표현
해온 이유는 오류(살면서 짓는 죄, 거짓 지식들)가 과하면, 실수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는 태어나서도 스스로 선택하고, 사후관리도 스스로
해야 해서다. 세상에 나온 지식들은 대부분 진리의 관점에서 거짓이다.
그것이 신앙의 탈을 쓰든, 권력이나 명예, 인기에 영합했든, 윤리나 도덕,
논리에 편승했든 내세의 관점에서는 쓰레기, 구더기에 불과하다.
구더기들이 아무리 떼를 이루더라도, 그가 좋아하는 곳이 다른 구더기들이
사는 곳이며, 그들이 먹는 것은 그저 썩어가는 시체나 똥일 뿐이다.
내 몸에서 구더기를 없애려면 세상에서 저급한 것들이 만든 기준을
버려야 한다. 네가 구더기이고, 쓰레기면서 너와 너와 같은 것들에
속아서 그렇게 되었을진대, 감히 남을 탓하랴?
생명성은 신성하다. 종교권력이 이를 가져다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하여,
종교권력에 세뇌되어서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망치는 것은 반드시 징벌되기
마련이다. 구더기, 쓰레기들의 富貴榮華 놀음에 미혹하여 사는 것들은 애당초
실기했으며, 행여 그런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왔다고 하더라도, 생명성을
보호할 능력이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멸(滅亡苦痛地獄으로의
영원히 갇히는 것으로, 내세로 다시 가져 갈 수가 없다. 현재를 사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세를 두려워 해야하는 까닭이다.
내세(사후계)란?
내세는 기형체가 생전의 가질 수 있었던 모든 인간들을 포함한
물질체들의 행복을 무한배수로 행할 수 있는 일종의 진리의 영역이다.
그 크기도 무한하고, 자신이 살아 있을 적에 가졌던 자연과의 교감속에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얼마든지 형상화 할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몸을 기형체로써 다듬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으로 재탄생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물질체의 기형체로는
매우 간단하기 때문이다. 기형체는 곧 의식기체의 다른 표현이다.
의식기체는 내세로 들어갈 때, 매우 유용한 자산이다. 적어도 내세로
진입할 수 있는 운문(원기공간)을 열 수 있는 해법(key)은 그 자신이
된다.
수행(수련, 수선, 수양, 단련, 체험, 모험)들이 가지는 含意
수련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해온 목숨을 건 여정,여러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갔었던 탐험,모험, 체련, 극기훈련의 과정만을
되풀이 하는 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초적인 수련도 되지 못한
사람이라면 건물속이나 도시속에서 수련은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수시로 도시(시골도 도시로 사람이 모여사는 것은 동일)를
떠나서 심신을 수련해야 하는 것은 당위다.
인간들에게는 타고나는 무수히 많은 기로, 기문, 기낭(기공)이
주어진다. 이것은 단순히 현세의 운이나 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세로 들어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많은 운기(원기, 정기들)의
결정은 수련을 통해서 태동되는데, 타고난 원기를 유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쉽지는 않을 것이므로, 정기운행을 잘해야 한다.
알콜이나 커피를 포함한 여러 가지 차, 흡연, 매연, 각종 향신료,기름,
조미로로 조리된 음식, 스트레스, 자기망각, 상식, 관습, 법습 등등
기성의 세습, 활용, 섭취는 금기로 해야한다. 불가피하다면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
지구의 공간에는 그 종류를 크게 나눌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다.
지구 전체는 精氣를 심는 공간이다. 우리은하도 기실은 무한공간에서는
먼지 하나의 크기도 안된다.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먼지 크기의 우리 은하를
걸어서 나가 본 적도 없고, 나갈 수도 없다. 1000억 년을 뛰어 간다고 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몇 개의 별(우리은하에수천 억개의 별-태양과 같은)
이 있다고 할 때,단순히 몇 개의 별조차 지나는 데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이다. 고작 찰나를 수억 개로 쪼갠 적은 시간(운명,숙명, 생명체의 시간)마저도
허비하는 고약한 인간들은 어디에서나 그럴 듯한 명분으로 스스로 속이고
합리화하는 삶이 관측된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몇 개의 별조차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설령 인간이
멸종되기 전에 우리은하를 벗어난다고 해도,그것이 내세로 가는 아무런
기능도 갖지 못하므로, 거짓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쓸 데 없는 지식은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쓸 데 없는 지식으로 욕정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찰라보다도 너무도 짧은 인간계, 150년 조차도 무모하게 낭비한다.
알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잡지식, 각종 상식들에 아무도 수긍하지 않는
인간 쓰레기, 인간구더기의 여정을 간다. 그렇게 겉만 꾸민 인간들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다.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분신을 만드는 이유는 결코, 대를 이어서
멸종(나락으로 떨어짐)으로 가려는데 있지 않다.※ 이유를 의당 알고 있으나,
공개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내가 스스로를 버린 자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가
없어서다. 수선, 수련을 하려면 주변이 온전해야 한다. 지금은 인구가 극포화
되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그저 함께 구더기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지구상에서 인간들의 숫자를 현재의1/1000 로 자연감소 시켜야
한다고 외쳐본들 얼핏이나마 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잡지식을 떠 안기 위해서 10년. 20년을 허비하고서 얻는 것은 고리타분한
과학문명, 각종 문화예술,, 권력집착에 편승된 진리 물타기다.
