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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舌禍)
말 한번 잘못하여 화를 입는 것을 설화(舌禍)라고 한다
舌 : 혀 설(舌/0)
禍 : 재앙 화(示/8)
필화(筆禍)는 권력자를 비판하는 글 또는 밉보이는 글을 썼다가 개인들이 유배를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를 말한다. 설화(舌禍)역시 권력자를 비판하는 말이 문제가 되어 개인들이 개인들이 갖가지 현실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나 현재, 사회생활에서 글이나 말로 인하여 재앙을 면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본다. 그 재앙이 글로 인함이면 설화(舌禍)요, 말이면 필화(筆禍)다. 옛말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사람의 세치 혀로부터 나오는 말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말이 끄는 수레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사상가(思想家)요 철학자(哲學者)인 성대중(成大中)이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문집(文集) 중 설화(舌禍)의 한 구절이다.
禍生於口, 憂生於眼. 病生於心, 垢生於面.
화생어구, 우생어안. 병생어심, 구생어면.
재앙은 입에서 생기고, 근심은 눈에서 생긴다. 병은 마음에서 생기고, 허물은 체면에서 생긴다.
또 말했다.
內不足者, 其辭煩. 心無主者, 其辭荒.
내불족자, 기사번. 심무주자, 기사황.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그 말이 번다하고, 마음에 주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이 거칠다.
다시 말했다.
謙恭者屈節, 於己何損. 而人皆悅之, 利莫大焉.
겸공자굴절, 어기하손. 이인개열지, 이막대언.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이 자신을 굽히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니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없다.
驕傲者暴氣, 於己何益. 而人皆嫉之, 害孰甚焉.
교오자폭기, 어기하익. 이인개질지, 해숙심언.
교만한 사람이 포악하게 구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사람들이 미워하니, 이보다 큰 손해가 없다.
또 말했다.
傲於人而責人恭, 薄於人而責人厚,
오어인이책인공, 박어인이책인후,
남에게 뻣뻣이 굴면서 남에게는 공손하라 하고, 남에게 야박하게 하면서 남보고는 두터이 하라고 한다.
天下無此理也. 强之禍必至矣.
천하무차이야. 강지화필지의.
천하에 이런 이치는 없다. 이를 강요하면 반드시 화가 이른다.
다시 말했다.
伐我之斧非他, 卽我伐人之斧也.
벌아지부비타, 즉아벌인지부야.
나를 찍는 도끼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찍었던 도끼다.
制我之梃非他, 卽我制人之梃也.
제아지정비타, 즉아제인지정야.
나를 치는 몽둥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남을 때리던 몽둥이다.
方其加諸人也, 計非不巧, 機非不密也.
방기가제인야, 계비불교, 기비불밀야.
바야흐로 남에게 해를 입힐 때 계책은 교묘하기 짝이 없고, 기미는 비밀스럽지 않음이 없다.
毫忽之間, 反爲彼利, 而我若自縛以就也, 智勇竝無所施也.
호홀지간, 반위피리, 이아약자박이취야, 지용병무소시야.
하지만 잠깐 사이에 도리어 저편이 유리하게 되어, 내가 마치 스스로 포박하고 나아가는 형국이 되면, 지혜도 용기도 아무짝에 쓸데가 없다.
또 말했다.
貴而驕, 壯而肆, 老而衰, 窮而悴, 皆不學之人也.
귀이교, 장이사, 노이쇠, 궁이췌, 개불학지인야.
귀해졌다고 교만을 떨고, 힘 좋다고 제멋대로 굴며, 늙었다고 힘이 쪽 빠지고, 궁하다고 초췌해지는 것은 모두 못 배운 사람이다.
어찌 해야 할까? 그가 말한다.
淸而不刻, 和而不蕩, 嚴而不殘, 寬而不弛.
청이불각, 화이불탕, 엄이불잔, 관이불이.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 엄격하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는다.
또 말한다.
名待後日, 利付他人. 在世如旅, 在官如賓.
명대후일, 이부타인. 재세여여, 재관여빈.
이름은 뒷날을 기다리고, 이익은 남에게 미룬다. 세상을 살아감은 나그네처럼, 벼슬에 있는 것은 손님같이.
사람이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행함을 잊어 탈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돕지 않는 자는 기회도 힘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患生于所忍, 禍起于細微.
환생우소인, 화기우세미.
걱정거리는 소홀한 데서 생기고, 화(禍)는 사소한 일에서 일어난다.
(설원/說苑)
성대중(成大中; 1732~1812)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이다. 할아버지는 성몽규(成夢奎)이고, 아버지는 내섬시 직장을 지낸 성효기(成孝基)이다. 어머니는 유시진(柳始震)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며, 부인은 이덕로(李德老)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동생은 성대집(成大集)이며, 아들은 성해응(成海應)이다.
