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조선의 천문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 조지프 니덤(과학사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세종은 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천문과학을 발달시켰을까?
조선은 어떻게 세계 최고 과학 국가가 되었을까?
중국의 종속에서 벗어나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연 세종과 천문학자들 이야기
세종의 두 가지 주요 업적: 훈민정음 창제와 간의대 건설
세종이 이룬 업적 중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훈민정음 창제와 간의대 사업이다. 간의대는 세종 대에 이룩된 과학기술의 핵심이자 당대 세계 최고의 천문대였다. 세종의 간의대 사업은 훈민정음 창제에 버금가는 역사적 위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간의대를 비롯해 세종 대 과학기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전통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에게 많은 이들이 묻는다. “세종은 왜 천문과학을 발전시켰나요?” “간의대 건설이 위대한 업적이라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세종이 그토록 아끼던 과학자 장영실은 왜 갑자기 사라졌나요?”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무수하게 들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한 것이다.
오랫동안 전통과학을 전공한 저자는 세종 대 과학 부흥의 태동부터 전개 과정, 성과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덕분에 독자는 천문에 대한 세종의 생각과 과학자들의 숨은 노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과학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서술한 점도 이 책의 큰 미덕이다.
하늘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면 왕이 아니다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 군주들은 하늘의 현상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늘이 인간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읽었다. 특히 제왕의 정치 행위에 대해 하늘이 상과 벌을 내린다고 이해했다. 하늘은 두려운 존재였다.
조선의 왕은 일식과 월식을 특히 두려워했다. 태양은 왕을 상징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혜성이 나타나거나 낮에 금성이 보이는 현상도 불길한 징조라고 받아들였다. 조선 2대 왕 태종은 정치에 걸림돌이 된다면 형제도 친인척도 살해할 정도로 냉정하고 과감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하늘의 현상에 민감했다. 일식이나 기상 이변이 나타나면 두려워하며 근신했다. 이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 세종도 하늘을 주의 깊게 살피고 공경했다. 하늘의 현상이 예사롭지 않으면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죄수를 파면하고 풍악 소리를 멈추게 했다. 연산군도 낮에 금성이 나타나자 벌벌 떨었다고 한다.
왕은 하늘의 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천문 현상을 단서로 삼아 올바른 정치를 펼치는 것이 왕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왕들은 하늘의 지도인 천문도를 필요로 했다.
조선의 하늘과 명의 하늘은 다르다
조선의 하늘을 원한 세종의 천문 프로젝트
이토록 하늘의 현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독자적인 하늘과 시간을 갖고 있지 못했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하늘의 일은 천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천자만이 대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과 명은 제후국과 천자국 관계였기에 제후국인 조선은 하늘을 관측해서 달력을 만들 수 없었다. 조선이 자주적인 역법을 갖는다는 것은 사대의 예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조선은 명나라의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명 황제가 내려주는 달력이 조선에 도착해야만 그에 맞춰 날짜와 절기, 일출?일몰 시간을 백성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문제는 명나라 수도인 연경과 한양이 서로 위도가 달라 절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여러 불편한 일이 많이 생겼다. 특히나 농사를 짓는 데는 기후와 때를 잘 알아서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종은 중국과 조선의 하늘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는 중국 제도에서 벗어나 조선에 맞는 독자적인 천문관측을 수행하고 싶었다. 하늘의 운행을 정확하게 읽어 백성들에게 정확한 때를 알려주고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세종은 천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중용했다.
신하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돈과 시간이 많은 드는 사업이었다. 심한 흉년으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팍팍한 현실에서 당장에 백성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도 않는 일에 백성들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며 모두 만류했다. 하지만 천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고 오래 준비한 사업을 하나씩 실현해 나갔다.
제일 먼저 하늘을 정밀하게 관측하는 천문대인 간의대를 만들었다. 세종 대에 지어진 간의대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나 중국의 고관상대보다 건립 연대가 앞선 천문대였다. 규모 면에서도 뒤지지 않았다.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뒤이어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 가마솥 모양의 해시계 앙부일구, 태양과 별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측정하는 일성정시의, 천상의 물시계 옥루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세종의 천문 프로젝트는 7년 만에 종료되었다. 세종이 천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지 18년 만에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성과였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사가 조지프 니덤은 “15세기 조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첨단의 관측의기를 장비한 천문기상대를 소유했다. 천문학이 큰 도약을 이루었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 이 책 2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첫댓글 [간의대는 세종대에 창설된 이후 여러번 개수(改修)되면서 조선의 왕립 중앙천문대로서 동양 최대 규모와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추었고 그것은 외국 사신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국 천문학사상 가장 훌륭한 시설을 자랑하던 대간의대는 임진왜란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된 채 다시는 복구되지 못하고 말았다] 위키백과의 간의대 개요 일부- 빨리 구입해서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