1/1000의 숫자 줄이기가 적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더 줄여야
하지만,적어도 그렇게 해야만 멸망의 시간이 조금 늘어날 것이고
수련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져서, 과거와 후세를 잇는 생명물질체
들에게도 기회는 커질 수 있다는 기대이리라.
지구을 중심으로 한 공간에 식물이나 동물을 배치하거나 어떤 건물이나
문명을 을 심거나 가공하지 말고, 모든 것들의 근원이 되는 세가닥의 원기나
무수히 많은 정기들을 형상화 시켜서 심는다면 심을 곳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전체가 들판이다.
바다들, 강들, 계곡들, 시냇가들판, 산속들판, 평야들판,하늘들판, 밤들판,
낮들판, 도시들판..... , 허공들판....... , 선한 정기가 감돌지 않은 곳은
들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풀이나 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곳을 들판이라고 하고, 거기에
비집고, 인간들의 쉽터를 만들었다. 인간만큼, 몸집이 큰 동물들도 많이
않지만, 자기 것도 아닌 하늘의 것을 욕심을 부려서 독차지 하려는 것들은
많지 않다. 영역다툼을 하는 동물군이나 식물군들도 있기는 한데, 이는
기본적인 생존욕구(먹이구하기) 때문이다.
생명성만으로 꽃밭을 꾸린다면, 비중이 크다는 바다와 공중에도 당연히
아름다운 꽃밭으로 꾸미는 것이 가능하다.
나에게 있어서, 지구의 모든 공간은 그저 들판이다. 누구나 공유하되,
소유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
수련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으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건물속에 있는 물이나 오염된 물에 들어가지 말고, 살아 있는 물로
뛰어드는 것이다. 인간들은 실내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면서도
무서운 줄 모른다. 실제로는 물고기도 살 수 없는 물속에서의 물놀이는
천벌받을 행위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죄업이나 천벌을 받을 행위인지
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무지하기 때문이다. 각성이 안된 까닭이다.
바로 위에 전급한 내용은 단순히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살아 있는
선한 정기가 없는 곳에의 기거(머물거나 쉬는 것)는 삼가해야 한다.
높은 건물에 거주하는 것도 큰죄악이다.그런 곳들도 인간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악한 기운(악한 기운에 노정되기마련이다.)
精氣는 그 종류(형태, 행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인간에게
맞지 않는 악하거나 부적합한 정기가 더 많다.)그 많다. 많은 정기
중에서 인간에게 맞는 정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정기들의 1/10000000
안될 것이다. 인간에게 악하다고 해서, 그 정기가 다른 것들에게도
나쁘거나 악하지 않는 것이 태반이나 인간들을 해치거나 낙후시키는
것은 여기서 일괄적으로 악하다고 표현하였다.
인간들이 가장 쉽게 축기할 수 있거나 기로(모든 물질체에는
최소한 일만 개의 기로가 있다. 십여 개의 기문이 있고, 수천 개의
기낭이 있다. 정기는 몸속에 오래 머무는 것은 매우 적으며, 대부분
잠시 머물거나 잠시 흐른다. 수기와 암기, 목기들도 많은데, 이러한
정기들의 행로와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무수히 많은 水氣(물의 정기 중에서 표면 기준해서,
3m(2.5m)이내 정도가 인간과 맞는 수십 종의 선질의 물기운)중에서
인간과 화합할 수 있는 정기를 자주 축기해주는 것이 좋다. 축기와
세기, 기로복원, 기문복원, 기낭재건 등을 해야할 때, 그나마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수기충전이다. 가능하면 정기축적을 자주 해온 사람과
동행하면, 저절로 물문(물기문, 물기로,물기낭 포함)을 여는데 유리하다.
선하고 좋은 기운이 늘 흐르는 몸을 유지하는 사람은 날씨,
특히 비구름과 운행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람에게
동조하는 구름들을 지혜(지각)의 구름이라고도 한다. 수천 만명,
십수억 명이 사는 어떤 나라의 우환이 단 한사람에 의하여 제지(제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그런 경우는 그 한 사람이 무슨 능력자가 아니라,
우기, 수기가 동조하기 때문이다. 의식이나 바람(희망,소망)에
답하는 능력은 이러한 무생명체로 보이는 생명성들의 결정체(구름포함)
가 일반의 과학,문화,예술,문명,지식, 도덕,윤리,법률과 같은
죽어 버린 것에 비하여 수십 만 배 앞선다. 이것을 우리는 기의 감성
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장수하고 싶다면, 육신의 기문을 열고, 폐색된 기로를
복원시키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에 기로를 새로 만들어야한다.
