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동문이 동생 김성만 형제를 데리고 광주로 올라가
-치아 및 하반신 마비 극복 및 언어치료를 위해 고향을 떠나-
최근에 김성일 동문(20회)이 동생 김성만(55, 성말) 형제를 데리고 고향을 떠나 광주로 올라갔다.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성만 형제는 동안 음으로 양으로 돌봄이 역할을 해 준 고향의 고마운 분들을 뒤로하고 석별의 정을 나누고 떠나갔다. 고향 소리도 동부길 15-2 김성일 동생 김성만 형제는 55년 전 어느 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성만 동생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되는 장애아로 태어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은 인위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학, 생물학적, 유전적인 상관관계에서 태어나는 경우처럼 성만 형제는 안타까운 출생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머니가 돌보는 등 가정이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요양시설로 들어가면서 세상을 떠나간 김성수 형제가 맡아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정부와 사회공동체의 지원과 함께 동안 서부안길 1의 우천현 집사 허순자 권사(연도교회)가 돌보던 중 2, 3년 전부터는 자택에서 돌보아온 케이스로 그 분들의 수고로 보호 및 돌보미로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김성만 형제는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전에 김성만 형제에 대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글을 고향 홈에 언급한 바 있지만 김 형제는 운동기능장애를 주 증상으로 임상증후군인 다른 영역까지 장애를 동반해 사지마비상태로 자력으로 보행을 못하고 거동, 배변, 탈착의, 음식물섭취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문제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그 외 산책, 일광욕, 외출, 문화시설이용, 여행 등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활동을 포함, 모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의 삶을 산 사람이다. 혼자서는 잠시라도 보호자가 없다면 단 한 시간도 연명할 수 없는 초 중증 장애인으로 수시로 필요에 따라 환자를 보살펴주는 일에서부터 경제적인 문제까지 중첩되어 그야말로 이중 삼중고를 겪는 형극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부모나 형제 등 직접 케어 할 수 여건이 안 될 때 정부지원으로 요양보호사 및 활동지원사 제도가 도입되어 다행이라는 사실이다. 경제 환경이 충족되는 가정은 몰라도 그 외 장애인 가족들의 경우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날 수 밖에 없다. 가면 갈수록 치아손상 및 하반신 마비로 상태 극복 및 언어치료를 위해 의료복지혜택 차원에서 광주로 올라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상 여건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25데스크가 2011년 9월 1일 동부길 15-2를 찾아 김성만 형제를 만난 45세 때 모습이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