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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6일 문장 강의 내용
1.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 문장: 주부 + 술부의 관계
* 주부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면 운문이고 그렇지 않다면 산문이다.
*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면 시적 산문이고 불투명하면 산문이다.
* 서정시의 기본은 현제시제다.(리얼감. 사실감이 드러나야 한다)
* 글의 기본 : 막연한 의미의 단어 사용 금물
(예) ~처소격조사(장소에 따라 붙는 조사)
[2010 부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잘 못 꾼 꿈이 지워진 거예요 마음이 시끄럽네요 쮸릿, 쮸릿, 칫, 칫 물이 끓고 있나요?
머릿속을 지우개로 박박 지웠더니 보글보글 구름이 생겼어요 요리에 앞서 별표 3개라는 걸 잊지 마세요 너무 많이 문지르면 검게 비구름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럼 한쪽으로 쓸어버려야 하죠 쓸려나간 구름은 어디선가는 필요로 하거든요 아픈 배 문지르던 엄마의 손길로 잘못 디딘 첫발을 지워봐요 뒷걸음질치며 구름이 송골송골 피어날 테니까요
일단은 지나가는 뜬구름 낚아채 통째로 집어넣어야만 해요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 토끼 기린 강아지 오빠 엄마 물고기 할머니 얼굴로 수시로 변하거든요 강아지가 싫으면 절대로 피해야 하니까요 오빠와 엄마를 요리하고 싶으면 적절할 때 낚아서 납득시킬만한 꺼리가 필요해요 잘못하면 당신이 설득 당할 테니까요 할머니에겐 안개구름 한 소반 선물해 봐요 그럼 그 속에 감춰진 추억을 하나하나 따내며 끄덕끄덕 하시겠죠 그리고는 겹겹이 포개진 뭉게구름 동강동강 썰어야 해요 구름의 남쪽, 비늘구름 잡아 당겨 살점만 떠 넣고요 다시 제 위치에 걸어놓아야 해요 요리는 늘어놓고 하면 곤란해요 제 살점을 잃은 구름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른 형상으로 변해 떠나가버려요하악, 그새 악어가 입 딱 벌리고 급 하강하는 줄 알았어요! 간이 철렁했죠 긴 꼬리를 끌며 지나간 뒤에 간을 보니 싱거워요 소금을 좀 더 넣어야겠네요
요리를 하다 보면 알게 되죠 구름을 절대 새총으로 쏘아 잡으면 안 돼요 조리법에 어긋나는 일이죠 빗맞기라도 하면 냄비에 구멍이 나요 조루처럼 빵빵 뚫린 구멍으로 빗줄기가 쏟아질테니까요 조리법에 의하면 그 총탄자국은 밤에만 보인다지요 그것은 인간들이 쏘아댄 빗나간 꿈이에요, 별들의 실체라고도 해요요리가 다 됐나요? 새털구름이 하늘 가득 웃자라 피었어요 여러 빛깔로 아롱진 꽃구름이 피었어요 배추흰나비가 노루귀 꽃잎에 앉았어요 지나가던 바람 배추흰나비 날개깃에 머무네요
요리는 다 되었나요, 꽃구름?
[심사평]
상상력 증폭시키는 힘과 감각
시 부문 투고자들 중에서 본격적인 논의 대상으로 압축된 것은 강가영, 김승원, 최류, 김경덕, 심명수 등이었다. 이 다섯 사람의 작품은 각각 개성적인 목소리와 일정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다.
강가영의 섬세한 조형력, 김승원의 현실에 밀착한 시선과 절제된 표현, 최류의 독특한 존재론적 사유 등은 모두 소중한 것이었지만, 당선작이 되기에는 다소 인상이 약했다.
마지막으로 김경덕의 '포쇄도'와 심명수의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를 두고 적지 않게 고심했다. 김경덕의 시가 고전적 기품을 지니면서도 언어를 탄력있게 운용할 줄 알고 시의 묘미를 만들어내는 솜씨를 보여준다면, 심명수의 시는 착상이 재미있고 상상력을 증폭시켜 나가는 힘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대조적인 세계 중에서 심사위원들은 결국 좀더 젊고 신선한 목소리를 선택했다. 심명수의 투고작 10편이 두루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믿음이 갔다.