어떤 이는 한두 개의 정기로 연명하는데, 죽어서 갈 곳은 이미
지옥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성정이나 형태가 어떻든 그런 자
들은 멀리 해야 한다. 인간의 장수는 패착이지만, 뒤늦게 각성되어
수명을 늘리고, 수련이 가능한 온화한 체련의 지경에 들고 싶다면
없어진 길을 다시 내고, 그 길을 통하여, 정기들을 넘어 몇 가닥의
원기까지도 다시 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늘은 인간계의 범죄를 심판하지 않으나, 악질적인 성향이나
잘못된 성정을 방치한 자들이 소멸로 들어갈 가능성은 농후하다.
정신체를 온전하게 재구성하고, 이를 축으로, 다시 확립하려고
한다면 그나마 기회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속한 은하 뿐만이 아닌, 모든 곳에는
오로지 氣만이實體이다. 物質은 虛像이다. 세포 하나를 떼어내도
기로와 기문의 숫자는 그 적지 않다. 복합적인 물질체로 몸의
크기가 크서 세포 단위가 많더라도, 기문,기로의 總合은 大同小異
하다. 그럼에도 어차피 단세포 생명체보다 더 적은 기로를 가진
인간들이 대다수이다. 이러한 單細胞 生命體보다 대부분의 인간
들은 제대로 살고 있는 경우가 매우 적다.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을 업수이 여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지만,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
순식간에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이다. 지금 태어났지만, 도대체
언제 늙었는지 모르게 임종에 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수는
큰 가치가 없으며, 인간에게 노정된 최대 생명체기간인 40년만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 오래 사는 것이 복이 되는 건 아니다.
한반도에는 30만명만 살아야 적정하지만, 최대 3000만명까지도
수용은 가능하다. 지구가 인간체에게 살 곳을 할양한다면 한반도는
300만명이 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는 약 8천 만명
가까운 인구가 있다. 지구 전체 인구의 1/100이 한반도라는 조그마한
지역에 살고 있으니, 충분히 두려워 해야할 일이다. 어떤 위정자나
학자가 인구가 줄어들면 안된다고 거짓부렁을 하고, 생쇼를 하는데,
그런 것에 넘어 가지 말기를 바란다.
산에 간다고 좋은 기운을 얻는 것은 아니다.산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좋지 않은 기운을 품고,
자신을 파괴당하고 집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높은
산에 가지 말고, 위험한 절벽을 타지 말 것이다. 운기적으로
자신을 허용하는 곳까지 가야하며,여유가 있다면 가급적 3층
이하의 건물, 특히 건물이 중첩되는 않는(아파트가 아닌)곳을
보금자리로 삼을 것을 권한다. 아파트처럼 3층 이상의 높이로
지어진 곳에 거주하는 것은 마치 시체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것으로 사후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혼백(생혼,精氣體)이 망가져서 사후에 큰 시련,
나락에 빠져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유,유독 근래 좁은 지역
에 사는 사람들이 소위 지옥이라는 소멸의 공간에 갇히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갈 곳이 없어서 고층 구간에 거주를 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련을 수십 배 더해야할 것이다.
수련은 먼저 몸을 단련해야 한다. 무슨 도구를 들고 하면서
자신의 근육을 혹독하게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무거운
것을 들지 않고, 가벼운 도구 등을 이용해서 놀이 삼아 하는
것이 수련의 전제조건인 몸을 단련(체련)하는 현명한 방법이 된다.
수련과 훈련의 차이는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수련은 몸과
정신을 돌보면서 해야 하는 것이며, 훈련은 몸을 강하게 만들어
몸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문을 파괴하고,
기로를 막거나 소실시켜서 정기를 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훈련을 하더라도, 수련에 준해서 해야한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 몸을 혹시시킨다고 하더라도,적어도 자신을
구할 방책부터 강구해야할 것이다.
편협주의,안일주의,폐색된 사고의 자들이 자주 묻는
말, 자주 갖는 의문이 있었다.
"왜 무섭고 힘든 삶을 하는지?"
껍데기로만 사는 너희들에게 무섭고 힘들게 보여도 수련자들
에게는 그들 앞에 노정된 길이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으며,
지칠 수도 있어도 억지로는 하지 않아도 좋은 선택이 된다.
-普通을 自處하는 普通 以下의 失望스러운 者에게
해야하는 말-
나는 동행하자고 제안하지 않으며, 형식적으로 인사치레로
동행을 권하더라도, 동행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생은
무한의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으니, 남은 시간을 내 자신과
내 동류항들을 위해서 써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동행에 편승하더라도 크게
도울 수는 없지만, 놀이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운 여정, 수련의
길에 궤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기운행을 일부러 방해하지
않는다면 운맥은 열려 있다.

첫댓글 아침에 일어나서 읽는데 정말 와 닿는 글이네요,
스스로 소홀히 하는 부분이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