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 라디오의 시간 여행
장철호
창고 깊숙한 곳에서 골동품처럼 변해가는 고철 덩어리를 끄집어낸다. 오래된 구식 카세트 라디오. 그 위로 하얗게 덮여 있는 먼지를 불어낸다. 빛바랜 기기의 주파수 표시가 마음을 파고든다. 0과 1 숫자로 표시된 디지털이 아닌 투박한 아날로그의 모습이다. 무심한 듯 코드를 꽂고 주파수를 맞추려고 다이얼을 돌려보았다. 전원은 들어오는데 주파수를 맞춰도 방송이 잘 잡히지 않는다. ‘치이익-치이익-’손가락을 살살 돌려가며 주파수를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미지의 존재와 컨택을 시도하는 것처럼 비밀스러운 재미가 느껴진다. 그동안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는데도 아버지의 카세트 라디오는 한 식구처럼 따라다닌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라디오든 음원이든 언제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다. 문명의 이기는 오래된 추억마저도 창고 속으로 꼭꼭 숨겨 버렸다.
닳고 닳은 열림 단추를 누르니 ‘삐거덕’ 입을 내밀듯 낡은 테이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무이’라고 적혀 있는 손때 묻은 테이프다. 너비 10cm, 길이 6.3cm, 높이 1.3cm의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두 개의 원통 릴로 감겨있는 소형 자기 저장매체, 호기심에 테이프 줄을 당겼다가 계속 빠져나오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을 넣고 돌리기도 했다. 그것도 안 되면 볼펜이나 젓가락을 구동용 톱니 구멍에 끼워 넣고 돌렸던 기억도 난다. 구멍 뚫린 두 개의 톱니바퀴를 돌리면 테이프의 갈색 줄은 서서히 되감겼다. 아버지는 그런 카세트테이프를 계속해서 되감곤 했다. ‘찌익 찍’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테이프는 신기하게도 아버지의 손길 한 번에 치료가 되었다. 카세트테이프는 본체에 넣을 때마다 어느 방향으로 끼워 넣어야 하는지도 언제나 헷갈렸다. 녹음 방지 탭이 있는 윗부분을 아래로 가게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테이프가 읽히는 부분을 먼저 넣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무작정 쑤셔 넣기도 했다. 이렇게나 번거롭고 복잡한, 다소 성가시기까지 한 카세트 라디오를 아버지는 무척 좋아했다.
나의 손가락은 익숙한 듯 검은색 재생 버튼을 눌렀다. 메케한 냄새와 함께 라디오에선 묵직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지직거리며 느리게 돌아가는 옛날식 테이프는 삶에 지쳐 늘어진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카세트 라디오에서 음치에 박치로 무장한 오래된 아버지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아버지의 노래는 아무리 똑바로 들어 보려 해도 삐딱했다. 음정과 박자는 무시한 채 옛날 무성 영화의 연사처럼 대사로 일관되는 노래였다.
“아빠 노래 어떻노? 괜찮나?”
“그게 무슨 노래고?”
“아니다. 잘 들어 보거라. 어떤 게 좋노?”
아버지는 노래가 끝이 나면 항상 자신의 노래를 평가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들어도 똑같은 걸 어떻게 평가해줘야 할지 나는 늘 난감했다. 깜빡 졸다가 손뼉이라도 쳐 주는 날에는 더욱 신이 나서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안방에는 아버지가 녹음한 테이프로 라면 상자를 한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지간히 노래에 소질이 없었던 아버지는 하루도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는 매일같이 나를 곁에 앉히곤 카세트에 연결된 작은 마이크로 노래를 불렀다. 검은색 재생 버튼과 빨간색 정지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녹음 기능이 작동했다. 불편한 몸 때문에 녹음 버튼을 누르면서 노래 부르는 것이 힘들었기에 버튼을 누르는 역할은 항상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의 몸은 유난히 약했고 구부정한 허리와 걸음은 뒤뚱거렸다. 어린 시절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 결국 성인이 되어서 허리에 병이 재발하고 말았다. 가는 병원마다 가망이 없다고 남은 시간을 편하게 보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가망 없는 아들의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산과 들로 돌아다니면서 좋다는 약은 다 찾아서 먹였다. 아버지는 순전히 할머니가 달여준 조약造藥의 힘으로 살아났다고들 했다. 아버지는 새 생명을 얻었지만,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 수밖엔 없었다. 기적적으로 제2의 인생을 사셨던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고,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그렇게 좀 살만해지고 아들로서 효도하려던 시절이 오자 야속하게도 할머니는 기억의 테이프를 감아버렸다. 결국 시골의 작은 요양 병원으로 입원했고 아버지는 할머니를 늘 그리워했다.