당선작인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는 상상력의 요리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이미지들의 변주를 보여준다. 이런 분출이 다소 소란스럽고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이탈과 생성의 순간은 즐거운 몽상으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라는 구절처럼 감각의 촉수가 예민하고 날렵한 이 신인이 앞으로 차려낼 풍성한 시의 밥상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정현종. 정호승. 나희덕)
[2010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직선의 방식 / 이만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한 정직이다
밤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
지평선이 반듯하게 선을 긋고 열리는 일이나
별빛이 어둠 속을 뻗쳐와
여과 없이 눈빛과 마주치는 것도
직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
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로 인하여 빨래는
마음 놓고 햇볕에 말릴 수 있을 것이다
바지랑대는 빨랫줄로 말미암고
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더욱 올곧아지는
그 기꺼운 방식
[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풀터가이스트 /성은주
하늘은 별을 출산해 놓고 천, 천, 히 잠드네
둥근 시간을 돌아 나에게 손님이 찾아왔어 동구나무처럼 서 있다가 숨 찾아 우주를 떠돌던 시선은 나를 더듬기 시작하네 씽끗, 웃다 달아나 종이 인형과 가볍게 탭댄스를 추지
그들은 의자며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가끔, 열쇠를 집어삼켜 버리지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 밑에서 울곤 해 스스로 문이 열리거나 노크 소리가 들릴 때 화장실 문은 물큰물큰 삐걱대며 겁을 주기도 해 과대망상은 공중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리지 끊임없이 눈앞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조였다 풀어져
골치 아픈 그들의 소행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광대를 찾아갔지 광대는 자신이 두꺼운 화장에 사육당하고 있다며 웃어야 할 시간에 울고 있었어
천장을 훑어 오르기 위해 어둠 속에서 그들은 그림자를 흔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때론 엉성하게
그러다 접시가 입을 쩌억 벌렸어
누워있던 골목들 일제히 제 넋을 출렁였지
붙어있던 그들은 홀가분하게 나를 떠났어
온갖 소동 부리고 떠난 자리,
무성한 음모만 시끄럽게 남아있네
* Poltergeist: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靈)
[당선소감] 문학은 나의 치료제
시를 쓸 수 있도록 해준 '지금'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세상 만물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싶습니다. 무엇에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문학은 나를 발견해주는 치료제였고, 소외된 사유를 관계의 중심으로 옮겨 놓아 주었습니다. 시는 제 파토스에 하나하나 리본을 달아주며 질서 있게 나를 복원시키려 했습니다. 의미 없는 의미들이 부식되던, 어제는 감각적인 경계를 만나 별도의 설명도 없이 포장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할 대상을 찾아 떠났습니다.
당선소감을 쓰는 날 이사를 했습니다. 눈 때문에 살짝살짝 하얗게 지워지는 길 위에서 생각했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지워져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지워지는 건 두려운 게 아니었나 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USB의 고장으로 모든 작품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잃었기 때문에 얻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기뻐해 주실 지도교수님과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한남대 문창과 교수님들, 학점을 잘 주셨던 이재무 교수님, 늘 멘토링 받고 싶은 김동석 소장님, 시정신학회 회원들, 사랑하는 친구들, 당근, 앨리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믿고 지켜봐 주시는 아버지, 독수리 오형제보다 강한 우리 오자매 언니들, 형부들, 조카들, 사무엘 사랑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엄마, 할머니, 하느님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명료하게 밝힐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시다운 시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한남대 대학원 문창과 재학 중
[심사평] 불안을 이미지로 형상화… 문학적 역량 높이 평가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성은주의 '폴터가이스트' 외 2편과 김아타의 '달로 날아가는 방' 외 5편이었다.
김아타의 시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체 실험실에서 나온 듯한 그의 의욕적인 작품들은 특이한 언어의 선택과 뒤틀린 배치, 엉뚱한 결합을 통해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물론 평범한 문법을 거부하려는 신인의 자세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단절을 앞세우는 듯한 난해하고 모호한 문장들을 누가 읽어낼 수 있겠는가. 현란한 수사에의 도취는 자칫 시의 본질을 벗어난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언어의 쇄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작은 것과 큰 것,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해 내는 큰 안목을 갖추어야 비로소 독자들이 의심하지 않는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시를 심사 중인 문정희(왼쪽)ㆍ최승호 시인.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성은주의 '폴터가이스트'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든든한 문학적 역량이 느껴졌고 신뢰가 깊이 갔던 작품이다. '폴터가이스트'는 불안을 형상화했다. 불안을 토로하는 것은 쉽지만 불안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심이 묻어 있는 어눌하면서도 차분한 어조, 공포를 잠시 해소시키는 짧은 농담, 살얼음처럼 떨리는 섬세한 문체로, 불안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고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2010 전북일보 신춘문예-시 당선작 ]
