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슬픔의 갯수 외 1편
- 안락사
김 우(김현철)
파르르, 몇 그램 치사량에 점령당해 축생의 습관을 내려놓는 송곳니,
듬성듬성 머리카락 빠진 마을 입구에는 떠나지 못하는 유년이 엎질러진다
잘 길러진 휘파람을 끼우던 청각이 먼저 자리를 뜨고 판자촌 헐렁한 쇄골 아래
갇힌 달빛, 조등처럼 창백하다 검은 콘크리트 가루를 상복으로 입은 바람만
조문객 없는 빈소를 지킨다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까지 휘감던 왁자지껄은 사라진 지 오래
면사무소 서류에 찍힌 지문들, 하나 둘 사라진다
허리가 구부정한 도시의 그림자는
미소를 닫았고 신생아 울음소리도 바람을 등진 이명일 수밖에
굴착기로 파헤쳐진 키 낮은 마을의 민낯은
마지막 속옷 같은 수줍음을 띠다가도 철거민의 한숨이 잠긴 아쉬운 동거가 되고
어둠을 먹으면 다시 시치미를 삼킨 석장승이 된다
창공에서 두 팔 벌린 타워크레인이 마을의 내장을 후비기 시작하면
소꿉장난 같은 집 주인들의 허락 아닌 허락된 지문을 빌어 시작되는 안락사,
크레인의 촉수가 땅속 깊이 박힌 느티나무의 심장에 가까워질수록
돌아오지 않는 슬픔을 삼킨 휘파람 소리는 멀어져 갔다
천둥 같은 초침 소리가 저승 입구를 서성이고
밤하늘 저편 주삿바늘 같은 삭정이가 날카롭게 파고들자
황혼의 스러지는 잔불을 따라 호흡마저 부러진 도시, 서서히 눈을 감는다
손님 하나 없는 동네 앞 편의점 티비에서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신도시 개발을 확대하겠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학계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 외치*
보이세요 엄마 검은 하늘이 수상해요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물길이 열려요 아세요? 오래전 엄마의 부드러운 전설을
빨 때마다 노래가 들렸어요
누군가 거대한, 이라고 외치자 일제히 물구나무서던 잿빛 산
끝내 갇혀버린 나의 마지막 잠
바위를 깨물어본 적 있나요 그때는 꼭 맨발이어야 하죠
어깨처럼 반쯤 흘러내린, 비와 바람은 제발 놔두세요 아니 아니 멧돼지 말고요
그렇다고 소리의 지느러미를 꺼내 먹진 않잖아요
보이세요 엄마 산이 헤엄쳐요 사냥감을 풀 위에 내려놓고 물 밑에 장대를 담그면 거기,
범선처럼 거대한 주파수가 꼬리쳐요 그날 반쯤 마른 토기 안에 별들이 수북했어요
밤하늘을 헤엄치던 어골문* 지느러미 달린 검은 산
호랑이, 사슴, 멧돼지는 알죠 바위 속에도 오솔길이 있다는 걸
호피를 두른 아이가 벽을 열고 집으로 가요 시간을 닫으면 안쪽에 커다란
바다가 있어요 고래 등에 올라탄 작은 발가락은 넓적한 휴식이에요
따뜻한 바람, 처음 보는 곤충들, 애벌레 등에 업혀 조금씩 기어가는 햇살
눈썹과 턱이 과묵한 나뭇잎으로 음부를 가린 여자가 노래에 흙을 버무려요
늑대 울음이 돌아올 시간, 토기를 만들까요 그늘에서 잘 말리면
타잔의 함성을 담아두기 딱이죠 눈을 감고 물, 하면 담수가 되는 들판
올리브나무가 가오리처럼 날아올라요 지난밤 내 안으로 추락한 해안선
모래펄이 넘실대요 몰랐어요? 내 꿈이 추장이라는 걸
깔.깔.깔
새순 같은 웃음이 앞니 빠진 설탕보다 달아요
이런! 돌도끼가 몰려와요 언덕을 재빨리 부위별로 나눠요
암각화를 믿지 않는 엄마가 보여요 짐승 가죽을 입고 사라진 아이를 찾아
매머드보다 느린 속도로 유영하는 엄마
- 머리맡에 피리를 둘게요
그날 우리는 사슴을 덮고 모닥불을 피웠어요 곡물과 순록을 먹었죠
들판에서 아버지가 주신 마른 늑대를 입고 잠깐 눈을 붙였을 거예요
나는 대체 얼마 동안 잠을 잔 걸까요
바람이 도착했어요 일만 년 전 들판을 가로질러 내게
이젠 눈을 감지 않아도 달이 뜨는 엄마, 내 정강이에서 피리 소리 들려요
- 어제는 내 눈알 속으로 바오바브나무 씨앗이 이사를 왔어요
윙- 윙-
가락바퀴에 그날의 졸음이 아직도 실처럼 감겨요
- 기자 양반, 거기 선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빨리 나와요.
-
가장 중요한 것은 트라울*이 아닙니다. 제군들의 손이 진짜 발굴 도구죠.
*외치(Oetzi) - 석기시대 미라 이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간미라
*어골문 - 토기 표면에 새긴 물고기의 뼈와 같은 무늬. 빗살무늬
*트라울 - 작은 흙손 형태의 문화재 발굴 도구
서른 번의 가을이 지나간 재회,
그리고 수상 소식
사춘기 때 흠모했던 그녀와 고교 졸업 후 서울로 유학을 오면서 헤어졌어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녀가 주책스럽게 다 늙어서 다시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녀도 아직 나를 잊지 않았을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혹시나 하며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른 번의 가을이 지나간 재회였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예뻤고 그녀를 보는 순간 제 가슴에는 마른천둥이 수백 수천 번 넘게 쾅쾅거리더군요. 다시는 그녀를 놓칠 수 없음을 알기에,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라도 시간을 쪼개며 그녀와 데이트를 했고, 그녀와 함께 하는 미래의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하하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요. ‘그녀를 다시 만난 것만도 운이 좋았다.’ 생각했는데, 그녀가 재회 기념 선물이라면서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수상”이라는 대박을 선물해 주네요. 역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저에게는 완전 행운입니다.
그토록 보고 싶은 사람은 눈 안에 넣어야 더 아름답고, 사랑하는 사람은 두 손을 꼭 잡고 구름 위를 걸을 수 있어야 더 행복함을, 다 늙어서 새삼스레 확인 하네요.
끝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와의 재회에 도움을 주신 ‘시와 건달들’ 문우님들, ‘시시각각 밴드’ 회원님들, 그리고 그녀에게 더욱 우아한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까막눈인 저에게 미세한 부분까지 가르쳐 주신 김명희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겨우 그녀를 사랑하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그 초보 사랑도 사랑이라고 수상작으로 뽑아 주신 고명하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신 계간 『시와산문』과 장병환 이사장님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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