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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일정표대로 움직였다면 아마도 이만큼 구경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은 물론
사진 정리하면서 일정표와 대조해보니 계획에도 없는 곳을 플러스 알파로 다녔다는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었다.
현명한 판단을 하여 시간대별로, 날짜별로 혹은 일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해 준 민정원 가이드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면서 이제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려 한다.
또한 가이드가 원하는 시간대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준 일행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어느 누구 하나 삐딱선을 타지 않았음은 말할 것도 없고 별다른 불상사가 없었으니
행운중에 행운의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음이니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끼리 모여
그 낯선 얼굴들 34명이 무사히 즐겁고도 재미있는 여행을 했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다양한 기둥만이 남겨진 역사의 현장 히포드로모스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옥수수, 참 맛있었던 기억이고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멧 광장" 이었지만 비잔틴 제국 시절에 경기장인 "히포드로모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멍"이라는 뜻을 지닌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5세기경에 이집트 파라오인 투트모스 3세가 세웠던 것으로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 자리에 옮겨와 세웠다고 하며 이스탄불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건축물인 셈이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운반될 때 깨어지는 바람에 원래 30미터였으나 현재는 20미터 정도라고 한다.
핑크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참으로 아름답기도 하고 상형문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
아래 받침대에는 전차 경주를 관람하는 황제 가족과 오벨리스크를 세우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모든 오벨리스크는 공통적으로 밑으로 2미터 정도로 부터 시작하며 두 오벨리스크 사이에 있는 뱀모양의 청동 기둥.
본래 광장의 모습은 말굽 모양이었으나 제 4차 십자군 점령 당시 약탈과 방화로 파괴되어버려
지금은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다시 돌아나와 블루모스크의 환상적인 야경에 빠져들면서 고고고...탁심광장으로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대명사... 만남의 장소로 상징되어지는 동상은 터어키 공화국의 탄생과정에서 아타튀크르와 뜻을 같이 한 독립운동자들을 형상화한 것.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는 이스탄불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중추 신경망 같은 곳이며
우리나라의 명동거리같은 "이스타클랄 거리" 역시 연일 사람들로 북적여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걸어야 한다.
또한 "탁심 광장"은 토요일마다 시위 데모꾼들로 난리북새통이어서 교통 체증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객의 불편을 초래하나 그들은 그냥 무덤덤하고 당연한 일과인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들이라고..
그래도 이곳을 다녀와야 터어키의 과거가 아닌 현재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곳에서 꼭 "터어키쉬 딜라이트"라고 불리는 맛있는 간식거리를 구입하면 좋을 듯.
곳곳에 실용적인 물건들도 다양하게 구비되어져 있어 눈팅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괜찮다.
케밥 거리에 가면 이렇게 달달한 과자나 초컬릿을 파는 상점이 가득하다.
그나마 이곳의 가격이 다른 곳 보다 저렴하다.
터어키의 명물 아이스크림 "크르보바나시"는 쫀득쫀득한 아이스크림으로서 "샬렘"이라는 야생난의 뿌리에
염소젖을 치대어 만든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아이스크림도 점령하지 못한 단 한 국가, 터어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타임 스퀘어가 있는 건너편 맥도널드 앞 거리를 철로 따라 쭈욱 걸어가다 보면
왼쪽에 아주 엄청나게 큰 신발 전문점이 있는데 가죽구두와 부츠가 정말이지 넘치듯 많다.
대체로 터어키 돈 "리라"로 계산을 하므로 달러나 유로로 계산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지만
-아마도 관광객이 아니더라도 자국민만으로도 충분히 신발이 판매되는 까닭에 관광객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계산은 정말 못. 한. 다 -
그래도 꼭 들러서 사오길 바란다.
구입하자 마자 국내로 들어올 때 신고 간 부츠와 바꿔 신고 들어왔어도 발이 편하고 착용감이 좋다.
저 부츠는 79.99리라...한국돈으로 32,000원쯤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저들의 보통 월급이 한국돈으로 80만원이고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월급의 차이상
그들의 물가가 1/3 가격 정도가 우리와 비율이 맞는고로 합당하다고 여겨지므로 꼭 사왔다.
실용적이고 다양하고도 예쁜 부츠나 신발이 많아서 더 구입하고 싶었으나 계산을 잘못하는 그들의 행동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안타깝게 모이는 시간이 정해진지라 짜투리 시간도 모자라고 짐도 많아질 것 같아 그냥 돌아온 것이 지금도 후회된다는.
눈길을 사로잡는 빨간색의 전차가 땡땡땡 종을 울리며 다니는 모습은 관괭객들을 매료 시키고
터널을 뜷고 다닌다는 트램을 타보는 것도 흥미로운 터어키 문화를 알게 되는 지름길.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트램을 타는 맛을 잔뜩 느끼며 희희낙락...가이드에게 또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는.