먼지 -김혜원
1. 무게
체중계를 꺼내려다
나보다 먼저 올라앉은 먼지를 본다
저것도 무게라고 저울 위에 앉았을까
털어내는 순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저 가뿐한 내공
내가 눈금처럼 꼼꼼히
몇 장의 졸업장과 얼마간의 통장으로
몸집 불리는 동안 너희는 세상을
깎고 갈고 부서지며 삭으며 살아왔구나
저울 위에 앉아 제 발자국 헤아리다가
세상 변두리 어디쯤 다시 찾아 날아올랐겠지
버려야만 이루어지는 저 가뿐한 무게
달 수조차 없는 그 삶에
문득 마음 무겁다
2. 높이
먼지도 세월을 견디면 높이를 갖는구나
어둠 속에서 말을 잊다보면 눈이 밝아지는 법, 나는
저 허름한 생의 목록을 다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양말이 벗어놓은 하품 바스러진 각질의 한숨 비틀대던 머리카락과 맥없이 흘러내리던 낡은옷의 넋두리 나뒹굴던 보풀의 푸념 몇 낱 희미해진 거울의 깨진 비명도 몇 개,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뒷걸음쳐 이 구석 찾았을 게다
내일이 꼭 오리라 믿었을 그들
나는 오지 않은 날의 달력을 찢어
숨죽여 쌓인 어제의 높이를 가만히 들어 올린다
3. 길
차 안에 쌓이던 먼지
어느 날 흔적이 없어졌다
닦은 적도 없는데 저희끼리 뭉쳤다가
알갱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다
어디든 다시 떠돌고만 싶은 것 같아
조심조심 발판을 걷어 밖에 뿌려준다
순간 바람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일제히 질주하는 저 하얀 맨발들
길이란 열망이란 얼마나 서늘한가
천 길 절벽은 허공에도 있어
지상으로 추락하여 얼룩지는 생이여
흙물이 제 지나온 길 가라앉히듯
빗물에 씻겨 다시 먼 길 떠나는구나
밤하늘에 담겨 반짝반짝 눈을 뜨는 별들도
떠나온 별을 찾아 몇억 광년 속으로
저렇게 먼지처럼 뛰어든다던데
나 이제 몇십 킬로의 동력을 켜고
내게 남은 시간의 벌판으로 달려간다
[2010 국제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작 ]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 박진규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
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놓았다 달빛인 양
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산책자들은 젖은 내면을 한 장씩 달빛에 태우며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 이곳이 너무 단조가락이어서 탈이라는 듯
동해남부선 기차가 한바탕 지나간다
누가 알았으랴, 그 때마다 묵정밭의 무들이
허연 목을 내밀고 실뿌리로 흙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해국(海菊)은 왜 가파른 해변 언덕에만 다닥다닥 피었는지
아찔한 각도에서 빚어지는 어떤 황홀을 막 지나온 듯
연보라색 꽃잎들은 성한 것이 없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청사포 절벽을 떨며 기어갈 때
아슬아슬한 정착지를 떠나지 못한 무화과나무
잎을 몽땅 떨어뜨린 채 마지막 열매를 붙잡고 있다
그렇게 지쳐 다시 꽃 피는 것일까
누구나 문탠로드를 미끄덩하고 빠져나와 그믐처럼 시작한다
*문탠로드(Moontan Road)-대한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달맞이언덕에서 달빛의
기운을 받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2.2㎞의 산책로.
[2010 동양일보 신춘 시 당선작]
실을 잣는 어머니 / 성준
내 어린 아침의 마루에서 실을 잣는 늙은 어머니.
그녀의 낡은 집 처마 빈틈 사이엔 야윈 바람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바람 줄기를 물레로 감아올렸다.
부활을 꿈꾸다 죽은 고치.
그녀의 몸에선 그 고치 냄새가 빠질 줄 몰랐다.
뜨겁게 삶아진 고치에선 비린향이 났지만
천천히 물레가 돌때마다 바람 실이 꼬이며
뽑아지는 실 줄기에선 언제나 바람향이 났다.
늦둥이인 나는 동네 아이들의 놀림과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컸다.
어머니는 울고 들어온 어린 나에게
주름살만큼 많은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 쓰디쓴 이야기를 소화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고
실 자락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를
나는 여린 뽕잎처럼 오물거리며 잠들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어린 꿈을 품고
하나의 고치가 되어 부활을 꿈꾸며 실을 잣았다.
그날도 그녀는 마루에 앉아 종일 물레를 돌렸고
처마 밑 허공에 걸린 마른 옥수수 따위가
마른 뽕잎 부스러기처럼 떠다니는 바람에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평범한 날에 나를 떠났고
어린 나는 그런 날은 좀 더 특별하게 올 줄 알았다.
어머니는 단단한 나무 관을 고치삼아 깊은 잠에 들었다.
석양 무렵 마당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태우자
그녀에 일생의 고치가 흐릿한 연기로 피어올랐고
연기는 짙은 밤하늘 천으로 올올이 흩어졌다.
어른이 된 석양의 끝자락에서
나는 차가운 밤의 천을 두르며 그리움의 고치를 잣는다.
<2010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허氏의 구둣방 -이미화
발 끝에 달을 달고 저녁 강을 건너고 있는 허氏
구름처럼 떠돌았으므로 그의 생은
한쪽만 유난히 닳은 구두처럼 삐뚜름하다
그의 구두처럼 다 허물어져가는
옥봉동 산 1번지 아파트에
조등처럼 별이 걸릴 때 저녁하늘은
가난한 마을의 착한 지붕을 건너가면서
지상의 가장 낮은 바닥부터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이동전화기 판매점에 다니는 착한 처녀의
구두 뒷굽을 갈아 끼우던 허氏의 남루한 저녁에
잠깐 화사한 웃음이 번진다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에 맞춘 그의 굽은 등 뒤로
따각 따각 처녀의 발걸음이 이동전화기 전화 연결음으로 터진다
중심을 놓고 뒷굽을 맞춘 구두가 흔들린다
일용할 하루의 노동이 땀 내음 밴 구둣방을 넘보기도 하지만
늘 기우뚱 한쪽으로만 기우는 그의 세상에서
수선 중인 구두는
기운 없는 그의 한 쪽 무릎에서 완성되는 절망이 키운 꿈이다
다시 언제 그의 세상이 흔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구두 뒤축이나
밑창만으로 키워 놓은
환한 세상이 그에게선 자라고 있다
하나 둘 찾아와 박힌 별들의 뒷자리로 들던 그가
창문에 걸린 어둠을 후다닥 걷어내고
달빛 속에서 주춤거린다
볼이 넓고 우직한 신발 속 그의 한쪽 발이
나머지 발의 오늘을 타전한다
심사평
지난해보다 응모 작품은 줄었지만 작품 수준은 뛰어났다는 것이 올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의 중평이었다.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려 보낸 작품 중에서 ‘오르골’ ‘몽골숙희’ ‘허씨의 구둣방’ 등 3편의 시를 최종심에 두고 심사자의 숙독과 토론이 있었다.