성대중(成大中)은 서얼(庶孼) 출신으로 1732년(영조8)에 태어나 1809년(순조9)에 78세를 일기로 고향 포천(抱川)에서 졸하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였지만, 1765년(영조41)에 가서야 서류(庶類) 중의 인재로 추천되어 조용(調用)되었으며, 정조 즉위 이후 학문을 인정받아 교서관 교리로서 전후 9년 동안 규장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실시할 때에는 순정문(醇正文)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저자의 이력을 역임 관직과 함께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753년(영조29)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 1756년(영조32) 25세에 정시(庭試)에 합격하였다.
1759년(영조35) 28세에 교서관 부정자, 정자, 박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문신전강(文臣殿講)과 전경문신전시(專經文臣殿試)에서 영조의 칭찬을 받고 말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761년(영조37) 30세에 성균관 전적, 봉상시 주부가 되었으며, 1762년(영조38) 31세에 은계도 찰방(銀溪道察訪)이 되었다.
1763년(영조39) 32세에 조엄(趙曮)을 따라 서기(書記)로서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뒤, 1764년(영조40) 33세에 성균관 전적, 승문원 교검, 봉상시 판관을 역임하였다.
1765년(영조41) 34세 되던 해 홍봉한(洪鳳漢)이 서얼(庶孼) 중의 인재로 추천하니 영조가 조용(調用)할 것을 명하여, 1766년(영조42) 35세에 울진 현령(蔚珍縣令)이 되었다. 이때 자신의 호를 동호장(東湖長)이라 하였다.
1772년(영조48) 41세에 부친의 복(服)을 마치고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당시 견책당한 간신(諫臣)을 구원하다가 삭직(削職)되었는데, 이듬해에 다시 지평에 제수되었다.
1774년(영조50) 43세에 사헌부 장령이 되고, 이어 평안도 운산 군수(雲山郡守)가 되었다.
1777년(정조1) 46세에 체직되어 돌아와 1778년(정조2) 47세에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가 되었다.
1781년(정조5) 50세에 교서관 교리가 되었다. 당시 교서관을 외규장각(外奎章閣)으로 개편하였는데 이를 관장하여 서적의 수교(讐校)와 편찬을 맡았고, 51세 되던 해에 국조보감(國朝寶鑑)을 간행한 공로로 승서(陞敍)되었다. 다음 해에 흥해 군수(興海郡守)가 되어 진정(賑政)을 잘 수행한 공으로 1784년(정조8) 53세에 승서되었다.
1787년(정조11) 56세에 교서관 교리가 되었을 때 응제(應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고, 북청 도호부사(北靑都護府使)가 되어 부임할 때에 임금이 어필(御筆)과 설전첩(雪牋帖)을 하사하여 옛사람의 격언(格言)을 써서 올리게 하였다. 당시 패관소품(稗官小品)의 문체가 유행하여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천명하고 글을 지어 올리게 하자 고금의 문로(文路)를 논한 수천 자의 글을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1793년(정조17) 62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위원 군수(渭源郡守)가 되었다.
1795년(정조19) 64세에 체직되어 포천으로 돌아갔다. 이듬해에 특명으로 장릉사보(莊陵史補)를 수교(讐校)하고, 이서구(李書九)와 존주휘편(尊周彙編)을 편찬하였다. 이 해 겨울 임금이 춘추(春秋)를 간행하려 하면서 대문(大文)의 글씨를 쓰도록 하고 학식과 필법이 순정(醇正)하다고 칭찬하니 스스로 호를 순재(醇齋)라 하였다.
1797년(정조21) 66세에 오위장(五衛將)이 되었고, 춘추가 간행되자 상으로 말을 하사받았다.
1803년(순조3) 72세 되던 해 가을, 아들 성해응(成海應)이 음성 현감(陰城縣監)이 되자 임소(任所)로 따라가면서 화양동(華陽洞)의 문정서원(文正書院)과 만동묘(萬東廟)를 배알하고 일대를 유람한 뒤 화양동기(華陽洞記)를 지었다.
1807년(순조7) 76세 되던 해 가을에 고향인 포천으로 돌아갔다.
1809년(순조9) 2월 17일 78세를 일기로 졸하였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ㆍ동호장(東湖長)ㆍ순재(醇齋)이다. 5대조인 성준구(成俊耈:1574~1633)의 서손(庶孫) 후룡(後龍) 때부터 서얼의 가계로 내려왔으나, 6대조인 성이문(成以文)은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하였고, 청성과 그의 아들 성해응은 각각 교서관 교리를 지내는 문한(文翰)의 전통을 이은 가문이었다.
