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
강남 어느 좁은 고시텔의 총무실에 시끄러운 벨소리와 함께 진동소리가 울린다.
띠리리릴~위위윙~띠리릴~위위잉~
탁!
“아야~잘 하고 있냐?”
“네 형님~에후”
“뭐냐 너 쪼까 이상허다?”
“형님, 나가 이 강남에 와서 만날 씨씨티비로 여자도 아이고, 이 병신노무 새끼나 언제까지 지켜봐야 것소!”
“허허 이 놈이 내가 니놈헌티 헛거 시키드냐! 다~뼈가 되고 살이되니께 잠자코 참아라 2년도 안남았다. 고생 좀 혀라~글고 언제든 뒤질 수도 있고 크크크”
“아아~알았수다 내 형님 아니면 후~ 됐수다! 끊소!”
딸깍!
그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쉰 후에 2~3평 남짓한 불도 켜지 않은 채 3층 총무실 옆방에서 다시 cc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억화심정으로 나를 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이태희 대리에게 엄청난 노동을 당하면서 눈칫밥을 열그릇을 뚝딱하고 온 상태이다. 이제 약속한 마지막 일주일 그것만 버티면, 여기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 아닐지가 결정이 난다.
털썩~!
1.5평 유일한 내공간, 팔도 못 피는 그 공간의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침대에 쓰러졌다.
유키가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를 매일매일 보며, 위안을 받고 있었지만, 불안했다.
그녀와 매일 매일 함께한 것이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두 달이나 지났는데, 유키는 감감 무소식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 질 때도 있지만, 유키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 문자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다.
그녀와 사귀고 매일매일 만나고 연락하고, 3일 이상을 떨어져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벌써 3 개월 째 그녀는 아무 연락이 없다.
나 같이 무능한 놈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였기 때문에 떠나간다고 해도 그녀를 원망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나 자신보다 더 믿기 때문에 이별이든 아니든 그 어떤 형태가 됐든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해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도 맹목적으로 그녀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었다.
먼지쌓인 고시원 천장을 항해 그녀를 떠올리면서 바보처럼 멍하니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또 귀찮은 문자소리가 울렸다.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은 거의 세 부류였는데, 가족, 그리고 돈을 빌린 베프, 그리고 스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국제전화 코드와 함께 스팸문자가 왔다.
“아~또 중국인가 이번엔 무슨 사기를 치려고 돈 좀 많은 새끼들한테니 좀 보내지”
그래도 오늘만큼은 너무 외로워 무슨 문자내용이든 다 확인하고 싶어서 어떤 내용의 문자인지 확인했다. 번호는 00686.... 이었고, 중국 아니면 동남아 쪽인가 보다 싶었다.
문자
오빠~나 지금 중국이야. 내 걱정은 하지말구 언젠가 오빠한테 당당히 갈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내 마음 잊지말고 정말 정말 사랑해! 그리고...우리 아빠 조심해 무서운 사람이니까
-유키-
‘헐 유유키야... ’
나는 재빨리 그 전화번호에 통화를 누르며, 국제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상한 중국말만 반복되었다.
분명 확실히 모르지만, 잘못된 전화번호라는 감이 들었다.
슬펐다.
하지만, 너무나도 기뻤다.
나를 아직 기억해주다니 나를 아직 잊지 않았다는 그 믿음에 보답해 준 것이다.
누군가의 장난일 수도 있지만,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
그날 기뻐서 눈물이 난다는 표현에 대해 처음으로 느꼈다.
한편, 고시텔 총무실에서는 먼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전송하는 것이었다.
띠리리리~띠리리리~
“형님! 찾았당께. 중국이여! cctv 캡쳐본 카톡보냈응께 함 보시오.”
“오~호! 잘 혔다. 역시 우리 춘삼이여. 껄껄껄~”
누가봐도 40대 농촌 총각같이 생긴 남자가 허름한 사무실에서 그의 전화를 받고 주름진 얼굴에 펴지며 미소를 짓는다. 그는 전북을 주름잡고 있는 동희파 두목 이동희로 두뇌가 뛰어나고 수완이 좋아 싸움보다는 사업쪽에 관심이 많아 한창 유통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던 나를 그것도 강남에서 위장신분으로 자신의 심복까지 파견하여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 웃지만 말고, 말좀 혀봐요. 저 자슥 언제 처리합니까?”
