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 아씨의 공덕으로 만들어진 덕진다리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의 덕진다리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에는 덕진 아씨의 공덕(功德)이 깃든 ‘덕진다리’가 있다. 덕진다리는 월출산 아래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 흐르는 덕진천[지금의 영암천]에 놓였던 다리로 나주에서 영암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길목에 위치하며, 교번마을과 역리마을을 이어주었다. 덕진다리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덕진교는 덕진포에 있다.”라는 내용으로 볼 때 1500년대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덕진다리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징검다리로 그 흔적만 남아 있다. 1992년에 덕진다리가 있던 곳에 새롭게 덕진교를 만들었으나 이것도 2009년에 영암천을 확장하는 공사로 인해 없어졌다. 덕진 아씨의 공덕을 빌려 살아난 원님 신라시대 때 영암 고을에는 인색하기로 유명했던 원님이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어 저승에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을 만난 원님은 이승에서 아직 할 일이 많다면서 좀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염라대왕은 원님의 수명이 적힌 명부를 보고, 아직 젊은 나이인 걸 불쌍히 여겨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저승차사가 이승으로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삼백 냥의 돈을 내라고 했다. 원님이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저승차사는 “이승에서 쌓은 덕만큼 채워지는 곳간이 저승에 있으니 그곳에서 가져오너라.”라고 했다. 원님은 자신의 곳간을 찾아 문을 열었는데, 고작 볏짚 한 단만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곳간을 보고 망연자실한 원님에게 저승차사는 “네 고을에 사는 덕진 아씨의 곳간에서 쌀을 빌리고, 나중에 이승으로 돌아가서 갚으면 된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원님은 덕진 아씨의 쌀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원님은 돌아오자마자 마을 사람들에게 덕진 아씨에 관해 물었더니 사람들은 입의 모아 덕진 아씨를 칭찬했다. 덕진 아씨는 덕진천 옆에서 작은 주막을 하고 있는데,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고, 잘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방을 내어준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원님은 덕진 아씨를 찾아갔다. 원님은 자신이 저승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고, 빚을 갚겠다며 삼백 냥을 건네주었다. 덕진 아씨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니 안 받겠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원님의 간곡한 부탁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삼백 냥을 받았다. 덕진 아씨는 평소 덕진천에 다리가 없어 마을 주민들을 비롯해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불편을 겪고 있어 다리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원님에게 받은 돈으로 다리를 놓기로 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완성된 다리를 덕진 아씨의 이름을 따서 ‘덕진다리’라 불렀다고 한다. 저승곳간이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 덕진다리에 얽힌 설화는 가난하지만 선행을 베푼 덕진 아씨와 부자지만 남에게 인색했던 원님을 대비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삶인지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현재 덕진 아씨의 주막이 있던 곳에는 1832년에 덕진 아씨의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세운 ‘대석교창주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가 있다. 단오가 되면 마을에 있는 ‘덕진제각’에서 덕진 아씨의 공덕을 찬양하고, 마을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덕진여사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출처] 덕진 아씨의 공덕으로 만들어진 덕진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