▶ 舌(혀 설)은 상형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입으로 내민 혀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혀의 뜻을 나타낸다. 또는 음(音)을 나타내는 干(간; 내미는 일, 실)과 口(구)의 합자(合字)이다. 그래서 舌(설)은 혀의 뜻으로 ①혀 ②말, 언어(言語) ③과녁의 부분(部分)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말다툼이나 입씨름을 설전(舌戰)말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다툼을 설론(舌論), 혀가 굳어서 뻣뻣함을 설강(舌强), 혀를 움직여서 내는 자음을 설음(舌音), 남을 해하려는 뜻이 담긴 말을 칼에 비유해서 일컫는 말을 설검(舌劍), 칼과 같은 혀라는 뜻에서 날카로운 말을 설도(舌刀), 말을 잘못한 때문에 받게 되는 해를 설화(舌禍), 서슬이 선 말로 날카롭고 매서운 변설을 설봉(舌鋒), 혀를 이루고 그 주질이 되는 근육을 설근(舌筋), 혀의 상태를 보아서 병이 있고 없음을 진단하는 일을 설진(舌診), 악독하게 혀를 놀려 남을 해치는 말을 독설(毒舌),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언설(言舌), 붓과 혀 곧 글로 씀과 말로 말함을 이르는 말을 필설(筆舌), 나쁘게 욕하는 말을 악설(惡舌), 시비하고 비방하는 말을 구설(口舌), 쓸데없는 말을 자꾸 지껄임을 농설(弄舌), 재치 있게 하는 교묘한 말을 교설(巧舌)말이 많음이나 수다스러움을 장설(長舌), 입담 좋게 말을 잘 하는 재주를 변설(辯舌), 혀를 가두어 둔다는 뜻으로 말을 하지 아니함을 수설(囚舌), 말로 이러쿵 저러쿵 다투는 일을 각설(角舌), 혀 아래나 밑에 도끼 들었다는 설저유부(舌疽有斧),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論鋒의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설망어검(舌芒於劍), 혀가 꼬부라지고 불알이 오그라진다는 뜻으로 병세가 몹시 위급하다는 설권낭축(舌卷囊縮),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뜻으로 항상 말조심을 해야한다는 설참신도(舌斬身刀) 등에 쓰인다.
▶ 禍(재앙 화)는 형성문자로 旤(화)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礻; 보이다, 신)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문책(問責)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咼(화)로 이루어졌다. 신의 문책, 타박 등을 뜻한다. 그래서 禍(화)는 (1)모든 재앙(災殃)과 액화(厄禍) (2)몸과 마음에나 또는 일에 뜻밖에 당하는 불행(不幸)이나 손실(損失) 등의 뜻으로 ①재앙(災殃) ②재화(災禍) ③사고(事故) ④허물 ⑤죄(罪) ⑥재앙(災殃)을 내리다 ⑦화를 입히다 ⑧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액 액(厄), 재앙 앙(殃), 재앙 재(災),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복 복(福)이다. 용례로는 재앙과 복을 화복(禍福), 재앙을 가져올 근원을 화근(禍根), 재앙과 환난을 화난(禍難), 재앙과 난리를 화란(禍亂), 재앙에 가까이 가는 단계를 화제(禍梯), 재앙의 원인을 화인(禍因), 화를 일으킬 실마리를 화단(禍端), 재변이 아직 드러나지 아니하고 잠겨 있는 기틀을 화기(禍機), 매우 심한 재액을 화변(禍變), 좋지 못한 일을 화사(禍事), 재앙이 벌어지는 빌미를 화색(禍色), 재앙을 주는 신을 화신(禍神),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화심(禍心), 참혹한 재화를 참화(慘禍), 전쟁이나 난리로 말미암은 재앙을 병화(兵禍), 화를 남에게 넘겨 씌움을 가화(嫁禍), 흉악한 재앙을 흉화(凶禍), 재앙을 불러들임을 고화(賈禍), 집안에 일어난 재앙을 가화(家禍), 화를 면함을 면화(免禍), 전쟁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재앙을 전화(戰禍), 병으로 말미암아 입는 재앙을 병화(病禍), 화를 당함을 봉화(逢禍), 남의 일로 말미암아 뜻밖에 당하는 재앙을 비화(飛禍), 재앙이 바뀌어서 오히려 복이 됨을 화전위복(禍轉爲福), 화복이 꼰 노와 같이 서로 얽혀 있다는 화복규묵(禍福糾纆), 화나 복이 오는 문은 정하여 있지 않다는 화복무문(禍福無門), 재앙이 되는 것은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라는 화종구생(禍從口生), 재앙은 번번이 겹쳐 오게 된다는 화불단행(禍不單行), 죄화를 입은 집안의 자손이라는 화가여생(禍家餘生), 화나 복은 모두 자신이 불러들임을 이르는 말을 화복동문(禍福同門), 화란이 생기는 것은 다 덕이 없는 탓이라는 화생부덕(禍生不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