‘오르골’은 맑고 아름다운 시다. 시 속에서 오르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서정적 특성에 비해 주제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남들이 쉽게 공감하는 주제가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작이 가지는 독특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몽골숙희’는 다문화시대를 대변하는 개성 있는 주제의 시다. 그 시선도 건강하다. 그러나 시를 끌고 가는 변주가 평범하다. 평면적인 구성이 아닌 좀 더 입체적인 구성이 앞으로의 시 창작에도 필요할 것 같다.
‘허씨의 구둣방’을 두고 심사자 간의 이견이 컸다. 시를 두고 장시간의 토론도 있었다. ‘허씨의 구둣방’은 따뜻한 시고, 세상으로 보내는 시적인 메시지가 희망적이다. 그러나 시적인 긴장이 다소 늘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함께 투고한 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사를 죄는 듯한 압축이 필요했다.
심사자들은 올 시 부문에 당선자 없음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의 기회가 돌아오는 신춘의 자리인 만큼 다른 시들에 비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허씨의 구둣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는 난산 심사 끝에 시인으로 출발하는 만큼 앞으로 경남신문 신춘문예가 배출한 한국 시단의 좋은 시인, 치열한 시인으로 빛나길 바란다. 본심에 오른 분들과 ‘하늘에 상현달이 뜬다’ ‘꽃무릇’ ‘보따리 판타지’ ‘장수풍뎅이 우화기’의 투고자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정일근, 김선학)
<201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산부인과 41병동에서 / 김현숙
목숨 걸고 터를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강제 철거로 문책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불길이 솟았다 강대병원 41병동 입원실에 누운 그녀의 마음도 이미 화염에 휩싸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랑이 사이 좁고 음습하게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 명명한 것은 D25, 20년 동안 빈방을 먹고 몸집을 키워 집채로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병실은 침묵의 섬, 형광 수족관 유리벽에 갇힌 여자는 영락없이 부레를 잃고 바닥까지 가라앉은 넙치가 되었다 TV는 밤낮없이 용산 강제철거 참사를 알리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는 내 깊은 동굴 속에서도 일어났다 마취 4시간 만에 피 주머니에 고인 D25는 몇 날 며칠 창자를 지나 억울하다고 빈터에서 울었다 화염에 휩싸여 죽은 용산참사 가족들이 TV 화면 속에서 실신했다 불을 낸 책임이 넙치라고 했다가 꽁치라고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그녀의 몸이 점차 수족관이 되었다 밤마다 몸을 떠난 부레가 허공을 날고 납작하게 엎딘 시간들을 물고 사라지는 갈치 떼가 보였다 스산한 야광을 구경하는 관객은 네모난 아파트와 깜박이지 않는 붉은 십자가들뿐, 그런데 왜 십자가는 약자들의 빛이 되지 못할까 크레졸 안개가 어지러웠다 가끔 배를 움켜쥐고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은 투명한 해파리 촉수에 찔린 손을 높이 쳐들었다 의사는 여성을 잃은 대신 생명을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D25를 죽이고 그녀가 산 수족관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도 잃고 터도 뺏긴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신문이 말했다 그들에겐 죽을지언정 터를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은 물대포로도 꺼지지 않는다 허공을 얻은 몸은 이미 바다가 되었을 테니.
*D25 : 여성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근종의 종류
[2010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골목의 각질 /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심사평
불안한 청춘의 고통과 고뇌 긍정적으로 승화
700여명의 투고자 중 최종심까지 올라온 투고자는 모두 11명. 이 중에서 강윤미, 이명우, 장예은, 최영숙, 정한희 등 5명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논의한 결과,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과 이명우의 ‘붉은 도로’가 남게 되었다. 이명우의 경우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나 내용이 결핍돼 있다는 점, 삶의 체험을 시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부족하고 설명적인 데다 과장이 심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시는 아이디어로 쓰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쓰는 것이라는 점, 아이디어에 의존하면 실패할 확률은 적지만 그런 시인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 이명우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되었다.
반면 당선작으로 결정된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은 삶에서 우러나온 시가 진정 좋은 시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 시는 불안한 청춘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골목이라는 구체적 삶의 공간을 통해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특히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라는 부분은 호소력이 뛰어나다.