“어허~그놈 성질은~오더 떨어지기 전엔 안된다. 잘 몬허믄 니랑 내에서 끝나는게 아니여, 우리 조직 다 끝장난다. 행동 조심혀라.”
“야쿠자가 뭐 무섭소! 까짓거 사시미 들고 내가 앞장서것소”
“아이구야 춘삼아 형 말 들어라. 검찰 짭새 깡패 다 한편이여. 우리만 죽어”
“허~참 그 놈 면상이나 함 봤으믄 하네~ 오더 내린 새끼”
“알라고 하지마, 다친다 진짜”
“알았응께 끊드라고요.
“그려그려~수고햐~”
“야~후~”
고시텔 총무이자 그의 심복인 춘삼이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녀의 집은 일본인데, 중국에 있는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나에게 대한 태도, 문자로 봐서는 유키가 떨어진 듯하고, 알 수 없는 전화번호는 단순히 장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 봐도 연락이 되지 않도록 조작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말, 자신의 아빠를 조심해라 라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었다.
하지만, 그 답은 얼마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고시텔은 중앙 냉난방이었는데, 천정에 환풍기처럼 달린 구멍으로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월세가 사십여만원이 넘는 곳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냉방이 너무 약했던 것이다. 건물과 장비가 열악해서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참았었다.
하지만, 올해 같은 살인적인 더위에는 나도 점점 인내심에 한계가 왔고, 급기야 침대 위에 올라가 틈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천정에는 동그란 원으로 과일을 잘라놓은 구멍이 돌아가며 있었는데, 그 구멍으로 냉난방이 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 원 가운데는 철로 된 동그란 손잡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눌러보기도 하기 돌려보기도 했다.
‘어! 돌아가네’
나는 버튼을 잡고 돌렸는데, 한 바퀴를 쭉 다 돌렸는데도, 삼분에 일 가량의 구멍이 막혀진채로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쌓인 먼지를 후후 불면서 봤지만,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막혀있나 싶어 그 구멍을 핸드폰으로 비춰보니 조그마한 렌즈를 비롯한 기계장치로 보이는 물체가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감시용 소형 카메라가 분명했다.
‘헐 왠 몰카여 미친 거 아냐. 뭐라도 훔쳐갈까봐 지랄인가. 아니지 주인이 게이인가 경찰에 신고해버릴까’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너무도 황당하고 이상한 경험이었고,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돈 좀 있고 영향력 있는 인간들이나 흉악범죄에만 관심 있는 견찰이 과연 내 말을 믿어 줄까 싶었다. 예전에 노트북을 훔쳐가서 신고했는데도 도둑이 들었는데도 단 한 번도 반응도 없었고 와보지도 않았던 경찰이 믿을 리가 없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스마트 폰으로 찍고, 검은 테이프로 환기구를 막아버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다른 고시텔로 신속하게 옮겼다. 물론, 거기도 안전한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얼마 살지도 않았지만, 그것도 짐이라도 이사하는데 이동하는 것에 번잡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후로 나는 가는 곳 마다 무언가 있지 않을까 싶어 훑어보고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분명, 어디에도 나를 감시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찝집함을 숨길 수 없었다. 길을 가다가도 회사에서도 누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며 두리번거리거나 오싹함이 가득했다.
전에는 알지 경험하지도 알지도 못했던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다시 유키의 아버지가 말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때였던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이 실체는 없지만,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대강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계속 기분탓이라고 스스로를 진정 시켰지만, 그것은 내 느낌과 감정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아버지와 이야기한 그 순간부터 나에 대한 감시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게 어떤 결과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나는 직감했다. 내가 아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고, 하루 하루 결과물을 내지 못하면, 정말 유키와의 관계는 고사하고, 나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위기감만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좌절하더라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털어낼 수 있었던 유키와의 평온함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지 날이 갈수록 나에게 선명히 다가왔고, 그것을 다시 찾을만한 기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결과는 분명이 나온다. 그것은 순리이며, 그가 나에게 준 기회이자 룰이었다.
**안녕하세요. ^^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한창 바쁘기도했지만, 스토리가 좀 막혀서 고민좀 했네요.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안그랬음 좋겠네요. 평가는 독자분들이 하는거지만서도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