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금요일
예레 3,14-17 마태오 13,18-23
2024. 7. 26. 요아킴과 안나.
주제 : 세상의 삶에 내 협조는 얼마나 필요할까?
오늘은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의 부모님인 요아킴과 안나의 축일로 기억하는 날입니다. 전승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표현은 있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성모님을 세상에 낳으신 부모님의 축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일은 나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잘 드러낼 방법이 있는지, 찾으면 좋겠습니다,
성인과 성녀의 구체적인 삶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축일이라는 규정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겠습니까? 그들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축복을 내가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 이외에 어떤 표현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들은 예레미아 예언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간절한 초대입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의 간절한 뜻을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지식에는 그들이 바뀌지 않았다는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바뀐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정성으로 그 현실을 대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그들이 만드는 삶의 결과는 자기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씨를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농부의 손에서 떠난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은 씨앗의 선택이 가능한 일일까요? 당연히 씨앗이 선택할 가능성은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씨앗이 맺는 삶의 결실에 관하여 남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씨앗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돌밭이나 가시덤불이나 좋은 땅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뿌리는 씨앗의 열매를 이용할 사람이 그 땅을 어떻게 준비하고 다루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그가 이용할 미래의 결실도 달라진다고 말할 것입니다. 세상의 삶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얻는 것도 내가 노력하는 바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