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반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시렵니까?
[작품해설]
이 시는 평화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흔히 전원시인 또는 목가시인으로 불리는 신석정의 초기 시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현실 저 건너에 존재한다고 믿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그와 대조되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부정(否定)을 어머니에게 속삭이는 듯한 경어체로 나직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전 10연의 형식이지만,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한 단위로 하여 내용상 1~4연, 5~7연, 8~10연의 세 단락으로 나뉘어 진다. 각 단락의 가운데 연[2·3·6·9연]에서는 이상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 연[4·7·10연]에서는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누릴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현실의 갈등을 벗어난 근원적 평화를 상징하며, 먼 나라인 이상향을 알고 계신 능력있는 분이자, 화자를 그 먼 나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어떤 절대적 대상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씌여진 시재적 상황과 결부시켜 보면, ‘나’는 현실이고, ‘어머니’는 ‘구원’의 이미지로 ‘빼앗긴 조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 화자가 그리워하는 ‘그 먼 나라’는 ‘산’과 ‘호수’와 ‘들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흰물새’, ‘들장미’, ‘노루새끼’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유를 표상하는 ‘비둘기’를 키우고자 한다.
둘째 단락에서는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그 먼 나라’에서 어머니와 같이 순결과 순종을 의미하는 ‘어린양’을 데려 오고자 한다.
셋째 단락에서 노래되는 ‘그 먼 나라’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촐촐히 비가 내리며’ ‘꿩 소리도 한가롭게 들리’는 곳으로 ‘산국화’와 ‘은행잎’이 곱게 피어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화자는 ‘새빨간 능금’을 수확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가을의 풍요로움, 즉 진정한 자유에의 해방을 상징하는 것이다.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상황속에서 시인은 이렇듯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순수하고 풍요로움 삶을 꿈꾸며 하루 속히 조국이 해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소개]
신석정[ 辛夕汀 ]
<요약> 반속적(反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명 : 신석정(辛錫正)
출생 – 사망 : 1907. 7. 7. ~ 1974. 7. 6.
출생지 : 국내 전라북도 부안
호 : 석정(夕汀), 석지영(石志永), 호성(胡星), 소적(蘇笛), 서촌(曙村)
데뷔 : 1931.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등단
1907년 7월 7일 전북 부안 태생. 보통학교 졸업 후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불전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한국문학상, 문화포상, 한국예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74년 7월 6일 사망하였다. 1931년 김영랑‧박용철‧정지용‧이하윤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39년 첫번째 시집인 『촛불』에서는 하늘, 어머니, 먼 나라로 표상되는 동경의 나라를 향한 희구를 어린이의 천진스러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시집을 통해 그는 전원시인, 목가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집에는 대표작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47년 두번째 시집인 『슬픈 목가』에서는 어머니라는 상징어에 기댄 유아적, 퇴영적 자아의 모습은 줄어들고 성숙한 현실의 눈으로 돌아온다. 이상향에 대한 천진난만한 시인의 희구는 상실감으로 바뀌고, 내적 체험의 결여로 인한 공허감이 나타난다. 그후 『빙하』(1956), 『산의 서곡』(1967)에 이르면서 삶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역사 의식이 예각화되면서 주제 의식이 문학적 심미성에 선행하게 된다.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1970)에서 다시 초기 서정시의 세계로 복귀하고 있다. 신석정은 노장의 철학과 도연명의 「귀거래사」, 「도화원기」의 영향을 받았고, 미국의 삼림시인인 소로우(H. D. Thoreau)를 좋아했으며, 한용운에게서 문학 수업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반속적(反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기림은 그를 “현대문명의 잡답(雜踏)을 멀리 피한 곳에 한 개의 유토피아를 흠모하는 목가적 시인”이라 평가하였다. 신석정의 시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체험의 가능성이 폐쇄된 시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문학적 단면을 보여준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로써 초월적이고 본원적인 실재에 대한 강한 희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희구는 전원적, 자연친화적 이상향에 대한 시적 열망으로 그려진다.
-학력사항 : 보통학교
중앙불교전문강원
-경력사항 :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
-수상내역 : 한국문학상, 문화포상, 한국예술문학상
-작품목록 : 촛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슬픈 목가, 촛불[개정판] ,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난초잎에 어룸이 내리면, 꽃덤불
[네이버 지식백과] 신석정 [辛夕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