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윤 (쇼)
엊그제 TV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이며 턱쇼(talk show) 호스트 였던
자니 윤의 근황을 보여 주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누구의 자화상(自畵像)인가?
모두가 터미널에 가까워지면
아름답지 않게 되는 걸 알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 황폐(荒廢)해져있었다.
뇌출혈에 치매까지 2중고에 시달린다.
새하얀 머리 찌그러진 얼굴
보행기에 의지하고도 발이 안 떨어져...
8년 전에 이혼 했다는 전 부인이 부축하여
떼는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기저귀에 오줌을 쌌다고
울 쌍을 하고 더듬거리는 자니 윤.
그는 83살 먹은 애기가 되었다.
그렇게 유명했던 자니 윤은 어디로 가고
저렇게 뇌출혈과 치매에 물려서
덧에 치인 짐승처럼 껍데기만 남아있는가?
자니 윤은 누구인가?
1980년대 미국에서 시청 율이 제일 높았다는
NBC의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한 번도 아니고
34 번이나 출연했던 그는 미국에서
인정받았던 다재다능한 연예인이 아니었던가?
일류 배우 찰톤 헤스턴이 출연하기로 했는데 지각하게
되어 자니 윤이 카슨쇼에 20분 동안 땜빵 출연한 것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어 자니 윤이 뜨는 계기가 되었다.
동양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미국 주류(主流)속에서 헤엄쳤다.
미국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도 대단히 힘이 드는데
우리 코미디언이 우리말로 우리를 웃기는 것도 힘이 드는데
그는 또박 또박 정확한 그리고 저급하지 않은 영어로 미국 시청자들을 웃겼다.
그는 뉴욕시에서 주는 연예 대상인 AVA(American Variety Artists)도 받았다.
그는 해군 군무 중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가서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학비 생활비를 벌려고 하루에
3가지 job을 뛰었다고 한다.
1964년 뉴욕의 유명한 카페 ‘텔아비브’에서 코미디 수업을 하였단다.
차츰 미국 주류 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활동 범위를 넓혔다.
88 올림픽 때는 미국 최고의 코미디안 밥 호프, 일류 영화 스타 부륵 쉴즈와
한국에서 공연하여 미국 연예계의 스타라는 것을 확인 해 주었다.
1989년부터 1990년 까지 KBS에서 품위 있고 재치 있는 턱쇼를 진행했다.
미국에 가서도 가수, 코미디언, 영화배우를 계속했다.
그가 주연한 영화 “They still call me Bruce"는 뉴욕 타임스와 LA 타임즈에서 장문의 평을 써주었고 Hamburger Johnny 라는 영화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손녀인 수퍼 모델 겸 영화배우인
Margaux(마고) Hemingway와 공연했다.
그는 90년대 이후에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수 십 년 동안 미국과 한국의 톱스타가 무일푼이 되어 양로병원의 신세를 지고 있는
의문이 풀렸다. 왕자와 거지의 옷을 바꿔 입은 그가 거기 있었다.
1999년 18살 연하의 줄리아 김이라는 여인과 결혼 했단다. 자니 윤이 64 줄리아가 46.
만만치 않은 재력과 만만치 않은 명성과의 만남에 나이는 걸리적거리는 숫자일 뿐.
그리고 2009년에 이혼. 자니 윤의 재산을 아내가 빼돌렸다는 소문에도 조금도 흥분 하지 않고 “이 집도 가구고 모두 내 것이고 자니 윤은 몸만 들어왔어요. 돈 꿔달라면 돈 꿔주고 할 도리 다 했어요.” 그녀는 이불 장사를 해서 큰돈을 모았다고 한다.
자니 윤이 외부에 알리지 말라 해서 “이혼 사실을 숨겼다.”고 하는 줄리아.
줄리아의 아들과 잦은 충돌이 이혼의 원인이란다.
내 엄마에게 얹혀사는 의붓아버지라고 자니를 증오하는 아들의 마음 이해가 간다.
줄리아는 열녀(烈女)중에 열녀다. 그것도 자니의 복이라면 복이다.
2016년 한국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에 나가니
뇌출혈 침입을 받은 자니. 4개월 동안 한국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미국 요양병원으로 들어갔다. 졸업날도 머지않은 것 같은 때에.
줄리아는 헌신적이다.
매일 요양병원에 들려 간병을 한다.
욕창 면하려고 엉덩이 바꾸어 눕히기
기저귀 채우고 대 소변 가리기
식사 챙겨주기. 휠체어 태우기 등
간병은 엄청난 고행이다.
이혼한 여자가 이걸 다 한다.
기자의 질문에 “내가 안 하면 누가해요?”
줄리아는 죽으면 정말 좋은데 가겠다.
기자가 물으니 자니는
“자기가 가장 잘 한 일은 줄리아와 결혼한 일”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면 인생을 재밌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으로 오래 기억해주길“ 힘들게
더듬거렸다. 젊어서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았을지는 몰라도 늙어서는 너무나 불행해 보인다.
나는 바란다. 자니 보다 줄리아를 더 오래 기억해 주기를.
어떠한 백의의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천사, 전 이혼녀 줄리아에게 찬사를 보낸다.
첫댓글 TV나 지상을 통하여 그의 과거와 현재를 접했던 지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는군요.
조물주의 섭리대로 생노병사가 주어지지만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렇소. 우리도 언제 어떻게 저렇게 될지...편안하게 데려가 주기를 기도 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니윤은 우리나라가 낳은 미국의 일류 연예인이었지요.
영화 제작하다가 무일푼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