드디어 "골든혼"의 야경을 느끼러 "갈라타 다리" 밑에 있는 맥주집으로 고고고.
터어키의 맥주를 마시며 왕수다를 떨던 그 시간은 어찌도 그리 빨리 지나가던지...늦은 밤까지 시간을 할애하며
한국인의 배짱과 대처 능력법으로 현지 가이드의 볼멘 소리를 잠재우던 용기있던 민정원 가이드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지막 날 밤에는 거의 날밤을 새웠다는 후문이고 그날밤의 길거리에서 보여지던 숱한 검문은
나중에 알고보니 G 20 정상회담이 터어키의 "안탈랴"에서 있는고로 미리 예방차원에서 불심 검문들을 하였던 것.
그리고 그 이틀 후에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과 상관없이 이유도 없는 죽음,
하늘 여행을 떠나게 되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에 그들의 명복을 빌면서도
우리는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먼저.
그리고 분노하면서 그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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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조교에 의해 멋지게 물담배 피우는 법을 터득한 일행이 선뜻 나서서 시험해보더라는.
다시 4,5,6의 시간을 지켜 일찌감치 모여서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을 뚫고 터어키에서 마지막 여정의 길을 나섰다.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을 전세내어 낭만을 만끽하고 그동안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커피도 주문해 마시고
서로 친숙해진 사람들끼리끼리 사진도 찍고 서먹했던 시절은 이제 안녕 이라고 말할 즈음에
또 감동어린 가이드의 인삿말과 노래조차 가슴뭉클하게 들리던 우리의 일정도 끝이 보인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서도 숙면을 헌납하고 일찌감치 움직여 포스포러스 해협 유람선은 꼭 타야하는 법.
"톱카프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정치, 문화의 중심지요 넓은 면적을 소유한 터라 경치도 좋고 보물은 넘치고
정원도 풍요로우며 무기박물관의 무기의 화려함도 기가 막히다.
또한 8만 6천 여점의 보물을 소장한 곳으로서 보수공사나 교체 일정에 따라 전시되는 보석이 달라진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86캐럿 다이아몬드"가 있으며 5캐럿 다이아몬드는 아흔개가 있다고 하고
궁전에 소장된 보석들의 가격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너무 많은 보석들의 향연에 기가 막히다 만을 연발하며 구경 삼매경...언제 어디서 이런 황홀지경을 누려보겠는가.
톱카프궁전은 유럽식 궁전과 다르게 넓은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건물을 세우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으며
술탄과 왕자들이 거처하며 가족들을 위한 개인 공간이 있던 제 4정원까지 있다.
오스만 제국의 깃발을 꽂은 자리...이로써 이스탄불이라 부르게 된다고.
톱카프 궁전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온갖 유람선으로 그득하고
햇살에 빛나던 푸른 바다의 색상이 너무나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카메라가 사람의 눈을 못 따라간다는 생각.
제1의 정원을 거쳐 제 4의 정원까지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방마다 그득한 보석과 식기류에 놀라면서
그 시절의 식기의 문양이 지금도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웠다.
또한 그렇게 아름답고 멋진 보석으로 무기를 장식하였다는 것과 그 멋지고 화려한 무기가 살상용으로 쓰였다는 사실에는 충격.
마지막으로 공항에 가기 직전에 들른 선물용품 구입장소인 가이드가 소개하는 매장엘 가면
다섯개 포장판매 하는 것을 사면 무슨 종류던지 하나를 더 준다는....핸드크림은 빼고
그래서 딸내미가 꼭 사오라는 터키쉬 딜라이트를 맘껏 사와서 지인들에게 두루두루 나눠줬다.
물론 스카프 같은 것은 빼고서지만 굳이 그곳에서 스카프를 살 필요는 없다.
그저 장미향이 가득한 오일이나 핸드크림, 소스 등을 사면 잘 사는 것이 되겠다.
자, 이제 모든 여정은 끝이 났다...너무도 현명하고 똑똑하며 열정 넘치는 가이드 덕분에 시간 조절이 잘 되어 널럴하게 공항으로 휘리릭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짐정리를 하여 오버된 물품들을 보조 가방에 넣고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향해 아시아나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서
그동안 수고한 터어키의 민정원 가이드와 아쉬움 가득한 이별을 하고 화장실에 들러 오랜 시간 비행할 것에 대비에 세수를 하며
다시 화장 안한 얼굴로 돌아왔다....선크림 같은 것을 바르지 않으면 태양이 작렬하는 터어키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기꺼이 바르긴 했지만 얼굴이 무겁게 느껴져서 그것도 고통이라면 고통.
