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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로 가라”
(마 28:1-10)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나이가 들어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일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애에 정들고 추억이 깃든 곳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동요에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고 노래하였고, 미국 사람들은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앚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라고 어릴 때 추억이 깃던 금잔디 동산과 소꼽 친구를 노래한 것을 봅니다.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풍금소리에 맞춰 부르던 Home Sweet Home이란 노래도 있습니다.“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집 내 집 뿐이리.” 6.25 동란으로 북에서 피난와서 살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평생 떠나온 고향, 가지 못하는 정든 곳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1992년도에 음악 선교단을 데리고 하와이, 필라델피아, 시카고, L.A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하시엔다의 동부평강교회에서 공연을 하고 마지막 떠나기 전에 “오빠생각“을 불렀더니 그 전까지 찬양을 해도 울지 않던 분들이 모두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노래가 좀 슬프잖아요. ”뜸뿍뜸뿍 뜸뿍새 논에서 울고 귀뚤귀뚤 귀뚜라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를 ”우리 오빠 비행기 타고 미국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로 고쳐 불렀더니 한국에서 온 동생 같은 자매들을 보면서 미국생활이 바빠 오래 동안 가지 못한 고국과 형제들을 그리워하면서 모두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이처럼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이 있다면,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이러한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교회 다니던 생각들, 또는 세례 받은 교회나, 처음 주님을 만났던 은혜의 장소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이처럼 사랑스럽고 정감이 넘치는 고향 같은 추억의 장소를 찾는다면, 이는 아마도 갈릴리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나셨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4에 보면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하였고, 마태복음 4:23에는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그가 가장 사랑과 정성을 기울여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늘의 비밀을 비유로 가르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곳이 바로 이 갈릴리였습니다. 주일학교 다닐 때, 불렀던 갈릴리 노래가 아직도 다는 아니지만 기억이 납니다. #“갈릴리야 갈릴리야 너의 이름 아름답다 소리높여 노래하자 아름다운 갈릴리.”
또한 이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곳이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위로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던 기적의 현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복음전파의 최고 효과를 본 곳도 이 갈릴리였기에 마태복음 4:23-24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복음을 전파하시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갈릴리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뜻 깊은 장소였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가 다시 살아나면, 이 갈릴리에서 그 제자들을 다시 만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 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왜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시겠다고 하시는 걸까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말씀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갈릴리로 가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1. 첫 믿음, 첫 사랑, 첫 열정의 장소로 가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갈릴리는 주님과의 잊지 못할 첫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또 그물 깁던 야고보와 형제 요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은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며 부르시던 주님과의 첫 만남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어떻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나를 따라 오느라“고 한 한마디를 듣고 부친을 버려두고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단번에 따를 수 있었을까요? 그 주님의 다정스러운 눈빛과 거역할 수 없는 어떤 신적권위에 어떻게 해준다는 보장을 받은 것도 아닌데 즉시로 주님을 따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후 주님을 죽는 데 까지 따르겠다고 결심하던 사랑과 열정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과의 첫 사랑과 첫 믿음과 첫 열정도 십자가의 고난 앞에 한순간에 사라지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그들을 다시 찾아 오셔서 그 첫 사랑, 첫 믿음, 첫 열정을 되찾게 하시기 위해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첫 사랑의 열정은 순수하며 진실하고 뜨겁습니다. 집 사람을 처음 만난 후, 21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쫓아 간 열정이 없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생각할 틈을 주었더라면 멀리 도망 갔을 것입니다. 자기 좋다는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3년 동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짝이다. 사랑의 속사포를 쏘아대고 반지를 갖다 끼우고 “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 손잡고 기도하니 아멘함으로 어떤 감정이 일어나기도 전에 21일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한 운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새는 워낙 늦게들 결혼하니 그런 열정이 있겠나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그 감격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구원의 기쁨과 은혜에 감격해서 찬송만 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을 줄줄 흘렸을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은혜 받을 때의 18번 찬송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좋거든 그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수십 년 전이지만, 은혜 받고 즐겨 부르던 찬송이 있었습니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10여년 전 미국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한국을 가지 못하고 어렵고 외로울 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주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를 부르고 또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언제인가 모르게 그 사랑의 열정과 믿음이 식어지고 감격이 메마르지는 않았습니까? 계시록 2:4-5에서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시기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였고, 바울사도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고 책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성격은 갈릴리와도 같아서 순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권모술수가 가득하고 정치인의 도시요, 부패하고 교만한 종교지도자들이 세력을 펼치고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의 가난하고 병들었으나, 순수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갈릴리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또한 갈릴리 바다는 수심이 아주 깊어 약 60미터에 이르나, 수면자체는 해면보다 210미터 낮은 곳에 위치하였습니다. 