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6:21]
여호야김왕과 그 모든 용사와 모든 방백이 그 말을 듣고는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이를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간지라...."
우리야는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애굽으로 달아났다. 이는 담대히 대적들 앞에 나선 예레미야에 비해 나약한 선지자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예레미야와는 달리 애굽으로 쫓아온 자객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
[렘 26:22]
여호야김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내었더니......"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 엘라단이란 사람이 애굽으로 달아난 우리야를인도받기 위해 애굽으로 파견되었다. B.C. 2천년대의 조약문에는 정치적 망명자를 인도하는 협정이 종종 삽입되곤 하였다. 느고가 B.C.609년에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혔기 때문에 우리는 애굽과 유다 사이에 군주-봉신 조약같은 것이 맺어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느고는 여호야김에게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왕하 23:34,35). 어쨌든 정치적 망명자를 인도하는 것은 상호간에 협조하도록 되어 있으며 국제법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편, 애굽으로 파견된 악볼의 아들 엘라단은 예레미야의 두루마리가 읽혀질 때 그것을 들은 관리들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여호야김이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불태워 없애려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기도 했다(36:11-26). 엘라단은 또한 유다왕 여호야긴의 모친인 느후스다의 부친이었던 것 같다(왕하 24:8). 아마도 그는 우리야 문제에 대해서는 왕의 명령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렘 26: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호야김왕께로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실에 던지게 하였다 하니라....."
여호야김 왕께로 데려 오매...평민의 묘실에 던지게 하였다 - 우리야가 예루살렘으로 호송되자 여호야김은 그를 칼로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 선지자가 처형되는 장면이 구약에는 우리야 외에 스가랴 선지자의 경우가 한 번 더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또 예레미야 같은 사람을 핍박하였던 것 등으로 볼 때 비록 구약의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수많은 선지자들이 순교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사야 선지자도 그렇게 순교하였을 것이다. 한편 우리야의 시체는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골짜기의 평민의 묘실에 던져졌다. '평민의 묘실'이란 일종의 공동 묘지와 같은 곳으로 짐작된다.
부유한 자들이나 명망있는 자들은 자신의 개인 무덤에 묻혔으나 빈천한 자들은 후미진 곳의 공동 무덤에 묻혔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야는 죽은 후에도 수치를 당하였던 셈이 된다.
[렘 26: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 아마 예레미야는 아히감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우리야의 운명과 같은 끔찍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아히감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느부갓네살에 의해 그곳 총독으로 임명된 그다랴의 부친이었던 것 같다
예레미야가 비록 최고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긴하나 여전히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예레미야에 대한 편견은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던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히감의 보호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