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내달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어둑새벽이다. 조금 더 자자. 조금만 더. 이불을 턱밑까지 바짝 끌어당기며 돌아눕는다. 깜빡 잠들기가 바쁘게 골짜기를 뒤흔들며 지나가는 차 소리에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부윰하니 날이 밝았다. 새벽녘의 꿀잠을 설친 탓에 영 개운치가 않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어이구, 추석이 지난 지도 한참 되는데 아직도 송이(松栮)가 나오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드는 시냇물 소리에 귀가 뻥 뚫린다. 양팔을 한껏 벌리며 심호흡을 한다. 청량한 공기에 솔향기는 덤이다.
나는 이른 아침 동창(東窓)을 열고 심호흡을 하며 화양천(華陽川) 둔치에 서 있는 두 그루 소나무와 마주할 때를 가장 좋아한다. 한 그루는 양쪽 가지를 가붓이 들고 우아한 모습으로 또 한 그루는 수려한 자태로 옆의 나무를 호위하듯 서 있는 모습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버릇처럼 그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솔아, 솔아! 오늘도 송이(松栮) 땜시 새벽잠을 설쳤어. 거의 한 달째야.”
집 앞을 흐르는 화양천 저쪽의 갈대와 갯버들이 무성한 둔치 위, 그러니까 나지막한 안산(案山)이 시작되는 곳에 소나무 두 그루가 그림같이 서 있다. 원래 소나무는 세 그루였다.
90년 정월, 엄청난 폭설에 가운데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처참하게 찢어졌다. 초강력 태풍에도 끄떡없었는데 솜처럼 가벼운 눈(雪)에 변(變)을 당하다니…. 나는 소나무가 썩둑 잘려나간 빈자리가 안쓰럽고 허전하여 눈길을 돌리곤 했다. 그로부터 몇 해 후의 늦가을 새벽, 건강하던 남편의 심장이 창졸간에 멎었다. 말로만 듣던 심장마비가 그를 데려갔다. 나는 남편과의 추억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솔멩이골을 차마 혼자서 갈 수가 없었다.
어느 해 여름, 오랜 단절을 끝내고 다시 솔멩이골을 찾아갔다. 그리고 2층 서재의 동창(東窓)을 열었을 때 나는 보았다. 떠난 자의 빈자리를 의연하게 덮고 서 있는 훤칠하게 자란 두 그루의 소나무를! 그날 이후 그들은 나의 대화 상대요 울적함을 해소해 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며칠만 참자. 모여드는 차량이 한창때에 비하면 현저하게 줄었잖아? 송이 철이 끝나면 다시 한적해질 텐데, 뭘.”
지금도 나는 서울과 충북 괴산군 솔멩이골(松面)을 오가며 살고 있다. 추울 때는 도시로 더울 때는 산골로 이동하는 철새이다.
‘솔멩이골’엔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 이름처럼 골짜기에 소나무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송이버섯은 금값이니 한철 동안 부지런하기만 하면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나 산에 올라가 마음대로 송이버섯을 채취할 수가 없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임산물은 산림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채취가 가능하며 만약 무단 채취하면 절취행위로 간주되어 벌을 받는다.
입추(立秋)가 지나면 솔멩이골의 관심사는 온통 송이버섯으로 모아진다. 남정네들은 등산로 입구마다 ‘임산물 무단 채취금지’ 플래카드를 걸고, 산자락마다 붉은색의 ‘입산 금지’ 테이프를 두른다. 곧, 가물에 콩 나 듯 지나가던 자동차의 통행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나는 주말에 찾아드는 차들은 거의가 추석을 앞두고 벌초(伐草) 하러 온 차량이요, 주중에 찾아드는 차들은 대부분 송이 바라기들의 차량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터득했다.
송이버섯은 채취하는 대로 현금이 된다. 발품만 팔면 돈이 들어오는 까닭에 무단 채취하는 외지인들과 채취권을 가진 현지인들 간의 공방전이 대단하다. 외지인들은 하늘이 주는 선물을 조금 얻어 갈 뿐인데 도둑 취급하는 것에 분개하고 현지인들은 법을 들이대며 그들이 취득한 송이버섯을 몰수하는 사태가 하루에도 대여섯 건씩 발생한다. 지키는 사람 열이 한 사람의 도둑을 막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그 넓은 산을 무슨 수로 지켜낼 수 있으며, 순수한 등산객과 송이 바라기들을 어찌 실수 없이 구별한단 말인가! 아랫마을 함 씨(咸氏)가 버섯 집하장 들마루에 앉아 송이 도둑을 잡았다 놓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령산 입구에서 송이 배낭을 메고 달아나는 여인을 붙잡았어. 경험이 많은지 상등품 송이가 배낭에 가득하더라고. 한동안 말없이 따라오던 여인이 별안간 배를 움켜쥐며 큰 볼일이 급하니 배낭에서 휴지를 꺼내겠다는 거야.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여 무시했는데, 글쎄 내 눈앞에서 아랫도리를 훌렁 까고 쪼그려 앉지 뭐야. 얼마나 다급하면 저럴까 싶어 압수했던 배낭을 넘겨주고 여인과 솔찬히 떨어진 곳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기다렸지. 허허 참, 배낭을 돌려준 게 큰 실수였어.”
