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유월(六月) / 김달진
은하수 추천 0 조회 40 17.06.04 05: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월(六月) / 김달진


고요한 이웃집의

하얗게 빛나는 빈 뜰에 우에

작은 벗나무 그늘 아래

외론 암탉 한 마리 백화(白花)와 함께 조을고 있는 것

판자 너머로 가만히 엿보인다.


빨간 촉규화(蜀葵花) 낮에 지친 울타리에

빨래 두세 조각 시름없이 널어두고 시름없이 서 있다가

그저 호젓이

도로 들어가는 젊은 시악시 있다.


깊은 숲 속에서 나오니

유월(六月) 햇빛이 밝다

열무꽃밭 한 귀에 눈부시며 섰다가

열무꽃과 함께 흔들리우다.


- 시선집 올빼미의 노래(시인사, 1983)

.................................................................

 

  이 시는 정적인 한국화로 그려진 한 폭 유월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서 마치 나 자신이 열무꽃과 함께 흔들리는듯한 느낌을 준다. 여름이 제철인 십자화과의 채소 열무는 무보다는 잎을 식용하는데 주로 김치를 담아먹는다. 보리밥에 열무김치는 6월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하겠다. 영어 이름인 ‘young radish’어린 무를 뜻하듯 열무어린 무’ ‘여린 무에서 비롯된 말이다. 시에 동원된 시어들은 열무꽃처럼 모두 나지막하고 조용하여 그 내밀한 서정을 자잘하게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번잡스런 세상으로부터 비켜나 모든 시름 다 잊고 오로지 유월의 햇빛 속에서 자연과 조응하는 모습이다.


  고향 진해의 김달진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열무꽃>이 새겨져있다. 그리운 고향의 정경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울안 열무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떨어지는 훼나무 꽃향기에 취해/ 늙은 암소는/ 긴 날을 졸리고 졸리고 있었다.” 그의 다른 시 <샘물>에서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 앉았다란 구절도 있다. 이렇듯 김달진의 시는 욕심 없이 자연을 바라보거나 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사유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후반기 김달진 시의 특징은 선()으로 시를 짜고, 시로서 선을 여는 고고한 정신주의에 입각해 있다. 한학자이기도 한 그의 남겨진 많은 저술과 결코 가벼이 평가할 수 없는 시 세계이지만 생전의 시인과 그의 시는 일반에게 그다지 큰 반향과 조명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제정되어 올해 28회째인 김달진 문학상은 국내 최고 수준의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다. 문학상의 위상은 내건 이름보다는 역대 수상자와 심사위원의 면모, 주최 측의 권위, 상금과 전통 등이 고루 감안되어 심증 평가된다. 얼마 전 발표된 28회 시 부문 수상자에는 이건청 시인이 선정되었다.


  지난 25회는 김남조, 26회에는 정현종, 작년 27회는 유안진 시인에게 상이 주어진 것으로 미뤄보면 시단의 원로 중진들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가는 추세인 듯하다. 그 추세는 물질적 가치에 비정상적으로 경도되어 위축된 정신가치를 회복하려는 김달진의 작품 속 문학정신을 반영하고 상의 제정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성과 작품의 성취도뿐만 아니라 시를 통하여 인간의 고유한 정신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시인에게 주어지는 상이 김달진 문학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청 시인의 수상 시집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의 작품들도 맥락을 같이 한다.



권순진


 

Les Secrets De La Nature - Tim Mac Brian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