시는 상식적인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체험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강윤미의 앞날에 신뢰가 갔다. 다만 투고된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했는데 시에 사족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더러 있어 아쉬웠다. 시에 사족이 있으면 완결미가 떨어진다. 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는 게 아니라는 점, 침묵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한국시단의 샛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2010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녀의 골반 / 석류화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다녔다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
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나도 작은 나비모양 엉덩이를 달고 나왔던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힘겹게 좌판에 쪼그리고 있었을 때, 날품팔이, 품앗이 할 때 그녀 속의 나비가 조금씩 앓고 있었던 거죠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2010 경인신춘문예·시 당선작]
차우차우 -김진기
사자개 차우차우
긴 갈기를 바람에 빗질하며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칠장사 참배객의 발길이 어스름을 따라 사라지고
스님의 독경 소리 어둠에 몸을 누이면
티베트에서 온 차우차우
몰래 경내를 빠져 나가 칠현산에 오른다
바라보면 멀리 눈 덮인 고향이 보인다
달라이라마가 포탈라 궁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른 이후
그는 이곳으로 흘러왔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발소리 지우면서 다가오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듯
괜찮다 괜찮다 가벼이 꼬리 흔든다
꿈속에서나 만나는 그리운 히말라야 캄파라 패스를
이불처럼 두른 라싸 포탈라 궁
누가 구름 위에 백홍의 궁전을 지었나
돌아가는 마니차는 눈빛에 반짝이고 막 피어 올린 향내가
미로 같은 포탈라 경내를 적신다
얼어붙은 티베트 고원을 오체투지, 몇 달을 넘어온 장족이
다리를 질질 끌고 도착할 때마다
차우차우 맨발로 뛰어 나간다
고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
갈라터진 손바닥 무릎에서 흐르는 피, 내세의 제단에 올리면
신은 때때로 길을 비켜 준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먼저 왔는지
칠장사 차우차우가 도착하기 무섭게 라싸 차우차우들이 몰려나온다
부여잡고 얼굴 부비는 뭉클한 안부가 골목에 흥건하다
[201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검은 구두 / 김성태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그는 나를 짐승처럼 끌고 왔습니다
오늘 나는 기울기가 삐딱한 그를 데리고
수선가게에 갔다가 그의 습성을 알았습니다
그는 상처의 흔적을 숨기기 좋아하고
내가 그의 몸을 닳게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가끔 그는 코를 치켜들기 좋아합니다
하마의 입으로 습기 찬 발을 물고 있던 그가
문상을 하러 와서야 나를 풀어줍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그를 만져보니
새의 날개 안쪽처럼 바닥이 움푹 파였습니다
두 발의 무게만큼 포물선이 깊어졌습니다
그의 입에 잎사귀를 담을 만큼
소주 넉 잔에 몸이 가벼워진 시간
대열에서 이탈한 코끼리처럼
이곳까지 몰려온 그들이 서로 코를 어루만지며
막역 없이 어깨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취한 그들이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에게 정중한 인사도 없이
주인이 바뀐 지도 모르고
구불구불 길을 내며 집으로 갑니다
〔2010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후가 달아나요 / 이미자
강바람이 불 때마다 프릴 달린
스커트 자락 출렁거려요
산은 어느새 태양의 목, 낚아채 오픈카에 태워요
그러자 쉿!
재빠르게 산 스커트 안 들여다봐요 더듬는 하늘
충혈 됐네요 파랗게 놀란 강
소매 걷어 철썩! 뺨을 때려요
얼얼해진 태양, 차에 앉자마자
노을 짙게 뿌리며 달아나요
찌그러진 엔진소리 허공을 찍어대구요 저녁은 찰, 랑
Mp3 달고 달아나요
쉿! 강물 속 구름 건들건들
곤두박질쳐요 옷엔 검은 구름 박혀버렸네요
지나가던 바람
웃음으로 입방아를 찧어요
스커트 또 아찔하게 올라가구요, 오후는 눈 질끈 감아버립니다
하루가 기절해요
21g의 푸른 영혼이 잠시 흘러가고 있어요
회색 모자를 쓴
저녁,
어둠이 들렸네요
<2010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름의 화법 / 하기정
구름은 여태 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어
형상은 당신 머릿속에나 있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물방울이 아니야, 보다 가볍지
당신의 어깨를 적실 수도
당신의 입가를 핥을 수도 있지
그러니 나를 구름이라 이름 짓는 건 아주 치명적이지
네가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들, 네가
토끼, 라고 부르면 난 하마처럼 하품을 해 네가
고양이, 라고 부르면 난 호랑이처럼 포효하지 네가
의자, 라고 부른다면 금세 침대를 만들어 줄 수도 있어
만지면 폭삭 꺼지는 먼지버섯, 그러니 나를
버섯이라 불러도 좋아
형상은 당신 눈 속에나 있지
그러니S라인 B라인은 네 이름
무대가 아닌 곳에서만 춤을 출거야
내 음악은 내 귀로만 흘러들어 언제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나를
이해하려 시도한다면 그것은 서툰 오해
나를 만지려든다는 건 아주 절망적이야
롤러코스터를 생각한다면 모르지
추락은 오로지 빗물, 눈물
행여 구름을 담아서 팔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의 시선을 구부리는 일
악어, 라고 하면 도마뱀이 되어줄래?
고래, 라고 하면 돛단배가 되어줄래?
