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 가운데 빛을 비춰주십니다!
참고말씀: 창3:24; 왕하24:12-16; 겔10:9-14; 롬11:36; 계7:9,10
읽을말씀: 겔1:1-28
주제말씀: 겔1:1,2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첫째, 절망 가운데서도 빛을 비춰주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겔1:1,2)
본문의 말씀은 언제 임했습니까? 2차 바벨론 포로 후 5년째 되던 해,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2절) 곧 에스겔이 30세가 되던 해 4월 5일입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1절 상)
에스겔이 어디에서 이 말씀들을 받았습니까?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온 유다 백성들의 집단거주지 근처 그발 강가입니다. 즉 이역만리(異域萬里) 낯선 땅에까지 붙들려온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1절 중) /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3절)
어떤 상황에서 임했습니까?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암울하고 절망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왕하24:12-16)
어떻게 임했습니까?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며...”(1절 중) 밝은 빛을 사방으로 비춰주심으로써 입니다.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4절 상)
본서에는 말씀과 함께 수많은 환상들이 주어졌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절망 가운데에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가나안 본토로부터 떨어진 이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에스겔에게 무엇을 주시기 위함입니까? 사명입니다. 즉 사로잡혀온 동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특별한 말씀입니다. “갈대아 땅 그 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3절 상) 특별히 임하는 그 말씀이 곧 그의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특별히 임하는 말씀이 우리의 사명임을 깨닫기 원합니다.
우리의 경우는 지금 어떻습니까? 혹 절망 가운데에 있습니까? 절망과 근심의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습니까? 그렇더라도 낙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절망 가운데서도 빛을 비춰주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명의 자리로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겔1:28)
본문에는 여러 가지 환상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떤 환상들이 소개되고 있습니까? 네 생물의 환상(5-14절), 네 바퀴의 환상(15-21절), 궁창의 환상(22-25절), 보좌의 형상(26-28절)입니다. 먼저 여기에 등장하는 네 생물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호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섬기는 천사들 곧 그룹들입니다.
“그 속에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5-7절) /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10,11절) /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겔10:14)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이 그룹들은 항상 무엇과 함께 움직였습니까? 네 바퀴입니다. “내가 그 생물들을 보니 그 생물 곁에 있는 땅 위에는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15,16절) /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은 도는 것이라 부르며.”(겔10:9-13)
네 생물의 머리 위쪽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궁창의 형상입니다.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22절) 이 궁창은 하늘의 궁창을 가리킵니까? 아닙니다. 그것을 모방한 광활하며 새로운 모양의 공간으로써, 그곳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이 깃들어 있어서 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위엄 앞에 두려움과 경외감을 가지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으로, 어떤 환상이 나타났습니까? 에스겔이 밝히 증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입니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26절 상) /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28절 중) 거기로부터 무엇이 들렸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28절 하)
본격적인 소명사건(겔 2장)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왜 이 환상들을 보여주신 것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깨닫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이 고백한 바와 같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까? 개인적으로 에스겔이 소명이 그러하고, 민족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그러하며,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바로 그러할 것입니다. 온 성도들이 찬송할 일관된 주제처럼 말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7:9,10)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에스겔처럼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하기 그지없습니까? 그렇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절망의 구름을 걷어내고 빛을 주시며, 우리 가운데서 희망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회복의 청사진이 펼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우리 가정, 공동체, 일터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