이는 신앙은 깊으나 겸손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처음 가졌던 믿음과 겸손을 잃어버리면, 그 자리를 불신과 교만이 차지하고 맙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과 순종을 잃어버릴 때, 미움과 시기 질투, 불순종이 그 자리를 채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첫 믿음과 첫 사랑과 첫 열정의 장소인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을 떠나나 주님은 언제나 그 첫사랑의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때로 변하지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를 버리고 도망 가버린 제자들은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머리를 들 수 없는 형편인데도 그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함께 식사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신 것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그 첫 사랑, 첫 믿음, 첫 열정을 되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에 각자의 갈릴리, 그 첫 사랑의 장소로 돌아가 다시 은혜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첫 믿음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서로 높은 자가 되기를 원했던 그들은 베드로를 비롯하여 죽는 데 까지 가겠다고 맹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체험하기 전까지의 자기 믿음은 실패요, 성령 충만 받기 전의 교만한 믿음은 결국 패배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순종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둔 극심한 번민 속에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내려 놓았습니다. 제자들은 살기 위해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으나, 주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속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영원한 생명에 참예하고자 하면, 그와 함께 죽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내세관은 이 부활 신앙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와 같이 부활사건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자기 개인의 신앙적 결단에서 고백하는 실존적이요,체험적인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도마는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서라도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부활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부활의 생명은 한 때 실패자였던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게 합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난 주님께서는 이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 비록 여러분이 제자들처럼 실패하고 좌절하였어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다시 만나주셔서 부활과 확신의 신앙으로 새 출발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탕자가 철저하게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었어도 아버지께로 돌아갔을 때, 다시 아버지의 사랑을 입을 수 있었던 것같이,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우리의 갈릴리로 갈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 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6-17절에 보니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한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아야 합니다. 오직 부활의 믿음으로만이 신앙생활 승리를 기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 갈릴리로 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시는 것은
3. 세계선교의 명령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단 한가지의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복음전도자가 되게 하심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그들을 처음 부르시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이라고 하신 주님께서 이제 다시 한 번 갈릴리에서 그들에게 모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부활의 주님께서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갈릴리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의 자녀를 삼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세 가지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으로의 부르심입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둘째는, 제자로의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사도와 선교사로서의 열방을 향한 선교 사명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만나시려고 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이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선교는 왜 해야 할까요?
1.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1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마가복음 16:15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교회는 이 선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교해야 합니다. 유명한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회심은 구원과 교회와 온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모든 족속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누가복음 19:10에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목요일 유명한 여배우 파라 포셋과 세계적인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죽었습니다. 파라 포셋은 62세로 주위에 믿는 사람들이 둘려 있어 병으로 죽기 전까지 기적의 치유를 믿었고, 임종 시에는 믿는 자들이 둘러서 그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유명한 것을 떠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기에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이클 잭슨 주위에도 믿는 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그가 구원의 믿음을 소유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주의 이름을 불러야만,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원받게 하기 위한 것이 선교의 목적입니다.
4.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성취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선교해야 합니다. 선교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마태복음 24:14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선교를 누가 감당할 수 있습니까? 오직 주님을 향한 첫 사랑과 첫 믿음과 첫 열정을 회복한 자가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체험과 확신을 가진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릴리로 갑시다. 첫 사랑과 첫 믿음과 첫 열정을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로 갑시다.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로 갑시다. 세계선교의 사명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 승천하시기 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주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듣고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을 위해 순교하기까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다시 만날 장소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그 갈릴리로 가서 주님을 다시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주님 갈릴리로달려가겠습니다~
아멘..아멘..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꿈속에서 만나시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