기내에 들어가 부츠를 벗고 아예 신문지를 깔고 건네준 실내화를 신고 편하게 잠이 들었다 말았다 하면서
장거리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마중 나온 아들의 차를 타고 편안하게 집으로 귀소.
역시 내집이 최고여....무설재 입성하며 다시 한번 외.쳤.다 는.
이렇게 해서 길고 긴 터어키 여행스케치가 마무리 되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찾는 터어키 일정을 다녀온 듯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채 미처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다른 터어키를 보고자 한다면
굳이 라는 말을 듣더라도 다시 한 번 가볼만한 나라가 또 터어키라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그냥 바람처럼 휙익 들러오는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맘에 들면 비록 가본 나라일지라도 또 찾고
찾아간 나라의 또 다른 도시를 찾아가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아마도 터어키 역시 그런 여행지로 합류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길고 긴 글을 읽느라 수고하신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다음 여행지로 다시 도전하게 될 터어키일지
아니면 또 다른 나라를 기웃거리며 색다른 볼거리를 찾아 언제 어디로 또 떠나게 될지 모르지만
여행한 후에 다시 쓰게 될 이후의 여행 후기를 기다려주시기 바란다,
TIP
1. 비잔티움 시대에 히포드로모스는 전차 경기나 검투사 경기, 서커스 등을 보면서 여론을 만들어가던 정치 중심지였다고 한다.
오스만 시대에는 이곳에서 말을 타고 창을 던지는 "자릿" 경기가 벌어졌으며 이로써 "말의 광장" 이라는 뜻의
"잇 메이단" 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역시 정책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2. 탁심은 "분배하다" 라는 뜻으로 그에 걸맞게 지역 관광의 출발지이자 이정표가 되는 탁심광장은
건국 기념일 행사와 새해맞이 축제 등 국가가 주도하는 공식행사는 물론 각종 단체의 집회까지 허용이 되며
이스탄불의 정치, 문화 예술의 마인드가 표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3. 이스타쿨랄 거리 양끝을 오가는 빨간 트램은 19세기 페라대로, 지금의 이스타쿨랄 거리를 따라 달리던 노면 전차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리에는 현대를 상징하는 소매치기가 들끓고 있으며 낯선 사람들이 말을 걸면 절대 따라가지 말아야 할 곳이기도 하단다.
이를테면 맥주를 마시자 라던지, 가이드해주겠다던지,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던지 사진을 찍자 하면서 소매치기 해댐은 물론
마약에 은근슬쩍 빠지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촬영해준다고 하면서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갖고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고.
4.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이 살던 톱카프궁전은
술탄들이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옮기기전까지 400여년 동안 그곳을 사용하는 술탄에 따라 증축이 거듭되었다고 한다.
5.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러스 해협, 금각만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톱카프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한다.
터어키공화국 설립이후 1924년 박물관으로 개방되기 전까지 술탄의 유족들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수첩에 적어 온 것들 중에 쓰여지지 못한 것도 허다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려고 한다.
그래야만 터어키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눈으로 자신들만의 언어로 터어키를 표츨해낼 것이 아니겠는가.
아쉽지만 터어키 여행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는 걸로.
즐겁고도 행복했던 터어키 여행기를 쓰면서 주마등처럼 스치던 터어키 여행의 일정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흡족했다.
하지만 일일이 원하는 장소에 내려서 촬영할 수는 없었으므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촬영한 사진들의 장면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게 나온 사진들을 추려서 게재하기는 했다.
움직이는 차안에서 창문을 통해 촬영하기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개인적으로는 그런대로, 아쉬운대로
설명에 필요한 사진들이 담겨져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또한 걸어가며 순간 순간 촬영을 하며 일행들에게 민폐되지 않으면서 장면장면을 찍느라 고생하기도 했지만 모두 즐거운 기억이다
이제 터어키여 안녕.....
첫댓글 마치 터어키에 다시 간것 같네요~! 그 가이드 정말 베테랑입니다 거듭 에고 배 아파라~! ^ ^
정리하면서 다시 되돌아보는 즐거움도 꽤나 쏠쏠하였답니다.
ㅎㅎㅎㅎ 가이드는 잘 만난 듯 하다는.
몇 해 전,
사전 공부도 없이 휑~하게 다녀온
터키 여행을 다시 다녀온 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숙지하여 또 한번 다녀오고 싶어지네요.
눈내리는 무설재..
평안하시기를
그러셨군요...저도 참 여행하는건지 공부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듣고 보고 쓰고 하는 것이 또 제 습관인지라
가끔 직업은 못 속인다 뭐 그런 말을 듣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이렇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거죠.
터어키, 참 괜찮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