따뜻하던 날씨가 차가워지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요양 병원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으시곤 아버지는 외출을 서둘렀다. 장롱에서 정장을 꺼내고, 특별한 날에만 신는 까만 구두를 닦았다. 읍내에서 택시를 부르고 나와 함께 서둘러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요양 병원 문을 열자 할머니는 누워서 눈만 겨우 뜨고 계셨다.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 곁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그러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울고 넘는 박달재는 할머니가 노점상을 하면서 입에 달고 불렀던 애창곡 1번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계획했던 것이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을 녹음하며 불렀던 그 노래를 할머니 곁에서 목청이 떠나가도록 불렀다. 녹음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감고 되감았던 이유를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노래는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음정과 박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들의 사랑 노래를 들으며 며칠 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가 떠난 후 아버지의 카세트 라디오도 멈췄다. 자신의 역할이 끝난 줄 알았는지 하얀 이불을 덮고 자며, 우리가 이사할 때마다 강아지처럼 따라다녔다.
“이제 낡은 물건은 좀 버리세요. 고철이나 다름없는걸.”
어머니는 낡은 카세트 라디오를 보물단지처럼 다루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할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는지도 모른다.
카세트테이프는 기나긴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테이프 톱니바퀴는 두 아이를 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를 되감아 놓았다.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몇 년이나 흘렀는데 라디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아내 역시 쓰지도 못하는 낡은 카세트 라디오를 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할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눈물이 담긴 추억을 떠나보내기 싫었다.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다. 창고 속에서 숨죽여서 기다리던 라디오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엔 두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노래를 들려줄 참이다. 사랑은 세대를 연결하는 고리라고 한다. 두 분의 사랑이 그러했듯 나와 아이들의 연결 고리도 그렇게 엮였으면 좋겠다. 오래전 할머니와의 만남을 준비했던 아버지의 그 마음처럼.
카세트 라디오의 시간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물음표?’의 고리가 펴지는 순간!
아침을 채우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귀를 간지럽히는 커피포트의 휘파람 소리와 언덕배기를 돌아온 이름 모를 들꽃 향기, 꼭 전할 말이 있다는 듯 지저귀는 까치들까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의 아침은 잔잔한 물결처럼 찰랑거렸습니다. 늘 똑같은 풍경, 매일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렘은 달콤한 목소리로 한가로운 오후 나무 벤치로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시와 산문 문학회입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 따스했으며 퍼즐을 다 맞춘 것처럼 후련했습니다. 완벽한 하루는 언제나 걷는 길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꾸준히 글쓰기를 해 왔지만 정작 꺼내 놓지 못하고 가둬 두었던 길잃은 흔적들이 마침내 가야 할 방향을 찾았습니다. 뿔뿔이 흩어져버린 감성과 낱말 조각들을 건져내면서 숱한 고민을 해야 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어서 더욱 기쁩니다. 오랫동안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과연? 이라는 물음표의 고리가 이제야 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나의 발걸음을 잡는 것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돌담 틈새에 핀 민들레 한 포기와 꿀벌들의 이유 있는 윙윙거림이 그것입니다. 누군가 던진 돌에 번지는 달무리의 사연과 아이들의 구겨진 신발 속에 숨겨진 것들은 비밀스럽기까지 할 테고요. 작고 사소한 것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야말로 저의 존재 가치를 더 귀하게 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부족한 작품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 시와 산문 관계자 모든 분께도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당선 전화를 받을 때 온몸을 감싸며 흐르던 따뜻했던 치유의 느낌을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항상 아들이 잘되기를 응원해주시는 어머니, 그 어떤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했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하는 두 아들과 아내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