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주에서 역사체험을 했다.
부석사, 금성대군신단, 소수서원, 선비촌, 손흥읍내리벽화고분에 갔다.
참고로 많이 길어요.
1. 부석사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다.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공부 하다가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한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신라로 귀국하는데, 이때 문무왕이 당나라와 싸울 수 있도록 절을 세우라고 해서 세운 5개의 절 중 2번째로 세운 절로
봉황산의 중간에 있다.
그래서 올라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은 108개인데 108은 불교에서는 좋은 수라고 한다. 계단이 위에서 보면 어떻고 밑에서 보면 어떻고 하는 얘기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되어서 선생님이 이 글을 보시면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좋겠다. 계단을 올라가면 탑이 있는데 그 곳에서 가이드 선생님이 말해주시기를 탑에서의 가로선은 언제 세워졌는지를 나타낸다고 한다.
아, 맞다. 이름이 외우기 어렵던 선묘 낭자.... 선묘낭자 이야기를 하자면 의상대사가 아까 말했듯이 중국(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부터 얘기를 꺼내야 한다. 선묘낭자는 의성대사를 짝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런데 자기가 모르는 사이 의상대사가 귀국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선묘낭자는 죽어서 용이되어 의상대사가 귀국하는 동안 탄 배를 호위하며 귀국을 도왔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절을 지을려고 명당을 발견했는데 나쁜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무리가 의상대사가 절을 짓는 것을 방해하자 용으로 변한 선묘낭자가 3번인가(?) 돌을 들어서 겁을 주었더니 도망을 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 절이 바로 '부석(뜬 돌)사' 이다. 선묘낭자는 그때부터 석용이 되어 절 밑에 묻쳤는데 일제강점기때 일본놈들이 파헤쳐봤는데 진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까 그 뜬돌은 아직도 자리에서 떠있는데 택리지라는 책에는 실로 직접 실험을 해보았더니 정말 통과가 되더라고 한다.
부석사는 기둥에서도, 불상에서도 신기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기둥이 모양이 어떻냐면 배흘림 기둥형태 이라는 건데 뱃살있는 원기둥????
하여튼 중간이 약간볼록한 모양이었다. 두번째로 오래된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는 기둥은 길이가 다르다는 점도 신기 했다.
무량수전에는 문에 들어가면 불상이 딱 보이는데 아니고 서쪽에 있다. 이것은 문무왕이 동해를 지키고 있으므로 서쪽을 지킨다는 뜻이다.
또, 기둥사이에 '공포(?)'라는 것은 고려시대 만의 특이한 건축방법이다고 한다.
부석사는 건축적으로도 매우 의의가 있다. 1300년에 지어진 무량수전과 200년 뒤인 1500년에 지어진 안양루의 지붕 가로 길이가 정말 딱! 2 : 1 비율이었다. 이런 것들을 보아 절 하나를 짓는데 이런것들을 다 고안해서 짓는 우리 조상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이런게 부석사에 세계 건축학과 학생들이 자주 온다는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풍경을 얼마나 좋은지 명당이라고 하더니 소백산맥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모습이 무척 대-박이었다. 단풍이 들어서 와.. 정말 진짜 절이 이렇게 산과 잘어울릴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난 잘 모르지만 이런게 진정한 건축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내가 가장 신기 완전 신기했던 거는 의상대사 진영을 모시는 조사당의 처마밑에 있는 선비화라는 것이다. 이 선비화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서 생긴 나무인데 처마 밑에 있어서 비를 맞지 못했다. 물도 주지 않은 터라 자랄 수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자랐을까는 의문 이고 어떻게 길이가 딱 처마를 뚫지않을 만큼만 자란 것도 의문이었다.
오늘 배운 걸 쓰다 보니 부석사 이야기가 너무 길게 되었다.
2. 금성대군신단
금성대군은 세조 왕과 형제관계였다. 금성 대군은 세조의 행동을 옳지 않다고 여기고 귀양지에서 아마도 사또(?)였던 이보흠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관청의 노비가 밀고를 하면 노비 신분을 풀어준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충주로 가서 고발했다. 그래서 세조는 그들을 모두 죽이고 이 마을을 역적의 마을이라고 220년 동안 했다고 한다. 금성대군신단에서 현재에도 그런 충신들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3.소수서원
일단 소수서원에서는 가이드 선생님이 되게 다리아파서 몰래 앉기가 양심이 찔릴 것 같을 정도로 설명을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하다.
소수서원을 들어가기 전에 죽계천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퇴계이황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고 쉬기도 하셨다는 정자와 글자가 써인 바위가 있었다. 글자가 백운동 경이라고 써져있다. 이것은 죄없이 죽은 사람들이 하도 밤에 사람들을 놀래켜서 공경할 경 이라고 쓰고 제사를 지냈더니 물러갔다는 것이다.
뭐 그런 전설이 있고..
안향이라는 분이 우리나라에 유교의 부분인 성리학을 들어오게 하셨다 . 이 공로를 인정 받아서 왕처럼 대접받게되었는데 그래서 제사를 해서 소를 바칠때 가장 좋은 소를 뽑기위한 심판대(?)
도 있었다. 이것은 종묘와 함께 우리나라에 2개 밖에 없다.
소수서원은 주세붕이란 분이 군수로 있을 때 세우신 서원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사립대학이다. 원래 이름은 백운동이다. 왜냐하면 안향의 고향이 백운동여서 이기도 흰 구름이 많이 껴서 이기도 하다. 소수라는 이름은 몇년후 퇴계 이황이 군수로 왔을 때 임금의 승인으로 공립대학으로 바뀌었을 때 받은 이름 이다. 소수 서원이라 적혀 있는 간판은 명종의 친필이다.
4. 선비촌
서원에 총장실 교무실 기숙사가 있는 것도 신기했다.
선비촌은 빈부차와 집형태의 차이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부자면 부자일수록 크고 웅장하고 안채가 안보이며 따뜻한 느낌이 드는 듯 했다. 중부지방이어서 추위를 막을 수 있도록 ㄷ자 또는 거의 ㅁ자 모양이 많았던 거 같다.
5. 순흥읍내리벽화고분
남한의 2개의 벽화 무덤 중하나인 순흥읍내리벽화고분은 4,5개의 벽화가 있는데 악령을 막는 문지기, 극락왕생을 바라는 그림 등 이 있다. 이들은 고구려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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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쓴 얘기 세숫대야, 일본군 말뚝얘기, 피끝마을, 벽화 천장, 터돋움집 등등 많지만 너무 길어질것 같아서 생략하고....
쌤~~ 댓글 달아주세요.
밑에건 보너스~~
↑선비화
첫댓글 태준아 어쩜 이렇게도 자세하게 적었니 넌 역쉬~~멋진녀석이야♥♥ 태준이 보고서를 읽으며 다시한번공부를했단다 사진도 너무멋지구나 계단은 아래에서위로처다보면 위로갈수록 좁아보이고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처다보면 이번엔 아래가좁아보인단다
계단의 길이는 똑같단다 그런데 계단의길이가 긴것도 아닌데 이런착시효과가 나타난단다 아마도 부처님이 계시는곳이니 함부로 행동하지말고 조심하란뜻이겠지 이것또한 우리조상들의 지혠로움이 아닐까해
아,, 역시 우리조상님들...지혜로우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