나에게 나를 너, 라고 불러줄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2010 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작>
뼈의 기원 안병호
1.문득, 뼈가 시려오면
내 뼈의 아득한 시원을 찾아
눈과 바람의 길을 걸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이
대체로 나의 문명이지만
그것은 비석에 판각되거나 정의되어진 것만이 아닌
단단한 그 무엇이 내 속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말 속에도 뼈가 있다하고
문중의 아재 한 분은
바람조차 투명한 뼈를 지니고 있다하므로
뼈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모든 족속은 그 조상으로부터
몇 개의 맑고 흰 뼈를 물려받아 사는 동안
또 한 생이 고요히 마감되는 것이다
“뼈가 시릴 적엔 몇 모금 음복술로 덥히면서 오백년 전, 통정대부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삼십대에 무슨 사화로 졸(卒)하신 당신, 처자식은 관노가 되고 그 때 당신의 눈물은 눈발이 되어 사방 백리까지 날렸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뼈마디마다 수수눈꽃을 피우면서 아버지와 저의 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눈발 속에도 맑은 뼈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가 졸(卒)하시던 그 때처럼”
2.아버지는 신발공장 공원에서 출발하여
생의 마지막 즈음 공사판 반장직에 올랐는데
젊은 나이에 병으로 졸(卒)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뼈만 남은 문양으로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채, 흐린 물기를 보였는데
물기는 뼈를 타고 흐르다 서서히 결빙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앙상한 뼈의 모습이
너무 무섭고도 생경해 입관 하던 날조차
차거운 뼈를 따습게 데우지 못했다
그 날에도 먼 곳에서부터 눈발이 날려 왔고
오래지 않아 강아지처럼 여린뼈를 가진
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 오늘 밤 수북이 눈이 내립니다. 눈송이 송이마다엔 당신의 눈물이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북편에서 날리는 눈발에는 종가에 계자로 와 당신 집안은 절손 된 9대조 조부님의 눈물도 보입니다. 저와 아이는 오늘 같은 밤이면 뼈를 살포시 맞대고 세상을 꿈꿉니다. 그래서 눈 오시는 밤은 참으로 마음 따습습니다.”
3.뼈가 잘 맞물려서 사계절을 보냈다
펼쳐진 시간 속에서
나의 뼈는 좀 더 유연해지고
아이의 뼈는 좀 더 옹골차졌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
뼈마다 하얀 풀꽃이 피어난다
향불을 피우는데 음력 시월 을해(乙亥)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린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상로기강霜露旣降
첨소봉영瞻掃封塋
불승감모不勝感慕
근이謹以
청작서수淸酌庶羞
지천세사祗薦歲事 상尙,
향饗
“당신들께서는 하얗게 뿌려지는 눈으로 혹은 투명한 축문의 곡조로 살아오십니다. 맑은 눈발 속 나폴 나폴 떠다니는 어린 것이 또 다른 뼈의 기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뼈를 추스르며 어린 뼈를 돌보려합니다. 아이를 가만히 껴안아봅니다.”
[2010년 영주신춘문예 시 당선작]
무인카페 / 김대 봉
한낮에 도두동* 먹거리가 철썩거리며 나를 찾네
자판기 커피만을 생각하다 탁자가 있는 찻집을 보고
구름 속으로 돌아가고 만 댕그런 햇살
간직한 차일遮日을 거두고 나면
공중이 어딘지 몰라, 너는 알아
내 귀가 화알짝 벌렁하네
어디선가 파도를 먹은 두더지
구들장과 천장을 맴도는 그런 카페에서
어머니의 삶을 운구할 허방을 찾고 있네
두 잔 같은 한 잔의 차가 물고기 비늘처럼 흐물거리네
탁자 위 무크지mook誌, 등자죽이 축축하게 오르고
해안도로 고불고불 사랑초草가 무럭무럭 자라네
드나드는 경고등에 실려 온 가을의 행간에
구름을 넣을 수 있는 자간이 있는 걸까
욕창을 사위하는 식탐에게 장침을 쑤셔 보지만, 쓰읍
구름이 한 잠자는 사이 나는 차디차게 휘어지네
꽁무니부터 잘려 나가는 찻잔 속 자연산 건덕지
갈매기 울음이 목 좋은 길목의 호래자식처럼 울려 퍼지고
밀물이 달아나기 전, 한 잔의 시간은 모금모금 나가네
벗집**에서 반숙되어 튕겨져 나가는 통통배 가로막 부위로
새참 같은 내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오고.