송이버섯 채취에 도가 튼 마을 사람들은 먼동이 틀 무렵에 올라오는, 갓이 퍼지지 않은 1등급 송이를 따려고 7~8부 능선에서 야영을 한다. 자칫 적기(適期)를 놓쳐 갓이 조금이라도 피게 되면 값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송이 채취를 했고, 가장 많은 송이밭을 알고 있다는 박 씨(朴氏)의 한탄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큰일이여, 큰일. 송이를 따면 그곳을 고루 다독이고 솔잎이나 흙으로 덮어주어야 된다는 걸 어찌 모른담. 사람들이 송이밭을 마구 헤집어 놓아 씨를 말리니 우짠댜.”
송이는 하늘이 거저 주었으니 외지인들이 실례를 한다 해도 큰일이 아니지만 송이 균사(菌絲)를 죽이는 일은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란다. 송이버섯은 현재까지 인위적으로 자실체(字實體)를 만들지 못해 양식이 되지 않는 100% 자연식품이다. 요즘의 과학은 동물을 복제해낼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지만 송이버섯은 인공 재배를 할 수 없다지 않은가. 나 같은 문외한이 그 해에 송이가 풍년인가 흉년인가를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꼭두새벽에 내달리는 자동차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사라지지 않는가를 헤아려보면 된다. 그 시기에 볼품없이 생겼거나 갓이 활짝 펴진 송이는 헐값에 구입할 수 있다. 덕분에 내 입이 호강을 한다. 새벽잠을 방해받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내 입은 여러 번 호강을 한다,
이웃사촌으로 허물없이 지내던 성호할머니가 이사 간 것은 재작년 봄이었다. 챙 넓은 꽃무늬 모자가 썩 잘 어울리던 그녀는 평지에서만 뱅뱅 도는 나와는 달리 인근의 야산과 물가를 활기차게 누비며 자연이 베푸는 먹거리를 찾아내는데 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 넓은 가지 버섯밭이 있는 곳과 연보랏빛 가지버섯이 올라오는 시기를 내게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예로부터 송이밭은 부모 자식 간에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비록 송이밭은 아니라도 성호할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녀는 내가 가지버섯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해 가을에도 다음 해 가을에도 앞산 골짜기 어디쯤에 있다는 그 밭을 찾아가지 못했다. 시냇물을 건너가야 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외가에 갈 때마다 절대로 시냇물을 건너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마을 앞 무심천(無心川) 건너편에는 일제 때 사금을 채취하느라 파헤친 깊고 너른 물웅덩이가 산재해 있었다. 어머니의 명을 어기고 동네 아이들 꽁무니에 붙어 폴짝폴짝 징검다리를 건너갔던 날, 신나게 물수제비를 뜨다가 그만 깊은 물웅덩이에 빠졌다. 그날 밤,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회초리를 맞고 선잠을 자다 어머니와 외숙모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시냇물을 건너가지 말라는 말은 다 키운 자식 둘을 물에서 잃은 어머니의 한 맺힌 당부라는 것을! 나는 결심했다. '절대로 물 건너에는….’ 그 밤의 다짐이 지금껏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송이 철이 끝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가지버섯은 손이 철이 끝날 무렵에 올라온다고 했지? 그래, 바로 지금이야.’ 도배한 것처럼 많다는 가지버섯을 담아오려면 아무래도 시장바구니 하나로는 모자랄 것 같았다. 나는 바구니에 비닐봉지 두 개를 더 챙겼다.
마을 끝에서 갈대밭 사이에 있는 돌층계를 내려가 망설임 없이 너럭바위로 된 징검다리를 건넜다. 시냇물 소리가 응원가처럼 들렸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소나무 우측 골짜기로 올라가 성호할머니가 가르쳐 준 버섯밭을 수월하게 찾아냈다.
“어머나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훑고 다녔는지 산골짜기가 반질반질했다. 물론 가지버섯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날씨는 청명하고 하산 길은 바쁠 것이 없었다. 소나무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실어 나르며 골바람이 불었다. 누렇게 마른 갈대숲이 술렁거렸다. 물 위를 포롱포롱 날아다니던 물총새 한 마리가 별안간 곤두박질치더니 물고기를 입에 물고 큰 바위 뒤로 사라졌다.
‘오메! 저기 저 물속에 하늘이….’
그랬다. 파아란 가을 하늘이 물속에 들앉아 있었다. 무심천의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너던 소녀는 간데없고, 빈 바구니를 옆에 끼고 뒤뚱뒤뚱 너럭바위를 건너가는 구부정한 여인이 파아란 하늘 위에 어른거렸다.
(이민혜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