* 도두동 : 제주시 해안에 위치한 행정동
** 벗집 : 소금막
[2010 광주일보 시 당선작]
오르골 / 이 슬
나무의 뿌리들이 태엽을 감고 있는 시간
누군가 상자뚜껑을 열듯 소리를 쏟아내는 나무들의 춤
소리가 멎을 때까지 흔들리는 일에 한창이다
울긋불긋 어지러운 현기증을 다 털어낸 자리
나뭇가지를 뛰어 다니며 놀던 수액들은 모두 바람이 된다
앞뒤를 보여주며
숨기는 것 없다는 듯 보여주는 엽록의 투명한 연주가 길다
잎의 사이사이마다 음계가 반짝 거린다
새들이 앉았다 간 나무 밑 마다
불안한 노래가 가득 떨어져 있다
뿌리가 감고 있는 것은 깊은 어둠이다
칸칸의 어둠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들
가끔 잎을 털어내는 환한 시간이면 날아오르는 새들이 있다
가장 밝았던 한 때
꽃잎의 치어들을 다 허공에 날려 보내고
나무는 지금 푸르게 비어 있다
꽃의 그늘이 진 자리에 초록의 소리가 가득 하다
바람의 흔적이 가득한 나무 속
나이테를 돌아 풀어지는 태엽
평생 춤출 곡이 빙빙 돌아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푸른 치마를 입고 거꾸로 서서 흔들리는 듯
바람이 상자를 닫는 시간
음계들이 떨어진 나무 밑에는 그늘도 다 졌다
나선형의 나이테 그 길이만큼 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 / 이길상
잘 갠 속옷 속에는 영혼의 세숫물이 썩어간다
눈을 씻어내도 거리의 습한 인연들 내 안을 기웃거린다
내 폐허를 메울 사막은 그때 태어난다
반성하듯 내복을 차곡차곡 갤 때 올마다 낙타 한 마리 빠져나간다
밤, 속옷을 갤 때마다
개어지지 않는 내가 보인다
불운 견디게 하는 사막 풍경은 상향등처럼 켜지고
내 안의 나를 알고 있는 생이 뭔가 흘리면서도 아파할 것이다
서른 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감히 물을 수 없을 때 부르튼 입술은 길을 알고 있었다
맹인 바구니의 노래가 퇴근하지 못한 마음에 파고들수록
노래 속 세상을 그쯤으로 짚으며 난 힘겹다
감이 잡힐 나이, 노래의 무거움은 몸 밖에서 온다
우산 안에서도 젖는 내일의 삶, 울음 삼킨 시늉할까
그래 달콤한 사막 밤의 모래 폭풍은 고독으로 피어난다
몸 밖의 사하라, 헛것 두르며 새벽 추위마저 껴입는다
내 속 깊은 모퉁이는 안전하게 돌아나간다
안경은 양심의 속때, 나를 잘 아는 신발은 닳은 굽 한 장 더 깐다
사는 일로 얼어붙은 옥탑방, 열쇠 구멍 나를 열지 못했으므로
계단 낮아도 허공의 높이 착실히 밟아갔을 거다
응시할수록 더 귀 먹은 삶의 발목
흩어질 가시나무 속에 내 얼굴 보인다
발목 깊이 쌓이는 생
추운 종아리의 살빛, 많이 본 듯할 때
책과 길마다 죽은 하늘이 펄럭인다
속옷을 갤 때 후회의 올마다 낙타, 낙타들 쉽게 빠져나간다
거죽만 진지한 나의 사막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팝나무에 비내리면 / 황종권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회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키를 재어 보았는데요. 키 대신 등짝에 파도소리가 자라곤 했었지요. 해가 기울수록 길어지는 그늘은 내가 미리 살아버린 주름이었을까요. 이팝나무는 꽃을 버릴 때마다 나이테가 늘어갔던 거예요.
먼 바다에서 당신배가 물결을 가를 때마다 일어나는 물살이, 제가 엉덩이 깔고 앉아 있는 포구 끝에도 닿는 것일까요. 하얗게 터지는 물살에선 목욕탕 스킨냄새가 나네요. 바다가 물결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물결이 바다를 그물처럼 가두고 있단 생각을 했어요. 바다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다의 것이었거든요.
어둠이 달을 꽉 가두고 있는 밤은 비가 내렸지요. 어김없이 부엌은 생선 굽는 냄새에 몸살을 앓았고요. 저녁상에 올라 온 민어를 뒤집다가 손등을 얻어맞기도 했어요. 하늘에서도 물고기가 튀는 것일까요. 유리창에 맺히는 빗소리에선 심한 비린내가 나요. 그런 날은 이불속에서 뒤척거리는 일도 조심스러워요. 나는 당신에게 수평선을 그어 주던 아이였을까요.
당신의 주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던 달의 인력이 오늘밤은 시린 손가락으로 내 발목을 잡는 걸요. 밀물 든 바닷가에선 빗소리가 주저 앉고요. 잃어버린 당신의 키는 언제쯤 만조를 이룰 수 있을까요. 사리※와 같은 당신과 나와의 거리에선 빗소리가 쌓이지요. 비가 오는 밤은 달이 이빨이 아픈 꿈을 꾸는 건가 봐요. 이팝나무에 빗소리를 그어놓으면 우린 한 뼘 지워질 수 있을는지요.
※사리 : 달은 음력 한 달을 주기로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 보름과 그믐에 태양, 지구, 달이 일직선 위에 있게 되는데 이때는 태양의 인력이 합쳐지면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크게 되며 ‘사리’라고 한다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김 은 아
생선뼈만 남은 개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이 되고 마침내 개 입에서
생을 마감하는 너에게서
제비꽃 향기가 난다
햇볕이 개 밥그릇을 헤집는데
생선뼈는 온 몸으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비워라, 그릇
강의 내용(1월7일 문장 강의 내용)
대상이 사물이어도 좋고 관념이어도 좋으나 그 대상에 맞는 언어 구사력과본인만의 창의적인 생각을 글로 표현되어야 한다.
▶ 창의적인 생각이 표현된 글이나 작품은 생각과 표현이 제대로 되어있다.
* 대상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표현
* 부정적인 생각도 해 보아라
* 전이의 구심을 가져보아라
* 대상에 대해 쉽게 표현할 것.
* 쉬운 단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하지 마라
* 어법에 맞는 단어 선택
* 비어 방어 등을 피할 것
▶ 좋은 작품은(대상에 대해)
* 본인의 체험으로 작품에 표현되어야 한다
(본인이 직접 인식한 대상에 대해 글로 표현되어야 진실성있다)
* 문장의 기본은 문법이다.
* 띄어쓰기 맞춤법을 잘 구사할 것.
* 좋은 글(완성도가 높은 글)을 많이 필사해 볼 것.
⇒ 맞춤법이 보이고 띄어쓰기가 보이고(구사력에 대한) 구성력이 보인다.
▶ 잘못된 글
*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 의도에 대한 투시력이 부족하다.
* 글을 쓸 때 될 수 있으면 지나친 자기감정의 노출을 삼가 할 것
▶ 산문의 정의 : 주관적 체험(본인의 경험)
산문이란 : 일상적인 언어로 짜인 글을 말합니다.
구성방법 : 서론, 본론, 결론으로 기술이 되고 일정한 의미 표현과
명료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자유로운 문장 구성)
▶ 운문의 정의: 대상을 통해 인식한 바를 정형적인 틀에 맞춘 운율이 있는 시
<운율을 갖추어 지은 글>
* 좁은 의미로는 한 줄의 시행(詩行)을 가리키고,
* 넓은 의미로는 운율에 따른 작문 자체나 특정한 시의 시적 기법을 가리킨다.
* 운문은 이따금 시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 대개는 예술적 가치가 시보다 떨어지는 운율적 작문으로 간주된다.
▶ 산문시 : 서정시의 특질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산문처럼 보이는 짧은 글
(시적 욕구를 갖춘 시)
<일정한 운율을 갖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내재율(內在律)의
조화만 맞게 쓰는 산문 형식의 서정시>
1. 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재구성함으로서 새로운 심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 시의 형식은 시인에 의해서 자유롭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정형화된 법칙은 없다
3. 시에서 압축이 의미하는 것은 연상과 상상력의 확대와 관련이 있다.
▶ 시는 시대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설익은 비판 글은 쓰지 말 것
(패러독스를 알고 써라)
* 패러독스(역설적으로)→알래고리(상징화)화된다.
* 패러독스paradox : 역설,
(UC)
1. 역설(逆說), 패러독스 (모순되어 보이나 실제로는 옳은 설)
2. 자가당착의 말; 모순된 일[말, 사람]
3. 세간의 통설에 반(反)하는 의견[사고 방식, 말]
* 알래고리allegory화 : 상징화
1. 풍유; 우화, 비유한 이야기; 상징 pl. -ries
「어떤 일을 다른 형식으로 말하다」의 뜻에서
▶자유시와 산문시의 차이
자유시 : 연과 행이 있지만 산문시는 연과 행이 없고 문단으로 나눈다
산문시 : 1연, 2연 등이 없는 대신 문단이나 문장에서 운율이 있다.
※ 처소격⌒조사 處所格⌒助詞 |상위어 : 격조사, 처소
[언어]:처소, 시간적·공간적 범위, 지향점 따위를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
(예)‘학교에 가다’에서 ‘에’ 따위이다.
* 직유. 운유를 알아라
* 전이는 상상력에서 일어난다.
이미지나 표현이 신선해야 한다.
* 자기만의 참신한 의미를 끌어내야 이미지가 신선하다.
* 의도에 대한 추진력을 길러라
* 언어의 의미를 가미해서 뗐다 붙였다를 해 보아라
* 종결어미를 잘 활용하고 구사해라
◈ 종결어미 : 한 문장을 종결되게 하는 어말 어미. 동사에는 평서형·감탄형·의문형·
명령형·청유형이 있고, 형용사에는 평서형·감탄형·의문형이 있다.
하위어
◈ 비종결어미[非終結語尾] : 문장을 접속하거나 전성의 기능을 하는 어미.
‘연결 어미’와 ‘전성 어미’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문장연습 : 시적대상(글감)을 명사형으로 표현해 보아라
명사구. 명사절로 표현해 볼것
※ 언어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 길러진다.
◈ 모든 글은 전반부에 지켜진 것이 후반부까지 이어져야 문장의 강력한 이미지가 살아난다
◈ 시적 대상을 감각화, 형상화하는 것을 길러야 한다.
첫댓글 학우님들 잘 계신지요? 만나지 못하니 보고도 싶고 안부가 궁굼 합니다.방학중에 문장강의 나오셔서 함께 공부합시다.
허선생님 감사합니다. 긴 글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셨군요~~ 지난주에 가족 행사가 있어서 문장강의 못나갔는데 편히 보고 공부하게 되었어요 다음달엔 꼭 나가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공부 할 수 있어 감사한마음입니다. 늘 행복한 시간되시길 기원합니다.
신춘문예 작품, 문장강의 잘 보고 있습니다. 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건필하십시오.
신춘문예 작품을 읽으며 시의 흐름을 느껴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꿈을 향해 부지런히 날개짓을 해야겠다는 강한 생각이 듭니다. 2010년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